오늘 신문기사중에서 (2020년 6월 5일 금)

선기옥형 | 2020.06.05 08:37 | 조회 1326


                                목차

1.[천자 칼럼] 67년 만의 귀가

2.확진자 1명이 몇 명 감염시키나…‘재생산지수’ 두 배 높아져 ‘1’ 초과

3.최병준의 가타부타]우주여행시대, 우주서 바라본 지구 모습은?

4.100년 전의 몽상[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5.자율주행차 시대의 집

6.[서경식 칼럼] 코로나 재난 속의 인문학교육

7.[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돌봄의 과학’을 위하여

8.간추린뉴스

9.코로나 19 확산현황


1.[천자 칼럼] 67년 만의 귀가

한국경제2020.06.04



“잘 다녀오겠소.” 김진구 하사가 입대한 것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6월이었다. 그의 나이 24세, 신혼 3년차였다.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아내와 18개월 된 아들을 두고 전쟁터로 향하는 마음은 돌덩이 같았다. 제2사단에 배치돼 전장을 누비던 그는 이듬해 7월 철원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전사했다. 정전 협정이 체결되기 불과 2주 전이었다.


그가 산화한 화살머리고지는 화살촉처럼 생긴 고지로, 인접한 백마고지와 함께 중부전선 방어에 없어서는 안 될 전략요충지였다. 이곳을 빼앗기면 ‘철의 삼각지대’인 평강·철원·김화 지역 보급로가 끊긴다. 그 때문에 치열한 전투가 네 차례나 벌어졌다.


그의 유해 발굴 소식은 67년이 지나서야 전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진지를 사수하다 적의 포탄에 산화한 듯, 그의 유해는 골절된 상태로 발굴됐다. 그 사이에 갓난 아들은 70세가 됐고, ‘젊은 새댁’은 90세가 됐다. 열아홉에 결혼해 3년 만에 남편을 잃고 애끓는 세월을 견뎌온 아내 이분애 씨는 전사한 지 67년 만에 돌아온 유해를 안고 오열했다.


이씨가 남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제주에서 두 달간 군사훈련을 받고 부산항에 잠시 내렸을 때였다. 당시 아장아장 걷는 아들이 아버지 얼굴을 어떻게 알아봤는지 낯도 안 가리고 품에 안기는 걸 보고 마음이 아렸다. 그렇게 떠난 남편은 전쟁터에서 아들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아들 사진 찍어서 보내달라고 해서 찍어 보냈어. 조그만 거, 그거 받아 보고는 ‘받아 봤다’ 이렇게 말하고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이씨의 등 뒤로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그는 하루 12시간씩 방직공장에서 일하며 외아들을 키우는 동안 남편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간직한 사진 속 남편은 눈썹이 짙고 콧날이 선명한 미남이다. 그는 “친정 가는 길에 나를 업어준 남편의 다정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신혼시절을 회상했다. 아들은 “유해를 수습하지 못해 무덤을 만들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던 어머니가 이제 아버지와 함께 묻힐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2.확진자 1명이 몇 명 감염시키나…‘재생산지수’ 두 배 높아져 ‘1’ 초과

경향 2020.06.04 

가장 높은 지역은 1.89 기록…방문판매 업체 집단감염도


로나19 확진자 한 명이 몇 명을 더 감염시키는지 보여주는 재생산지수(R0)가 1을 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재생산지수가 2에 육박해 확진자 1명이 2명의 추가 확진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추세다.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이 코인노래방, 쿠팡 물류센터, 교회, 식당 등을 거치면서 또 다른 집단감염으로 이어진 결과다. 다단계 건강기능식품 판매업체와 관련된 고령층 집단감염까지 발생하는 등 고위험군의 확진 사례도 늘고 있다.


