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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philosophy이란 뭘까? (2)

문계석

2016.07.20 | 조회 12217 | 공감 2

철학philosophy이란 뭘까?  - 두 번째 시간


                            문계석  / 상생문화연구소 서양철학부 




사랑philos의 어원


철학을 ‘지혜 또는 지식을 사랑함’으로 말할 때 ‘사랑philos’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좀 더 소개해 볼까한다.


사랑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동사 ‘사랑하다phileō’를 원초적으로 분석해 봄이 좋을 것이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고작 몇 번 정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사람도 더러 있을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입에 발린 듯이 사랑한다는 말을 던지며 산다. 이 말의 쓰임새는 수없이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나는 너를 죽도록 사랑한다”, “너는 나보다 강아지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 “나는 돈을 끔찍이 사랑해”, “나는 예술 작품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나는 축구를 미치도록 사랑한다”, “나는 돈보다 자식보다 명예를 더 사랑한다”, “나의 사랑은 오직 전지전능한 하느님뿐이야” 등과 같이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다양한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 말이 어떻게 해서 나오는 것일까?


‘사랑한다’는 뜻은 원초적으로 ‘~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대상을 간직하거나 소유하고 ‘싶다’든가, 아끼거나 지켜주고 ‘싶다’든가, 아니면 대상과 하나가 되거나 대상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떤 무형적인 대상(일종의 정신적인 모든 것)이든 유형적인 대상(물질적인 모든 것)이든 어떤 것을 열광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때, 사랑은 대상을 소유하고 싶거나, 그 대상과 늘 하나가 되어 같이 있고 싶거나, 어떤 경우에는 그 대상을 위해 생사를 초월하여 헌신하고 싶다는 일종의 ‘욕망’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원초적으로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사람은 살아있는 한 사랑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태생적으로 ‘~하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서 가장 기본적인 욕망은 아마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것, 휴식을 위해 잠을 자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 욕망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람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무언가를 ‘욕망’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존재다. 이 말은 곧 사람은 사랑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존재라는 얘기다.



에로스Eros 신의 정체


그럼 사람은 무엇 때문에 욕망(사랑)을 갖고 살아야 하며, 그 대상은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또한 사람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들도 마구잡이식으로 욕망하는 것일까 아니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욕망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플라톤Platon(BCE 427~347)의 대화편 『잔치Symposium』에 나오는 ‘에로스Eros’의 의미를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헤르메스에게 자신의 힘을 온 세계에 알리도록 지시하는 에로스 (외스타슈 르 쉬외르)


<<페니아, 폴로스, 에로스 신 사진 삽입>>


『잔치』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잠깐 들여다보자.


옛날에 풍요를 상징하는 남신男神 폴로스Polos와 빈곤을 상징하는 여신 페니아Penia가 있었다. 남신 폴로스는 글자의 어원이 말해주듯이 부유함, 명예, 지혜, 아름다움, 좋음 등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여신 페니아는 글자의 어원이 말해주듯이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입을 옷이 없어 다 해진 옷을 입고 다녀야 했고, 편안하게 잠을 잘 집이 없어서 늘 어디에서 하루 밤을 지내야 할지를 걱정하며, 하루의 끼니를 때울 양식도 없어서 항상 빌어먹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항상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는 여신 페니아는 자나 깨나 늘 풍요의 신을, 즉 먹을 것에 있어서나 입을 것에 있어서나 아름다움에 있어서나 고귀함에 있어서나 소위 좋다는 것을 두루 풍부하게 갖춘 폴로스 신을 동경하면서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생일에 신들이 초대되어 축하연이 베풀어졌는데, 여기에 풍요의 신 폴로스도 초대되었다. 많은 신들이 마음껏 먹고 마시며 연회를 즐기고 있었고, 풍요의 신 폴로스도 이 연회의 흥에 도취되어 신주神酒를 너무 지나치게 먹은 나머지 취해서 제우스Zeus 신전의 뜰에서 깊이 잠이 들어버렸다. 바로 이때 음식을 구걸하러 왔던 빈곤의 신 페니아는 늘 동경해왔던 풍요의 신 폴리스가 술에 만취가 되어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회는 이때다하고 얼른 그의 옆에 누워서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다. 이 아이가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랑의 신 에로스이다.


