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기상이변, 인간의 횡포인가 자연의 일부인가

시루둥이 | 2010.10.02 11:01 | 조회 4846
기상이변, 인간의 횡포인가 자연의 일부인가
  • 이덕환 서강대 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기후전쟁
하랄트 벨처 지음|윤종석 옮김|영림카디널 | 424쪽|1만7000원

기후의 문화사
볼프강 베링어 지음|안병욱·이은선 옮김 | 공감|424쪽|1만7000원

기후변화에 관한 두 가지 시각
"무분별 기술 도입으로 기후변화… 기술 이용 경제 성장 포기해야"
"기후는 원래 일정하지 않다… 자책 말고 새 기후에 적응하라"

20세기는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살인의 세기'였다. 두 차례 세계대전은 물론 그 후에도 인류는 200여 회 이상의 끔찍한 전쟁을 치렀다. 그런데 이제 막 시작된 21세기의 전망도 결코 밝다고 하기는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폭력적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기후 변화에 따른 국제 자원 시장과 자원 공급 인프라의 불안정, 물 부족에 의한 갈등, 북극과 남극 자원에 대한 경쟁 등이 새로운 불씨로 등장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가혹한 부담을 극복할 능력이 없는 국가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종교·계급·자원·민주주의를 둘러싼 갈등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결국 21세기는 정규 군대, 준(準)군사집단, 자위적 조직, 민간 군사기업과 외국 용병, 외부지원군이 참여하는 '항상적' 전쟁 상태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항상적 전쟁 상태에서는 문화, 인종적 전통, 종교적 호소를 악용하여 마약·무기·식량·자원·인질의 폭력적 상거래에서 이익을 챙기려는 '폭력 시장'이 형성된다. 인종 청소와 국경 이동이 더욱 심화되면서 불법이주민의 유입을 막으려는 선진국의 난민 억제 정책이 새로운 갈등과 폭력적 테러로 증폭된다.

이상은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가 저서 '기후전쟁'을 통해 내놓은 암울한 미래 전망이다. 물론 인간에게 폭력적 갈등은 조금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결국 벨처는 인간의 내재적 본성인 폭력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기후변화의 위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저자는 소극적인 탄소 저감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순진한 저탄소 녹색성장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기후변화는 시민사회 전체가 적극 참여해서 집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중차대한 일이라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단순히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생태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화 문제라는 관점에서 '탈(脫)탄소 사회'를 지향하는 반성적 현대화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영국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저서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펴고 있는 기후변화가 지극히 복잡한 국제정치학적 요소가 복합된 사안이라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무분별한 기술 도입으로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기술을 도입해서 경제성장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포기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탈탄소 사회도 역시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역사학자 볼프강 베링어의 '기후의 문화사'는 기후변화에 대해 새로운 문화·역사적 시각을 제시한다. 기후변화가 끔찍한 재앙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도약을 가능하게 해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인간이 실제로 심각한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지구의 45억년 역사에서 기후가 일정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런 주장의 출발점이다. 제임스 러브록의 주장으로 널리 알려진 '정상적'인 기후는 절대 성립될 수 없는 가설이고, 지구의 역사에는 오로지 '빙하기'와 '간빙기'(온난기)만 존재했으며, 기후최적기는 일시적 행운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인간이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쏟아내서 자연의 '평형'이 깨져버렸다는 주장은 확인할 수 없는 신화(神話)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에는 깨져버릴 평형이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밝혀진 생명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는 마지막 대빙하기가 극성을 부리던 20만년쯤 전에 동아프리카에 살았던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자손들이다.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와 자연환경에 의해 유전자 집단이 축소되고 집중되면서 오늘날의 인간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빙하기에 살고 있다. 지구는 아직도 인간이 태어났던 당시의 온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인류가 문명의 싹을 틔우게 된 것은 1만여년 전에 시작된 온난기인 '홀로세'였다. 물론 따뜻한 기후와 높은 습도가 모든 생물에게 축복이었던 것은 아니다. 털코풀소, 동굴 곰, 검치호랑이(劍齒虎), 매머드와 같은 대형동물은 온난기의 고온다습한 환경을 견뎌내지 못하고 멸종해버렸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현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농경과 목축을 시작함으로써 '자연' 경관을 '문화' 경관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벼농사를 중심으로 했던 중국 문명과 사하라의 건조지역이 축소되면서 등장한 이집트 문명이 그 결과였다.

본격적인 인류 문명이 시작된 후로도 지구의 기후는 끊임없는 요동을 반복해왔고, 그에 따라 인류 문명도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온난기에 흥했던 로마제국이 추워지면서 망한 것, 마야를 비롯한 중남미 문명의 부침, 30년 전쟁, 프랑스 대혁명 등이 모두 극심한 기후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물론 기후변화가 인류 문명 변천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잦은 기상이변도 지금 우리가 처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소빙하기였던 중세에도 날씨는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변덕스러웠다. 중세의 권력자들은 맹목적인 종교 교리에 따라 모든 것을 인간이 저지른 죄악의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속죄양을 찾아내 가혹하게 처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부질없는 마녀 사냥을 멈추고 나서야 기상이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농업과 산업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중세의 이런 모습은 기후변화의 모든 것을 무분별한 기술 탓으로 돌리고 자책하는 오늘날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후변화 때문에 정신적 공황에 빠져들기보다 이를 인간에게 주어진 도전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기후조건에 적응하도록 '문화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미래지향적인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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