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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과 인연으로 맺은 생명의 도방(강윤희, 김정애)

2017.01.17 | 조회 4314 | 공감 1

간절함과 인연으로 맺은 생명의 도방(강윤희, 김정애)

부산광안도장 강윤희, 김정애 도생
부산광안도장에서 신앙을 하고 있는 강윤희(46세, 교무녹사장), 김정애(47세, 교무종감) 도생 부부는 매사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생활자세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이다. 진리를 만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모든 과정이 그들에게는 새로움과 해답을 찾는 과정이자 하나의 루틴routine과도 같은 삶의 열정이었다. 그들이 증산도 진리를 만나는 과정, 삶의 시련과 극복의 자세, 인연을 담는 포교의 심법과 천도식 체험, 그리고 가가도장으로 얻은 삶의 메시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자 한다.

9월의 첫 금요일, 가가도장 취재를 위해 나선 부산행 길은 세차게 내리는 빗방울과 함께한 여정이었다. 3시간이 넘는 차량 주행 시간 내내 쏟아지는 비로 인해 여느 때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이동을 했지만, 정작 도방 취재를 마치고 보니 한 가족의 이 사연을 듣기 위해 그렇게 빗줄기를 헤치고 달려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부부의 신앙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외아들 강민우 도생(19세, 교무종감)이 직접 보여 준 현란한 마술의 한 장면처럼 잔잔한 여운이 남는 이번 도방 스토리의 주제는 ‘절실함’이다.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에 있는 도방은 세 가족이 단란하게 살기에 알맞은 정갈하고 적절한 공간이다. 빌라 2층 출입문에는 상생방송 스티커와 함께 입춘대길立春大吉, 만복함지萬福咸至라 쓴 글이 좌우로 붙어 있다. 집에 들어서면 안쪽 거실 직각으로 꺾인 벽면에 천신단을 조성해 놓았는데 공간 구조상 독립된 신단처럼 느껴진다. 신단은 중앙에 상제님 어진과 태모님 진영을 모시고 태을주와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성용이 좌우로 모셔져 있다. 그 아래에는 봉청수 그릇과 함께 조상님 존영이 정성스럽게 모셔져 있다. 전반적으로 규모와 구성을 깔끔하게 잘 조화시켜 놓은 분위기이다.

조상의 음덕과 정성을 안고

강윤희 도생은 상제님 진리를 만나기 전에 불교를 신앙하고 있었다. 지금 태을주를 읽는 것처럼 늘 ‘관세음보살’ 또는 육자대명왕진언인 ‘옴마니반메훔’을 읽고 다녔다. 물론 “천지신명이시여 태양의 신이시여 달의 신이시여 조상님이시여 늘 저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시옵소서” 하고 시간만 나면 기도와 함께 주문을 읽고 다녔다고 한다.

강 도생의 할아버지는 경남 하동 쌍계사 주지를 오래 하신 분이었다. 얼굴은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도인의 풍모를 지닌 분이셨고, 돌아가실 때도 유언을 하시고서 앉은 채로 입적하셨다는 이야기를 고향 사람들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강 도생은 왜 그런지 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진짜 부처님처럼 느껴졌고 마음속으로 늘 존경해 왔는데, 불교 공부를 조금씩 하면서 석가불과 미륵불 그 외에도 많은 부처와 보살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늘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진리에 대한 갈급증을 갖고 있었다. 김정애 도생도 증산도 신앙을 하기 전에는 특별한 종교가 없었다. 그저 집에서 불교 신앙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불교를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두 부부는 상제님 진리를 만나고 신앙을 하고 있는 지금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조상들의 음덕과 정성 기운을 품에 안고 이루어진 것임을 직감하고 있다고 했다. 강 도생이 어려서부터 3개월에 한 번씩은 습관처럼 꼭 조부모님의 묘소를 찾았던 것도 그러한 인연을 시사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입도가 필요했던 이유

강 도생과 김 도생은 20대 초반에 친구의 소개로 만나 3년의 교재 끝에 결혼을 했다. 연애 시절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 달라고 했더니, 김 도생은 두 사람이 교재를 시작하고서 함께 간 첫 장소가 강 도생 조상의 묘소였다는 뜻밖의 응답을 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조금은 특별한 추억을 쌓아 가면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결혼 후 강 도생은 석유 배달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상가를 돌면서 홍보를 하던 중에 증산도 부산광안도장을 우연찮게 방문하였다. 그날 도장에서 여성 책임자를 만나 옥황상제님과 미륵부처님은 똑같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강 도생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사배심고를 올리고 도전 소개와 천지공사 이야기를 들은 뒤 다이제스트 책을 받아 들고 다음 방문을 약속한 후 도장을 나왔다.


