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책- [의식 혁명] /데이비드 호킨스 저/

진성조 | 2011.04.25 07:12 | 조회 6365
의식혁명 울림이 있는 글

2009/11/0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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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혁명

작가
데이비드 호킨스
출판
한문화
발매
200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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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식 혁 명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 이종수 옮김 / 한문화 펴냄 / 2008

-인간 개개인의 마음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된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 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는 인류의 의식 세계 자체이고, 우리 자신의 의식은 단지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둔 데이터베이스의 개인적인 표현일 뿐이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실로 비범한 데가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바로 그 데이터베이스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사람은 탄생하자마자 이 천재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열람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데이터베이스가 담고 있는 무한한 정보는 이 세상 어느 곳, 어느 때라도 아무에게나 순식간에 주어질 수 있다.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언제라도 되어 있다. 이 발견이야말로 개인과 인류 전체의 삶을 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인간 사회는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모르면서 그 결과만을 고치려고 부단히 안간힘을 써 왔고, 바로 그것이 인간 의식의 진보가 그토록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인류는 이제 겨우 올라가야 할 사다리의 첫 단에 머물고 있다.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굶주림의 문제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맹목적인 온갖 시도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이나마 인간의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해결을 위한 탐색을 닥치는 대로 해나가다 보니 우리는 결국 미궁 속에서 헛되이 헤매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진실한 해답은 언제나 단순한 곳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주의 기본적인 법칙은 경제성이다. 우주는 단 하나의 쿼크(QUARK)도 낭비하지 않는다. 만물에는 목적이 있고 그것들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우주에 무의미한 사건이란 없다.

- 외부의 원인들을 초월하여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기 이전까지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의 결핍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인간의 기록을 훑어보아도, '원인'을 규명한다고 해서 해답이 주어지는 일은 없다는 점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원인들 밑에 숨어 있는 조건들을 찾아내야 하고, 이러한 조건들은 인간의 의식 자체에 숨어 있다. 일련의 사건들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다시 엮어가며 그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으로는 궁극적인 해답을 찾을 길이 없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는 어떠한 원인도 찾을 수 없다. 앞으로 우리가 논증하고자 하는 바이지만,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란 나타난 결과물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이 조절할 수 잇는 힘 덕분에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잠재력에, 숨겨진 근원에서 비롯한 잠재력에 지배받고 있다. 잠재력이란 아무런 수고도 없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를 의심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이다. 억지의 힘은 지각을 통해 경험되지만 잠재력은 내적인 인식을 통해 알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시키고 있는 엄청날 정도로 강력한 끌개의 에너지 패턴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매 순간 순간마다 인간은 구속하려는 억지의 힘과 밀어붙이려는 잠재력이 실랑이를 벌여 이루어진 진화의 지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가장 정교한 인공두뇌보다도 더 완벽한 컴퓨터, 인간의 마음이라는 컴퓨터를 언제라도 활용할 수 있다.

-생각이 '나의 것'이라고 믿는 것은 에고의 헛된 수작에 불과하다. 비범한 천재들은 자신의 월등한 앎의 원천을 많은 사람들이 '신성'이라고 불렀던 모든 의식의 기저에 있는 그 무엇으로 돌리곤 한다.

- 200 이하의 수준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삶의 태도는 '살아남기'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은 가난과 결핍에서 비롯되는 절망과 우울의 영역이다. 그보다 높은 '분노'와 '욕망'의 단계에 이르면 개인의 생존을 위해 자기 본위의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자존심'의 수준에 이르면, 살아 남으려는 본능이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최초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긍정과 부정의 갈림길이 되는 '용기'의 수준에 이르면, 다른 사람들의 안녕이 점차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500의 수치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고려하게 되어, 그것이 그 사람을 움직이는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600대에 가까워지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눈뜸에 관심을 갖게 되고, 600대에 이르면 인간의 선과 깨달음을 위한 추구가 삶의 기본적인 목표가 된다. 700에서 1000까지는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한 삶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배움의 기회로 작용할 것인지 우리를 억압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대한 우리의 반응과 태도인 것이다.

