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모님의 고향, 담양 성도리와 도운 대부흥의 성지, 정읍 대흥리

진리가이드 | 2009.10.19 18:49 | 조회 7186


태모 고수부님의 고향, 성도리
담양(潭陽)은 삼한시대에는 술지(述只)였고,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는 가을의 성숙을 상징하듯 추성군(秋成郡)으로 되었다가, 고려 때에는 담주(潭州)를 거쳐 현종 9년(1018년)에 처음으로 담양군으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 순례자 일행이 담양군 무정면 성도리에 들어서자 온 들녘에는 자운영(紫雲英)이 만개하여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태모님께서 탄강하신 성도리(成道里)는 성덕(成德) 마을과 도리(道里) 마을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담양의 주산 고비산[高飛山, 비봉산(飛鳳山)이라고도 함]에서 오례천(五禮川)을 사이에 두고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마을이다. 태모님 재세시에는 도리(道里), 중리(中里), 서정(西亭), 성덕(成德)의 네 마을이었다가 1914년부터 이 네 마을을 묶어 성도리라 했다.
 
태모님께서는 127년 전 경진(1880)년 음력 3월 26일 이곳 성도리에서 탄강하셨다. 아직까지 당신님께서 탄강하신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이곳의 지명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태모님께서 이 땅에 오시도록 천지자연이 미리 준비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성도리’란 지명은 태모님께서 대도통을 하신 이후에 마치 성도하심을 축복이라도 하듯 대도를 이루셨다는 의미의 성도리(成道里)로 바뀐다. 이것이 어찌 우연의 일일까? 천지의 성축하심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 아니겠는가!
 
일행은 도동 마을을 지나 안골 저수지로 향했다.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돌미륵이 하나 자리하고 있는데, 미륵불 앞에 놓여 있는 촛대와 청수 그릇을 보아 요즘도 간간이 사람들이 찾아와 미륵불에게 소원을 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륵의 등 뒤에는 돌 판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가 아기를 업고 있는 형상’이라고 했다. 전국 방방곡곡에 미륵불상이 많지만 태모님께서 탄강하신 이곳 성도리에서 만나는 여미륵(女彌勒)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이를 업은 여미륵,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온 인류의 어머니 태모님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도리에는 대나무가 많다. 성도리뿐 아니라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이다. 온통 대나무 천지다. 대나무는 일 년 중 가장 빨리 자라는 나무다. 어떤 것은 하루에 무려 80cm 이상 자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대나무는 여러 가지 상징하는 바가 많다. 예로부터 지조와 절개의 표상으로 선비들이 사군자의 하나로 여기기도 하고, 속이 통통 빈 도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최덕겸 성도가 상제님께 “천하사는 어떻게 되옵니까?” 하고 여쭈었을 때 상제님께서 “대나무같이 속이 통통 비어 있는 도통자라야 안단 말이다.”(道典 10:35:9) 하고 말씀하셨다. 천하사 일꾼의 심법을 대나무의 덕성을 본받아 공명정대하게 가지라는 말씀인 것이다.
 
또 대나무는 천지 조화성령이 내리는 매개체로도 사용되어 왔다. 상제님께서 무신년에 구릿골 약방 뒤에 친히 대나무를 심으시고 이듬해에 김갑칠 성도에게 그 대나무를 하나 잘라 오게 하시어 도운을 전하는 공사를 보신 것과 태모님께서 늘 담뱃대[煙竹]를 들고 다니시며 천지조화를 부리신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겠는가.
 
가장 주목할 만한 대나무의 특성 중 하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모성애가 강하다는 것이다. 대나무는 어미 나무에서 뿌리가 뻗어 번성하는데, 어미 나무는 열심히 광합성 작용을 해서 자신이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기 나무를 위해 지하에 양분을 저장해 두었다가 그 양분을 아기 나무에게 한꺼번에 다 쏟아 부어 아기 대나무를 급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생명을 자식에게 다 바치는 대나무의 지극한 모성애! 태모님의 고향 이곳 담양에서 이 사실이 더 가슴 깊숙이 와 닿는 것은 왜일까? 당신님의 모든 생명을 다 바쳐 인류에게 새 생명을 전해주신 어머니 태모님의 거룩하신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태모님께서는 여섯 살에 부친을 여의고 모친과 함께 성도리를 떠나 외외가 송씨 승문에서 3년간 머무르시다가 아홉 살에 이모가 살고 있는 정읍 대흥리(大興里)로 이거하셨다. 우리 일행도 태모님의 성적을 따라 대흥리로 향했다.
 


