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사 칠성각과 원평장터

진리가이드 | 2009.10.19 18:45 | 조회 8773



계묘(1903)년에 증산 상제님께서 김형렬 성도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도솔천궁에 있다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으로 내려와 모악산 금산사 삼층전에 머물며 경주용담 구경하고 고부 객망리 강씨 문중에 탄생하여 기해년에 포(胞)하고 경자년에 득천문(得天文)하고 신축년에 대원사에서 도통하고 임인년에 너와 상봉하고 계묘년 봄에 동곡에 들었노라.”(道典 6:11:3~5)
 
‘천개어자(天開於子) 지벽어축(地闢於丑) 인기어인(人起於寅) 물생어묘(物生於卯)’하는 천지의 운행원리에 맞추어 하신 말씀으로 보인다. 상제님께서는 신축(辛丑, 1901)년에 전주 모악산 대원사 칠성각에서 대도통을 하시고, 이듬해인 임인(壬寅, 1902)년에 원평 장터에서 김형렬 성도를 만나셨는데, 100여 년 전에 이 땅에 머무시던 상제님의 숨결을 느껴보며 대원사 칠성각과 원평 성지로 떠나본다.
 
 
상제님께서 택하신 암계룡, 모악산
상제님께서 탄강하신 전라도 고부군 객망리에서 동북쪽으로 보면, 정상에 송신탑이 세워진 우뚝한 산이 보인다. 그 산이 바로 모악산(母岳山)이다.
 
상제님께서 “계룡산은 수계룡이요 모악산은 암계룡이라. 나는 암계룡을 택하였노라.” 하셨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 중의 하나는, 모사재천(謀事在天)하는 하늘의 주(主)이신 상제님과 상제님의 일을 매듭짓는 제3변 도운의 인사대권자가 택하실 지리적인 이치와 그 장소를 상징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밭의 이랑이 셀 수 없이 많음을 의미하는 만경(萬頃). 넓디너른 김제 만경 평야를 끌어안고 우뚝 서 있는 해발 794m의 모악산(母嶽山)의 자태를 보노라면 어머니 품에 안긴듯한 푸근한 느낌이 밀려온다.
 
김제 일대에는 김제(金堤)라는 이름부터 시작하여 금구, 금산, 금평, 쇠내(金川) 등 쇠 금(金) 자가 들어간 이름이 유난히 많다. 지명에 이미 후천가을인 금(金) 기운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지명 그대로 김제 일대는 사금(砂金)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상제님 강세와 인연이 있는 진표대성사와 진묵대사가 이곳 김제 만경 출신이라는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미륵부처의 강세를 기원하기 위해 진표대성사가 세운 금산사 미륵전이 모악산 서쪽 기슭에 있으며, 인간으로 강세하신 미륵부처이신 상제님께서 도를 이루실 수 있도록 진묵대사가 지켜낸 청정한 도량의 대원사가 동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진표대성사와 진묵대사가 100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모악산에서 상제님의 강세를 준비한 것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물샐틈없이 보셨지만, 이 이전에도 이미 그 준비가 물샐틈없이 되었음을 생각해본다.
 
대원사가 있는 방향인 정상 동쪽으로 조금 돌아가니 고덕산(古德山), 구이 저수지와 큰불재가 있는 경각산(鯨角山)이 한눈에 펼쳐져 바로 앞에 와 있는 듯하다.
 
 
중통인의(中通人義)의 대도통을 이루신 대원사 칠성각
박금곡 주지가 상제님의 술심부름을 위해 오르내렸을 산길을 따라 대원사(大院寺)에 도착하니, 고즈넉이 울리는 풍경소리와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일행을 맞이한다. 우주의 절대자이신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시어 무상의 대도통을 이루신 대원사 칠성각(七星閣). 옛 칠성각 마루에 앉아 경내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든다.
 