-의식의 지도를 들여다보고 명상을 함으로써 '기쁨'의 단계에 이르는 좀더 빠른 길을 발견하기를 기대해본다. 기쁨으로 가는 열쇠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게 조건 없이 친절을 베풀고 자비심을 갖는데 있다. 이런한 자비심이 없다면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자비심 없이는 어떤한 환자도 진실로, 또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없다는 바로 이 점에서, 개인의 치유는 나아가서는 곧 사회의 건강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치유받은 사람'이 곧 '치유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슬픔'은 인생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지만 '무기력'의 상태보다는 더 많은 에너지를 준다. 따라서 충격받은 무기력증 환자가 울기 시작하면 그것은 회복의 조짐이다. 또 일단 울기 시작하면 무기력증에서 벗어나 음식을 먹는 것은 시간문제다.

-두려움은 개인의 성장을 제한하고 억압 상태를 초래한다. 두려움의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뚫고 일어설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거기에 짓눌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그보다 높은 수준으로 갈 수 없다. 그러므로 두려움의 수준에 사는 사람들은 이를 극복한 것으로 보이는 강력한 지도자를 희망하며, 그 지도자가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기대한다.

-욕망의 수준이 무기력이나 슬픔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을 '원하는'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사람은 성취로 가는 출발선 위에 설 수 있다. 욕망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르는 도약대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이 '무기력'과 '슬픔'에서 벗어나 '두려움'을 극복하는 상태에 이르면, 이제 그들은 무엇인가를 원하기 시작한다. '욕망'은 좌절감을 초래하고, 좌절감은 '분노'를 가져온다. '분노'는 좌절된 욕구에서 생기므로 그 아래 수준인 욕망의 에너지장에 기초를 두고 있다. 좌절은 지나친 욕망에서 온다.

-'자존심'의 약점은 오만과 부정이다. 이러한 특성상 '자존심'에 가득 찬 사람들은 의식의 성장을 스스로 차단한다. '자존심'이 있는 한 집착에서 해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존심에 가득 찬 사람들은 감정적인 문제임에도 그것을 부인하거나, 자신의 성품이 갖고 있는 약점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정하는 문제의 근원에는 '자존심'이 자리잡고 있다. '자존심'은 진실한 성장과 명예를 안겨줄 수 있는 참된 내면의 힘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인 것이다.

-이 수준(이성)의 결점은 상징과 그 상징이 뜻하는 바를 뚜렷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또 세상사에 대한 객관적-주관적인 이원론 때문에 사물의 인과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 수준에서는 나무에 가려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쉽고, 개념과 이론의 탐닉에 의해 본질의 중요성을 찾지 못하고 지식 자체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흔하다. '이성'의 수준은 본질이나 복잡한 문제의 핵심에 대한 통찰력을 갖지 못함으로써 한계를 갖게 된다.

-사랑은 지적인 것도 아니고, 표면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고양시켜 주고, 그 동기의 순수성으로 인해 크나큰 성취를 이루게 하기도 한다.

이 수준에 이르면 사물의 본질을 분별할 수 있는 역량이 증대하여 문제의 핵심을 꿰뚫을 수 있게 된다. '이성'의 수준을 넘어서게 됨에 따라 문제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전후 과정을 섬세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성은 문제를 일일이 따지는 경향이 있지만, 사랑은 전체를 다룬다. 직감 혹은 육감이라고 불리는 이 사랑의 능력은, 사물을 꼬치꼬치 따지지 않아도 즉각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이 수준(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단계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도 열심히 사랑이라는 주제에 매혹당하고 있는 현존하는 모든 종교가 500 혹은 그 이상의 수치로 측정됨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구의 0.4%만이 이러한 수준의 의식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200의 측정치가 의식세계의 중요한 분기점에 되듯이, 500의 수치는 깨달음의 세계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 500의 수준에서는 개인의 생존이 여전히 중요하긴 하지만 모든 행동의 저변에는 사랑의 동기가 작용하기 시작하고, 창조성의 능력이 곳곳에서 보이며, 이는 헌신, 열심, 다채로운 경력 등으로 나타난다.

