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혐오가 아니라 언어다

환단스토리 | 2016.08.07 22:28 | 조회 5836


[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혐오가 아니라 언어다


한겨레 2016-08-07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혐오가 창궐한다, 역병처럼. 이 집단이 저 집단을, 이 지역 사람이 저 지역 사람을, 언어나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이제는 무참하게도 이름 없는 남자들과 얼굴 없는 여자들이 서로를 혐오한다. 대상이 불분명하니 무차별적이 되기도 한다. 격분한 어느 한 명의 말을 집단 전체의 생각인 양 서로 믿어 버린다. 싸움은 격렬해지고 언어의 온도와 농도는 고양된다. 의견을 주고받는 중에 급진파와 워~워~파로 나뉘다 보면 또 다른 극단의 지파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여혐, 남혐’ 현상은 지역감정을 기반으로 한 영호남 갈등이나, 피부나 언어가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혐오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특히 여성들 쪽의 양상을 보면 특징적인, 그러나 중요한 지점이 눈에 뜨인다. 일단 그들의 목적은 ‘폭로’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양남(兩南)의 사람들이 서로를 미워한다 해도 폭로전을 펼치지는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우려스러운 정도지만 조직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상을 비하하거나 어떤 실수들을 책잡아 낱낱이 까발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몇몇 한국 여성 집단들은 집요하게도 한국 남성들의 지질한, 비겁한, 폭력적인, 이기적인, 편협한, 권력적인, 무감각한, 무책임한, 안하무인의 모습을 폭로하고 있다. 그들은 폭로의 언어로서, 예를 들면 ‘미러링’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관심이 가는 것은 이들의 말, 언어다.


숫자가 많다고 약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 어느 계층, 단체, 소수자, 약자의 무리든지 여성들은 더 밑바닥을 감당하도록 강요당했다. 남성 장애인보다 여성 장애인이,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보다 여성 노동자들이, 노숙자 남성보다 여성 노숙자들이 더 험한 자리에서 더 모진 처분을 받는 것은 사실 아닌가. 그러니 개별 여성이건, 어떤 이미지로서의 여성이건 이들을 약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여성들이 말을 하고 있다. 이제야 겨우 말할 기회와 공간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그들의 언어가 너무 짙고 뜨겁고 험해서 선뜻 눈길 주기가 힘든 표현들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딸이고 남매인 그들이 경험한 삶은 깊고 슬프고 억울했다는 뜻이다.


몇 년 전 있었던 경험이다. 분석을 진행하던 한 여성 내담자는 자기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의 순간에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했다. “별이라고 믿고 살아온 불가사리!” 짐작하다시피 이 말은 자기비하가 아니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비합리적인 생각을 사실인 양 믿고 살았던 구태의 자신을 해방시켰고, 그것은 언어를 확보함으로써 가능했다. 연이어 그 언어가 열어놓은 통로를 통해 그녀의 수많은 기억과 억압들이 순서를 정해 질서정연하게 헤아림 받았다. 그녀가 가부장의 습속과 폭력이 가둬놓은 자신의 존엄을 올바르게 대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정신분석의 궁극은 (타인과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며) 억압을 해방하는 데 목적을 둔다. 가장 중요한 과정은 자기 언어를 획득하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한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어떤 상황이나 경험, 감정을 가장 적확한 언어로 포획해 내고 표현할 때 비로소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대화는 오직 오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니 오해까지도 두려워 말고 끝내 경청하면 좋겠다. 대화에서의 권력은 청자에게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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