지금으로부터 107년 전, 20세기가 시작되는 첫 해인 신축(1901)년 음력 7월 7일, 상제님께서는 속세를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세상 깊숙한 곳으로 더 깊이 뛰어들어 우주 통치자의 권능을 이 세상 현실 삶 속에 구체적으로 드러내시기 위해, 대도통을 이루셨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이루신 도를 ‘중통인의(中通人義)’라 하신 것이리라.
 
빗방울이 굵어져도 대원사 경내를 통해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상제님께서 도통하신 성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도 그저 무심하게 산에만 오르는 중생들을 바라보니,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진멸지경에 처한 인류를 건져야 한다는 상제님의 절규가 마음 속에 메아리치는 것만 같다.
 
상제님 재세시에 대원사 주지로 있던 박금곡(朴錦谷)은 원래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에 있었는데, 산불로 절이 소실되자 함수산(咸水山)과 함께 삼남 지방을 유력하다가 정해(1887)년에 퇴락한 대원사에 이르러 절을 중수(重修)한다. 칠성각은 금곡이 처음 세웠으며 상제님 재세 시에는 방이 두 칸이었으나 후에 세 칸으로 개축되었다. 이때 서원규 성도가 박금곡 주지와 상의하여 쌀 백 석 거리로 대원사를 개수하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서원규 성도는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을 친견하게 되는 영광을 누린다. 그리고 서원규 성도의 인도로 김병욱, 백남신, 김윤근 등 전주 지역 성도들이 입문하는 계기가 된다.
 
사실 대원사는 태모(太母) 고수부(高首婦)님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고수부님께서는 상제님 어천 후인 신해(1911)년 4월에 이곳 대원사에서 상제님의 성령(聖靈)과 혼례식을 올리신다. 이 때 만고장상(萬古將相)의 이름을 적어 차례로 크게 부르시고, 칠성각에서 49일 동안 진법주 수련을 하신다. 어머니 산인 모악산, 바로 그 아래 대원사에서 온 인류의 어머님임을 천지에 선포하는 예식이 거행된 것이다.
 


본래 대원사는 고구려 보장왕 때 백제에 귀화한 고구려 승인 보덕(普德)의 제자들이 스승이 머물고 있는 고덕산 경복사(景福寺)가 보이는 곳에 창건한 절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경복사는 고구려의 반룡산 연복사(延福寺)에 있던 방장(方丈)을 보덕이 하룻밤 사이에 신통력으로 이곳에 날려보내[飛來方丈] 지은 절이라 한다. 역사적으로 대원사는 고구려의 맥이 백제 땅에 전해져 지금까지 내려왔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임인 상봉의 성지, 원평(院坪) 장터
원평은 대원사의 사전답(寺田畓)이라는 뜻인 대원평(大院坪)에서 유래하였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 때에는 절 아래의 들이 대부분 사전답이었다. 지금은 김제군 금산면이지만 본래 금구군(金溝郡) 수류면(水流面)의 지역으로서 오행이치로 보면 금생수(金生水)하는 상생(相生)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원평의 중심으로서 장터의 기능은 삶의 중심이자,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을 사고 파는 곳이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4·9일에 장이 서는 원평 장터에서 여러 차례 공사를 보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번은 성도들이 ‘다가오는 대개벽기를 당하여 일꾼들이 없으면 어찌하냐’는 걱정에 상제님께서 “원평 장꾼도 없다더냐.”는 말씀과 기유(1909)년 박공우 성도를 불러 “일후에 광제(廣濟)하러 나갈 때에는 용봉기(龍鳳旗)와 장군기(將軍旗)를 원평에 꽂아라. 원평이 이제 장상기지(將相基址)니라.” 하신 말씀과 병오(1906)년에 대개벽기 49일 대공사를 보시면서 49일 동안 만든 짚신을 원평장에 팔게 하신 공사 등을 통해서 볼 때, 이곳 원평은 개벽을 집행할 제3변 도운의 추수일꾼과 관련된 성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평 장꾼처럼 상제님, 태모님의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천지공사 뿌리장사꾼이 되어야 하리라.
 
