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통일 과정 인류 최초의 문자로 기록

환단스토리 | 2016.08.08 15:41 | 조회 7699

이집트 통일 과정 인류 최초의 문자로 기록


리더는 자신만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글 |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 나르메르의 화장판 앞면(왼쪽)과 뒷면.


리더는 누구인가. 누가 리더라고 불릴 만할까. 리더는 남들이 가 본 적이 없는 길, 남들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길을 개척하여 다수의 대중을 감동적으로 설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이미 정해진 길을 답습하는 자라면 리더가 아니다. 리더는 역사적인 삶의 정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가야 할 최적의 지름길을 고안해낸 사상가다. 그는 자신의 실존적인 위치를 깊은 묵상을 통해 선명하게 인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임무를 알고 있는 자다. 그 임무를 행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의 임무는 자신을 넘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선과 행복과 일치한다. 만일 자신의 임무가 공동체의 선과 일치하지 않거나 충돌한다면 그의 주장은 독선에 불과하며 공동체를 설득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리더는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자신의 임무를 찾아가는 자다. 그는 자신을 높은 시선에서 관조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역사적인 공동체의 일원이란 사실도 깨닫는다. 자신의 비전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감동적으로 설득하는 수단이 바로 수사학(修辭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 능력을 리더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으로 평가했다. 수사 능력은 다음 세 가지로 나뉜다. 에토스, 로고스, 그리고 파토스. 이 세 가지 용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에토스는 리더가 지닌 인격이나 품격, 로고스는 리더가 연설할 때 사용하는 객관적인 수치나 이성적인 소통, 파토스는 청중이 지니고 있는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자극하는 기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 가지 중 에토스를 가장 중요한 수사 능력이라고 평가한다. 로고스와 파토스는 에토스를 통해 실질적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에토스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과 같아서 이를 통해 로고스와 파토스가 자라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성장한다.


우리는 흔히 ‘에토스’를 인격이나 품격으로 번역한다. 에토스는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에토스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에토스는 그리스 최초의 문헌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말들이) 거주하는 장소’란 의미로 등장한다. 에토스는 여느 장소가 아니다. 야생에 살던 말들이 오랜 훈련을 통해 전차를 끄는 명마로 거듭나는 특별한 공간이다. 말들은 이곳에서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습득하여 탁월한 준마(駿馬)로 둔갑한다. 이 말이 전투에 투입되어 전선에 섰을 때 그 말만이 내뿜는 어떤 아우라가 있다. 그러므로 에토스는 객체만의 개성과 장점이 저절로 드러나는 개성을 얻는 수련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에토스란 단어는 철학적 의미로도 등장한다. 이 단어를 맨 처음 사용한 철학자는 헤라클리투스(Heraclitus)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기 전 활동한 철학자로 소아시아 에페소스에서 기원전 535년에 태어나 우주의 원칙은 끊임없는 변화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물은 변화한다”(그리스어로 ‘판타 레이’)라는 명언을 남긴 철학자다. 그는 에토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토스 안스로포 다이몬(ethos anthropo daimon).” 이 문장은 “사람의 개성은 그의 운명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문장의 해석을 쥔 단어는 ‘다이몬’이다. 다이몬이란 그리스 단어는 영어에서 흔히 ‘악마’로 해석되는 ‘데몬(demon)’의 어원으로 부정적 인상을 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을 자신이 어리석을 행동을 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충고하는 긍정적인 ‘전령’ ‘천사’로 번역하였다. 그는 ‘다이몬’을 ‘악마’의 정반대 의미인 ‘천사’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인간이 거주하는 일상 공간(에토스)은 비상한 신들(다이몬)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열린 공간이다.” 하이데거는 리더의 일상생활이 그의 에토스이며, 비상한 것들이 드러나는 열린 공간이라고 말한다.


