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것을 개벽시킨 진리서적

초립쓴30대 | 2009.10.18 15:36 | 조회 1415


강인찬(44세)/ 원주 명륜도장/ 도기 131년 12월25일 입도

 
 인생의 목적을 깨닫게 해준 은혜
 임오년은 제겐 너무나 소중한 해였습니다. 온 우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해였습니다. 상제님께서 가르쳐주신 진리를, 그리고 천지보다도 더 크다는 제 마음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절실하게 깨달은 해였습니다.
 
 저의 깨달음 뒤엔 언제나 저를 기다리며 간절히 바라보고 계셨던, 천지부모이신 상제님 태모님이 계셨습니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전부를 다 바쳐오신 태사부님 사부님이 계셨습니다. 증산도 대학교 교육 때마다 태사부님의 처절하고 애절한 외침이 저를 울렸고, 멋진 언어로 표현된 사부님의 책들은 제가 이미 알고 있었던 모든 지식을 송두리째 날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먼저 상제님을 만나 젊음을 다바쳐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오직 진리만을 수호해오신 여러분이 계셨습니다. 여러분께서 모든 것을 다바쳐 진리를 수호하고 있을 때, 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끄럽고 아무것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허나 지금 저는 알고 있습니다. 천하사 신앙을 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기쁘고 보람된 일은 참사람을 만나는 데 있다는 것을. 도장에 누가 찾아오기만 해도 그냥 반갑고 좋기만 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비록 뒤늦게 왔으나, 진적으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바쳐 제게 허락해주신 기회에 반드시 보답하는 참일꾼이 되겠습니다.
 
 
 상제님의 존재를 깨닫고 기적이 시작되다
 상제님 진리를 처츰 접한 것은 함께 근무하고 있는 김상규 성도를 통해서입니다. 처음에 제 관심을 끌었던 것은 〈월간 개벽〉이었습니다. 2001년 11월호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두달이 지난 후 1월호는 언제 나오냐고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몇번 도장에 가보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미루다가 마침내 도장에 첫걸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오년 1월 28일이었지요. 그날 마침, 오전에 저도 모르게 발길에 이끌려 근교에 있는 조부모님과 선친의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아마 조상님들께서 저를 불러 기운을 주셨나 봅니다. 오후에 김상규 성도가 도장에 한번 가보자고 말하길래, 선뜻 그러자고 응했습니다.
 
 도장 분위기는 그냥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도장 책임자이신 최승철 포정님으로부터 여러 말씀을 들었는데, 제 뇌리를 가장 깊숙히 스쳤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천지만물이 시어일심하고 종어일심이니라. 천지만물이 일심에서 비롯하고 일심에서 마치노라. 일심이 없으면 우주도 없느니라”(道典 8:33:1∼2)하는 상제님 말씀이었지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 머리는 마치 커다란 망치에 맞은 듯 멍해지면서 가슴은 뻥! 뚫린 듯했습니다. ‘그렇지,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강력하게 밀려 왔습니다.
 
 그날 『도전』을 구입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새벽, 도전을 넘기며 읽다가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상제님이 정말 계신 거구나’‘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 분의 위격은 정말 우주의 주재자일 수밖에 없다’하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날부터 저와 증산도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튿날 시내 서점에 가서 『우주변화의 원리』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두 번째로 도장을 방문했는데, 수요치성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나본 성도님들은 한결같이 친숙하고 다정한 분들이었습니다. 치성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제게는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두시가 되면, 저절로 잠에서 깨어나 우주변화원리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침까지 약 100쪽 정도를 보았을까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야! 이런 것이 있구나. 이런 것도 모르고 나는 이제까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지금까지 제가 배워왔던 것, 알고 있었던 모든 지식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체질에 관한 부분을 볼 때는 또다른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부분을 깊숙히 연구해보면 지금의 한의학 수준은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어떤 병이라도 근본적으로 접근해서 고칠 수 있겠구나 하는 어렴풋한 생각과 함께 무한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우주변화의 원리』 책은 거기에서 잠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우선 급한 것은 사람들에게 증산도를 알릴 수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은 너무 좋은 것을 따로 감추어둔 것처럼 뿌듯한 기분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진리와 함께 실천하는 삶을 가르쳐준 『도전』
 그날부터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저녁 도장에 나갔습니다.
 
 매일 밤 수행하고 교육받고 12시가 다되어 집으로 돌아오지만, 어김없이 두시가 되면 깨었습니다. 어느 선영신이 이토록 강력하게 기운을 주시는지…. 집에서 기르고 있는 강아지가 허공을 향해 짖어대곤 했습니다.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는 아내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겪은 일과 증산도를 알아야 한다는 등 며칠간이나 새벽녘까지 얘기해 보았지만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아마도 마음이 앞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나 봅니다. 상제님의 말이 아니라 엉뚱한 소리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큰 실수였죠. 아직도 아내를 도문에 인도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매일 잠도 거의 안 자고 책만 보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만 하는 저를 본 아내가 놀라고 걱정스러웠는지 어머님께 말씀 드렸고, 결국 가족들이 도장으로 찾아왔습니다. 포정님과 함께 열심히 설명해 보았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들만 가지고 돌아갔지만 오히려 제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그날 밤 지난번 잘 이해하지 못해 덮어 두었던 『우주변화의 원리』 책을 다시 펴보았습니다. 상극과 상생의 원리가 현실로서 술술 이해가 됐습니다.
 
