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진리(포스트)

원한에 대한 고통의 실상을 보여주는 아미스타드 영화

진리가이드 | 2009.11.10 10:26 | 조회 3108

모든 생명의 본성은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영원히 살고자 하는 것이다. 당장 죽고 싶다고 하는 이들도, 폭탄이 떨어진다고 할 때, 가만히 앉아 참혹한 죽음을 기꺼이 맞겠노라고 만용을 부리는 자는 없다. “어이쿠” 하면서 순간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친다.

인간 생명의 꿈인 행복과 건강! 그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인간에게는 원과 한이 맺힌다. 특히 외부의 억압이나 폭력, 전쟁과 같은 극히 강력한 파괴적인 수단에 의해 생명을 그르치게 되면, 인간은 원통함을 느낀다. 


원寃은 남에게 일방적으로 당해서 가슴 아픈 걸 말한다. 또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가슴에 깊이 맺힐 때, 한이 남았다고 한다. 

한은 ‘맺힐 한’ 자다. 내 가슴에 내 마음에 깊이 맺힌 덩어리, 병증病症이다.

원통한 것은 개별적이고 개인의 삶과 역사 환경에 따라 자연 환경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한이라는 건 보편적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맺힌 게 있다.

지금 이 원과 한의 문제를 놓고, “아, 나는 좋은 집에 태어나 배부르게 잘 먹으며 즐겁게 살고 있으니까, 또 사업하는 것 잘 돌아가니까, 그런 건 내가 알 바 아니다. 원과 한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지, 원과 한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나!” 이렇게 얘기하고 넘어갈 게 아니다.

민족이나 국가, 동양·서양을 떠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정말로 잊혀질 수 없고 용서될 수 없는, 충격적인 원한을 깊이 맺고 **간 비극의 주인공들, 그 고통의 실상을 한번 들여다보자.
 
지난 4백 년 동안 유럽에서 노동력 차출이라는 미명으로,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다 노예로 만들고 잡아죽인 숫자가 6천만이 넘는다.
필버그 감독이 만든 <아미스타드>란 영화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흑인이 백인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흑인을 짐승 잡듯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넘긴다. 그러고 망망대해를 가다가, 그들이 병들거나 노동력을 상실하면 참담하게 죽인다. 

자, 영화를 보면서 그 고통의 순간으로 들어가보자.

 (영화감상)

이 흑인들의 하늘을 찢는 절규! 죽음의 순간에 외치는 처절한 외마디 비명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천지 안을 떠돌고 있다
.
 
이 원과 한도, 고통의 밀도에 따라 용서될 수 있는 게 있는가 하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깊고 깊은 게 있다. 이 원한의 실례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간 인간의 원한의 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증폭된다. 여기에 인간의 증오의 문제가 있다! 

여기에 보복의 문제가 있다! 그것을 한 글자로 척隻이라고 한다, 척! 


증산 상제님이 ‘이 세상을 사는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사람, 잘 사는 사람이 누구냐?’에 대해 말씀해주신 만고의 멋진 명언이 있다.

“상말에 ‘무척 잘산다’ 이르나니 ‘척(隻)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라.”(道典 2:79:1)


“무척 잘산다.”에서 ‘무척’은 ‘대단히’라는 뜻으로 들리지만, 본래 그 속뜻은 ‘남과 척이 없다. 남으로부터 미움 사는 게 없다’는 거다. 그러니 좋게 살아야 된다. 좋게! 덕을 베풀면서! 

그렇지 않고 남 잘 되는 것 못 보고 해코지를 하면, 반드시 그에 대한 악척을 받아 생을 좋게 마감할 수 없다. 


선천 인류역사라는 것은 악척의 역사다. 피의 역사요! 보복의 역사요, 저주의 역사다.
문명사로 보면 전쟁의 역사다!



-종도사님 도훈 중 (2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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