4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지난 4월 전국의 재생산지수는 0.5~0.7 사이를 오갔다. 하지만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후 재생산지수는 1.2로 두 배가량 높아졌다. 재생산지수가 가장 높은 지역은 1.89까지 올라가 1명의 확진자가 거의 2명의 추가 확진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은경 방대본 본부장은 “재생산지수가 1보다 클수록 유행의 크기나 속도가 빨라진다”며 “방역당국의 목표는 1 이하, 적어도 0.5 근처에서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한때 대구·경북 지역의 재생산지수가 5까지 올라간 적이 있지만 강력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유행을 통제할 수 있었다”며 거리 두기를 강조했다.


재생산지수가 높아진 것은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증가한 영향이 크다. 최근 2주간(5월21일~6월4일) 확인된 국내 확진자 507명 가운데 364명(71.8%)이 집단감염을 통해 감염됐다. 이 중 350명(96.2%)이 수도권에서 발생했다.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 비중도 6.3%에서 8.9%로 늘었다.



지역사회 감염 위험이 커지면서 코로나19에 특히 취약한 고령자나 기저질환자가 많은 장소에 집단감염이 번질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날 서울 관악구의 건강기능식품 방문판매업체 리치웨이에서는 지난 2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에 12명의 확진자가 추가로 발생해 이날까지 최소 13명의 확진자가 확인됐다. 방문자 대부분은 60~80대 고령자로 알려져 코로나19 고위험군 환자가 발생할 우려가 커졌다. 방역당국은 직원과 방문자 등 188명을 추적조사하고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042112035&code=940100#csidx9a1d80c8eedd5829cce881f62ab617f 


3.최병준의 가타부타]우주여행시대, 우주서 바라본 지구 모습은?

최병준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bj@kyunghyang.com

2020.06.05 


[최병준의 가타부타]우주여행시대, 우주서 바라본 지구 모습은?

우주여행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지난달 말 사상 첫 민간 우주선 ‘크루 드래건’을 성공적으로 쏘아올린 스페이스X 외에도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버진’그룹 리처드 브랜슨도 회사를 세우고 우주여행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최병준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한 번에 수억원이 드는 우주여행을 상류층의 호사로 볼 수도 있겠으나 우주여행을 다녀온 우주비행사들은 엄청난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먼저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에 나온 비행사들의 체험을 들어보자.


“틈만 나면 지구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중략) 나는 미국 국민이라든가, 텍사스 사람이라든가, 휴스턴 시민이라든가 하는 따위의 의식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지구에의 귀속의식뿐이었다.”(에드워드 깁슨)


“눈 아래로 지구를 보고 있으면 지금 현재 어딘가에서 인간과 인간이 영토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보 같은 짓처럼 생각된다”(돈 아이즐리)


“밤이면 소총의 불빛까지도 보인다. (중략) 우주에서 이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위에서 지구인 동료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전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게 생각되는 것이다.”(월터 쉬라)


지구의 대기오염을 보고 대체 “우리들은 지구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고 통탄한 비행사도 있다. 우주비행사 러셀 슈와이카트는 “우주 체험을 한 뒤에 전과 똑같은 인간일 수 없다”고 말했다.


우주여행은 결국 지구를 돌아보는 여행이다. 우주비행은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벗어나 자신이 살던 곳을 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베트남전 당시 우주비행사들은 총탄의 불빛을 보고 분노했지만 앞으로 우주여행자들은 산불이나 홍수로 허덕이는 지구의 모습에 비통해할지 모른다. 미국과 호주는 물론 북극권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대형 화재는 1979년 이후 20% 정도 늘었다. 1980년 이후 폭풍 발생 빈도는 2배 증가했다. 한쪽은 가물어서 불타고, 한쪽은 홍수와 쓰나미에 휩쓸리고 있다. 기후관측 사상 최초, 수백, 수천년 만의 처음이라고 명명된 재난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대기 중 배출된 탄소 중 절반 이상은 지난 30년 사이에 배출됐다.


어쩌면 우주여행자들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태평양에는 텍사스주 크기의 거대한 ‘쓰레기 조류대’가 있다. 2차대전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한 플라스틱은 1940년대만 해도 사용량이 ‘0’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히말라야부터 심해까지 플라스틱 쓰레기를 볼 수 있다. 수전 프라인켈은 “21세기 첫 10년간 만든 플라스틱의 양은 20세기 전체 기간 동안 만든 양에 육박한다”고 했다.