다이몬이 인간에겐 찾아볼 수 없는 신적인 어떤 특질이라면, 나는 이 단어를 인간을 한껏 고양시키는 인간 심성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신성(神聖)’이라고 번역하고 싶다. 고전 그리스어에서 ‘행복’에 해당하는 단어인 ‘유다이모니아(eudaimonia)’에도 ‘다이몬’이 있다. 즉 행복이란 자신의 에토스를 찾아 충분히 발휘한 상태를 의미한다. 헤라클리투스의 명언 “에토스 안스로포 다이몬”을 다시 번역하자면 “한 사람의 인격(에토스)은 그 사람이 인생을 통해 수련한 결과로 도달한 신성 혹은 카리스마다”이다. 인격이란 인간 각자가 지니고 있는 그 사람만의 신성성을 발현하는 수련이다.


에토스는 가축이 거주하는 마구간에서 시작하여 인간이 거주하고 자신의 신성을 발견하는 열린 공간으로, 즉 리더의 카리스마로 확대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에토스는 개인을 넘어 사회에 적용되어 ‘인간 사회를 하나로 결속하는 어떤 숭고한 가치’를 의미하게 된다. 그래서 영어에서 윤리에 해당하는 ‘에틱스(ethics)’가 에토스에서 파생되었다. 한 개인, 특히 리더의 에토스는 그가 속한 공동체의 윤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리더의 수준이 바로 국민의 수준이고, 국민의 수준이 리더의 수준이다.


소위 선진국에서는 국민은 정교한 교육을 통해 어려서부터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삶을 산다. 우리가 초중등 교육은 대학 입시로, 대학 교육은 취직준비로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한다면 언제 에토스를 신장시킬 수 있을까. 과격한 방법이지만, 위대한 리더가 등장하여 어려서부터 각자의 개성을 발굴하고 발전시키는 전면적인 교육개혁을 통해서 선진문화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우리가 선진문화를 바탕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위대한 리더의 탄생이 유일한 선택이 아닐까.



위선자와 리더의 차이


위대한 리더는 자신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실천을 통해 카리스마를 연마한다. 에토스의 처음이자 마지막은 리더에게만 유일하게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리더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척도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일관된 이야기가 있느냐를 살펴보면 된다. 리더는 다른 사람의 생각, 행위, 그리고 감정에 심오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청중과 소통하여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리더는 자신의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청중의 관심을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삶을 통해 구현해온 사람이다. 리더는 자신의 이야기를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리더는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자신이 걸어온 삶의 궤적과 행위를 통해 이야기를 생산하고 자신이 보여준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청중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준다.


자신이 말한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자를 ‘위선자(僞善者)’라고 부른다. ‘위선자’라는 영어 단어 ‘히포크리트(hypocrite)’는 원래 고대 그리스 비극에 등장한다. ‘히포크리트’는 그리스 비극 작품에서는 부정적인 의미가 없었다. 단순히 자신의 본 모습을 ‘가면 뒤에(hypo-)’ 감추고 다른 사람이나 사항에 대해 ‘판단하는(-crite)’ 사람이다. ‘배우’를 일반적으로 이르는 용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히포크리트가 연극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사용되면서 부정적 의미를 지니게 됐다. 자신의 진실한 자아를 감추고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아부하기 위해 연극하는 사람을 히포크리트라 불렀다. 이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한자가 바로 ‘위선자(僞善者)’다. 그는 겉으로는 근사한 말을 하고 온화한 표정을 짓지만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자다. 평상시 위선적 삶을 사는 리더의 이야기는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해 연설한다고 하더라도 감동을 줄 수 없다.


