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유래와 명절 차례 단상

신상구 | 2016.09.15 15:54 | 조회 7944

                                                제사 유래와 명절 차례 단상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신상구(辛相龜)

  

   사회학자 송호근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오래 동안 재직하면서 많은 학문적 업적을 쌓았다. 그런데 그는 부친과 제사 문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조상숭배의 나라에서 ‘조상도 모르는 놈!’이란 꾸중을 들었지만, 제사의 문제점을 노골적으로 지적해 불효를 하고 말았다.     


   그의 고향 영주는 추로지향(鄒魯之鄕)인 안동과 자웅을 겨루느라 제례를 과도하게 발전시킨 한국 유학의 본향이다.


   송호근 박사 부친은 호를 아예 효응(孝應)이라 지었다. 효로 조상 은덕에 응하면서 사시는 신조는 탓할 바 아니나 그 실행 의무가 베이비부머인 장남 송호근 박사에게 온통 실린다는 게 문제였다. 유교 문화의 막내 세대, 그것도 충효사상에 세뇌된 베이비부머에게 부모의 신념과 조상숭배는 종교였다. 그러니 종교혁명을 일으키지 않고는 ‘평화롭고 오롯한 명절’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사는 그냥 넘어가면 양속이고, 따지면 불화다. 오십 줄까지 효응 선생의 신조에 착실히 응하던 중 불경스러운 회의가 들었다. 이 많은 음식, 투여한 노동, 친인척의 출석, 그리고 총총히 흩어진 뒤의 허망함은 도대체 뭐지? 제사 후 느긋하게 음복하시던 효응 선생의 표정과는 달리 장남의 지식창고에는 반란이 싹텄던 거다. 반란은 곧 기획연구로 이어졌는데 제례를 창안한 조선 유교의 비밀을 기어이 밝혀냈다. 그것은 통치 이데올로기의 실행 방식이었다.


 성리학을 개국이념으로 택한 조선의 건국 세력은 불교 탄압과 함께 민간의 주술신앙과 음사(淫祀)를 엄격히 금지했다. 소격서를 세워 무당과 무격을 내쫓았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조상과 하늘을 들어앉혔다. 제례(祭禮)와 제천(祭天)이 그것이다. 경복궁 좌측에 종묘를 지어 조상숭배의 기초를 마련하고, 우측에 사직단을 지어 곡식신과 토지신에 길운과 풍년을 빌었다. 조선법전인 『경국대전』에 제사 규칙을 정해 반포했다. ‘6품 이상은 3대 봉사, 7품 이하는 2대, 서민은 부모 제사만 지낸다’. 먹을 게 없던 시절, 빈곤한 서민은 위패에 절하는 것으로 족했고, 제수(祭需)는 형편에 따랐다. 그런데 가문과 문벌의 위세 경쟁이 격화됐던 조선 후기 봉제사는 문중 대사, 가족의 최대 행사로 변질됐다. 1년 20회 정도 제사를 행하지 않으면 양반이 아니었던 당시의 풍조에서 신분 향상을 열망했던 서민들도 제례 경쟁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송호근 박사는 몇 년 전, 설 제사를 정중하게 지낸 후 연구결과를 조심스럽게 발표했다. 유교가 종교 기능을 벌써 상실했고, 한말(韓末)을 기준으로 친가, 외가, 처가에 벼슬한 사람이 없는 한족(寒族) 서민이 분명하므로 이제 제사는 무용하다는 주장을 폈다. 조선이 역사에 묻힌 마당에 통치수단인 제례의 의미는 소멸됐음을 부가했다. 주자학 선조 안향 선생을 배향한 소수서원에서 반경 백리 안에서 사셨던 효응 선생의 표정은 곧 험악해졌고, 베이비부머의 반란에 최후통첩을 날렸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 그 최후통첩에 결국 무릎을 꿇는 게 오륜(五倫)의 도리였지만 어리석게도 그만 베이비부머의 합리성을 발동하고야 말았다. ‘저의 앎과 지식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쯤 되면 세대 간 전선에는 화염이 인다. “조상도 모르는 놈들!” 철저한 사전 모의에도 불구하고 이 호통 하나로 자식들은 부모 세대의 성곽으로 투항했고, 장남에게도 얼른 항복하라는 묵언의 신호를 보냈다. 송호근 박사는 제사 간소화론으로 타협에 나섰지만 효응 선생은 분노에 치를 떨며 노구를 끌고 귀가했다. 협상은 깨졌다. 


