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 문화를 잃어버린 한민족

2010.08.13 | 조회 5408

오늘의 동서양 세계 문화를 열어 준 뿌리문화가 바로 동방 한민족의 상제 문화입니다. 그런데 정작 뿌리 문화의 본적지인 동방 땅에서 상제 문화는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 시대가 지나고 열국列國시대이래 외래 사상과 종교가 한반도에 유입되면서 점차 문화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물론 갖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상제 문화를 지키려는 일부 깨어 있는 학자들의 노력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천거했던 서애 류성룡(1542~1607)입니다.


서애가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서 지은 글을 보면, 천지 만물을 다스리는 상제님을 마음 속 깊이 공경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깊은 밤 어두운 때에는 상제님께서 나에게 임하시고,

모야지암暮夜之暗엔 제기아리帝其我莅하시고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는 신명이 그대를 엿보고 있다.

옥루지유屋漏之幽엔 신기이사神其爾伺니라

… 

아주 삼가고 조심스럽게 상제님의 법칙을 생각하라.

익익긍긍 翼翼兢兢하야 유제지칙 維帝之則이로다

 『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文集』 권18 「명銘」에 수록되어 있는 「독침불괴금명獨寢不愧衾銘」


류성룡의 11세 후손인 류신영(1853~1919)은 고종 황제가 일본 제국에 의해 독살을 당하자 분개하여 고종의 장례일에 자결한 열사입니다. 류신영이 남긴 글을 보면“나는 죽어서 위로 옥황상제님께 아뢰고 아래로는 저승의 관리에게 하소연하여 국맥國脈을 회복하고 우리 동포의 한을 씻길 원한다. 


상제님께 원통함을 호소하여 신병神兵과 귀졸鬼卒을 빌려 원수를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또한 천상 옥경에 계신 상제님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조선 후기에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1762~1836)도 ‘상제 신앙’을 외쳤습니다. 다산은 한때 서양에서 들어 온 천주교를 믿었으나 천주교에서 조상을 우상이라 하여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神主를 불태우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후 다산은 유교의 원형인 원시 유교로 돌아가‘하늘의 주인[天主]’을 모시는 상제 신앙에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주요 경전 속에 드러난 상제 사상을 정리하여 방대한 주석을 내놓았습니다.

 

이렇듯 몇몇 학자들에 의해 맥이 이어져 오던 상제 신앙은 대한제국의 애국가에서 다시 한 번 살아 숨 쉬게 됩니다. 조선 말, 을사조약 폐기를 상소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한 민영환이 생전에 고종 황제의 명에 따라 작사한 애국가를 보면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라 하여, 상제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제 침략기를 거치고 근대에 이르면서 한민족은 상제님을 완전히 망각해 버렸습니다. 현재 한국사람 중에 상제님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상제님이 누구신지 아세요? ‘상제’라는 말을 들어봤어요?”했을 때 과연 몇 명이나 제대로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상제님을 그저 무당들이 믿는 신, 중국 사람들이 섬기는 신 정도로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본래 동방 문화의 주역이요 인류 태고 문화의 창시자였던 한민족이 광활한 대륙에서 좁은 한반도로 밀려 들어와, 시원문화의 주인이신 상제님도 잃어버리고 자기 역사도 송두리째 잃어버린 채 맹인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은 속히 잃어버린 상제 신앙을 회복하고 뿌리 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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