우리는 화석연료를 마구잡이로 써서 지구를 데워놓았고, 썩지도 않는 쓰레기를 마구 버려서 지구를 더럽혀 놓았다.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이 미친 영향이 이토록 참혹하기에 과학자들은 농경이 시작된 이후의 시기를 인류세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백악기 등 모두 5번 대멸종이 있었는데 이 시대가 멸종의 시기에 비할 만큼 크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구에서 생멸한 생물종 중 인간만큼 악명 높은 학살자는 없다. 평균 4년마다 한 종이 멸종하지만, 인간에 의한 멸종은 최대 12만 배나 많다. 인간이 파괴해버린 자연 생태계에서 동물들은 점점 숨쉬고 살아갈 땅을 잃고 있다. 세계자연기금은 1970년부터 2014년까지 44년간 지구상에 살고 있는 포유류와 조류, 어류, 파충류, 양서류의 개체 수가 60% 감소했다고 2018년 발표했다. 무서운 속도다.


인간은 이제 스스로를 멸종의 문턱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아직도 화석연료를 흥청망청 써대고 있는 통에 지구의 기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북극의 영구동토가 녹으면 지금까지 접촉하지 못한 바이러스가 풀려날 수 있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은 더 흔하게 발병할 것이다. 산불, 홍수, 전염병 등 재해의 일상화, ‘뉴 노멀’이다.


우주여행은 초거시적으로 지구를 보는 것이라면, 지구에서는 미시적으로 지구를 살펴볼 수 있다.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가 밟고 있는 지구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망가진 지구를 버리고 우주 식민지로 가겠다는 발상 자체도 터무니없지만, 갈 수도 없다. 미래는커녕 지금 당장이 위기다. 2014년 기후정상회의를 앞두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지구 외에는) 플래닛(행성) B가 없기 때문에 플랜 B가 없다”고 했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의 사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이 “지구를 찍는 것이 무슨 과학적 가치가 있느냐”는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득해 보이저 1호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촬영했다. 칼 세이건의 말대로 우주라는 광대한 공간에서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이다. 세이건의 부인 앤 드루얀은 “칼이 지구의 이미지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충격적인 힘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출간 40주년이다. 세이건은 <코스모스> 말미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050300095&code=990100#csidx86cb4156d41261b9b9ef980002542cd 



4.100년 전의 몽상[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2020-06-05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논문을 국제저널에 투고한 지 석 달이 넘었는데 연락이 없다. 편집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한참이 지나, 심사위원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늦어서 미안하다는 연락이 왔다. 이해가 됐다. 이런 상황은 한두 사람만이 겪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얼마 전에는 공동 연구를 하는 프랑스 동료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 고통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그는 “지옥 이상의 고통”이라고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연필과 노트에 의존하는 나의 강의 준비는 이제 완전히 전자식 노트패드로 바뀌었다. 학생들의 온라인 인터넷 강의는 문제점도 많지만 이제 적응 단계를 지나 궤도에 오른 듯하다. 학생들은 착실히 수업을 듣고, 과하다 싶게 낸 숙제도 혼자 힘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된 학생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이 상황이 더 지속될 것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미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젊은 학생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이런 와중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서 민간 유인우주선 ‘크루 드래건’을 쏘아 올렸다. 이 우주선은 국제우주정거장과의 도킹에도 성공했다. 처음 우주정거장을 구상한 사람은 1857년에 태어난 소련의 물리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다. 그는 1893년에 ‘달 위에서’, 1895년에 ‘지구와 우주에 관한 환상’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1920년에는 처음으로 우주정거장을 고안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지구는 스페인독감이 휩쓸던 때였다. 전 세계적으로 약 5억 명이 감염되어 5000만 명에서 1억 명 정도가 사망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전체 인구의 약 25∼50%가 감염되어 약 14만 명이 사망했다.


