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 큰사전> 편찬 발간 과정

신상구 | 2020.04.15 11:35 | 조회 5255

      

                                                                               <우리 말 큰사전> 편찬 발간 과정

   우리나라 국민 중 평소에 국어사전을 사용하는 비율이 32.9%라는 국립국어원의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어요. 그런데 국어사전은 언제 어떻게 처음 만들어졌을까요?
                                                                               1. 안타깝게 중단된 '말모이' 작업
   "오늘날 나라의 바탕을 보존하기에 가장 중요한 자기 나라의 말과 글을 이 지경을 만들고 도외시한다면 나라의 바탕은 날로 쇠퇴할 것이요…." 국어학자 주시경이 저서 '국어문전음학'에서 한 말이에요. 그는 우리말을 집대성하고 그 정확한 뜻을 담는 국어사전의 필요성을 역설했어요.
   나라가 망한 다음 해인 1911년, 주시경은 한국고전 간행 단체인 '조선광문회'에서 제자인 김두봉·권덕규·이규영 등과 함께 우리말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유명한 '말모이'였죠. 하지만 자료를 수집하고 초고를 만들던 중 1914년 주시경이 38세 나이로 별세했고, 그 뒤 작업이 중단됐습니다. 비록 미완성이긴 하지만 이것을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보기도 합니다.
    1920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어사전'을 출간했습니다. 5만8639단어가 수록된 사전인데, 표제어는 한자, 발음은 한글, 뜻풀이는 일본어로 기록했어요. 국어사전이라기보다는 '한일사전'이었던 셈이죠. 이후 경성사범학교 훈도(교원) 심의진이 1925년 '보통학교 조선어사전'을 출간했는데 표제어는 6106개였습니다. 1938년에는 배재고등보통학교의 교사였던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이, 1947년엔 국어학자 이윤재의 원고를 사위 김병제가 수정·증보한 '표준조선말사전'이 나왔는데, 이후 남한에선 앞의 책, 북한에선 뒤의 책을 많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2. 서울역 운송부 창고의 기적
    "원고가 다 어디로 갔단 말이오?"
    1945년 8월, 광복과 함께 감옥에서 풀려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차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이 회원 33명은 1942년 일어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끌려가 혹독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이때 압수당했던 그들의 원고는 행방을 알 수 없었던 것이죠. "모두 불탄 것 아닐까요?" "아니, 그게 어떤 원고인데!"
     '그 원고'란 일찍이 주시경 등이 편찬했던 '말모이' 원고를 밑바탕 삼았으며 숱한 사람의 땀방울로 얼룩진 우리말 사전 편찬 원고였어요. 1929년 108명의 발기로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가 조직됐고, 이들은 발족 취지문에서 "언어의 정리와 통일을 급속히 꾀해야 문화가 촉성(재촉해 빨리 이뤄지게 함)하는 것이며, 그를 실현할 최선의 방책은 사전의 편성"이라고 선언했습니다. 1936년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가 이 사업을 계승했지만, 일제 탄압으로 사전 편찬이 또다시 중단된 데 이어 원고마저 행방불명이 됐던 것이죠.
    여기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1945년 9월, 뜻밖에도 서울역 운송부 창고에서 그 원고가 고스란히 발견됐습니다. 일제가 재판 증빙 자료로 법원에 이송하려던 것이 그곳에 방치돼 있었던 것이죠. 원고를 다시 손에 든 회원들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해요. 이때의 이야기를 상상력을 가미해 풀어낸 영화가 지난해 개봉된 유해진 주연의 '말모이'입니다.
    조선어학회는 1947년 10월 사전 첫 권을 간행하고 1949년 이름을 한글학회로 바꿨습니다. 미국 록펠러재단에서 종이와 잉크를 지원받아 남은 책을 발간하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해 원고를 땅에 묻어두기도 했습니다. 1957년 10월 9일 한글날, 마침내 '우리말 큰사전' 6권이 완간됐습니다. 16만4125단어에 사투리·고어·전문용어를 포함한 방대한 분량의 사전이었어요. 훈민정음 반포 511년 만에 마침내 우리말 대사전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대표 국어사전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어사전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의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에요. 이 중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공무원 시험, 간행물 표기의 기준이 되는 것은 '표준국어대사전'이지요. 예산 112억원을 투입하고 국어학자 500여 명이 참여해 1999년 48만단어를 수록한 초판이 간행됐습니다. 2008년 단어 수가 51만개로 늘어난 개정판을 내놓았을 때는 종이사전을 출간하지 않았고, 현재 인터넷 사이트(https://stdict.korean.go.kr) 등을 통한 전자사전 서비스만 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1. 유석재, "1911년 주시경 '말모이'로 시작, 46년 뒤 16만 단어 담아 완간", 조선일보, 2020.4.13일자. A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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