또한 원평은 남조선배가 일꾼을 태우고 첫 출항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미(1907)년 상제님께서 용암리 물방앗간 앞 주막에서 만난 차경석 성도를 데리고 6월 4일 원평 장터에서 군중을 향해 “이 길은 남조선(南朝鮮) 뱃길이니 짐을 채워야 떠나리라.” 하셨다. 그리고 “대진(大陣)은 하루에 30리씩 간다”는 말씀에, 차경석 성도가 고부 솔안 최씨 재실에 머물고 있는 박공우 성도에게로 상제님을 모신다. 만국대장인 신대장(神大將) 박공우 성도를 만나시기 위해 출발하신 곳 또한 원평 장터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미년에 상제님께서 전쟁 도수를 보시기 위해 구미산(龜尾山)에 오르셨듯이 우리 일행도 유문거리를 돌아 구미산에 올랐다.
 


전주에서 30리 거리인 원평은 과거 100년 전 정읍, 태인에서 전주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길목인 관계로 장꾼들과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던 곳이었다. 또한 금구 주위에 사금광산이 여럿 있었다고 하니 큰 장이 설 수밖에 없는 위치다. 상제님께서 공사 보실 당시처럼 활기찬 장터의 모습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아직도 과거의 원형을 간직하며 시장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 상제님과 김형렬 성도가 만난 장터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도문의 식주인 김형렬 성도와의 만남
상제님께서 대원사에서 성도하신 후, 임인(1902)년 4월 4일 원평 장터에서 김형렬 성도와의 상봉은 그 이전의 만남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상제님 천지공사가 김형렬 성도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됨을 천지에 알리는 의식임을 ‘임인 상봉’이라는 성구로 알 수 있다(道典 3편 8장).
 
도전(道典)을 보면 동학을 신봉하던 김형렬 성도가 상제님을 뵙고 기뻐하는 심정과 당시의 정황을 지금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9년 천지공사의 식주인(食主人)인 김형렬 성도의 심법은 한마디로 ‘시천주(侍天主) 신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자기가 가진 전부를 다 바치는 마음, 살아서 못하면 **서라도 상제님 뒤를 따르겠다고 하는 그 마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상제님을 만나기 전, 그 당시 원평 장터로 향하는 김형렬 성도의 마음은 한없이 처절했으리라.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동학을 쫓다 가운이 기울어 하운동 제비창골에 있는 선산 재실인 영사재(永思齋)로 이사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양식이 떨어져 굶고 있는 처자식을 살리기 위해 돈 한 냥을 빌어 쌀을 팔아야 하는 신세 등을 생각하면서 비감(悲感)한 심정으로 원평 장에 갔으리라 짐작된다.
 
또 김형렬 성도의 부인은 9일 후면 해산을 해야 하는 만삭의 몸이었으며, 이미 자라고 있는 자식들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김형렬 성도는 상제님을 만나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쌀을 팔아서 가족들을 살릴 마음은 간 데 없고, 그 돈 한 냥을 상제님께 노자 하시라고 드린다.
 
상제님께서는 참으로 받기 어려운 돈 한 냥임을 아시지만, **서라도 따르겠다는 마음과 상제님께서 받으시면 자신의 마음이 기쁘고 생기가 나서 당장 열 냥이 생기겠다고 하는 그 마음을 보시고 받으신다. 김형렬 성도는 실제로 그 날 당장 열 배의 복록이 생기는 조화를 체험하게 된다.
 
모든 것을 기꺼이 다 바친 김형렬 성도의 마음과 그 돈을 받아가지고 충청도로 향하시는 상제님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상제님께서는 대두목 도수를 받을 김형렬 성도의 그 마음을 확인하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두 분의 모습이 담겨 있는 원평 장터를 뒤로하면서 김형렬 성도의 이러한 마음과 행동이 지금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시천주 신앙의 표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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