어찌 보면, 그 무렵 우주정거장에서 식물을 재배하고, 인공중력을 만들고, 거대한 거울을 통해 통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단지 몽상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꿈은 꿈이 아니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로켓을 개발하고, 1924년에 우주비행협회를 만들었으며, 1957년에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렸다. 그 꿈이 100년 동안 이어져 머스크에 의해 다시 실현되는 중이다. 우리는 마스크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경제적 문제는 해결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과학자들은 100년 전 우주여행을 언급한 치올콥스키처럼 미래의 꿈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의 몽상이 젊은이들의 미래에는 현실이 될지, 또 모를 일이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5.자율주행차 시대의 집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추진 중인 미래형 도시. 도시와 자동차, 이동형 주택이 첨단 정보기술로 연결된다.


스마트 모빌리티 시대, 집도 이동하는 세상이 다가왔다.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자율주행차 시대를 맞아 집도 움직일 수 있다는 상상이 점차 현실로 되고 있다. 사실 움직이는 집은 새롭지 않을 수 있다. 몽골 유목민의 전통가옥 게르는 요즘에도 꽤 매력적이다.

 

인공지능·사물인터넷 기술 결합

이동형 첨단주택 머지않아 탄생

침실·거실·주방 등 경계 사라져

스스로 움직이는 도시도 나올 듯


서구사회에서 이동형 주택은 20세기에 들면서 유행했다. 교통·통신의 발달과 관련이 깊다. 21세기 초 철도 건설과 도시 개발 붐으로 예전 사람들이 거주해온 오두막과 주거지가 파괴되는 위험에 빠졌다. 예컨대 1920년대 캐나다 새스커툰 호수 주변의 작은 주택가에 철도가 들어오고, 지역 공동체가 무너질 지경에 이르자 해당 지역 주민들은 비상조치를 취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마을을 지키려 했다. 집과 상점을 썰매에 싣고, 이를 말에 달아 몇㎞를 끌어다 다른 지역으로 옮겼다. 이러한 형태의 주택 이동은 당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나무로 만든 집은 말뿐 아니라 철도로도 쉽게 옮길 수 있었다. 주택·건물이 대지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디든 필요한 곳으로 이동해왔다는 역사를 입증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현재에도 말을 대신해 승용차·트럭 등에 집을 달고 옮겨 다니고 있다. 농막 같은 소규모 이동주택도 인기를 끌고 있다.

 

건축이 특정 장소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원하는 장소에 갈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이 건축가들의 상상력을 지속적으로 자극해왔다. 이 상상력이 개별 주택을 넘어 도시적 스케일로 확장되기도 했다.

  

중국이 꿈꾸는 ‘모바일 차이나타운’

 

중국 건축가 그룹 MAD가 구상한 ‘수퍼스타’, 별 모양 도시가 전 세계를 여행한다.



1960년대 영국 건축가 그룹 아키그램(Archigram)이 제안한 ‘걸어 다니는 도시(Walking City)’가 대표적이다. 건축물이 유기체처럼 발이 달려 움직인다는 공상과학과 히피적 자유스러움이 결합했다. ‘아방가르드적 상상력’이 탁월한 이 유기적 조직체는 건물인 동시에 운송수단이다. 집이 한 곳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움직일 수 있다는 발상의 전복을 시도했다.

 

2008년 베네치아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중국 건축가 그룹 매드(MAD)가 제시한 ‘수퍼스타: 모바일 차이나타운’은 더욱 전위적이다. 별 모양의 이동도시를 구상했다. 지구촌 곳곳의 낡고 침침한 차이나타운을 디지털 세상에 맞게 바꿔보자는 취지에서다. 일단 도시 자체가 전 세계 여기저기로 돌아다닐 수 있다. 모든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고, 폐기물 또한 100% 재활용하는, 자율진화형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중국 건축가 그룹 MAD가 구상한 ‘수퍼스타’, 별 모양 도시가 전 세계를 여행한다.


