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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2017.03.18 | 조회 6789 | 공감 1

|박물관에서 본 우리 역사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2016년 한 해에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는 한국적인 모습과 전통문화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싶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봐야 한다. 말 그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12여 개의 국립박물관 중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한민국의 총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여러모로 심각하게 왜곡이 되었다. 


이후 국권을 되찾아 광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의 잔재는 청산되지 못한 채 방기되고 굳어지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계속되어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시 용산구에 자리를 잡은 지는 10년이 지났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비틀어지고 훼손된 한국의 역사가 기정사실처럼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되고 통탄스러운 일로서, 그 진실을 바로잡고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역사의식의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바로 아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인 것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잘못 알려지거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우리 역사를 박물관 유물 등을 중심으로 바르게 이해하여 보자는 차원에서, 올 한 해 동안 ‘박물관으로 보는 우리 역사’의 제하로 시리즈 기사를 마련하였다. 


이번 첫 순서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오래된 유물 유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7천 년 전의 고래잡이


처음 전시실을 들어서면 고래가 새겨진 벽을 마주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고래잡이 암각화이다. 


이는 경상남도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이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고래잡이를 했음을 보여주는 암각화로서 공개되자마자 세계 학계가 주목한 우리의 유산이다. 


이 암각화에는 향유고래, 참고래, 혹등고래 등 큰 고래가 46마리 이상이 그려져 있고 고래잡이를 위한 작살과 부구, 낚싯줄을 사용한 모습 등을 보여 준다. 


그리고 십여 명이 한꺼번에 탈 수 있는 고래잡이 배의 그림도 그려져 있어 고래잡이 등 어업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고래잡이 등이 잘되게 하기 위한 제사를 맡은 샤먼shaman의 그림은 7천 년 전의 삶을 짐작케 한다. 


놀라운 것은 이곳의 암각화가 6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러시아 백해 카렐리아Karelia 공화국의 잘라부르가 암각화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동을 하여서 같은 그림을 그린 것일까? 의문점이 남는다.



8천 년 전 세계 최초의 배


구석기 시대를 지나서 신석기실로 들어가면 세계 최초의 나무배를 볼 수 있다. 


2005년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신석기 유적에서 통나무를 이용해 만든 작은 배를 발견했는데 과학적 연대 측정을 통해 8,000년 전 배로 밝혀졌다. 


이 배는 최대 길이 310㎝, 최대 폭 60㎝, 깊이 약 20㎝ 정도의 규모이며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신석기인들의 어로 활동 등 생활상과, 목선을 만들 정도로 뛰어났던 당시 사람들의 기술력 등을 보여주는 매우 소중한 유물이다. 


오래전 배를 만들었던 한국인은 현재도 배를 만드는 조선술에서 세계 1위를 다투고 있다.



8천 년 전 빗살무늬토기


신석기 시대 유물로 꼭 봐야 할 것이 8천 년 전 빗살무늬토기이다. 빗살무늬 토기는 요서 일대(요서 문명)와 흑룡강 중·하류 지역, 한반도, 일본 등지에서 발굴되는데 이들은 모두 같은 문화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빗살무늬 토기는 중국 중원의 황하 일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북방 계통의 문화이다. 즉 빗살무늬토기가 전파되는 길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CE 6000년 당시부터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요서 지방과 발해만 연안은 중국의 중원과 다른 독자적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8천 년 전 옥 귀걸이(옥결玉玦)


보통 세계사에서 4대 문명을 배운다. 그런데 이 4대 문명보다 오래된 문명이 요서지방에서 발굴되었다. 이를 요하문명遼河文明(홍산문화紅山文化)이라고 한다. 


이 홍산문화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 귀걸이가 내몽골 자치구의 오한기敖漢旗에 위치한 흥륭와興隆窪 문화(BCE 6200~BCE 5200)에서 발굴되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옥 귀걸이가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 동해안 고성高城 문암리文岩里 선사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6천 년경으로 추정되는 흥륭와의 옥 귀걸이,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에 있는 사해문화査海文化(BCE 5600년경)의 옥 귀걸이, 그리고 한반도에 있는 강원도 고성 문암리의 옥 귀걸이가 모양이 모두 같다. 


이것은 그 당시 이 세 지역이 서로 같은 문화권이라는 증거이다.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


선사시대를 지나면 이제 고조선실古朝鮮室로 들어서게 된다. 


이곳은 4300여 년 전부터 약 2000년간의 한국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 전시실이 생긴 지는 아직 10년도 되지 않았다. 


