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트럼프는 아직 김정은을 모른다

환단스토리 | 2019.12.21 03:26 | 조회 2953

[36.5℃] 트럼프는 아직 김정은을 모른다

한국일보 2019.12.20 


※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기사 이미지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간부들과 모닥불을 쬐고 있는 모습으로, 김 위원장 왼쪽은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 오른쪽은 부인 리설주 여사다. 연합뉴스


북한에 마지막으로 갔던 건 2008년이다. 당시 평양에 진출했던 한국 기업 공장 착공식을 기회로 여러 지역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낡은 고려항공 여객기를 타고 삼지연공항에 내려 ‘백두산 밀영’을 찾았던 기억이다.


늦가을이었는데도 고산지대 공기는 달랐다. 버스에서 내려 자작나무 숲길을 한참 걸었다. 붉은색 구호가 새겨진 절벽 사이 길 끝에서 당시 북한을 통치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태어났다는 ‘고향집’이 나타났다.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김일성 주석이 빨치산 항일투쟁 기간 머물렀던 역사를 강조했지 않나 싶다.


밀영을 포함해 백두산 일대는 북한에서 성지 같은 곳이다. 특히 ‘백두혈통’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 들어 백두산의 상징성은 더 부각됐다. 2012년 집권 이후 김 위원장은 고모부 장성택 숙청,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남북ㆍ북미 정상회담 같은 중대 국면마다 삼지연과 백두산 정상을 찾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4일 노동신문에 나온 김 위원장의 백두산 일대 방문 사진과 보도는 의미심장했다. “군마를 타시고 백두대지를 힘차게 달리시며 빨치산의 피어린 역사를 뜨겁게 안아보시었다.” 인민군 고위 간부와 백마를 타고 모닥불을 쬐는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뜻은 분명했다. 할아버지의 빨치산 정신, 아버지 시대 항미투쟁 등 ‘고난의 행군’을 각오한다는 메시지였다.


‘자력부강, 자력번영’ 8자 노선도 강조했다. 강력한 대북제재가 계속됐지만 북한 경제는 식량난 없이 그럭저럭 버텨가는 중이다. 중국이라는 뒷문도 열려 있다. 자본주의 단맛을 제대로 본 적 없으니 금단 현상 같은 부작용도 적고, 내핍 노선을 지키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의뭉스럽고, 꿍꿍이 속이 많은 것 같아도 북한의 패와 게임 의도는 항상 명확했다.


세계 최강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실패했던 이유는 군사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호찌민 주석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베트남 인민들의 성정과 역사를 이해하지 못해서였다. 북한 체제 특유의 역사와 정치문화를 살피고, 그들이 우려하는 대목을 일단 해소해가면서 단계적으로 동굴에서 끌어내는 수 외에는 별다른 길이 없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말싸움으로 북한을 이길 나라는 없다는 점이다. 온갖 엄포로 북한을 겁주고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으면 오산이다.


‘대북제재 완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같은 북한의 핵심 요구 사항도 그렇다. 일단 들어주더라도 그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 조치 아닌가. 지금이라도 북한을 대화판에 앉힌 뒤 비핵화 조치와 제재 완화를 주고 받다 보면 내년 미국 대선 직전인 10월까지 ‘빅 딜’의 기초가 완성될 수도 있다.


공화당 출신 선배 대통령인 닉슨과 레이건의 사례도 참고해야 한다. “우리는 추상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다뤄서는 안 된다. 이데올로기와 현실정치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미중 수교의 물꼬를 텄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이런 충고를 수용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비록 내치에선 엉망이었지만 미중 데탕트라는 외교 업적은 남겼다.


가장 존경 받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도 국방비 증대와 봉쇄정책 등 힘으로만 소련을 밀어붙였던 게 아니다. 그가 사용했던 협상 카드가 오히려 구소련의 붕괴를 이끌었다는 분석과 연구가 다수다.


최고의 장사꾼이라 자부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김 위원장의 패를 제대로 읽고 판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미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앞으로도 혼란스러운 정쟁이 이어지겠지만, 내년 대선 준비를 위해서라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외교 업적은 필수다. 물론, 당연히, 북한도 속 다 들여다 보이는 도발은 말아야 한다. 세밑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은 결국 두 지도자의 ‘정확한 셈법’뿐이다.


정상원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ornot@hankookilbo.com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36개(1/16페이지)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회원게시판 이용수칙] 관리자 46712 2023.10.05
공지 상생의 새문화를 여는 STB 상생방송을 소개합니다. 환단스토리 207844 2018.07.12
234 [시사정보] 청주고 출신 유홍림 서울대 총장, 청주시에 고향사랑기부 사진 대선 2118 2023.05.02
233 [시사정보] Breaking News//캐나다 트뤼도 디지털 ID 활성화 압박 하하하 2204 2023.02.26
232 [시사정보] 블랙핑크//k팝 뜨는 이유 하하하 1847 2023.02.26
231 [시사정보] 'K-콘텐츠' 글로벌 확산 거점 5곳 확대 사진 첨부파일 올레 2078 2022.12.12
230 [시사정보] 얼음에 갇힌 고대 바이러스 사진 첨부파일 올레 2704 2022.12.12
229 [시사정보] 세계 물의 날 (3월22일) - World Water Day 사진 첨부파일 온누리 4521 2022.03.22
228 [시사정보] 세계 여성의 날 사진 첨부파일 한곰 4117 2022.03.08
227 [시사정보] [전쟁과 경영] 메리 크리스마스 논쟁 사진 첨부파일 환단스토리 4916 2021.12.21
226 [시사정보] 북한, 탄도미사일 '열차'에서 쐈다 환단스토리 2986 2021.09.18
225 [시사정보] 세계 122위 기업 '패망' 문턱에…중국 뒤흔들 위기 맞다 사진 환단스토리 2885 2021.09.18
224 [시사정보] [박상후 칼럼] 총가속사(總加速師) 시진핑發 경제 공포 환단스토리 2770 2021.09.18
223 [시사정보] 도올 김용옥 “서구의 신은 황제적…동학은 ‘우리가 하느님’이라 말해” 등 사진 환단스토리 3884 2021.08.07
222 [시사정보] [코로나19 긴급진단] 올겨울 백신은 없다 대규모 재확산 위기! 환단스토리 3058 2020.11.19
221 [시사정보] 이탈리아 코로나 사망자 다시 급증..."2차 유행으로 9천명 희생" 환단스토리 2942 2020.11.19
220 [시사정보] "미국과 국교 회복" 대만 국회 결의안 만장일치 통과 사진 환단스토리 3556 2020.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