받아 온 그 책을 읽고 너무 큰 충격을 받고서 공부를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겨울 한철 장사라 시간이 맞지 않아 도장 방문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 강 도생이 운영하던 석유 가게 조금 옆에 자리한 샤시 가게의 주인이 바로 광안도장에서 신앙하는 도생이었다. 가게 앞에 패널을 펴 놓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증산도에 대해 물어보고 하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영위하던 생업이 여의치 않아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던 부부는 다른 사업에 관심을 갖고 쫓아다니던 중이었는데, 어느 날 사업과 관련해 아는 분을 통해 음양오행을 공부한다는 모임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진리에 대한 갈급증이 있었던 강 도생은 매주마다 나가서 교육에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교육을 담당하던 분이 바로 대구두류도장의 석용도 도생이었다.

더불어 아내인 김 도생도 함께 음양오행 공부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모임에서 만나 친해진 언니 한 분과 이런저런 얘기 끝에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어디 용한 사람에게 찾아가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랬더니 그 언니가 아는 분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며칠 후 약속 장소인 동대구역까지 제 시간에 찾아갔지만, 상대방이 사정이 생겼다며 무려 3시간을 지체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평소 성격과는 달리 김 도생은 끝까지 기다렸다.

“만나 볼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꼭 만나고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날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만큼 저는 간절했습니다. 방도만 있다면 힘든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사는 것에 의미를 찾고 싶었지요.” 김 도생의 이 말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당시의 절박했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가 소개받은 이는 음양오행 공부를 가르쳤던 바로 그분이었고, 그제서야 그분이 증산도를 신앙하는 도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은 황당하고 얼떨떨했지만, 김 도생은 다짜고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느냐?”는 질문을 거침없이 던졌다. 그분은 살아가는 이치를 설명하면서 “태을주를 읽으면 잘 사는 답을 얻을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 다음 날 김 도생은 소개해 준 그 언니와 다시 만났는데, 같이 갈 데가 있다고 해서 남편인 강 도생과 함께 찾아간 곳이 증산도 부산온천도장이었다. 그곳은 강 도생이 다녀온 적이 있는 도장이었다. 도장으로 인도된 두 부부는 도장 책임자와 상담을 가졌는데, 증산도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하고 입도시험도 치러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김 도생은 내일이라도 당장 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그땐 꼭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강 도생도 마찬가지였다. 진리에 대한 오랜 갈급증, 또는 현실의 삶에서 의미를 찾고 힘을 얻고 싶었던 열망이 진리의 문을 두드리는 유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 당시 양산 서창에 살고 있었던 부부는 집과 도장 간의 거리가 버스로 왕복 3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상당히 멀었고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좀 힘든 상황이었지만, 매일같이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울 수 있었다. 때로는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의 말씀을 받드느라 새벽 시간에 귀가를 하면서도 알아 가고 익혀 가는 삶이 즐거웠고 그간 많이 무지했음을 자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를 한 후 강 도생과 김 도생, 그리고 인도해 주신 분까지 같이 2004년 1월 입도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아내인 김 도생은 합격을 했지만, 답안의 필체 문제로 남편인 강 도생이 낙방을 하고 말았다.

이 한 번의 실패는 오히려 강 도생으로 하여금 더욱 마음을 다지고 정성을 쏟아 준비하며 내실을 기하도록 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김 도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다 좋은 남편으로 새롭게 태어난” 계기가 된 것이다. 강 도생은 다음 달 시험을 칠 때까지 한 달을 열심히 공부하였고 친동생에게 진리를 전해서 온천도장으로 인도하고 입문, 입도 공부를 같이 하며 2004년 2월에 드디어 입도를 하게 되었다. 부부가 입도를 하면서 외아들인 민우도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1학년 때 상제님 도문에 입도를 함으로써 가족신앙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진리로 이겨낸 삶의 시련


강 도생은 입도 후 그런대로 신앙을 하나씩 익혀 나가면서 생업을 영위했다. 하지만 누구나 정해진 도수가 있듯이, 잘하던 사업도 뭔가 모르게 잘 안 되면서 가세와 함께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잘나가던 사업을 정리하고 좋은 차도 매매상에 과감히 처분을 했다.

어찌 보면 현실적으로 더 큰 어려움과 위기에 직면한 상태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하루하루 살면서 상제님 진리를 만난 강 도생에게 사실상 개벽은 두려움보다 희망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사업에 실패를 했지만 “나에겐 상제님 진리가 있다”라는 생각이 강력히 가슴에 메아리쳤다.


이제 빈털터리에 차도 없이 뚜벅이 신세로 살 생각을 하니 주위의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일을 해 가며 살면서도 진리 신앙을 통해 공부가 조금씩 깊어져 갔다. 그러면서 “지금의 현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강 도생은 정말로 진리만 공부하고 생각하였으며, 오직 진리를 전달해 사람 살리는 일에만 집중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고, 그럴수록 그들에게 진리의 혼을 불어넣기 위해 강 도생은 더욱 파고 또 파면서 노력을 했다고 한다.

“너희들이 믿는 게 진짜다”


김 도생이 입도를 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낙태한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하게 된 일이라 모르고 살았는데 도문에 들어와 진리를 알고 보니 그것이 풀어내야 할 죄업임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김 도생은 조상님 천도식과 함께 낙태아에 대한 잘못을 빌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경제적인 상황이 어려워 천도식을 올리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천도식을 올릴 여유가 생겼고 부부 간에 천도식 순서와 일정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강 도생의 배려로 김 도생의 조상님부터 모시게 되었다.