이 도시에는 1만5000여 명이 거주한다. 건강 리조트, 스포츠 복합시설, 식수용 호수, 심지어 디지털 공동묘지까지 갖추고 있다. 형상은 마치 외계에서 날아온 우주선 같다. 필요할 때마다 세계 각국에 착륙해 그곳의 도시와 에너지와 환경을 교환한다. 도시의 안정성과 변화를 함께 이뤄내는 셈이다. 기술과 자연, 미래와 인류가 융합되는 시스템이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 움직이는 자동차 또한 집이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도시의 개념 자체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벌써 60여 년 전 일이다. 1956년 미국 전력회사가 전기 자율주행차 광고를 내보냈다. 사람 대신 전기가 운전자가 되는 내용이다. 고속도로·일반도로 가릴 것 없이 전자기술에 의해서 자동차의 속도와 방향이 자동 조절된다. 스스로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게임을 즐기는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담은 광고 내용이 마치 2020년 오늘을 예견하는 것 같다.

 

1920년대 말의 힘을 이용해 움직인 캐나다 목조주택.



현재 스마트 모빌리티에 가장 관심이 큰 곳은 자동차 관련 대기업들이다.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모바일 도시를 구축하기 위해 숱한 연구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자율주행차(무인자동차)는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사람의 개입 없이 움직이는 차량이다. 레이더, 레이저 광, GPS, 주행거리 측정장치 등 다양한 기술이 동원된 자동 제어 시스템으로 주변 환경을 인식한다. 교통 표지판을 구별하고, 장애물을 피해서 가고, 최적의 교통 경로를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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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미국 전력회사의 전기 자율주행차 광고.


자율주행차의 혁신은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자율 도시 시스템이 떠오르고 있다. 덴마크 건축가 비아케 잉겔스가 올해 초 일본 도요타 자동차와 함께 제시한 ‘도요타 우븐 시티’(Toyota Woven City)가 시사적이다. ‘직조(織造) 도시’를 뜻하는 도요타 시티는 도로가 그물 형태로 연결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첨단 정보기술의 집합체를 닮았다. 마치 살아있는 실험실과 같은 도시로, 인큐베이터 캠퍼스와도 같다. 자율주행차와 로봇,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기술과 서비스로 도시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다. 도시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수소로 해결한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미래형 도시  

 

이 야심 찬 프로젝트는 탄소 중립 사회를 목표한다. 차량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새로운 균형을 찾는 도시를 제안한다. 도로를 빠른 차량, 느린 차량, 보행자 전용으로 구분하고, 도로에는 도요타가 개발한 자율주행 전기차가 운행한다. 자율주행차는 사람·물건을 수송하는 것 외에도 광장 등에서 이동형 점포로도 활용된다. 자율주행차 내부도 일본 전통 주거 형식인 다다미 공간으로 꾸밀 수 있다. 도요타 시티는 올해 폐쇄되는 후지산 기슭의 도요타 공장 부지에 지어질 예정이며, 내년에 착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인간은 운전대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자동차 자체가 이동하는 공간, 혹은 주택·건축으로 변모할 수 있다. 필자 또한 미래형 자율주행 주택집을 생각해본다. 자동차가 집이 되는 것을 넘어 집 자체가 자동차가 되는 가능성을 주목해봤다.

 

구체적으로 자율주행 집 가운데에 자체 충전 기능을 갖춘 허브(Hub) 공간을 마련한다. 그 둘레에 바퀴가 달린 각각의 방을 배치한다. 개별 공간인 거실·주방·침실·서재 등은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예컨대 회사에 출근하거나 여행을 할 때, 용도에 맞게 방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이동 중에도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도시의 기초 단위인 집이 달라지면 도시구조 또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집 자체가 주차공간이 될 것이다. 자동차가 드론 항공 기술과 만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탄생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도로라고 불리는 공간이 줄어들고, 결국엔 사라질지도 모른다. 혼잡한 도로 자리에 쾌적한 공공공원이 들어설 수도 있다.