 『도전』을 읽으면 거부할 수 있는 상제님 말씀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사실 그대로이며, 또 앞으로 올 일들도 상제님 천지공사 그대로만 되어간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누구를 만나도 그렇게 자신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도전』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것뿐이었습니다.
 
 
 초발심의 순정에 푹 빠져 살다
 마침내 2월 6일 입도식을 올렸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덕분에 한 명을 도장에 인도하였고, 그분은 21일 정성공부 끝에 입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녁에 도장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그 분의 아내가 찾아와 한바탕 난리를 쳤습니다. 느닷없이 방으로 들어오더니 여러 사람 앞에서 남편의 뺨을 때리는 등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아내되는 사람은 신학대학교 출신이었습니다. 그후 그 분은 도장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부님 말씀대로 사상신앙이 되지 않으면, 상제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또한 기존 종교가 가지고 있는 말할 수 없는 편견과 모순을 보았습니다. 올해 유일하게 입도시킨 한명이 관리신도로 전락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후 강연회에 4명 인도하고 도장에도 3명 인도하였지만, 아직 입도로 연결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허나 항상 진리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 포교할 때 겪었던 일입니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만나던 포교대상자가 있었습니다. 헌데 2주간 못 보았습니다. 내일쯤은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나다 다를까 그 다음날 출근길에서 마주쳤습니다. 어제밤 꿈에서 저를 만났다고 하더군요. 우리 일은 정말 정성과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된다고 생각합니다.
 
 입도하고 처음 두달 가량은, 오직 증산도 관련 책만 보고 사람들에게 어설프게나마 진리를 전하는 일이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TV나 신문도 전혀 안 보았습니다. 회사 업무일 이외의 시간에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중요한 것은 조그만 손수첩에 적어놓고 밥 먹을 때나 길을 걸어갈 때나 읽고 또 읽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내려주신 생활개혁 10대지침을 보고, 술도 먹으면 안 되는가보다 하고 술도 끊었습니다. 물론 담배도 끊었습니다. 천도식때 권하는 술 한잔도 안 받았으니 제가 생각해도 참 멍청했습니다. 물론 그 후론 신문과 TV뉴스 및 중요한 프로는 보고 있으며, 술도 한잔 정도는 합니다.
 
 사실 저는 입도 전에 술, 담배는 물론 세상잡기는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해왔던 아주 나쁜 놈이었거든요.
 
 
 새벽수행으로 개벽된 나의 모든 것
 제가 도장에서 새벽수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2월 22일입니다. 그 전날 수호사님으로부터 춘천에서는 새벽수행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 나도 해야겠구나’하고 생각하고는 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우리 일은 누가 먼저 실천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관건입니다. 또한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하고, 내가 먼저 변해야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날부터 시작해서 저는 지금까지도 계속 새벽수행을 해오고 있습니다. 한동안 혼자서 수행할 땐 외롭고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여러 명이 함께 동참하고 있습니다. 역시 우리는 뭘 해도 함께해야 큰 기운을 받습니다.
 
 어느 순간부턴가 식생활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날깻잎도 먹지 않았었습니다. 그맛이 정말 이상했거든요. 하지만 ‘이건 이상한 게 아니다.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으면 맛있는 거다’하고 마음먹고 난 후부터는 식생활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못 먹는 것이 없어졌고, 육류 위주의 식사가 채식 위주로 바뀐 것이지요. 역시 마음먹으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수행하다가 얼굴이 가려울 때도 마음 속으로 가려운 느낌을 잊어버리자 하고나면 금새 괜찮아졌습니다. 몸이 어딘가 아플 때 그것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요 생각입니다. 마음이 몸에 끌려가면 더욱 아프게 되고, 마음이 몸을 끌고가면 아픈 것이 금새 나아집니다. 그후로는 감기 한번 안 걸리는 튼튼한 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태모님의 말씀, “생문방부터 알아두라. 사문은 입구멍이요 생문은 똥구멍이니라. 오장육부 통제공부니라. 제몸 하나 새롭게 할 줄 알아야 하느니라”를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련없이 많이 먹던 식사량도 줄였고 또한 매일 백배례를 계속하였습니다.
 3개월 정도 지난 후 제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85㎏의 전형적인 비만 체중이 73㎏까지 줄어들었으며, 모든 병이 씻은 듯이 없어졌습니다. 40대 중반쯤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간지방, 콜레스테롤 등 성인병 증세는 물론, 허리통증 및 두통 등 일상적인 통증조차 깨끗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태을주 수행을 지속한 지 두달 정도 되었을 때, 오른쪽 간 있는 곳에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생기는 것을 서너번 느낀 적이 있습니다. 또 수행을 통해 허리자세가 반듯이 펴진 후로 모든 통증이 없어진 게 확실했습니다.
 
