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똑똑하네" 직지에 놀란 네덜란드 디자이너

환단스토리 | 2017.12.02 21:05 | 조회 9189

"한국인 똑똑하네" 직지에 놀란 네덜란드 디자이너


[중앙선데이] 입력 2017.11.26 


한국 전통 인쇄의 금속활자인 정리자 활자(위, 1795 정조 19,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와 유럽식 금속활자(아래, 사진 가즈이 공방). 같은 금속이지만 주조 성분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 수 있다.

한국 전통 인쇄의 금속활자인 정리자 활자(위, 1795 정조 19,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와 유럽식 금속활자(아래, 사진 가즈이 공방). 같은 금속이지만 주조 성분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 수 있다.

한국 전통 인쇄의 금속활자인 정리자 활자(위, 1795 정조 19,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와 유럽식 금속활자(아래, 사진 가즈이 공방). 같은 금속이지만 주조 성분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직지에 세 번 놀란 네덜란드 디자이너

  

네덜란드의 폰트 디자이너 마르틴 마요르(Martin Majoor)를 한국에 초청했을 때, 그는 구텐베르크보다 먼저 발명된 고려 금속 활자본의 현장을 방문하고 싶어했다. 마요르는 1990년대 폰트 디자인의 고전인 스칼라(Scala)에서 최근의 퀘스타(Questa)까지 탁월한 폰트들을 디자인했다. 따뜻한 인간미를 갖춘 스칼라는 헬베티카(Helvetica)·메타(Meta)·딘(DIN)과 더불어 가장 인기있는 로마자 폰트다.


  

1450년경 발명된 구텐베르크식 금속활자 인쇄술과 1377년 인쇄된 『직지심경』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금속으로 주조한 조립식 활자로 책을 찍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세부 공정과 사회·문화적 함의에서 차이가 난다. 양쪽 모두 직접 실습해보면 몸으로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청주 고인쇄박물관에서 이 차이를 통찰하던 마르틴이 감탄하며 우뚝 멈춰선 순간이 세 번 있었다. 

마르틴 마요르가 디자인한 스칼라 세리프와 스칼라 산스.

마르틴 마요르가 디자인한 스칼라 세리프와 스칼라 산스.

  

“비용이 상당했겠어요”

“구리의 성분비가 이렇게 높은가요?”   

고려와 조선의 금속활자 주조 성분 비율을 한참 살피던 마르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구텐베르크 활자에서는 값싼 납이 주재료이고 주석과 안티몬이 들어가잖아요. 구리의 비중이 저렇게 높으면 비용이 상당했겠어요.” 

  

한국의 금속활자는 동활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납활자다. 거무튀튀 창백한 납활자와 풍요로운 금빛이 감도는 동활자를 비교해보면, 한 눈에도 때깔과 위엄이 다르다. 

  

그러나 마르틴의 표정에 우려가 담겼듯, 이 ‘부귀의 증표’가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구리를 주성분으로 하는 동활자는 비용이 많이 들어 널리 퍼지기 어려웠다. 활자의 근대적 정신을 상기하면 불리한 조건이다. 

  

한국 전통 금속활자 인쇄술에서도 드물게 납이나 철을 주재료로 쓰기도 했지만, 대개 구리에 주석을 섞은 합금인 청동으로 활자를 만들었다. 청동은 놋쇠라고도 하며, 주석이 많이 함유될수록 구리의 붉은빛이 가셔지는 색상을 띤다. 

  

어떤 금속이든, 활자처럼 정밀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물건을 금속으로 주조할 엄두를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곧 그 사회가 높은 수준의 금속 기술을 축적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다만 상인들의 주도로 삽시간에 유럽 전역에 전파돼 적어도 서적 인쇄에서는 필사를 완전히 대체한 구텐베르크식 금속활자 인쇄술과는 달리, 한국의 전통 금속활자 인쇄술은 고려에서 조선 시대로 넘어와 수백 여년이 지나도록 국가 주도로 이루어졌다. 민간에서는 여전히 경제적인 목활자와 목판을 사용했고, 조선 후기와 개화기로 와서도 국문 소설 정도는 손으로 책을 필사하는 일이 흔했다.   

