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영역 신 연구

신상구 | 2020.07.21 03:24 | 조회 3766


                                                                                   고조선 영역 신 연구


    “강역이 어디냐, 수도가 어디냐, 패수가 어디냐 같은, 이제껏 수없이 반복됐던 논의를 또다시 되풀이하는 것보다는 고조선의 실체가 무엇이었느냐 같은, 고조선을 이해하기 위한 틀 자체를 재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2018.8.27일 동북아역사재단의 한중관계연구소 박선미 박사가 밝힌 강조점이다. 박 박사는 최근 고조선사연구회에서 ‘고조선의 종족적 정체성과 고고학 자료의 해석 문제’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박 박사는 중국 측 자료들을 분석해 본 결과 고조선은 실재했으며 고조선 지역은 부여와 고구려, 옥저, 예를 합친 쪽에 가깝다고 추정했다.

   오늘날 고조선 연구는 위태로운 주제다. 학계에서는 고조선 얘기를 꺼내는 즉시 ‘국뽕’이란 눈총을 받는다. 시원, 혹은 기원에 대한 연구는 위대함과 곧장 연결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워낙 소략한 자료로 큰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중들은 민족적 감정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최초(最初) 최고(最古) 최대(最大)’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기존 연구는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것들뿐이다. 양쪽 갈등이 치열해지면서 서로를 보는 눈도 극단화됐다. 한쪽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설만 추종하는 ‘아바타 식민사학자’라 비판받고, 다른 한쪽은 무슨 수를 쓰던지 지도만 크게 그리면 박수받는 ‘국뽕 추상화가’가 됐다.

   고조선 연구자인 박 박사의 논문은 이 사이를 파고들기 위한 것이다. 그가 무기로 들고 나온 것은 중국 정사(正史)의 여러 기록들, 그리고 민족주의 이론가 앤서니 스미스가 말한 ‘민족 이전의, 민족의 역사적 토대로서의 에스닉(ethnic)’ 개념이다. ‘민족’이 근대적 개념이라는 건 오래된 주장이다. 에스닉은 근대 들어 민족이 정립되기 이전에 언어ㆍ문화ㆍ지리적 특징과 유사성을 공유하는, 민족보다는 약하지만 어떤 유대감을 지닌 종족이라는 관념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박찬승 한양대 교수가 에스닉의 번역어로 ‘족류(族類)’를 제안한 바 있다.

   일단 중국 쪽 기록들. 관자(管子),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등 중국이 남긴 여러 기록들을 보면 동일언어군으로 “부여, 고구려, 동옥저, 예가 한 그룹으로 묶”이고, “변한, 진한이 같은 언어그룹”으로 “읍루, 마한, 주호가 각각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의식주 등 풍속에 대한 기록을 봐도 “부여, 고구려, 옥저, 예가 대체로 유사한 풍속과 법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중국인의 눈에 저기 동북쪽과 그 너머에 있는 이들은 “부여ㆍ고구려ㆍ옥저ㆍ예, 진한ㆍ변한, 읍루, 마한, 주호 등 다섯 그룹”으로 인식됐다는 얘기다. 옛 언어를 기록해 둔 ‘방언’과 ‘설문해자’ 기록들도 이런 분석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옛 고조선은 부여ㆍ고구려ㆍ옥저ㆍ예의 전신(前身)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박 박사는 이런 자료가 중국이란 타자에 의한 일방적 기록이긴 하지만 중국인 스스로가 우리와 다른 어떤 종족이 있다라고 기록해 둔 자료인 만큼 “중국 동북부 지역과 한반도 서북부 지역이 곧 고조선”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료의 신빙성 문제도 되짚었다. 박 박사는 “중국 측 사료를 보면 상대적으로 왜에 대한 기록은 짧은 편인데, 이것은 거꾸로 중국 동북, 그리고 한반도 서북부지역에 대해서는 중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중국 측 자료에 기반한 만큼 중국 동북공정에 즉각 반박할 수 있는 논리이기도 하다.

중국 동북공정에 항의하는 한국 학술, 시민단체들의 집회. 항의는 필요하지만 좀 더 정교한 논리가 필요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런 주장도 위태롭긴 매한가지다. 고조선의 강역을 한정 없이 늘리는 이들은 비파형 동검, 고인돌 같은 유물의 분포도를 내세운다. 비슷한 유물이 나오면 동일한 문화권, 동일한 국가의 영역으로 비약하는 논리다. 학계에서는 이런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박 박사도 이 점은 받아들인다.

   여기에다 박 박사의 주장은 개략적인 스케치일 뿐이다. 고조선이라는 것이 존재했으며 대략 부여ㆍ고구려 등의 영역이었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원시부족 수준인지, 아니면 중앙집권적 대제국인지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셈이다. 박 박사는 “앞으로 연구자들이 채워 나가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일단 어느 정도 범위가 주어진 이상 그 범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교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고조선 연구도 비슷한 유물만 나왔다 하면 일단 영역을 넓히고 볼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 내 다른 유물, 다른 지역 간의 비슷한 유물 등을 두고 어떤 문화 교류, 충돌이 일어났는지를 규명하는 데에 맞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참고문헌>

   1. 조태성, "고조선 영역은 부여, 고구려, 옥저, 예를 합친 것에 가깝다", 한국일보, 2018.8.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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