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호연이가 125일 수도공부한 전주 흑석골

진리가이드 | 2009.10.19 18:48 | 조회 8586


 

문경상 _ 증산도 본부


천년 고도 전주(全州)는 옛 후백제의 왕도였고, 조선왕조 5백년의 터를 닦은 곳이기도 하다. 전주와 나주의 첫 자를 따서 전라도라는 이름을 지은 걸 보면 전주는 지금보다 과거에 더욱 번성했던 것 같다. 기름진 호남평야를 토대로 발전해온 전통문화는 여태 흔들림 없이 그 명맥을 유지하며 전주의 자존심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종이에 ‘天下陰陽神(천하음양신) 全州運回(전주운회)’라고 쓰시어 불사르신다. 이는 건지산(乾止山)과 곤지산(坤止山)이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는 전주의 지리를 재료로 음양질서를 바로잡는 공사를 보신 것이다. 전주라는 지명은,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주 옛날부터 완전하다는 뜻의 완산주, 온전하다는 뜻의 온고을로 불리며 만백성이 염원하는 후천 선경세계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주인공, 김호연 성도. 봄이 성큼 다가선 3월 상제님과 호연 성도의 자취를 찾아 전주로 향했다.
 
 
천지사업의 주춧돌, 김호연 성도
상제님은 전주 남문 안에 살고 있는 최상문의 집을 자주 왕래하셨다. 그러던 중 기해(1899)년 그곳에서 상제님과 김호연 성도와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세 살 된 호연이 집 앞 남천교를 건너 상제님이 계시는 최상문의 집에 들어오게 되는데, 상제님께서는 호연을 무릎에 앉히시고 “빨리 커라. 어서 커라. 엿 같으면 늘이자.” 하시며 호연을 유달리 예뻐하시고 귀히 여기셨다. 그 후 신축(1901)년 상제님께서 도통문을 여신 후 다시 최상문의 집을 찾으셨는데, 그때 다섯 살 된 호연을 안고 있는 김택룡에게 상제님께서는 그대의 딸을 천지사업에 바치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김택룡은 흔쾌히 승낙한다.
 
이로써 상제님은 순진무구한 소녀 호연을 새 생명을 개벽하는 선매숭자 도수에 붙여 9년 천지공사에 천지의 제물로 삼으시고, 김형렬 성도와 함께 공사의 증언자로 세우셨다. 천지의 제물로 삼으셨다는 말씀은, 선천 세상의 인간이 병들어 죽는 기운을 다 뿌리뽑아 버리고, 김호연 성도에게 천지의 몸과 같은 법신(法身)으로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살 수 있는 도수를 붙여 천지공사를 집행하셨다는 뜻이다. 남자가 아닌 여자, 그것도 어린이에게 말이다.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 호연 성도는 오랜 세월을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감내해야 했다.
 
 


호연이의 자취가 어린 남천교와 흑석골
우리 일행은 흑석골로 가기 위해 남천교를 건넜다. 조선시대 남천교 위치는 강암서예관에 못 미치는 지점으로 1910년 홍수로 유실된 후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남천교라 이름한 것은 아래로 흐르는 하천의 이름이 남천(南川)이기 때문이다. 전주천이 우회하면서 전주부성의 남쪽을 흐르므로 남천이라고 했다. 이 남천교에는 물을 다스리는 다섯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이는 그 앞의 승암산이 불기운을 머금고 있는 화산(火山)이어서 음양조화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또한 전주부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였다고 전한다.
 
철부지 세 살짜리 꼬마 호연이는 이 남천교를 건너서 상제님을 만난다. 선천 상극세상에서 후천 선경세상으로 인류를 인도하는 발걸음을 하고 있는 어린 호연이. 한평생 고난을 감당해야 할 자신의 운명을 상상이나 했을까?
 
흑석골이라 적힌 녹색 표지판이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표지판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가니 흑석골 경로당이 우리를 맞이하고, 그 옆으로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말없이 서 있다.
 
흑석골은 바위가 반절, 흙이 반절이라 해서 반석리라고도 했는데 이 바위조차 모두 검은 빛을 띄고 있어 흑석골로 불린다. 또 계곡물이 일년 내내 마르지 않아 전주 특산물인 한지를 생산하는 종이공장이 많아 한지골이라고도 불렸다. 느티나무 주변을 위시해서 물길을 따라 한지 생산공장이 많았으나 현재 오폐수 문제로 대부분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화려했던 지난날의 명성은 찾아볼 수 없다.
 


 
엄동설한 움막에서 수도공부한 호연이
호연이 일곱 살 때 호연의 아버지는 빚 보증을 잘못 서서 재판을 받아 집과 재산을 모두 압류 당하고 감옥에 잡혀 들어가 그 안에서 화병으로 죽는다. 그 후 호연의 가족은 끼닛거리도 없을 만큼 빈곤한 처지가 되니, 상제님께서 마흔 냥을 주고 흑석골에 있는 오두막집을 사 주신다. 