  

“한국인들 참 똑똑하군요”

한국의 문지르기 방식으로 인쇄하는 마르틴 마요르.

한국의 문지르기 방식으로 인쇄하는 마르틴 마요르.

이어 마르틴은 어리둥절해 했다. “인쇄기는 어디에 있죠?” 

  

곧 인쇄기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연이은 추론 끝에 표정이 화창해졌다. “인쇄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종이에 활자가 찍힌단 말이에요? 당시 제지술이 얼마나 훌륭했으면! 한국인들 참 똑똑하군요.” 

  

구텐베르크와 직지의 금속활자 인쇄술에서 뚜렷한 차이 중 하나가 인쇄기의 유무다. 유럽에서 대형 가구 크기 기계의 레버를 힘껏 당겨 찍어냈다면, 한국에서는 단출하게 종이를 문지르기만 하면 인쇄가 됐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전통 인쇄는 오늘날의 일상에서는 단절돼 몇몇 장인이 재현하는 공예의 영역으로만 남았다. 1883년 박문국이 설치되면서 일본을 통해 서양의 근대식 인쇄가 들어왔고, 전통 동활자 인쇄술은 신식 납 활자 인쇄술로 곧 대체됐다. 우리가 지금 한글을 사용하는 디지털 기계 환경도 구텐베르크 방식을 이어간다. 우리가 자랑하는 과학 기술의 전통이 오늘의 일상에서 다른 문화권의 기술로 대체된 이유를 우리는 왜 설명하지 않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서구에서는 인쇄 기계가 개량을 거듭하며 대량생산력을 신속히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인쇄기가 없었던 것은 고려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뛰어나서였다고, 전상운 교수는 저서 『한국과학사』에서 설명한다.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명은 여러 세부 공정의 발명이 포괄적으로 합쳐진 것이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예나 지금이나, 전체 공정은 크게 금속주조ㆍ입력ㆍ조판ㆍ출력으로 이루어진다(‘주조’는 폰트 제작, ‘입력’은 타이핑, ‘조판’은 문서 작성, ‘출력’은 인쇄나 업로드에 해당한다). 이 모든 공정을 표준화해야 하고, 매끄러운 금속에 잘 묻도록 농도가 높고 기름진 먹을 만들어야 하며, 그 먹을 선명하게 찍어낼 종이를 제작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종이를 발명한 것은 중국이지만, 한국은 통일신라부터 독자적으로 제지술을 개량해 뛰어난 품질의 종이를 생산해냈다. 고려의 닥종이는 서구의 빳빳한 종이보다 표면이 부드러워 육중한 인쇄기가 없어도 손으로 문지르기만 하면 활자가 물리적인 자국을 남길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그저 인쇄기가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한국인은 활자에도 젓가락을 쓰네요!”

젓가락을 사용해 활자를 활판에 옮기는 조판 방식.

젓가락을 사용해 활자를 활판에 옮기는 조판 방식.

활자 인쇄 도구 중에 젓가락이 있었다. 그러잖아도 한국에 온다고 젓가락질을 완벽하게 익혔다며 자랑하던 마르틴이다. 그는 한국인이 활자마저 젓가락으로 집어드는 민족임을 확인하더니 쾌활하게 웃었다. 

  

동서양 금속활자 인쇄술은 이처럼 세부적으로는 상당히 다른 메커니즘이 있고, 서로 다른 독창적인 발명의 요소가 많다. 이를 인정하더라도 한국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의 발명이라는 의미는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 이 발명은 책의 수요가 많지는 않아도 높았다는 사실, 고려가 기록과 지식과 학문을 존중하는 사회였다는 사실,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을 성취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유네스코의 공인을 받았고, 독일과 프랑스의 도서관·박물관들에서도 이를 명시하고 있다. 

  

너를 알고 나를 알고 너와 나의 다름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문화를 정확히 사랑하는 자존의 방식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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