에로스는 풍요의 신 폴로스와 빈곤의 신 페니아의 양극단 사이에서 태어난 신이다. 그런 까닭에 에로스 신은 어머니 페니아를 닮아서 가난하고 거칠며 저돌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 폴로스를 담아서 언제나 틈만 있으면 보다 아름다운 것, 보다 선한 것, 보다 지혜롭고 진리인 것 등,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욕망하거나 풍부하게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런 의미에서 에로스 신은 부자도 아니고 가난한 자도 아니며, 지혜로운 자도 무지한 자도 중간자이다.


에로스 신은 완전성과 불완전성의 중간에 있지만 항상 완전성을 욕망하는 존재이다. 만일 누군가에게 에로스 신이 들어와 에로스를 가지게 된다면, 그는 보다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 즉 빈곤한 것 보다는 지혜로운 것을, 추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선하지 못한 것보다는 완전한 것을 가지려고 욕망하고, 그런 것들을 동경하여 획득하려고 열광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와 반대로 만일 에로스 신이 들어오지 않아 에로스를 갖고 있지 않다면, 보다 풍요로운 것, 보다 좋은 것, 보다 지혜로운 것, 보다 아름다운 것 등을 동경하거나 추구하여 획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에로스는 충만充滿으로 돌아가려는 욕망(원시반본原始返本의 정신)


의식이로든 무의식으로든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여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보다 좋은 것을 알고 있다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소유하려고 욕망하기 마련이다. 요컨대 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이를 소유하려고 하거나 자신이 아름답게 되려고 욕망한다는 얘기다. 갈증이 생기면 물을 먹고 싶은 욕망이 발동하고, 배가 고프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이러한 욕망은 원초적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니 이를 채움으로써 보다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보다 더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는 욕망, 이것이 곧 사랑이라 볼 수 있다. 사랑은 근원적으로 가치 있는 것에 대한 욕망에서 출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이 왜 이런 에로스를 원초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느냐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적당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로 『잔치』에 나오는 다른 미토스mytos(설화)를 살펴보자.



아주 옛날에 우주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식물 및 동물들이 살고 있었고, 신들이 이 우주를 다스리던 시기가 있었다. 동물들 중에는 인간이라는 종족이 있었는데, 인간 종족은 세 가지 형태로 존재했다. 하나는 수컷과 수컷이 결합한 인간, 다른 하나는 수컷과 암컷이 결합한 인간, 또 다른 하나는 암컷과 암컷이 결합해 있는 인간이다. 이들 각각의 종족은 모두 탁월한 지혜를 갖고 있었고, 무엇이든지 이루어낼 수 있는 충분한 능력뿐 만 아니라 또한 동물들 중 제일 빠른 속도를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떤 분야에서든 부족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충만한 존재로 살았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전지, 전능에 가까운 존재였다고나 할까?


이런 충만한 능력을 두루 갖춘 인간 종족은 누구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였을까? 바로 인간들과 동물들을 다스리던 신들의 제왕 제우스였다. 제우스는 인간 종족이 혹시나 자신의 지위를 탐내어 모반을 일으킬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 내지 못했다. 그래서 제우스는 번개의 칼로 서로 결합되어 있던 각각의 인간 종족을 반쪽으로 잘라 냈다. 반쪽이 된 인간 종족은 충만한 상태에서 불만의 상태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후 반쪽이 된 인간 종족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은 잘려버린 나머지 반쪽과 만나기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동경하고 욕망한 나머지 거의 빈사 직전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잃어버린 자기의 반쪽을 만나기라도 하면 근원적인 본래의 상태, 즉 함께 결합해 있었던 옛날의 더없이 좋았던 충만한 상태를 회복할 수 있으므로 포만감에 젖게 됐으며,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이 미토스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반쪽으로 태어나는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본래의 자기 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늘 불만족한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잃어버린 자기 짝을 만나 하나가 되어 본래의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무언가를 항상 그리워하고 동경하면서 열광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로스는 궁극적으로 근원을 찾아 충분히 만족한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의지, 다른 말로 원시반본의 정신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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