천도식을 올리기 위한 21일 정성수행에 들어간 김 도생은 수행 중에 낙태 아이가 아들이란 걸 알았고 그 아이가 온 것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모님 어진을 바라보는데 태모님이 “네 마음 다 알고 있다”고 하시는 것을 보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김 도생은 그렇게 조부모님 두 분만 천도식을 올려드릴 수 있었다.


이후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이 하나씩 나아지면서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조상님 천도식을 원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3~4개월 간격으로 강 도생과 김 도생의 조상님 모두 빠짐없이 천도식을 올려 드리는 기쁨을 누렸다.

그 천도식 중에 김 도생의 외가집 천도식 날에 체험한 일은 무척 감동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친정 부모님은 가까이 사시므로 평소에도 도장 천도식 때 가끔씩 모시고 와서 참석하기도 했다. 그날 어머니 친정 쪽 천도식 날 어머니를 모시고 참석을 했는데 김 도생은 어머니께 눈을 꼭 감고 어머니의 아버지(할아버지)를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천도식이 끝나고 나서 어머니께서는 “우리 엄마랑, 아버지, 그리고 오빠가 천도식 상에 앉아 계신 것을 봤고, 상제님께서 나타나셔서 ‘너희 자식들 걱정하지 마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더불어 “너희들이 믿는 게 진짜다!”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고 한다. 이렇게 조상님의 은덕과 감응으로 영적 체험을 하신 어머니는 결국 도문에 입도하시는 경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가정도장이 준 선물들

강 도생은 입도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치성을 올리며 천신단을 모시게 되면서 가정도장을 형성했다. 강 도생을 비롯한 가족 모두는 늘 청수 모시고 도장 치성에 참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제1의 생활 과제로 되어 있다. 또한 가정도장에 MP3를 통해 매일 24시간 끊임없이 태을주가 울려 퍼진다.

강 도생은 증산도 신앙을 하면서 남 속이지 않고 바르게 살 수가 있고 진리 갈급증이 풀리니 세상에 걱정이 없다면서, 가정도장도 그런 차원에서 신앙심을 유지하고 흐트러짐이 없이 늘 정화하고 치유하는 성소이자 가족의 안전을 지켜주는 울타리라고 표현했다.

김 도생은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의 신앙 계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신앙생활이 10년 조금 넘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 처음 시작할 때는 저의 욕심에서 시작했지만 이젠 인류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잘 압니다. 좀 더 적극적인 가족신앙 포교에 힘을 써 모두 상제님 신앙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살려내는 게 저의 꿈입니다.”




가족신앙의 중요성
강 도생과 김 도생의 외아들 강민우 도생은 6살 때부터 도장에 다녔으니 자연스럽게 도장 문화에 익숙하게 되었고 2005년 초등학교 1학년 때 입도를 해서 꾸준히 도장, 증대, 대치성 등에 참여를 하고 있다.


강민우 도생은 “제가 본격적으로 신앙을 하게 된 때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입니다.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면 아버지가 간단하게 진리를 얘기해 수렴해 주셨습니다. 그때는 도장에 인도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실패를 했고 사람을 포교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에도 도장에서 세미나가 있으면 한두 명씩 데리고 갔으며 친구들의 반응은 얼떨떨하면서도 신기하단 눈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진리공부를 조금씩 하게 되었는데, 그때 가족신앙을 하는 것이 행복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자 친구(이은별 도생)가 생기면서 같이 신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에 놀러 왔을 때 아버지가 진리에 대해 얘기해 주시면서 같이 도장에 가게 되었고 진리공부도 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2014년에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다른 친구들도 도장으로 인도해서 진리 공부와 수행을 하고 입도를 시키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또한 수행을 좀 더 꾸준히 해서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현재 고3인데 졸업 후엔 신앙 활동을 더 잘해서 타 신도의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가가도장은 진리에 대한 갈급증과 현실 삶에서의 의미를 찾고 힘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품은 부부의 신앙 스토리를 살펴보았다. 이들은 증산도 진리를 만남으로써 걱정 없이 바르게 산다는 것과 부질없는 욕심에 휩쓸리지 않고 미래를 위해 살 수 있다는 것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는지를 시현해 주었다.

또한 흐트러짐이 없이 신앙심을 유지하고 정화하고 치유하는 성소이자 가족의 안전을 지켜주는 울타리로 가정도장을 표현한 점도 유의해 볼 부분이며, 포교에 대한 의지와 집중력은 간절함과 기도의 원력으로 생겨나는 것임도 확인했다. 특히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가가도장의 생활신앙 모습을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권유하며, 천신단을 통해 진리를 부담 없이 전달한다는 사실에서 가정 도방을 ‘선물’이라 표현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늘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와 더불어 진리 중심으로 삶을 가꾸어 나가고 있는 강윤희, 김정애 도생의 도방에 상제님과 태모님의 큰 진리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한다.



(월간개벽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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