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동생을 통해 더욱 깊이 깨달은 상제님 진리

초립쓴30대 | 2010.03.27 13:32 | 조회 3773

유OO 도생님(53세)/ 인천 송림도장 
 
 
동생의 암투병 중 만난 증산도
제가 처음에 증산도를 만나게 된 2003년 3월입니다. 당시 제 여동생이 암이 재발되어 방법을 찾다가 무속인을 찾아갔습니다. 가서 물어보니 하는 말이, 동생이 신내림을 받아야 그 병이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아파서 언니인 제가 무속의 길로 가야 동생의 병이 고쳐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서울에서 인천으로 와서 무속에 몸을 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동생이 다니는 병원에서 더 이상 동생의 암을 치료하지 못한다고 하여 생식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곳 생식원 원장님의 사모님이 바로 저와 증산도의 인연을 맺어준 인천 구월도장의 유영주 성도님이었습니다. 거기서 동생은 생식과 침으로 90% 병이 완쾌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생식원을 같이 다녔습니다. 그 후 유영주 성도님이 동생을 당시 인천 십정도장으로 두 번 정도 인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 후로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유영주 성도님이 제게도 『월간개벽』을 보여줬는데 그중 삼신신앙에 대한 기사를 보고 ‘아 우리 할머님이 하시던 그 신앙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망하던 동생
병의 차도를 많이 본 동생은 그 후 생식원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아프게 된 동생은 생식원은 물론 도장에도 갈 수가 없었고 저 또한 동생 병간호 하느라 생식원에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저는 더 이상 무속의 일이 저한테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무속 일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의 병은 더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결국은 병을 이기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먼저 저 세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죽은 지 한달 정도 뒤에 유영주 성도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유영주 성도님 꿈에 죽은 동생이 나타났는데 그 동생이 유영주 성도님에게 따라오라고 해서 무심코 따라가다가 문득 ‘아, 이 사람은 죽은 사람이지’라는 것을 깨닫고 잘 가라고 하며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근데 그때 꿈에서 되돌아가는 제 동생의 눈빛이 너무 애절하게 느껴져 저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소릴 듣는 순간 뭔가 마음에 와 닿는 게 있어 같이 도장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 집 가까이에 있는 인천 송림도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도장 4층 성전에 들어서는 순간, 저는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찾던 게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장에서 사배심고를 처음으로 드리는데 아직 저에게 무속의 기운이 있어서인지 그때 죽은 동생이 제 몸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유영주 성도님에게 원망하는 투로 “진작에 나를 좀 도장으로 인도해서 살려주지 왜 안 해줬나?”라고 저의 입을 빌려서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하고 성전에서 유영주 성도님과 저와 죽은 동생, 우리 셋이서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저는 상제님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고, 저의 조상님들이 저를 증산도 도장으로 인도하시려고 이런 일이 저에게 일어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때 저는 조상님들의 음덕이 크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태을주를 읽자 복통이 사라짐
그 후 2주 동안 송림도장에서 100배례와 정성수행을 시작했습니다. 배례를 할 때 증산도 도문에 들어오기 전부터 저를 지켜주던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때때로 저의 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한숨을 쉬셨습니다. 할머님은 살아계실 때 평소에 한숨을 많이 쉬셨습니다.
 
수행을 끝내고 사무실에서 포정님과 도담을 나누는데 배례를 하면서 왜 한숨을 쉬냐고 물으시기에 할머님이 저의 몸에 들어와 할머님이 한숨을 쉬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포정님께서는 할머님이 보호신명으로 계시니 태을주 잘 읽고 잘 모시라고 하였습니다. 때가 되면 천도식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정성수행이 끝나는 날 수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버스 안에서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집에 오는 도중 너무 아파서 길에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그때 ‘아, 이러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태을주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태을주를 읽으면서 겨우겨우 집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집에 와서도 배가 계속 아팠습니다. 태을주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청수를 모시고 태을주를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태을주 소리도 제대로 안 나왔지만 그래도 계속 읽었습니다.
 
그리고 한 5분쯤 지나서 어릴 적에 배가 아플 때면 할머니께서 ‘할머니 손은 약손’하시면서 문질러 주시던 일이 생각이 나서 태을주를 읽으면서 손으로 배를 막 주무르고 문지르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3∼4분 지나자 배가 씻은 듯이 나아버렸습니다. 이날 저는 태을주의 놀라운 힘을 다시 한번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자식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죽은 동생
입문 전에 유영주 성도님과 도기 133년 6월 증산도 대학교 교육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모든 교육을 마친 후 밤에 유영주 성도님과 교육관 3층 성전에서 같이 수행을 하였습니다. 


사배심고를 드리고 앉아있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찬바람이 싹 불면서 ‘왜 이제야 왔냐, 너를 500년 동안 기다렸다!’는 말이 마음속에서 들려왔습니다. 


유영주 성도님도 같이 찬바람을 느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살아있는 경험들로 확신에 확신을 갖고 증대교육을 다 마치고 인천에 돌아와서 도기 133년 6월에 입문을 하고 7월에 입도식을 올렸습니다. ‘이것이 참 진리다.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개벽기에 사람을 많이 살려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신앙반대와 밑바닥까지 가는 경제적 압박으로 잠깐 신앙에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11월쯤에 집에서 봉청수를 하고 수행을 하고 있는데 죽은 여동생이 몸에 들어와서 “우리 얘들 좀 살려 달라” 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심정적으로 조금 힘들던 때라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개벽은 언제 되냐?” 고 물었고 죽은 동생은 “때는 가까이 왔는데 천기누설이 되어서 말은 해줄 수 없다”고 답하면서 다시금 자신의 자식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죽은 여동생의 아들딸인 김춘경, 김진경을 포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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