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역사의 전남 해남 해창주조장

신상구 | 2020.05.28 11:03 | 조회 4618


                                                                           90년 역사의  전남 해남 해창주조장

   세계 각국의 다양한 술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막걸리의 자리는 좁아지고 있지만, 전통 제조방식을 이어가며 한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주조장이 있다. 1927년 전남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서 문을 연 해창주조장. 목포에서 차로 50분 가량 달리면 닿는다. 고천암 들녘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잡은 덕에 애주가는 물론 지나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잡는다. 양쪽으로 놓인 항아리 출입문을 지나 안으로 들면 700년 된 배롱나무(백일홍) 등 40여종의 꽃과 나무들이 객을 맞는다. 정원이 아름다운 양조장이다. 일본식의 너른 정원에는 막걸리 익는 냄새가 가득하다
   해창막걸리는 해풍을 맞고 자란 해남쌀에 지하 150m에서 끌어다 올려 정수한 지하수를 사용한다. 감미료를 넣지 않고 찹쌀로 빚어 한달 간 숙성시켜 걸쭉하면서도 담백한 단맛이 자랑이다. 시중 막걸리보다 10배 가량 비싼 가격이지만, 제조 과정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쌀에 밀가루를 섞은 일반 막걸리와 달리 100% 쌀을 사용한다. 전통 방식 그대로다. 효소제도 사용하지 않은 탓에 숙성기간도 배에 달한다. 그야말로 ‘건강한 술’이다.
   주조장 마당에서는 유기농찹쌀로 막 쪄낸 고두밥에서 피어 오르는 하얀 김을 볼 수 있다. 해창막걸리의 독특한 풍미를 위해 멥쌀 20%, 찹쌀 80%의 비율로 섞어 지은 밥이다.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았음에도 막걸리에 단맛이 도는 것은 바로 이 찹쌀 때문이다. 이렇게 쪄낸 고두밥을 온종일 식힌 뒤 다음날 술을 담근다. 고두밥과 밀 누룩에 물만 더하고, 32도에서 발효시킨 뒤 18도에서 25일간 더 발효시킨다. 5일 만에 생산되는 여느 막걸리와 달리 숙취가 없는 이유는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데다 한달 가까이 ‘완전 발효’ 시키기 때문이다.
   주조장 발효숙성실에는 늦은 밤은 제외하고 클래식 음악이 음악이 흐른다. 익어가는 술을 위해 틀어놓은 것으로, 이 주조장만의 특별한 제조방식이다.
   해창 주조장은 술맛과 함께 아름다운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주변의 근대문화유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인정받아 지난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해창 주조장은 13년 전 귀촌한 오병인ㆍ박리아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해남 전통 막걸리를 전수 받기 위해 지난 2007년 서울에서 귀농했다. 올해 58세 동갑내기 부부는 오랜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귀농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평소에도 술을 즐기는, 술에 대한 오 대표의 애정이 있다. 우연히 알게 된 해창 막걸리 맛에 반해 해남을 찾았다가 술도가를 맡아 보겠냐는 주인의 권유를 받고 열쇠를 넘겨 받았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오 대표는 “막걸리를 너무 좋아했고, 서울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며 “재미삼아 시작한 일이 이제 본업이 됐다”고 했다. 남편보다 1년 일찍 해남에 내려와 전통 제조법을 익힌 박씨도 “술 마신 다음날 숙취가 전혀 없는 막걸리”라며 ”쌀과 효모 외에는 어떤 불순물, 첨가물이 없아 막걸리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적산가옥과 일본식 정원 그리고 해창막걸리의 역사는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3년 일본인 시바타 히코헤이(1899~1985)가 정미소를 건립하고 1927년부터 본격 운영했다. 해방이 되자 시바타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해남 삼화초등학교 설립자인 장남문씨가 이곳에서 거주하며 주조장을 운영했다. 이후에는 황의권씨가 인수해 30년 가까이 운영하다가 오대표 부부에게 넘겼다.
   주조장과 그 주변에서는 당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정원 한구석 나무 아래 놓인 비석은 이곳이 제물포조약 당시 조선 대표였던 백파 신헌구(1823∼1902) 선생이 살던 집터였음을 보여준다. 암행어사로 5년간 해남에 머물렀던 그가 한양으로 떠나면서 전답을 마을에 기부하자 주민들이 세운 공덕비다.