 

자율주행 주택과 움직이는 도시, 머나먼 SF영화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60년 전 상상한 자율주행차가 도시를 누빌 날이 머지않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대변환은 인류가 그간 쌓아온 이동성 욕망을 더욱 증폭시킬 게 분명하다. 새롭게 등장한 과학기술은 우리의 삶과 일, 인간관계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혁명의 문 앞에 서 있다.


[출처: 중앙일보] [장윤규 건축이 삶을 묻다] 한 곳에만 살 수 있나? 언제 어디로든 떠난다


6.[서경식 칼럼] 코로나 재난 속의 인문학교육

한겨례:2020-06-04 


서경식 ㅣ 도쿄경제대 교수

대통령선거 전에 미-중의 군사충돌이 벌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상호의존적인 국제사회에서 대국 간의 전쟁 등은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성적인 식자’들의 소리다. 하지만 현실은 늘 ‘이성’을 배반해왔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언제나 국내정치에서 궁지에 몰리면 더욱 강경하게 배외주의를 선동하는 것을 능사로 삼는다. 그것이 ‘이성’보다 효과가 좋다는 것을 그들은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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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의 &lt;죽음과 소녀&gt;. 최재혁(예술도서 번역·기획편집)씨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대학의 수업은 모두 온라인으로 하고 있는데, 나는 이런 일에 재주가 없다. 내가 ‘예술학’ 수업에서 다루는 작가나 작품은 필연적으로 전염병과 깊이 관련돼 있다. 과거를 뒤돌아보면, 인간 세상이 전염병으로 죽음의 짙은 그림자에 뒤덮여 있을 때 뛰어난 미술작품이 만들어졌다. 지난번에 다룬 피터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도 그러했다. 이번에는 20세기 초 빈의 화가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그림)를 소개해 보겠다.


실레의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8년부터 1920년에 걸쳐 크게 유행한 인플루엔자(속칭 ‘스페인 독감’)가 한창일 때 그려졌다. 그 전염병으로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상당하는 5억명이 감염됐고, 1700만명에서 5000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감염증 가운데 하나다. 실레 자신도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죽음과 소녀>는 아름다운 소녀를 죽음의 신이 억지로 데려가려는 중세 이래의 전통적인 도상(圖像)이다. 


페스트의 대유행과 궤를 같이해서 등장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호소는 현세의 번영이나 융성은 일시적인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그것을 잊지 말라는 기독교 교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초의 이 그림에서는 역할이 역전돼 오히려 소녀가 죽음의 신에게 매달리는 듯이 보인다. 죽음의 신은 실레 자신이며, 소녀로 묘사돼 있는 것은 그의 연인 발리 노이칠. 발리는 실레가 이별을 고하자 간호사로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다 병사했다.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은 지금의 신종 코로나 재난과 매우 유사하다. 역사의 교훈에 따르자면, 이런 사건과 연동해서 일어나는 것은 불황이요, 파시즘이나 전쟁이다.


왜 전염병의 참화 속에서도 인간에겐 예술이 필요할까. 왜 거기에서 뛰어난 예술이 만들어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피하기 어려운 죽음’의 낌새를 절박하게 느끼면서 죽음의 의미를(바꿔 말하면, 삶의 의미를) 스스로 물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극화된 사회일수록 재앙은 가난한 자, 약한 자, 고독한 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큰 희생을 강요한다. 미국 통계에서도 백인계에 비해 뚜렷하게 아프리카계, 중남미계의 감염률, 치사율이 높다. 이런 재난 속에서야말로 계급적, 인종적, 성적, 기타 온갖 차별이 드러난다. 경찰관이 무저항의 아프리카계 남성의 목을 무릎으로 압박해 사망케 한 사건 뒤 지금 미국 전역에서 격렬한 항의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운동은 반트럼프 정권 색채가 짙고, 트럼프는 군을 동원해 진압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 사건은 ‘코로나’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듯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몸으로, 내가 딱하게 여기는 것이 학생들이다. 교육이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얼굴을 서로 마주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화하는 것(‘신체성’)이 기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텍스트로 강의를 해도 담당 교원 개개인이 지닌 설득력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런 ‘신체성’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맡고 있는 ‘예술’과 같은 인문계 과목에서는 특히 그렇다. 사람은 언어화된 정보에만 의존해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상대의 표정, 몸짓, 목소리 상태 등의 축적을 통해 신뢰감(또는 불신감)을 키우게 된다.

