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 전투와 그 상징성

만국활계 | 2011.06.08 16:30 | 조회 6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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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국군이 고지를 차지하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 동안, 중공군 제38군 소속 3개 사단과 우리 국군 9사단은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낮에는 국군이 고지를 차지했다가도 밤이 되면 다시 중공군이 고지를 차지한다. 이와 같이 번갈아 고지를 점령하기를 무려 12번 그러니까 총 24번 고지의 주인이 바뀐다. 이 와중에 중공군은 2개 사단병력(약 1만4천명)이 궤멸당한 채 고지를 포기해야 했으며, 우리 국군은 3천 4백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고지를 사수하는 큰 전과를 올린다.
 
 드디어 상씨름의 바둑판에서 남쪽이 말[백마고지]을 차지한 것이다. 대마(大馬)를 잡으며 말이 남조선에 넘어온 것이다.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이 백마고지 전투는 단기간의 지역전투로는 전쟁사상 유례가 없는 가장 치열한 전투로 유명하다. 국군의 승리로 넓은 철원평야의 요지를 확보함과 동시에 휴전회담에서 UN군이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고, 무명의 395고지는 백마고지로, 9사단은 백마사단으로 이름하게 된다.
 
 
 상제님 진리로 정리되는 이런 저런 숫자의 의미들
 백마고지 전적비와 전적관을 돌아보며 머리 속엔 많은 상념이 오갔다. 그러면서도 이런 저런 숫자의 의미들이 하나하나 상제님 진리로 해석되고 있었다. 열흘간의 싸움은 최대 분열을 넘어 통일을 시작하는 10무극수, 싸움에서 진 중공군 38군은 바둑판의 중앙인 38선과 일치하고, 싸움에서 이겨 말을 차지한 보병 9사단은 2火+7火=9, 그리고 당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9사단장은 청풍명월의 충청도 청원 출신의 김종오 장군.
 
 그런데 무엇보다도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남과 북의 바둑싸움의 최대의 격전지가 바로 대마리의 백마고지 전투, 그러니까 말을 차지하기 위한, 대마를 잡기 위한 싸움이었다는 점이다.
 1901년 이후 이 세상은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천지공사의 도수대로 진행되어 나간다. 천지공사는 세운공사와 도운공사로 나누어지는데 상제님은 100년 난법 해원시대를 끝막는 마지막 결정적 도수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난리 치나 안 치나 말이 들어야 성사하느니라.
 말에게 이기고 지는 것이 있다.(道典 5:271:7)
 
 
 철마(鐵馬)는 달리고 싶다
 일행은 「백마고지 전적지」를 떠나 휴전선 철책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철의 삼각 전망대」로 향했다. 강원도 평강을 정점으로 철원과 김화를 잇는 철의 삼각 전적지는 6·25당시 중부전선의 전략 요충지였다. 1989년부터 민간인 출입이 허용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전망대를 세워 6·25의 참상을 보여주는 산 교육장으로 변해 있다.
 
 전망대에 이르자 하나의 작은 간이역이 일행을 맞이한다. 바로 월정리역(月井里驛). 이곳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철마가 잠시 쉬어가던 간이역으로 현재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종착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역의 바로 옆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입간판 아래 6·25 당시 이 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의 잔해와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 화물열차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누워 있다.
 월(月)정리역 옆에 누워있는 철마(馬). 또 한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과 북의 분단선인 휴전선(바둑판의 중앙)에 가장 가까이 있는 역의 이름은 다름 아닌 달 월(月)자의 월정리역, 그리고 그 옆에는 장차 통일이 된 후에 휴전선을 넘어 북녘 땅 그리고 저 멀리 만주와 시베리아로 달릴 철마(馬)가 누워있는 것이다.
 
 월정리역 바로 옆에는 철의 삼각지대를 한눈에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고 그리고 그 주위에는 휴전선 경계근무에 여념이 없는 우리 국군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문득 정신을 번쩍 깨우는 한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책에서 보았으면 그저 그러려니 할 문구였지만 바로 눈앞에 북녘 땅과 경계 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우리 군인들과 함께 그 글을 보니 예사로운 글귀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평화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힘이 있는 자만이 가정과 국가의 안정을 이루고 평화를 누렸던 것이 역사의 교훈이 아닌가?
 

월정리역 앞에 있는 안내 팻말의 글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철마가 잠시 쉬어가던 곳으로 현재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종착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역의 바로 맞은 편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간판아래 6.25동란 당시 이 지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의 잔해와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 화물열차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누워있어 분단의 한을 실감케 한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속으로만의 몸부림일 뿐, 40년을 늘상 그 자리에서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현재 경원선은 한일합방 이후 일인들의 강제동원과 당시 러시아의 10월 혁명으로 추방된 러시아인을 고용, 1914년 8월 강원도내에서 제일 먼저 부설되었는데 서울↔원산간을 연결하는 산업철도로서 철원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을 수송하는 간선철도 역할을 했다.

한의 뿌리와 미래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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