상제님께서는 오두막집 앞마당에 움막을 짓게 하시고, 움막 안 동쪽으로 샘을 파게 하시어 호연의 수도공부를 준비하신다. 1905년 9월 9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 125일간, 일체 바깥세상과 접촉을 끊고 공부하는 내내 무릎을 꿇게 하신다. 호연이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투정을 부리면 오히려 더 오그려 놓으시고, 마침내는 종아리살과 허벅지살이 하나로 붙고 발가락이 얼어 오그라져 버리는 지경이 된다. 자신이 왜 그런 고행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어린 호연이는 상제님이 참으로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상제님께 투정부리는 호연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신천지 조화선경을 잉태하기 위한 숭고한 몸부림 끝에 호연이는 선(仙)문명의 큰어머니, 대선모(大仙母)로 거듭나게 된다.
 
상제님은 마침내 호연에게 인간으로서는 가장 밝은 경지의 신안(神眼)을 열어주신다. 그러자 호연이는 새소리는 물론 아기 쥐하고 엄마 쥐하고 얘기하는 것도 다 알아듣고, 천지신명들이 와서 상제님께 절하는 것, 천지신장들이 말 타고 오가는 것, 그 모든 걸 다 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산 속에 선녀가 들어있는 것과 어느 산에는 가야금이 들어있다는 것까지도 알 수 있게 된다. 호연이야말로 밝은 순수감성을 완전히 회복한 진짜 어린이다. 진정한 후천 감성인간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비로소 상제님은 당신님의 신천지 개벽공사의 정신과 실체를 그릇됨 없이, 앞으로 나설 진주(眞主)에게 증거할 산증인을 준비하신 것이다. 바로 호연에게 붙이신 선매숭자 도수다.
 
 
비로소 진주(眞主)를 만나게 된 김호연 성도
선매숭자(仙媒崇子) 도수*는 후천 오만년 조화 선경낙원을 여는 신선(神仙)의 문화, 선(仙)의 새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중매 도수다. 신천지 조화 선문화를 여는 생명의 첫 씨앗이 호연이다. 하지만 그것을 인사로써 성사재인 하는 진리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상제님의 크고 작은 공사의 모든 도수는 그것을 현실역사에 뿌리내리는 진리의 참주인, 즉 진주(眞主)를 전제로 하고 있는 까닭이다.
 
호연이 공부하는 도중 쓰러져 있을 때, 상제님께서 호연의 등을 대나무로 두드리시며 “마차, 마차, 마차!” 하시니, 호연이 깨어나며 “내가 말이간디?” 하며 일어난다(道典 5:110).
 
호연의 수도공부를 들여다보면 인사문제의 비밀이 풀린다. 호연은 마차(馬車)다. 앞으로 개벽세상을 열고 후천 오만 년 조화선경을 열기 위해 달려가는 마차다. 그런데 마차는 말(馬)과 짝이 되어야 한다. 상제님이 타시는 수레인 마차는 반드시 말을 만나야만 음양 짝으로 하나 되어, 그걸 타시고 선천 우주를 문닫고 인류를 살려서 이끌고 후천 우주로 가실 수 있다.  

호연 성도는 한평생 “고목에서 움이 나서 난데없는 도인이 나선다. 그 도인이 너를 만나러 와.”(道典 6:119)라고 하신 상제님 말씀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만고풍상을 겪으시다가, 그렇게 기다리던 도인을 1992년 6월 비로소 만나게 된다. 그 계기는, 김형렬 성도의 손자 김현식 옹의 “전주에 우리 할머니가 살고 계신데 그 분이 상제님을 오랫동안 따라다녀서 많이 알고 있으니 꼭 만나 보라.”는 이 한마디로 인함이다. 이렇게 하여 천지 속에서 근 100년 가까이 숨겨져 있던 선(仙)의 어머니 호연은 마침내 상제님의 장대한 계획 속에서 역사 위에 드러나게 되었다.
 
호연 성도는 그 도인에게 말씀을 증언하고 진리를 전수해 주는 사명을 무사히 마친다. 상제님께서 공사를 그렇게 집행해 놓으신 것이다.
 
당시의 오두막집 자리는 현재 아파트가 들어서서 자취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다행히 샘은 수질이 워낙 좋아 아파트 한쪽으로 관을 대어 끌어쓰고 있다. 아파트를 짓기 전까지 오두막집에 살았다는 한 주민은 “이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가 않고, 약수로 쓰일 정도로 수질이 최고로 좋아서 하루에 두 차례밖에 물을 안 준다”고 자랑했다. 

 
 
49일 동남풍 공사를 보신 만경대
해가 중천에 떠있을 무렵, 일행은 전주 남쪽에 위치한 남고산의 만경대(萬景臺)에 올랐다. 산 정상의 남고산성 안에 남고사(南固寺)가 있고, 능선을 따라 억경대와 만경대, 천경대 등 세 봉우리가 있다. 특히 만경대는 상제님께서 몰려오는 서양 기운을 물리치시기 위해 49일 동남풍 공사를 보신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 남원 황산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개선하던 중 자신의 본향인 전주 오목대에서 종친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면서 취흥에 겨워 장차 새 나라를 세울 야망이 담긴 노래를 부르자, 정몽주가 자리를 박차고 홀로 이곳 만경대에 올라와 북쪽 하늘(송도)을 바라보며 기울어져 가는 고려의 국운을 한탄하는 우국시를 읊기도 했다.
 
만경대에 오르니 전망이 탁 트여 전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꼬리를 물고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들, 셀 수 없이 빼곡이 들어선 아파트엔 하루하루 열심히 살며 내일의 희망을 꿈꾸는 인생들이 가득하다. 과연 그들 중 얼마가 후천선경으로 가는 마차에 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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