미술사적인 또는 기법적인 정보나 지식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작품을 대하면서 거기에서 언어적 정보를 넘어서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예컨대 미켈란젤로에 관한 연구나 정보는 필요하고 또 유익하지만, 그것은 실제 작품(예를 들어 ‘론다니니의 피에타’)이 우리에게 직접 주는 감명을 대신할 수 없다. 이것은 고야도 고흐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는 가능한 한 천천히 자유로운 정신으로 작품과 대화하고 타자(교원인 나나 다른 학생)의 감상이나 의견을 접함으로써 언어정보만으로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발견해주기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해온 인문학 교육으로서의 ‘예술’의 기본적인 어프로치인데, 지금 그것이 밑바닥부터 위협받고 있다. 긴급피난으로서의 온라인교육의 필요성이나 그 이점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으나, 그래도 지금 지속되고 있는 사태는 장기적으로 볼 때 교육에 파괴적인 영향을 남길 것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인간성이라는 개념을 파괴할지도 모른다. 지금이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의 전면적인 도입에 호기라고 외치는 자도 있으나, 나는 도저히 그렇게 낙관적일 수 없다. 다치면 아프다는 것을 신체적인 감각으로 상상할 수 있고, 그 상상을 타자와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없어지면 인간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것은 강자의 약자 지배, 침략과 전쟁에 지극히 유리한 사회일 것이다.


다가올 세계적인 대불황도 거기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번 팬데믹은 지극히 글로벌한 현상이어서 각국은 자국 중심주의로는 이 재앙을 이겨낼 수 없다. 이것은 분단에서 새로운 연대로 갈 호기다. 반드시 호기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했다. 11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실정에 대한 비판의 예봉을 딴 데로 돌릴 목적으로 보인다. 이것은 국제사회(특히 미국 자신)가 오랜 세월 배양해온 공중위생상 국제협력의 틀을 파괴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4년 전에 “멕시코인 대다수는 범죄자이기 때문에 벽을 쌓아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강간범과 같다”는 등 차별과 배외주의를 부채질했다. 그런 선동은 명백히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에 위배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사회는 실상이야 어떠하든 이념적 원칙으로서는 인권존중을 전제로 삼아 공유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정권은 그 전제를 과거의 것으로 만들려 한다. 세계보건기구 탈퇴 선언도 그런 파괴 행위의 일환이다.


이런 행위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권은 7월에 팔레스타인 자치구 내의 유대인 정착지를 합병할 예정이다. 이런 횡포를 자행하려는 것은 트럼프 정권이 강력하게 그것을 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기독교 복음파 등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네타냐후를 밀어주고 있다.


대통령선거 전에 미-중의 군사충돌이 벌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상호의존적인 국제사회에서 대국 간의 전쟁 등은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성적인 식자’들의 소리다. 하지만 현실은 늘 ‘이성’을 배반해왔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언제나 국내정치에서 궁지에 몰리면 더욱 강경하게 배외주의를 선동하는 것을 능사로 삼는다. 그것이 ‘이성’보다 효과가 좋다는 것을 그들은 배웠다. 전염병, 불황, 전쟁은 근대사에서 항상 하나의 세트로 인간들을 덮쳐왔다. 과연 이번만큼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7934.html#csidx82aa60af7025701a4d6b087cca7636b 


7.[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돌봄의 과학’을 위하여

한겨례2020-06-04



전치형 ㅣ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과학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어느 때보다 높다. 진단검사에서 음압병실까지, 접촉자 추적에서 자가격리 손목밴드까지, 우리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코로나19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우리가 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과학만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생각을 굳혀 준다. 과학의 힘으로 코로나19와의 대결을 그나마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이제 코로나19가 과학을 어디로 밀고 갈지에 대해서도 고민할 차례다. 노동, 교육, 예술, 종교 등 사회의 모든 영역이 재편된다는 코로나19 시대에, 우리가 원래 알던 세상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이 시대에, 과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코로나19는 우리가 과학을 수행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요청하고 있는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가 새롭게 발견하고 지켜야 할 과학의 가치는 무엇인가.