  그러나 송호근 박사는 연구 결과를 칼럼에 썼다. 며칠이 지나 연구실로 전화가 걸려 왔다. 안동 태생의 70대, 명문대 출신 공무원이었다고 밝힌 노신사의 질문은 이랬다. “사실 나도 제사를 고민 중인데, 송 교수가 주장한 논리의 역사적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송호근 박사는 아주 소상하게 기획연구의 경로를 말했고, ‘예법에 사로잡힌 제례’의 폐지를 주장했다. 온갖 제물을 폐하는 대신 밥, 국, 북어포, 냉수에 술 한 잔이면 족하다고 말했다. “음-.” 저쪽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지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요량으로 나는 부가 설명에 들어갔다. 동학 창시자인 최제우는 간소화를 주장해 네발짐승의 고기를 금하고, 국, 밥, 나물 정도만 권했다. 2대 교주 최시형은 아예 청수(淸水)만 올리도록 했고, 무엇보다 마음가짐을 중시했다는 점을 말이다. 조금 뜸을 들인 뒤 그가 투항했다. “나도 그렇게 할랍니다!”


 ‘평화롭고 오롯한 명절’은 결렬된 협상의 작은 전리품이다. 휴전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여전히 불안한 평화다. 그러니 ‘조상도 모르는 놈!’을 되뇌고 계실 효응 선생이 걸린다. 설은 잘 쇠셨는지, 일가 친지들과 재회의 기쁨을 갖고 돌아오셨는지, 귀성객들이 보낸 고향의 설날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신상구 시인(문학평론가)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의 영산신씨(靈山辛氏) 문중에서 농부인 신종순(辛鍾淳)과 모친인 유옥임(兪玉任) 사이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해마다 8번 제사를 지내다 보니, 아내는 부담이 많이 되어 불만이 많다. 제사를 한 번 지내고 나면, 아내가 병이 날 정도로 힘이 많이 든다. 특히 추석과 설 명절 때에는 6분의 제사를 합동으로 지내야 하기 때문에 10일 전부터 준비를 한다. 시장에 나가 제물을 사오고, 제사 음식을 만드는 데에 너무 힘들어 간소화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할 일이 많아 기일이 돌아오면 걱정이 많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제사를 안 지낼 수는 없다.


  제사는 조상대대로 지내왔고, 효(孝) 실천의 중요 행사이다. 효는 공맹의 사상도 아니고 종교적 신념도 아니고 통차수단도 아니다. 바로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배우고 지켜온 우리 민족 고유의 훌륭한 문화 유산이다. 숭조(崇祖)는 뿌리 찾기의 근본 사상이다. 제례와 성묘, 금초는 한민족의 미풍양속이다.


  그리하여 아무리 힘들더라도 제사는 꼭 지내야 한다. 제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례의 형식과 절차가 아니라 정성과 마음이다. 제사 음식은 돌아가신 분들이 평소 좋아하셨던 것을 올려도 무방하다. 절차도 어려운 용어에 신경쓰지 말고 집안에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조상님을 향 피워 맞이하고, 온 가족이 인사드리고, 맛있는 음식으로 대접하고, 배웅하는 순서이면 족하다.                


                                                     <참고문헌>


  1. 송호근, “제사를 회상함”, 중앙일보, 2013.2.12일자. 27면.


  2. 박용갑, “효는 우리 민족의 훌륭한 문화 유산”, 대전일보, 2016.9.14일자. 21면.


  3. 심진용, “정체성 혼돈의 현대인, 쉬고 즐기는 명절의 의미 되새겨 봐야 :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민속명절 추석 맞이 인터뷰”, 경향신문, 2016.9.14일자. 22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9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한비문학>?<오늘의문학> 문학평론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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