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김정은의 2020년

환단스토리 | 2019.12.21 03:35 | 조회 2952

[중앙시평] 김정은의 2020년

중앙일보 2019.12.18 


북한, 시장과 산업 충격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 급감 쪽을 선택한 듯
김정은은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구조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19년 끝자락의 분위기는 작년과 대조적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북·미 정상 저녁 만찬의 확정 메뉴인양 들떠있던 모습은 사라졌다. 대신 내년은 2017년 후반 북·미간 군사 충돌이 염려되던 시기보다 더 위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훨씬 커졌다. 북한도 2020년을 공포의 한 해로 만들려는 듯 그 언행이 험하기만 하다.

김정은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핵 보검’을 지키려는 결의를 다지고 있을까. 그가 정한 협상 시한이 지나갈 것으로 보고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 실험 재개를 준비하고 있을까. 이를 염려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 경우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응해 북한 김영철은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김영철의 말은 거짓이다. 적어도 김정은과 그는 잃을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북한이 미국의 레드라인을 넘어선다면 미국은 추가 경제제재를 가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도발이 명백한 이상 이에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 도발을 억제해 한반도 불안정을 막으려던 시진핑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간다. 따라서 그 동안 중국이 열어주었던 제재 뒷문은 다시 닫힐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북한 경제는 한층 더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도 견디기 버거운 판에 추가되는 고통을 김정은이 이겨낼 수 있을까.

김정은의 가장 큰 고민은 제재 충격 완화에 있다. 경제제재는 무역과 외화수입 충격에서 출발해 시장과 산업까지 타격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의 외환보유액은 앞으로 매년 10억 달러 이상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대로 가면 수년 내에 보유 외화가 바닥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그럼 수입을 줄여 계속 버틸 수는 없나. 그게 힘들다는 것이 김정은의 딜레마다.

제재 이후 북한 무역 적자의 주원인은 소비재와 중간재 수입이다. 제재로 총수출은 90% 이상 줄었지만 각각 총수입의 3분의 1과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재와 중간재 수입액은 제재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만약 외화 고갈을 막으려고 소비재 수입을 줄인다면 시장과 무역이 위축돼 주민 생활고가 가중된다. 그 결과 가뜩이나 시장화로 인해 개인주의화된 민심이 떠날 수도 있다. 수입품을 시장에 팔아 달러를 버는 국가 기관도 무너진다. 중간재 수입을 줄이면 북한 산업이 붕괴할 수 있다.

‘개인이 집단보다 중요하다.’ 한국에 입국한지 1년이 채 안 된 탈북민을 대상으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올해 설문조사한 결과다. 북한에 살 때 그렇게 믿었다는 사람이 총 응답자의 82%에 달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낫다’는 진술에도 72%가 동의했다. 개인과 돈에 눈뜬 북한 주민은 시장과 일자리가 붕괴되면 2009년 화폐개혁 때처럼 그 책임을 김정은과 김영철 등 권력층에 돌릴 것이다.

북한 정권은 정치적으로 더 민감한 시장과 산업 충격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 급감 쪽을 택했을 법하다. 김정은이 핵 협상 시한을 올 연말로 정할 때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했을 것이다. 또 연말까지 수만 명의 해외 파견 근로자가 귀국한다는 사실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이들의 해외 근로 중단은 외화 수입을 더욱 가파르게 줄일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이들이 외국에서 체험했고 알게 된 것이 시장과 5백만 대 이상의 휴대폰을 통해 암암리 유포되면 권력자를 비판하는 여론이 드세질 수 있다. 김정은은 시간이 급하다. 외환위기는 조용하다가 갑자기 터지는,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과 같다.

외환보유고가 줄수록 북한의 입은 거칠어진다. 2020년은 북한이 토해 놓는 말의 수위가 준(準)전시 상태까지 간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외화가 준다고 해서 행동까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군사적 자해(自害)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둔 트럼프는 강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군사적 옵션을 꺼내 들 수도 있다. 북한의 훼방으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다면 북한에도 불리하다. 새로 선출된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보다 북한에 호의를 보이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더불어 시진핑 및 푸틴과의 관계는 물론 김정은의 국제적 이미지도 완전히 망가질 것이다.

김정은은 새장 속에 갇힌 새와 같다. 마음대로 지저귈 수 있으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는 없다. 말과는 달리 그가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은 엄격한 제약 하에 있다. 중국 및 러시아와 외교를 아무리 잘해도 새장 사이즈를 조금 더 키우는 정도다. 물론 합리적 추론을 벗어나 새장 틀을 부수려는 새가 자해적 행동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한반도를 둘러 싼 불확실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새가 떠드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속임수 동작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일부 대북제재 해제 요구처럼 새장을 열어주려는 어리석은 시도는 금물이다. 하지만 걱정은 여전하다. 이렇게 분열된 국민과 우리 정부의 지금 실력으로 2020년의 북핵 파고를 안전하게 넘을 수 있을까.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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