 「단군세기 서」에 나오는 말을 빌리면, 저는 무형의 정신을 먼저 뜯어고치고서 형체를 개혁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증산도, 걸어다니는 증산도’가 되어
 그렇게 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증산도’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저의 변화와 함께 증산도를 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대도시와는 달리, 원주는 중소도시라서 누가 뭘 하는지 금방 알게 되거든요.
 
 얼마 전, 평소에 알고 지내던 원주 KBS 기자를 만났습니다. 오랜만의 이 우연한 만남에 그 사람은 깜짝 놀라더군요. 첫마디가 뭐였는지 아세요?
 
 “아니, 살이 왜이리 많이 빠졌어요? 얼굴도 아주 좋아지고….”
 
 저는 미처 대답할 새도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시청 과장님이 한마디 하시더군요. “증산도∼!”라고요.
 과장님은 저의 고등학교 선배인데, 사실 저는 그분이 제가 증산도에 다니는 것을 모르는 줄 알았거든요.
 
 그 순간 저는 내심 기뻤습니다. ‘야, 이런 간접포교 방법도 있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러니 몸가짐, 마음가짐을 더욱 바로해서 정말 내가 살아있는 증산도, 걸어 다니는 증산도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주가 고향인 저희 집은 국민학교 때는 꽤 잘살던 편이었으나 중학교때 아버님께서 남을 돕다가 전재산을 날린 뒤로 돈과는 별 인연없이 살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지요.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었으나 대학 때는 학점이 모자라 코스모스 졸업을 할 정도로 공부와 담을 쌓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 후 삼성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조상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그 당시엔 면접때 관상도 봤다는 소문이 있었거든요.
 
 그후 15년간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두 아이의 가장으로 살아오다가, 4년 전부터 직장생활을 접고 의료기기 제조업을 시작했습니다. 의료기기 업종은 처음 3년 정도는 적자운영이기 때문에 집에 월급을 가져다줄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시장에서 옷가게를 한 덕분에,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었죠.
 
 지금은 옷장사를 그만두었습니다만, 한 3년 정도 월급없이 버텨준 아내에게 굉장한 힘을 입었으니, 참으로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고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앞으로 다가올 일을 현재 시점에서 아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우리 일은 아무 조건없이 내가 앞장서서 행동으로 옮길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하루 24시간 상제님 진리의 실천에 머물지 못하면,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살려야 할 사람들은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우리 모두 다 나섭시다. 우리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두 함께할 때 우리 일, 천하사는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것입니다!

twitter facebook kakaotalk kakaostory 네이버 밴드 구글+
공유(greatcorea)
도움말
사이트를 드러내지 않고, 컨텐츠만 SNS에 붙여넣을수 있습니다.
383개(43/55페이지)
입도수기
번호   제목 조회 날짜
89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의 불완전성 사진
문성숙 / 서울 신촌도장    신은 죽었다   ‘신은 죽었다.’ 생의 철학의 기수(旗手)이며,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되는 ...
1328 2009.10.22
88
내 인생의 희망과 빛 증산도
권택호 / 인천 주안도장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큰 이슈가 되어 시끄러웠던 지난 해 8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부당성을 알리고 우리 역사...
978 2009.10.22
87
40년을 끌어온 의문이 일시에 해소되다 사진
이미숙 / 서울 광화문도장    안영배 성도를 처음 본 때는 18년 전이지만, 진정한 그 모습의 그림자라도 본 것은 채 2년이 넘지 않았다는 걸...
1098 2009.10.22
86
증산도 3변도운에 동참하는 3번의 삭발 사진
정회천/강릉 옥천도장/도기 134년 8월 29일 입도   내 이름의 내력  나의 아버지는 목사(目四)다. 눈이 네 개라는 말이다. 육안(肉眼),...
1183 2009.10.21
85
개벽사상은 우리 민족의 엄청난 비전 사진
손종필/서울 동대문도장/도기 134년 7월 31일 입도   ≫≫≫≫≫≫≫ 저는 자주 인터넷을 즐깁니다. 관심분야는 주로 사회경제분야였으며 그에 ...
997 2009.10.21
84
고대사로부터 시작된 나의 열망 사진
“인간이란 동물이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지…”   서지혜/서울 노원도장/도기134년 양력 7월 31일 입도    내가 처음 증산도에 대해...
1039 2009.10.21
83
미국에 사는 시누이가 한국에 와서 전해준 진리 사진
이재항/수원 인계도장/도기134년 양력 8월 29일 입도   제가 증산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교 때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동아리방 옆이 증...
974 2009.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