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죽어가고 있다

진성조 | 2010.09.16 13:19 | 조회 6066
기업화와 낮은 공공성 ‘대학의 몰락’을 부르다
계간 ‘역사비평’ 대학의 붕괴 특집
한겨레 최원형 기자기자블로그
» 지난 3월 고려대를 다니다가 “자본과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된 대학을 거부한다”며 대학을 그만둔 김예슬(24)씨.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 세대’가 됐다”고 쓴 그의 ‘대학거부선언’은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겨레> 자료사진
‘학문의 전당’은 이미 옛얘기
재단 입맛따라 학과 조정
기업 인력양성소로 전락해
취업까지 안되니 이중실패

“대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대학의 위기’를 보여주는 징후적 사건은 올해 들어서만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 3월 고려대학교에 다니던 김예슬(24)씨는 “기업의 하청업체가 된 대학을 거부한다”는 선언을 남기고 자퇴했다. 5월에는 중앙대학교에 다니던 노영수(28)씨가 기업이 장악한 학교 재단이 주도한 학과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타워크레인 위에 올라 농성을 벌이다 퇴학됐다.

같은 달 조선대에서는 비정규직 강사로 일하던 서정민(46)씨가 열악한 처우와 돈으로 교수 자리를 사는 현실을 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퇴와 퇴학,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극단적인 일을 벌이거나 당한 그들의 손끝은 한결같이 ‘대학’을 가리키고 있다.


» 계간 ‘역사비평’ 대학의 붕괴 특집
계간지 <역사비평> 가을호는 ‘대학의 붕괴-기업화, 서열화, 지성의 몰락’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사회 대학의 문제점을 특집으로 다뤘다. 교수, 강사 등 대학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오늘날 대학의 위기를 불러오는 핵심적인 원인은 ‘대학의 기업화’에 있다. 대기업의 잇단 대학 인수, 대규모 상업시설 짓기 열풍 등 ‘외화내빈’이 오늘 우리 대학이 처한 현실이다.

노영수씨를 퇴학시킨 중앙대 재단의 이사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시절인 2004년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대학이 전인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헛소리는 이미 옛 이야기다. 이제는 ‘직업교육소’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고부응 중앙대 교수는 ‘한국 대학의 기업화’를 통해 우리나라 대학의 기업화가 미국 대학을 맹목적으로 쫓아가면서 나타난 현상임을 짚는다. 전세계 대부분의 대학이 국공립 형태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미국 대학은 사립대학 형태로 운영되어 왔다.

때문에 재정 확충을 위해 기업의 입맛에 맞는 연구·교육을 제공해 기업의 돈을 끌어들이거나, 아예 스스로 기업이 되어 돈을 버는 길을 택해왔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사립대학이 지배적인 우리나라 대학은 미국 대학의 뒤를 쫓아 대학 기업화를 확산해왔다고 고 교수는 지적한다.

삼성그룹이 재단을 장악한 성균관대가 2006년 휴대폰학과를 만들어 삼성에 취업할 인력을 양성하는 데 나서거나, 두산그룹이 재단을 장악한 중앙대가 회계학을 전교생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취업률을 근거로 학과를 구조조정하는 것 등은 그 단적인 사례들로 본다.

고 교수는 오늘날 대학의 모형이 된 독일 베를린대학과 그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훔볼트의 철학을 들어, 대학은 본래 민족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되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자율적 학문공동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원래 대학은 순응하는 주체가 아니라 스스로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는 주체를 키워내는 곳인데, 민족국가의 쇠퇴로 초국적 자본과 기업 권력이 이를 뒤흔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그토록 부르대는 ‘인적자원 개발’은 성공적인가? 강수돌 고려대 교수는 청년실업률이 10%를 돌파하고 대학 졸업자의 정규직 취업률이 50%에도 못 미치는 현실을 들어, “이중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대학이 비판적 지식을 만들어내길 포기하고 기업의 입맛에 맞춰 인력 양성소 노릇을 하고 있지만, “갈수록 인적자원의 판매 가능성은 떨어지고 대학자본의 이윤율도 경향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진리 탐구의 전당이 아닌 기업을 위해 순응적인 인적자원을 공급하는 구실만 할 때 대학 사회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뿐이라는 예측이다.


» 휴대폰학과가 있는 성균관대 삼성학술정보관 건물.

이런 이중의 실패에는 대학의 형편없는 교육환경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임성윤 비정규교수노조 성균관대학 분회장은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시간강사와 비정규직 교수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고, 이는 대학의 연구·교육 역량 저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핵심은 턱없이 낮은 ‘공공성’이다.

우리나라 대학 재정의 공공부담률은 2004년 21%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다. 때문에 대학 등록금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실제 고등교육비는 쥐꼬리만하다.

우리나라의 학생 1인당 연간 고등교육비는 2004년 7068달러에 불과해 그리스, 멕시코 등과 더불어 최하 수준이다. 미국 2만2476달러, 스위스 2만1966달러, 스웨덴 1만6218달러 등에 견주면 참혹한 수준이다. 임 분회장은 “공공성이 사라진 대학 교육이 시간강사와 비정규직 교수들의 열악한 노동을 요구하고, 이는 질 낮은 고등교육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굳건한 대학 서열체제, 학문의 수도권 집중과 지방대학 황폐화, 신자유주의적 대학체제에 복무하는 대학 평가 시스템 등 다양한 대학의 문제점이 제기됐다. 문제의식들을 묶어보면, 윤리교육과 가치교육, 곧 공동체를 뒷받침하는 공공재로서의 구실을 잃어가고 있는 고등교육과 대학의 현실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위기에 빠진 대학을 어떻게 건져낼지 막막하다는 점이다. 대학 사회 구성원들인 필자들은 “대학 스스로의 움직임이 절실하다”고 강조했지만, 이미 기업의 길을 내달리고 있는 대학들이 스스로의 고삐를 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역사비평> 편집진은 “다음 호에서는 대안을 집중적으로 다뤄보려 한다”며 “국가와 사회의 개입을 통한 고등교육의 공공성 회복이 대안의 큰 방향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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