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독실한 실천가이자 시서화에 능했던 강암 송성용 선생

신상구 | 2020.07.12 16:00 | 조회 5285


                                             유학의 독실한 실천가이자 시서화에 능했던 강암 송성용 선생

                                         

  •                                                         강암 송성용<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강암 송성용(剛庵 宋成鏞,1913-1999)은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3년 전북 김제군 백산면 상정 리 요교마을에서 유재 송기면(裕齋 宋基冕,1882-1956)의 3남1녀 중 3남으로 태어나 1999년 2월 8일 전주시 교동에서 향년 8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37년(25세)에는 영운 김용진(潁雲 金容鎭,1878-1968)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우고, 1938년(26세)에는 일주 김진우(一洲 金振宇, 1883-1950)의 사군자에 영향을 받으면서 서화에 대한 외연을 확장시켰다. 글씨도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 등 5체에 천착하기 시작하였다.
   “강암이 33세가 되던 해인 1945년에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미술계에서 일본풍탈피와 민족미술이 대두되던 때 강암은 외부 세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관을 정제한 채 서예연마에 힘썼다. 그리하여 30대 중반부터 10여 년 동안은 용필과 글씨의 다양한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함으로써 자기만의 서예적 기반을 굳건하게 다져나갔다. 강암은 1955년(44세) 제5회 국전에 행서와 묵죽을 출품하여 입선함으로써 뒤늦게 공식적으로 중앙서단에 등단한다. 10여 년간 입선과 특선을 거쳐 1966년(54세)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1968년(56세) 국전추천작가가 되었다.”<장지훈(경기대학교 서예학과 교수), ‘선비서화가의 면모를 보이다’ 中>
    강암 송성용은 항일 민족정신이 투철한 집안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90년대 후반까지 평생 상투를 틀고 한복을 입고 다녔던 인물이다. 그는 1980년 일본 미술계를 시찰하고자 여권 사진을 찍을 때에도 갓을 벗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면 일본행을 취소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만큼 유학(儒學)의 독실한 실천가였다.


  •                                     금문(金文), 1982, 종이에 먹, 135×70㎝<강암서예관 소장>

                                                                                       강암체(剛庵體)
    “강암의 글씨는 국전을 출품하던 시기부터 개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는데, 60대 중반 이후로는 자가 서체라 할 수 있는 독특한 서풍을 시도하여 ‘강암체(剛庵體)’를 형성하였다. 즉, 강암의 전서는 고대로부터 청대에 이르는 다양한 전서의 필획과 자형을 체득하여 자유롭게 필의를 운용함으로써 회화적이면서도 강인한 금석문의 맛과 엄정한 조형과 유려한 필세, 웅혼한 필획 자형이 융합되었다.”<장지훈 교수>
    강암은 서예뿐만 아니라 문인화에도 조예가 깊었다. 사군자를 비롯하여 연꽃·바위·돌·새 등 생활 속의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는데 특히 묵죽(墨竹)은 그의 문인화에서 대표성을 띤다. 작품 ‘석죽도(石竹圖)-풍지로엽무진구(風枝露葉無塵垢)’는 전형적인 강암의 석죽도이다.

  •                                석죽도-풍지로엽무진구, 119×240㎝ 종이에 먹, 1989<개인소장>

     맑고 우직하게 뻗은 대나무 줄기에는 선비의 강인한 기상이 서려있고, 청신(淸新)한 잎사귀와 그 사이에 배치된 괴석(怪石)은 문인화의 운치를 더해준다. 화제 글씨는 행초서로 썼는데, 일반적인 서예 작품의 행초서와 달리 바람에 흩날리는 푸른 댓잎과 구불구불한 가치처럼 필세의 흐름과 조형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그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상단의 화제는 대나무에 관한 7언 절구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배치했고, 작품을 완성한 후 좌측 하단에는 마치 기암괴석이 삐죽삐죽 솟아있는 듯 당나라 주방(朱放)의 시를 더하여 독특한 화면의 흐름과 구도를 형성했다.
    전체적으로 농담, 질삽, 소밀의 대비가 뚜렷하여 입체적 공간감이 두드러지며, 대나무·괴석·화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시·서·화의 혼연일체를 엿볼 수 있다. 특히 하단의 화제는 작품을 완성한 후 좌에서 우로 화제를 쓰는 파격적인 장법을 구사하여 전체적인 화폭의 균형을 맞추었다.
    “강암 송성용은 고전의 학문사상과 서법을 계승하면서도 전통에 매몰되지 않고 당대의 시대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그는 전, 예, 해, 행, 초 등 다양한 서예작품으로 변화를 시도하였다. 문인정신이 깃든 대나무 그림에 특장이 있어 시·서·화를 모두 겸비한 20세기 마지막 선비서화가로 평가받는다.”<국립현대미술관 배원정 학예연구사(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Curator Bae Wonjung,裵原正,미술사학 박사)>
    한편 강암 송성용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덕수궁관에서 4~7월 전시 중인 ‘미술관에 書:한국 근현대 서예전(The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Writing)’의 두 번째 주제 ‘글씨가 그 사람이다(書如其人)-한국근현대서예가1세대들’ 12인 중 예술가이다.
                                                                                           <참고문헌>

                                                              
    1.  권동철, "강암 송성용 선생 : 유학(儒學)의 독실한 실천가, 60대 중반 이후 ‘강암체’형성", 데일리 한국, 2020.6.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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