일반적인 리더는 남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말하려고 애쓰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평상시 자신의 행동으로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구체화하고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엔 아우라가 없다. 그러나 혁신적인 리더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준다. 그 이야기는 공동체 구성원 안에 숨겨져 있는 어떤 위대한 것을 건드려 공감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면서도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역사’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히스토리(history)’와 ‘이야기’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스토리(story)’는 동일한 어근에서 출발한 파생어다. 고대 그리스어 ‘히스토리아(historia)’는 ‘탐구’ 혹은 ‘탐구를 통해 얻은 지식이나 판단’이란 의미다. ‘역사’는 단순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으로 사건들을 탐구하고 판단을 통해 얻은 삶에 대한 시선이다. 서양 역사의 아버지는 헤로도투스(기원전 484~425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동시대 역사가인 투키디데스(기원전 460~400년)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역사를 헤로도투스와는 달리 신(神)의 개입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를 리더의 선택과 결단, 그리고 원인과 결과라는 틀로 보았다. 인간의 역사는 사실 리더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탐구하고 판단한 이야기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리더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문명은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할 때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원칙이다. 첫째는 가족과 친족의 범위를 넘어서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공간이다. 우리는 이 공간을 ‘도시’라고 말한다. 인류의 조상 호모사피엔스가 살기 시작했던 빙하기는 기원전 1만2000년 전에 끝났다. 우리는 지금 그때부터 시작된, 빙하기와 빙하기 중간인 간빙기에 살고 있다. 이때 얼음들이 녹아 전체 지구 표면의 70%를 덮었다. 기원전 1만2000년에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동쪽으로는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시계 방향으로 팔레스타인, 터키, 시리아, 이라크, 그리고 이란 지역에서 처음으로 농업이 시작됐다. 이 지역을 하나로 엮으면 초승달 모양이 나온다고 하여 고고학자들은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이라고 부른다. 인류는 이전에 채집사냥 경제에 의존하여 살다가 농업을 통해 정착생활을 시작한다. 인류는 보리와 밀 같은 씨앗을 뿌려 수백 배를 수확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가축을 기르고 늑대와 같은 짐승을 길들여 사육하면서 동물들이 가진 병균과 접촉하여 각종 전염병도 발생하였다. 인류가 도시를 만들어 살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3100년경이다. 도시라는 공간은 장소가 아니라 정교한 행정망으로 하나가 된 추상적 공간이다.



최초의 문자 탄생


이 추상적 공간을 하나로 묶어 도시를 완성하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이것이 문명의 두 번째 원칙인 문자다. 문자는 낙서와는 달리 상호적이다. 자신이 사용하는 기호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의미를 지닌 기호가 되어야 한다. 기호는 자신이 정교한 생각을 전달할 만큼 다양하고 정교하여 일정 기간 동안 한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 지역에서 거주하는 지식인들은 이 기호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고 소통의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인류가 남긴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3100년경 독립적으로 다음 세 곳에서 그림문자 형태로 등장한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이란. 고대 이집트에서 등장한 문자를 성각문자로, 메소포타미아 남부 수메르와 이란의 남부 엘람에서 등장한 문자를 쐐기문자로 부른다.


이들 세 문명의 발상지에서 고대 이집트는 특별하다. ‘나르메르’라고 불리는 왕이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한 과정을 눈과 얼굴 화장을 위한 화장판에 부조물로 새겨 묘사했다. 소위 ‘나르메르 화장판’에는 인류 최초의 문자, 인류 역사의 시작, 그리고 리더의 등장을 묘사돼 있다.