   일제강점기 상흔도 남아 있다. 황국 신민 서사비는 13년 전 주조장을 인수한 오 대표가 정원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1930년대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암송을 강요한 일종의 맹세문이다. 비석 옆 안내판에는 '한국과 일본 간에 있었던 뼈아픈 과거사를 삭여 놓은 생생한 역사적 유물을 다 같이 반성하고 참회하는 교육의 지표로 삼기 위해 마당에 보존, 전시한다'고 적혀 있다.
   또 주조장 인근에는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쌀을 보관했던 녹슨 창고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허물어진 정미소 터가 있다. 현재 남은 창고는 일제 강점기에 비옥한 해남의 곡식을 수탈할 때 이용했던 시설들이다. 정원과 함께 있는 살림집은 다다미방, 실내 복도와 가파른 나무 계단이 있는 2층 목조 건물이다
   해창주조장은 주변의 근대문화유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평가 받아 지난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고목이 우거지고 가운데 연못이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이다. 2,500여㎡ 정원에 심어진 40여종 나무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배롱나무다. 목련과 영산홍, 백일홍, 석류꽃 등 철마다 정원을 장식한다. 특히 정원 곳곳은 백제의 주조장인 주신(酒神)을 부르는 종과 비석도 세워져 있다.
   가족들과 주조장을 방문한 박미화(42ㆍ광주)씨는 “정원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일곱 살 아들과 왔는데, 근대문화유산 구경에 좋은 공기까지 마셨다”며 “전통주 만들기 체험, 고두밥 맛보기 등이 특히 좋았다”고 말했다.
   해창의 술은 비슷한 것 같지만 서로 다른 맛을 가진다. 목표 도수가 다르듯 각 종류별 생산방법도 다르다. 6도는 찹쌀과 멥쌀이 5대 5의 비율로 들어가고, 그보다 높은 도수의 술은 찹쌀과 멥쌀의 비율이 8대 2로 섞인다.
   주조장에서는 9도와 12도짜리 막걸리를 판매한다. 시중 막걸리와 비교하면 진하면서도 부드럽다. 진한 요구르트와 흡사하다. 감미료 없이 찹쌀로 빚는 주조법은 오 대표가 양조장을 인수한 뒤 개발한 방법이다. 9도짜리 막거리는 7,000원, 12도짜리는 1만1,000원에 판매된다. 조만간 출시될 '해창 블루'(15도)와 '해창 롤스로이스'(18도)의 가격은 각각 1만5,000원, 11만원으로 정해졌다. ‘막걸리는 싼 술’이라는 생각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시음장은 작은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오 대표가 젊은 시절 구입한 오디오와 데크, 앰프, 오래된 필름과 카메라 등이 진열돼 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즐겨 들었다는 1945년 진공관 라디오도 진열되어 있다. 커다란 스피커가 놓인 시음장에서는 온종일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막걸리도 음악을 들으면서 익어간다. 오 대표는 “술을 만드는 것은 누룩 속 미생물”이라며 “음악도 미생물들 기분 좋아지라고 틀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천년고찰 대흥사, 해창 막걸리를 곁들이니 그 취기가 득도 아니랴” 태백산맥의 조정래 소설가가 2016년 10월 주조장을 찾아와서 했던 말이다. 식객으로 알려진 허영만 만화가는 해창 막걸리에 반해 그림까지 그려주고 다녀갔다.
   시음장 한 켠에 있는 방명록에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정세균 국무총리, 박지원 국회의원 등 정치인과 김지하ㆍ황지우 시인, 조정래 작가, 허영만 만화가 등의 이름을 볼 수 있다. 막걸리 사랑으로 유명한 이낙연 전 총리는 지난 2014년에 다녀갔고, 정세균 국무총리는 2018년 4월, 박지원 국회의원은 지난해 2월 이곳을 다녀갔다. 여기 막걸리를 마시고 가면 국무총리가 된다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그 때문일까. 작년에만 3만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오 대표는 “세계의 술과 경쟁할 수 있는 술을 빚겠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1. 박경우, "전통 막걸리 맛보고 일본식 정원 산책… 해남 명소 됐죠”, 한국일보,  2020.5.16일자.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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