2007년 국사교과서의 고조선 부분이 개편되고 중국의 동북공정이 알려지고 나서야 2009년 여론에 밀려서 고조선실이 개설되었다. 


이 고조선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검劍이 있다. 


몸체가 비파라는 악기를 닮았다고 해서 ‘비파형 동검’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그래서 이를 ‘고조선식 동검’ 또는 ‘조선검’이라고도 부른다.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이 중국과 구별되는 선진 청동문화를 가진 정치세력 집단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비파형 동검의 분포는 만주, 한반도, 중국대륙의 동편으로 거대한 강역을 형성하고 있다.


고인돌의 나라 대한민국


고인돌은 인류가 농경문화를 시작한 이래 남긴 거석문화巨石文化 유산으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확인된 고인돌 수는 약 5만 5000여 기基에 이른다. 


전북 고창 고인돌


그 중 대략 3만기 정도가 한반도에서 발견됐다고 하는데, 한반도에서 발견된 수가 늘어나 대략 4만 5000에서 5만 기 정도가 된다고 한다. 결국 전 세계에서 발견된 숫자보다 두 배 이상의 고인돌이 한반도에서 발견됐다는 결론이다.


5천 년 전의 벼농사


경기도 고양高陽의 가와지 볍씨는 1991년 고양시 가와지 마을에서 발굴된 볍씨로 미국 베타연구소에서 5천 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동안 일본으로부터 쌀이 전래되었다는 학설을 뒤집고,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전래되었을 것임을 밝혀 주었다. 


한반도의 벼농사는 약 5천 년 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어 왔다.



고조선의 청동거울


청동거울은 비파형 동검과 함께 전국의 박물관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전시되어 있다. 보통 청동거울은 고조선 시대와 삼국 시대에도 계속 만들어 썼다. 일본에 위치한 ‘거울박물관’에서는 거울의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한다. 


“거울에 영상이 비치는(실제로는 반사하는) 현상은 지극히 신비적인 현상으로 파악되었다. 그 때문에 단순한 화장의 용구로서보다 먼저 제사의 도구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로 살펴볼진대 거울을 단순히 사물만 비춰 보는 미러mirror 정도로만 받아들이기엔 석연치 않다. 


신기하게도 러시아 바이칼호 지역에 거주하는 브리야트족의 샤먼shaman이나 몽골의 샤먼 등은 모두 가슴에 이 거울을 달고서 의식을 행한다.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샤먼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거울의 신성함이 느껴진다. 


거울의 형태가 원형인 것은 하늘 또는 태양을 상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농경문 청동기農耕文靑銅器와 솟대


고조선실에 가면 중앙에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라 하여 농사를 짓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 청동기 유물이 하나 있다. 고조선 시대 농사를 짓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유물이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아야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앞면에는 기구를 가지고 밭을 갈고 수확한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뒷면에는 나뭇가지 끝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솟대다. 



고조선에는 신성한 공간이 있었는데 이것을 ‘소도蘇塗’라 한다.


이 소도라는 공간을 알리는 것이 바로 솟대(입목立木)이다. 소도 앞에 세운 높다란 기둥이 솟대인데, 이 솟대는 ‘신을 모시는 기둥’이라고도 한다. 솟대 끝에는 대개 새가 조각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새를 신성시하여 토템으로 삼기도 하였다. 새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늘의 뜻을 전하는 신령한 존재로 숭배되었다. 솟대가 있는 곳은 신성한 공간이다. 


솟대 문화는 동남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저 멀리 바이칼, 러시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 금관金冠의 나라


한국의 의복 문화에서 금관金冠, 즉 금으로 만든 관모冠帽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은 금관의 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금관이 한국에서 집중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고대 금관은 모두 12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7점은 신라 금관이고 2점은 가야 금관이며, 나머지 3점만 외국 금관이다. 


신라와 가야 금관을 제외하면 세계 금관은 거의 없는 것이나 같다. 




이처럼 세계 금관의 대부분이 경주를 중심으로 한반도에 분포되어 있으므로 한국을 금관 왕국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금관이 얼마나 더 묻혀 있는지는 모른다. 아직 발굴하지 않은 신라 고분이 거의 100개나 되는데 이 고분들 속에 대부분 금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는 3층에 신라 금관이 하나 있고 1층 신라관에 금관이 하나 있다. 나머지는 경주 국립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할 때 백제관, 고구려관, 가야관, 신라관 등 각 전시실의 금관이나 금동관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관람의 방법이 될 것이다. 

이상 박물관 이야기 첫 번째 순서로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 유산의 일부를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유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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