인류의 역사는 나르메르 화장판에서 시작한다. 기원전 3100년경이다. 영국 고고학자 J.E. 퀴벨(Quibell)이 1897년 이집트 남부 ‘헤라콘폴리스’(혹은 ‘네켄’, 오늘날 ‘알-콤 알-아흐말’로 불리는 곳)에서 이 화장판을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견하였다. 이곳에서 이집트 최초의 역사인 고왕국시대 제1왕조가 시작된다. 이 화장판은 길이가 64㎝나 되며 편암으로 제작되었다. 크기, 무게, 장식들로 미루어 보아 왕의 화장을 위해 사용한 일상적인 용품이 아니라 제의(祭儀)용품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인은 자신들의 눈을 크게 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태양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휘안석(輝安石)에서 축출한 검은색 아이섀도인 ‘콜(kohl)’을 사용하여 눈 주위를 바르고, 초록색이 나는 ‘공작석(孔雀石·malachite)’ 가루로 얼굴 화장을 하였다. 나르메르 화장판 뒷면의 가운데 둥그런 부분에서 화장 가루를 분말처럼 갈았다. 인류 역사 탄생의 순간을 화장판이 증언하고 있다. 이 초기 화장판에 등장하는 문자와 그림들은 모두 중요한 이데올로기를 표현한다. 질서와 혼돈, 선과 악, 왕과 적군, 인간과 동물, 도시와 사막으로 선명하게 구분되는 이원론을 표시한다. 리더는 질서와 선의 상징으로 혼돈과 악을 물리치는 선봉장이다. 리더의 이런 군사적인 면모는 후대 등장하는 리더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나르메르 화장판에는 이집트 최초의 성각문자가 등장한다. 아니 인류 최초의 문자가 등장한다. 화장판 앞면은 세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위칸은 거대한 뿔을 가진 두 명의 황소 여신 ‘바트(bat)’가 묘사되었고 가운데 특별한 사각형 모양이 있다. 사각형 모양은 고대 이집트어로 ‘세렉(serex)’이라고 부르며 궁궐을 표시한다. ‘세렉’은 문자적으로 ‘모든 것을 알게 하는 장소·사람’이란 의미다. 이 궁궐 안에 두 개의 그림글자가 등장한다. 위에는 ‘메기’, 아래쪽은 건축할 때 사용하는 ‘정’이 그려져 있다. 왜 궁궐 안에 ‘메기’와 ‘정’을 표시했을까. 이 두 단어가 모여 무슨 의미를 창출하는가. 고대 이집트어로 ‘메기’는 ‘나아르(naar)’이며 ‘정’은 ‘메르(mer)’다. 인간이 말을 시작한 시점은 적어도 20만년 전부터다. 크로마뇽인의 유골, 특히 치아와 목 구조를 살펴보면 이들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다양한 말을 구사하는 동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생인류가 문자를 발견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불과 5100년 전, 바로 이 나르메르 화장판이 처음이었다.


나르메르 출현 당시 지식인들은 인류 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소통의 도구인 ‘문자’를 발명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그림으로 표현할 방법을 탐구하다 한 가지 묘안이 떠오른 것이다. 자신의 이름 ‘나르메르’를 음성적으로 발현하기 위해 ‘나르’라는 음가를 지닌 ‘메기’ 그림과 ‘메르’라는 음가를 지닌 ‘정’ 그림을 그렸다. ‘나르’와 ‘메르’는 이 단어들이 표현하는 그림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음가를 표시하는 기호로 볼 수 있다. ‘나르메르’ 왕의 이름을 훌륭하게 표현한 셈이다. 이런 방식을 ‘레부스(rebus)’라고 부른다.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의 음가를 빌려 발음하는 문자 체계다. 이렇게 나르메르는 인류에게 문자를 가져다주며 역사를 시작하였다.


두 번째 칸에 나르메르가 전쟁포로를 정으로 치려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전쟁포로는 하이집트(북부) 리더인 ‘와아쉬’다. 그 부조물 위 송골매의 신인 ‘호루스’가 하이집트에서 자라는 파피루스 위에 앉아 와아쉬의 코를 줄로 묶어 나르메르에게 건네주고 있다. 파피루스는 카이로 근처 델타 지역에서 나는 식물로 하이집트 전체를 상징한다. 상이집트(남부)의 왕인 나르메르가 하이집트를 정벌하는 모습이다. 나르메르는 자신의 정벌 행위를 단순한 군사 행위를 넘어선 거룩한 행위로 생각했다. 나르메르 뒤로 나르메르의 샌들을 들고 있는 사제가 등장한다. 이 사제의 오른손엔 의례에 사용할 정화수를 담고 있는 조그만 항아리가 들려 있다. 고대 근동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의미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가 세속적인 공간이 아니라 거룩한 공간이라는 표시다. 성서 ‘출애굽기’에도 신이 모세에게 ‘샌들을 벗으라’고 명령한다. 그 이유는 ‘네가 서 있는 땅이 거룩하기 때문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나르메르는 자신이 일으킨 이 정벌전쟁이 세속적 행위가 아니라 거룩한 행위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샌들을 벗었다.