-태어났을 때 측정된 에너지장은 일생 동안 겨우 5점 정도의 증가를 보일 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들의 의식 수준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미 심장한 무엇인가를 시사해 준다. 인류의 문화로서 표현되는 의식 세계 자체는 수많은 세대를 거쳐 아주 천천한 발걸음으로 진화해 온 것이다.

-사람들이 여러 방법으로 추구하는 높은 의식 상태란, 사실 그들 자신의 의식(진아, self)의 장에 대한 경험에 지나지 않다. 영혼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고 황홀경을 이해할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고도의 의식 상태란 자기 '밖의' 무엇(예를 든다면 스승이나 음악, 약물, 연인)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믿어 버리기 쉽다.

-'기쁨'이란 높은 에너지 상태다. 대중의 에너지는 수세기에 걸쳐 지배층의 기쁨을 만드는 일에 쓰여 왔고, 그래서 하층민은 삶의 기쁨을 맛볼 수 없었다.

-혼돈이란 제한된 인지 능력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만물은 더 큰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며, 모든 개인은 모두를 두루 감싸는 의식 자체의 끌개장이 걷고 있는 진화의 행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간의 고통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리하여 배움을 얻기까지 그토록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바닥까지 내려가야만 바닥을 치고 솟아오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유산은 내면적인 것이다. 예술의 아름다움에 눈뜰 때,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과 민감성이 자라나기 시작하며,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되고 기쁨을 갖게 된다. '예술'과 '사랑'이야말로 인류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사랑 없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영혼을 짓는 것이며,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합작으로 빚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읽히고 설킨 우주에서 우리 자신들이 성취하는 조그마한 하나하나의 진전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진화를 위해서도 기여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인류의 집단적인 의식 세계에 묶여 떠다니고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가 집단의식에 보탠 기여도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생명을 더욱 생명답게 빛내기 위해 우리가 한 모든 일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다. 우리 모두가 생명이라는 것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 자체다. "너에게 좋은 것은 나에게도 좋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도 사실임에 틀림없다.

-공인된 천재는 보기 드물지만, 천재는 우리 모두 속에 존재한다. 우주에는 행운이나 우연적인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무도 우주로부터 제외되어 있지 않다. 모두가 우주의 구성원인 것이다. 의식은 물질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천재는 의식의 특징이므로, 천재 또한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눈뜸에 겸허해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천재의 능력을 계속적으로 발휘하게 된다. 이것을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들은 그들의 재능을 잃게 되거나 자신들의 성공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파멸하고 만다. 높은 수준의 잠재력은, 높은 전압과도 같이,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천재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이유는, 높은 IQ와 천재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큰 오해다. 천재란 주어진 분야에서 고도의 완숙함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IQ에 대한 오해는 수학이나 물리 분야에서 보여주는 천재들의 높은 IQ에서 나온다. 그 분야에서는 IQ가 높아야 한다. 하지만 두뇌를 필요로 하지 않는 미술 음악 디자인 발명 등의 분야에서는 천재가 수두룩하다. 국한된 각자의 분야에서 창조력을 보여주는 천재도 많다.

IQ란 상징과 단어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학문적인 능력의 평가에 불과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관은 IQ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천재성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수많은 성공적인 인생들이 약물 중독이나 비뚤어진 성격으로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졌다. 어찌된 셈이지 전에는 제법 축에 들었던 인물들이 허무에 빠지고, 잔인해지고, 자기 중심적이 되고, 무절제에 빠지는 경우도 무수히 많다.

이것은 돈이 너무 많다든지, 유명하다든지, 너무 많은 주목을 받는 것 그 자체에서 생기는 비극이 아니라 그런 것들로 자신들의 에고를 왜곡시켜, 소위 큰 자아가 아닌 작은 자아를 더욱 강화함으러써 생겨나는 현상이다. 작은 자아란 칭찬에 약한 우리의 이부분이다. 큰 자아는 성공에 겸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성숙된 우리의 모습이다. 작은 자아는 약한 끌개 패턴에 상응하고, 큰 자아는 큰 에너지장에 상응한다.