감염병의 대유행은 과학을 ‘돌봄’의 가치와 연결시켜 주었다. 이전까지 ‘과학’과 ‘돌봄’이라는 단어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간호학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몇달 동안 과학자와 의료진이 환자 또는 잠재적 환자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더욱 근본적인 의미에서 과학이 사회적 돌봄의 한 부분임을, 사람이 사람을 또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더 잘 돌보기 위해서 과학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과학에 보내는 기대와 신뢰는 ‘돌봄의 과학’을 향하고 있다.


‘돌봄의 과학’은 존재 의의를 돌봄에 두는 과학이다. 여기서 돌봄의 대상은 사람과 지구다. ‘돌봄의 과학’은 의료적으로 또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을 돌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과학이자, 점점 취약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들어가고 있는 지구를 돌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과학이다. ‘돌봄의 과학’은 산업 발전이나 국방력 강화를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내는 과학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와 지구의 취약한 곳에 뚫려 있는 구멍들을 찾고 메꾸는 과학이다.


지난 주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사가 민간 유인우주선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일은 이 시대에 과학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5월 중순 머스크는 지역 보건당국의 방침을 거스르면서까지 자신의 전기자동차 공장을 열흘 일찍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하여 비판을 받았다. 직원 건강을 돌보기보다는 공장 가동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머스크가 화성에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계획도 위기에 처한 지구를 돌보는 대신 화성으로 도피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유인우주선이 멋지게 발사되던 바로 그때 미국 전역에서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건과 뿌리 깊은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점도 과학의 지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복잡하게 한다. 머스크가 성취한 우주 개발의 돌파구는 미국 사회에 뚫려 있는 큰 구멍을 더 부각시킨다.


과학은 단일하지 않으며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받아들이면서 여러 방향으로 나아간다. 코로나19 시대라고 해도 ‘돌봄의 과학’은 여전히 비주류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우리는 ‘경제 효과’ 대신 ‘돌봄 효과’를 지향하는 과학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과학만이 아니라 세상의 평온을 유지하는 과학도 꼭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문제를 전격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해도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감당하는 과학으로 인간과 지구를 끝까지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어떻게 종식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포스트 코로나’ 과학을 섣부르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대비하고 마련해야 하는 포스트 코로나 과학에는 ‘돌봄’의 가치가 중요하게 들어갈 것이다. 만약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종 바이러스에 인간이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때에도 우리가 해야 하는 과학은 무엇인가. 만약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는 암울한 순간이 온다면, 그때에도 우리가 멈추지 말아야 할 과학은 어떤 것인가. ‘돌봄의 과학’은 완전한 해결이 없는 문제 앞에서도 그 증상을 살피고, 고통을 줄이고, 혹시 모를 최후의 순간이 존엄하도록 돕는 과학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7912.html#csidxaa8bac9c52186df884e682a39f93fad 


8.간추린뉴스


전현직 국방,부시 오바마도 트럼프때리기

미국 언론,학계,문화계 트럼프에 등돌려..동맹국인 영국,캐나다 총리도 비판

NYT프리드먼" 미국 사실상 내전  문제는 링컨아닌 트럼프라는것"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집단면역실험한 스웨덴의 후회

코로나 방역책임자 실패인정


미국 이지스함 중구해안 159km까지 접근 중국 대만 겨냥 포탄쏘며 섬상륙 훈련 홍콩언론"중국은 전쟁준비끝"


9.코로나 19확산현황

전세계확진자 6,688,649(+77,634) 사망392,083명(+3,464) 발병국214개국(-)

국내확진자11,629명(-)사망273명(-)

                            주요국가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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