화장판의 맨 아래칸엔 살해당한 두 명의 적군이 있다. 이들의 머리는 바로 위칸에서 나르메르에게 살해당하는 포로처럼 반대쪽이 젖혀져 있다. 나르메르와 총리대신의 시선과는 대조적이다. 나르메르의 정면 시선은 ‘질서’를 상징하고 후면 시선은 ‘혼돈’을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어로 ‘질서’를 ‘마아트(maat)’라고 부른다. 마아트란 개인이 살아있는 동안 반드시 완수해야 할 임무를 깨닫고 최선을 다할 때 이루어지는 상태다. 마아트와는 반대로 ‘혼돈’을 ‘이스페트(isfet)’라고 부른다. 이스페트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해 길을 잃은 상태로 ‘거짓’ ‘진부함’ ‘오류’라는 뜻도 있다.


나르메르 화장판 뒷면은 앞면과는 달리 네 칸으로 나뉘어 있다. 맨 위칸은 앞면 위칸과 동일하게 두 황소 여신 바트 사이에 궁궐을 상징하는 세렉,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의 이름 ‘나르메르’를 성각문자로 새겨놓았다. 두 번째 칸은 좀 복잡하다. 우선 나르메르의 왕관이 앞면 왕관과는 달리 파피루스처럼 보이는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그는 파피루스로 상징하는 하이집트를 정복하여 통일이집트의 왕으로 등극하였다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르메르 왼쪽으로 사제가 샌들과 정화수를 들고 있다. 나르메르 앞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총리대신인 것 같다. 그의 이름 ‘체트’가 그의 머리 위에 새겨져 있다. 체트 앞에는 네 명의 기수가 도시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행진한다. 깃발 위에는 각 지역을 상징하는 동물 모양의 토템이 묘사되어 있다. 이 깃발 앞에는 목이 잘려 다리 사이에 끼워져 있고 몸이 묶여 있는 적들이 두 줄로 진열되어 있다. 이 시체들 위로 거룩한 배가 있으며 태양신 호루스가 송골매 모양으로 절망의 밤을 지나 희망찬 아침으로 항해하고 있다.


그 다음 칸엔 두 명의 신하가 서로 머리를 교차하고 두 마리 용의 머리를 제어하는 모습이다. 나르메르가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행위는 우주의 질서인 마아트를 회복한 정당한 행위라는 것을 말한다. 목이 교차하면서 생긴 가운데 동그란 공간이 눈 화장을 위해 회안석이나 공작석을 분말로 가는 공간이다. 마지막 칸엔 나르메르가 강력한 황소를 등장시켜 요새의 문을 부수는 모습이다. 그 중간에 황소는 죽어가는 적의 팔을 누르고 있다.


나르메르 화장판은 인류문명사적으로 소중하다. 인류 문명의 시작을 천재적인 문자 창제를 통해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상·하 이집트를 어떻게 통일했는지 부조물을 통해 ‘이야기’하였다. 그는 찬란한 이집트 문명을 위해 상·하 이집트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 신념을 실제 정벌전쟁을 통해 보여주었다. 51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나르메르를 기억하는 까닭은 그가 남긴 화장판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우주의 질서인 마아트라는 원칙에 맞추어 행동으로 옮겼다. 나르메르가 위대한 리더인 이유는 자신의 에토스를 실질적 행동으로 옮겨 이야기로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리더는 자신만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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