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제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역병퇴치 모범 사례

신상구 | 2020.03.16 03:28 | 조회 4662

   

                                         로마 제국 제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역병퇴치 모범 사례
                                          
   1918년 전 세계를 휩쓸며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낸 스페인독감. 전염병을 만만히 보고, 은폐하는데 급급했던 안일함이 피해를 더 키웠다. 산처럼 제공
   역병(疫病)이 인간에게 퍼뜨리는 바이러스 중 가장 강력한 건 어쩌면 ‘망각’ 아닐까. 전염병에 속수무책 당하다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잊어 버리니 말이다. ‘의학과 과학이 이렇게나 발전했는데’ ‘못 사는 개발도상국이라면 또 모를까’ 같은, 역병에 대한 무지와 오만과 방심은 더 강력한 전염병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처럼. 인류가 겪었던 전염병의 역사를 복기해보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는 예전 전염병과 이를 극복한 인류의 노하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전염병 당시 우리가 무엇을 잘했고, 잘못했는지 조목조목 뽑아 정리해주니 ‘족집게 족보’를 받아 든 기분이다. 책은 백신 개발 같은 의학적 진보 대신, 평범한 시민이자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떻게 ‘방역’에 나서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전염병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무기 가운데 으뜸은 ‘침착하고 현명한 통치자’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 권력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 로마 제국 몰락의 ******점이었던 안토니누스역병은 전염병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모범 사례다. 역병으로 수천 명이 죽자 로마 시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당장 치료법이 없으니 죽음 자체는 막지 못하는 상황. 아우렐리우스는 일단 거리의 시체부터 치웠다. 위생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살아남은 시민들의 공포감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였다. 또 국가가 먼저 시민들의 장례식 비용을 댔고, 역병으로 무너진 군대에는 검투사를 차출해 넣었다. 나라 곳간이 비자 황실 재산도 매각했다.
   사태를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은 채 제국의 역량을 총동원한 발 빠른 대처 덕에 다행히 역병은 차차 잦아 들었고 민심도 빠르게 진정됐다. 로마가 쇠락의 길로 들어선 건 이런 아우렐리우스가 죽은 뒤부터다.
   또 다시 찾아온 전염병에 대해 후대의 통치자들은 제대로 대응할 의지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제국을 무너뜨린 건 전염병 그 자체가 아니라 전염병을 대하는 권력자의 정치였던 것. “앞으로 국가지도자를 뽑을 때, 반드시 전염병 대처 능력을 검증하라.” 저자의 첫 번째 조언은 현대사회에서 더욱 긴요하다.
   피터르 브뤼헐이 그리고 헨드릭 혼디우스가 판각한 ‘묄레베이크 순례에 나선 간질환자’. 무도광 환자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산처럼 제공
   “마녀를 만들지 말라.” 개인과 사회를 향한 외침도 새겨 들을 만하다. 전염병이 퍼지면, 사람들은 감염자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으로 공포를 달랜다. 하지만 ‘질병’이 아닌 ‘사람’을 적으로 돌리면 그 대가는 참혹하다. 매독이 딱 그렇다. 나폴레옹, 슈베르트, 콜럼버스, 니체, 링컨 등 누구나 알만한 이들 모두 매독으로 죽거나 아팠다. 그러나 명확한 기록은 없다. 매독은 내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질병이었기 때문이다. 수치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감염자들은 그저 숨기기에 바빴고, 그럴수록 전염병은 더 활개를 쳤다. 에이즈 역시 다르지 않다. 저자는 전염병은 혐오가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라 일갈한다.
   책은 공동체의 온정 하나로 전염병을 막아낸 사례도 소개한다. 1518년 유럽의 한 마을에선 알 수 없는 이유로 밤낮 없이 쉬지 않고 춤을 추는, 그러다 죽기까지 하는 돌림병이 돌았다. 집단히스테리 증상으로 해석되는 이 전염병은 ‘무도광(舞蹈狂)’이라 불렸다.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 외면하고 내칠 수 있었지만 마을 주민들은 그들을 품었다. 딱히 의학적인 치료랄 건 없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 덕분에 환자들은 더 이상 춤을 추지 않았다. 전염병을 멈추게 한 건 혐오가 아닌 연대였다.
   투명성도 핵심이다. 1차 세계대전 막바지, 전 세계적으로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미국와 영국 정부는 군인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 독감은 “오랜 전쟁으로 인한 피로 증상”이라 속였다. “불필요한 공포를 부추기지 말라”며 언론사들의 기사를 검열했다. 일부 언론들도 이 독감 은폐 공작에 협조했다.
   아무도 독감을 경고하지 않았으니, 군인 환영 퍼레이드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독감이 번져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만 1만명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다 너무 뻔한 교훈들 아니냐고 시시해할 지도 모르겠다. 저자 또한 그런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다르다. 성급한 낙관론, 중국이나 신천지를 타깃으로 쏟아내는 무차별적 혐오, 이런 대중적 정서에 올라탄 언론 등 전염병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크게 바뀐 게 없다. 의학과 과학은 발전했는데, 인간과 역사는 그대로다. 
                                                                                     <참고문헌>
   1. 제니퍼라이트 지음/이규원 옮김,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산처럼, 2020.3.6.
   2. 강윤주, "역사가 말하길, 방역에도 족보가 있다", 한국일보, 2020.3.13일자.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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