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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세기 문화코드] 14. 가림토와 한글

2017.10.30 | 조회 7449 | 공감 0


14. 가림토와 한글


고대문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조건이 문자의 사용이다.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고대사회에서 일찍이 문자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BCE 2000~1500년경의 도화문자圖畵文字). 동아시아지역에서 문자가 창제되기 전에는 주로 결승문자結繩文字(노끈문자)가 사용되고 있었다. 이것은 남미 인디언, 잉카제국에서도 통용되었다.


고조선이 개국되기 훨씬 전인 신시배달 건국 때부터 우리 민족은 이미 문자생활을 영위하였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배달국 환웅천황은 신지神誌(벼슬이름)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神誌文字)을 창제하였다. 


『환단고기』「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기록에 보면 환웅천황께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사슴 발자국 모양)의 글로써 천부경을 기록케 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녹도란 문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단군세기』에서 말하는 진서라는 상형문자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의하면 5세 태우의 환웅천황의 막내아들 태호 복희씨가 녹도문을 개량하여 용서龍書를 만들고 이것을 주양朱襄씨가 육서六書로 남겼다[朱壤仍舊文字而始傳六書]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삼황오제시대의 상고금문上古金文이다. 


최근 중국 곳곳에서 은나라 갑골문 이전의 문자들이 발굴되고 있는데 이것을 집중 연구한 중국학자 낙빈기駱賓基는 자신의 저서 "금문신고金文新攷"에서 상고금문이 한민족의 언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실을 밝혀내고 그 문자들을 만들어 사용한 주체가 한족漢族이 아니라 동방 조선족이라고 단언하고 있다.(김대성 엮음, "금문의 비밀" 참고) 상고금문은 은殷나라의 갑골문甲骨文, 주周나라의 대전大篆, 진秦나라의 소전小篆을 거쳐 한漢나라 때 한자漢子로 완성되었다. 


배달국에서는 숫자로서 산목算木이 통용되었고, 14세 자오지 환웅천황 때는 화서花書(전목佃目)가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배달국 시대의 문자인 산목과 화서(전목)




배달국 신시 때부터 있던 문자를 가륵 단군 때 수정·보완하여 만든 것이 가림토 문자이다. 


『단군세기』 3세 가륵嘉勒 단군 조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가륵 단군 2년(BCE 2181)에 “당시 풍속이 하나같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백리되는 땅에서도 통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이에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字를 만들게 하니 이를 가림토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가림토加臨土’ 또는 ‘가림다加臨多’라고 불리는 이 글자의 모습은 세종 때 창제된 한글의 형태와 매우 흡사하다. 특히 모음 11자는 똑같다. 


『세종실록』 25년 12월조에 “이 달에 임금께서 언문 28자를 지으시니 그 글자는 옛 전서를 모방하였다[其字倣古篆]”라고 하였고, 최만리의 상소문에도 “글자의 모습은 옛 전문을 모방했지만 음을 쓰는 것과 글자를 배합한 것은 다 옛것과 반대이다[字形 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라 하여 예전의 전서를 모방했음을 밝히고 있다. 


서토지역과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갑골문 및 주나라의 대전大篆(갑골문을 개량한 주나라 문자) 사용이 빈번해지자 한수漢水사람 왕문王文(BCE 9C)이 부예符隸를 만들고 BCE 865년 천왕에게 건의하여 삼한에 이두법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BCE 8세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이후 한자가 동아시아의 공용문자가 되었고 가림토문과 신지문자는 점차 한자를 보조하는 글로 사용되다가 잊히게 되었다.



(新)영변지의 신지 필적 


한국의 한글학자들은 훈민정음이 독창적이었다는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여, 여기에 나오는 옛 전문을 몽골 파스파 문자[蒙字]나 한자漢子 자체字體의 하나인 전서篆書 또는 범자梵字(산스크리트 문자)를 모방한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훈민정음은 몽골문자나 전서, 범자와 닮은 데가 전혀 없다. 인류문명사에서 한글처럼 고도의 체계를 가진 문자가 어느 날 갑자기 한 인물에 의해서 발명된 사례는 찾을 수 없다. 


한마디로 15세기 중엽에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독창적으로 처음 만들었다는 견해는 역사 발전법칙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억설일 뿐이다. 


한글의 모태인 가림토 문자는 몽골, 만주, 서역 등 당시 단군조선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일본에는 가림토 문자로 된 비석과 문서까지 남아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신대神代문자, 혹은 대마도 아히루 가문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아히루阿比留 문자라 하여 매우 신성시한다. 


가림토 문자가 일본뿐 아니라 중원의 서쪽인 서역에서까지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최만리 등이 올린 상소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최만리가 “오직 몽골, 서하西夏, 여진女眞, 일본, 서번西蕃 등의 무리가 각기 그 문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모두 이적夷狄의 일로 족히 도道라 할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한 것은 당시 여러 지역에서 문자가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문자들의 원형이 바로 가림토였을 것이다. 가림토 문자는 일본은 물론이고 멀리 중원의 서하, 서번 지역까지 전파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인도의 구자라트 지방에도 한글과 비슷한 문자가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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