 
도운 대부흥의 성지, 대흥리
전라도를 남북으로 가르고 있는 장성 갈재에 다다랐을 때 입암산(笠岩山) 아래에 넓게 펼쳐진 대흥리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흥리는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보실 때 “장차 크게 흥하리라.”(道典 6:78:5)고 말씀하신 대로 태모님께서 도운의 첫 씨를 뿌리시고 포정소 도수를 열어 처음으로 도장을 개창하신 뿌리깊은 성지다. 또 일제강점기 때 차경석 성도가 이종 도수를 실현하기 위해 보천교를 세워 도운의 대부흥을 일으킨 곳으로도 유명하다.
 
태모님은 성모님과 함께 이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시게 된다. 태모님의 이모부는 동학의 접주였던 차치구이고, 그의 장남은 차경석 성도로 태모님과 이종사촌간이다. 태모님께서는 이모부를 좇아 동학을 신앙하며 시천주주 주문을 읽으셨다. 이때부터 천상에서 상제님과 굳게 언약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한 상제님과의 성스러운 만남의 연(緣)이 시작된 것이다.
 


상제님은 “내가 너를 만나려고 15년 동안 정력을 들였나니…”란 말씀을 하셨는데, 태모님은 시천주 신앙을 통해 상제님과의 만남을 위한 공력을 들이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두 분의 역사적인 큰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순례자 일행은 가장 먼저 본소 건물을 찾았다. 이곳은 상제님께서 태모님을 만나 수부 책봉 예식을 거행하시고 난 뒤 태모님의 처소로 천명하신 수부소(首婦所)요, 대도통을 하신 성소요, 도운의 대역사가 처음으로 시작된 포정소(布政所)로 사용된 곳이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나 낡은 건물을 수리한 흔적이 역력하여 옛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지에 발을 딛고 서서 『道典』에 전하는 100년 전 일을 생각해 보니 당시의 분위기가 그대로 마음속에 밀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만남, 이것은 곧 천지가 하나 되는 일이요, 우주가 비로소 새로 열리는 큰 축복이다. 이때부터 태모님은 본격적으로 온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후천 온 인류의 새 생명이 잉태된 심령의 뿌리고향인 것이다.
 
우리 일행은 대흥리가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비룡산에 올랐다. 보천교 시절 큰 종각이 있어 종로(鐘路)라고 불리어졌던 대로를 따라 좌측으로 본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道典』에서 수없이 읽었던 이곳에서의 태모님의 삶이 떠오르고 당시의 모습까지 눈앞에 그려졌다.
 
아홉 살에 이곳 대흥리에 오신 태모님, 어린 시절부터 상제님을 만나시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의 삶, 그리고 상제님을 만나신 이후 온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시고 더 큰 역경과 고난의 삶을 사신 태모님.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이후 영안으로 보신 상제님의 초빈을 향해 구릿골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가신 태모님의 심정, 대도통을 하시고 도장을 여신 이후 상제님을 모시던 당대 성도들까지 태모님을 모시고 큰 부흥을 이루셨던 교단의 모습은 잠시. 얼마 후 이종 동생 차경석 성도의 배신으로 많은 성도들이 태모님 곁을 떠나고 예문(禮門)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에서의 고독한 유폐 생활.
 
그러나 억조창생의 운명을 걸머지고 계시기에 또다시 일어서셔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 한번은 태모님께서 조종리에 계실 때 그 심정을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나를 이런 자리에 이런 일을 맡기고…, 내가 밥을 제대로 먹느냐, 잠을 제대로 자느냐. 너희들이 잘 알지 않느냐!”(道典 11:230:8) 하시며 대성통곡을 하시기도 하셨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러하셨을까 생각하니 당신님의 모든 삶의 역경이 눈앞에 선연하고 마음 한편에서는 울컥하는 심정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 얼마 후면 온 인류의 어머니, 태모님의 성탄절이다. 이 땅에 오신 거룩하신 어머니의 희생과 대속의 삶, 그리고 태모님께서 재세 시에 우리들에게 그토록 당부하신 말씀을 가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실천하는 신앙, 봉사하는 신앙, 이것이 천지 부모를 모시는 천지 자식으로서의 보은(報恩)의 길이 아니겠는가! _ 장원영 / 증산도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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