우리를 향상시키거나 파멸시키는 것은 성공 자체가 아니다. 성공을 우리의 인격체에 어떻게 융화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자만심이냐 겸손이냐, 에고의 강화냐 감사하는 마음이냐, 우리의 재능 때문에 우리 자신을 남들보다 낫다고 평가하느냐 아니면 우리의 재능을 감사의 대상으로 돌리느냐 하는 이 모든 것이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성공의 한 자락을 거머쥐었다고 해서 타락해 버리는 사람, 거만해지는 사람, 권력의 한 조각을 차지했다고 해서 참견하고 지배하려 드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훨씬 큰 권위를 가지고도 누구에게나 성의를 다하고, 주의 깊게 신경을 써 주는 사람들도 있다.

-우주는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좋아하는 성좌를 찾으면서 기쁨을 느낄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성좌'라는 것은, 서로 관련 없는 별에서 나오는 빛의 점들을 연결한 것에 불과하며, 그 점들은 수백만 광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저마다 다른 은하계에 속하는 별들일 수도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많은 별들이 이미 오래 전에 타 버려서 더 이상 '존재'하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빛들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아무런 상호관련성을 지니지 못한다. 그것은 주걱이나 사람이나 곰 등의 형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성좌' 자체도 결코 아니다. 바라보는 자의 눈에 그런 모양이 투사되어 나타난 것일 뿐이다. 하지만 황도대는 우리가 그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 단어의 일차적인 의미에서, 여전히 '실재'한다고 할 수 있다. 점성학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들과 인간관계를 설명하는데 꽤 유용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의식의 데이터베이스는 무한한 자원인 것이다.

-모든 생명과 모든 형태들의 원천은, 현현되는 것들보다 더 거대한 그 무엇이다. 그렇지만 나타난 것과 나타나게 하는 근원은 다르지 않으며,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는 어떠한 분리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서에서 말하듯이, 존재하고 있고,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반응하고 있는 세상이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되고자 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인식에 따라 결정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의식 수준이 낮을수록 사물에 대한 응시가 힘들어진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아주 낮은 수준에서는 사물과 만나는 초점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반면에, 높은 의식으로 올라갈수록 오래, 그리고 아주 깊에 응시할 수 있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눈빛, 적대적인 눈빛, 그리고 결백에서 나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직시할 수 있는 눈빛 들을 떠올려 보라. 잠재력과 인식은 손에 손을 맞잡고 나아간다.

-확실한 통찰력 없는 진실의 왜곡은 위에서 말한 세계 종교들의 하락을 초래했다. 500 이하의 수준에서 측정되는 종교는 사랑에 대해 설교할 수는 있지만 실행은 불가능해진다. 전쟁을 종용하는 종교는 절대로 영적인 권위를 보유할 수 없고, 이로 인한 노골적인 위선과 자세는 많은 정직한 사람들은 무신론자로 만들게 했다.

-개인의 의식 수준은 그가 준수하는 원칙들에 의해 결정된다. 의식의 발전을 위해서는 원칙의 예외가 없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개인은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편의주의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옳지 않다면 그 원칙에 예외가 존재해서는 안된다. 예외가 정당화되고 감정적으로 옳은 것 같더라도, 이로 인해 사형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살인은 항상 문제로 남아 있게 된다. 사형과 살인은 같은 인식 수준에서 온다. 살인자 또한 살인을 그들 나름대로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적인 눈'에 대한 상처는 도덕적 시야에 어두움을 가져왔고 진실에 대해 눈멀게 했다. 이것은 정직 이하의 수준에 머무르는 85%의 인구에게 나타난다. 전 인류가 갖는 커다른 문제는 어떻게 영적인 눈멀음을 치유하느냐에 있다.

-무지는 공격에 의해 무너지지 않지만, 진실의 표현 앞에서는 빛에 의해 분산되듯이 걷잡을 수 없아 무너져 내린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향상시키는 유일할 방법은 개인의 정직성 이해, 그리고 긍휼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길밖에 없다. 다양한 인간들이 이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 때, 인간 사회의 생존과 행복은 보장된다.

-우리가 항상 접하는 인간의 에고는 실제적으로는 개별적인 '나'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그것'일 뿐이다. 이러한 환상을 꿰뚫기만 하면 그 모든 것이 '우주적 농담'이며, 인간의 비극은 그 코미디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분리된, 개별적인 '나'라는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에고가 얼마만큼이나 맹렬히 투쟁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본질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모든 고통의 근원이 되는 '나'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간의 이성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부단히 애쓴다.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의 뒷머리를 보려고 하는 것 같은 희극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허영심은 끝이 없어서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으려 그렇게도 애쓰고 있는 것이다.

에고와 동일시되는 마음은 한계를 지니고 있어서 진실을 이해할 수 없다. 만일 마음이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면, 마음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착각임을 인식하는 순간 용해되어 버릴 것이다. 에고를 초월한 마음의 패러독스를 넘어서야만이 '존재'는 마음의 무한한 절대성 속에서 스스로 빛나는 자리를 세울 수 있다. 그럴 때, 모든 말은 아무 쓸모가 없어지고 만다.

<깨달음의 과정>

-시간이 정지할 때, 모든 문제는 사라진다. 문제란 어떻게 보고 느끼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것일 뿐이다. '위대한 존재'가 있는 한, 육체와 마음의 분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음 속에서 침묵이 점점 커져서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조차 사라지게 되면 '순수 의식'은 현재에도, 과거에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 빛을 비추어 줄 것이다. 삼라만상과 온 우주를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하고, 시작도 끝도 없이.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한다. '이러한 의식 상태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나는 단지 나 자신의 체험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단순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적어도,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려는 내 열망은 아주 강했다. 그런 다음엔 아무 예외 없이 누구라도 무엇이든 용서하는 법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자비심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이나 생각들에 대해서도 자비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욕망을 기꺼이 멈출 수 있어서 어느 순간에나 자신의 의지를 항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나하나의 생각, 느낌, 욕망, 행위를 신에게 바쳐야 한다. 그럴 때만이 마음의 평화는 커져간다. 처음에는 모든 문장과 구절들을, 그 다음엔 생각과 관념까지도 나는 신에게 바쳤다. 자신의 생각을 소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은 채 나아간다면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는 불가능하고, 절반도 완성되기 전에 산산조각이 나 버릴 것이다. 결국, 나는 생각으로 무르익기 이전의 에너지까지도 신께 맡길 수 있었다.

일상적인 활동을 계속해 나가면서도 나는 언제나 정신을 집중하여 초점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명상하는 도중에도 산만해지는 순간을 나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주 힘겹게 여겨졌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습관화되고 자동화되어 점점 쉬워졌으며, 나중에는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그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은 로켓이 지구를 떠나는 것과 흡사하다. 처음에는 막대한 힘이 필요하지만 일단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면 스스로의 타성에 의해 저절로 움직인다.

홀연히, 아무런 예고도 없이, 깨어 있음으로의 이동이 이루어졌고, '위대한 존재'는 실수 없이, 모든 것을 포용하며, 거기에 계셨다. 자아가 죽은 아픔도 없지 않았지만, '위대한 존재'의 절대성이 경외의 불빛을 비추며 격려해 주었다. 자아의 죽음과 함께, 이제껏 알아 왔던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고 황홀한 새로운 경지가 열렸다.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황홀감이었다. 격심한 충격에 떨어지지 않은 것은 '위대한 존재'와 함께 있는 사랑이 떠받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보호와 도움이 없었다면 누구라도 완전히 붕괴되고 말 것이다.

에고가 살아 남으려는 발버둥을 치는 순간에는 공포가 다가왔다. 이제는 아무 것도 아닌 허무 자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하지만 에고가 죽은 그 자리에는 진아가 들어섰다. 모든 것이 오롯이 드러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진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나는 곧 모든 것이라는 인식이 뒤따라 주었다. 그 하나는 온전히 모든 것이었고, 완전했다. 모든 신분을 뛰어 넘어, 모든 성을 뛰어 넘어, 심지어는 인간성 자체를 뛰어 넘어. 하나는 이제 더 이상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출처] 의식혁명|작성자 강산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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