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이시여 제가 함께 합니다.

초립쓴30대 | 2009.10.18 15:31 | 조회 1365

이윤정 성도(25세)/ 도기131년 10월 16일 입도/
  예비 국제포교사
 
 예민한 감수성과 예술적 성향이 강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

 어린 시절 미국의 한 동물원에서 코끼리 쇼를 먼발치에 앉아 관람한 일이 있었다. 조련사의 채찍과 휘슬에 따라 가까스로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묘기를 부리는 코끼리의 눈에서 뭔가 반짝 하는 걸 보았다. 큰 소리로 웃고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는 많은 관중들 속에서 그것을 본 사람은 나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코끼리의 눈물이었다. 다들 즐거웠지만 난 슬퍼서 눈물이 났다. 코끼리가 말하는 듯했다.
 
 “나..슬퍼..자유를 얻고싶어...내 맘을 아니? 날 좀 구해 줘...”
 코끼리는 애원의 눈빛으로 내 눈을 보는 것 같았다. 가슴이 아파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몰래 눈물을 감추며 생각했다.
 ‘대체 누가 저 코끼리의 한을 알까...? 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데 왜 나에게 말을 하는 걸까?’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술적 성향이 강했던 나는 어릴 적부터 모든 사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나의 물건 하나 하나가 너무도 소중했고, 한번 손길이 닿은 것은 버리지를 못했다. 살아있는 생명을 내다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은 언제나 복잡했고 온갖 갖가지 물건이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부모님의 잔소리가 못에 박힐 정도였다. 이런 예민한 감각으로 인해 나는 많은 영감들을 받으면서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연주하며 소설이나 시 쓰는 것을 즐겼다. 영감을 받는 과정에서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하며 자연스럽게 영혼과 정신세계에 젖어들게 되었다.
 
 
 미래에의 강력한 예감

  ‘반드시 무슨일이 일어나리라 …내 인생은 변하리라’
 나는 모든 것을 먼저 몸으로 느낀 후에야 설명이 가능했다. 내게 떠오르는 수많은 영상과 느낌들을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은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다. 그 대신 그런 것들을 그림이나 음악 혹은 시로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자신 있고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감각과 이미지들이 나를 통해 지나갔는데 유독 한가지 내가 가장 확실하게 느낀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였다.
 
 ‘무엇인가 오고있다...무슨 일이 일어난다...나는 그 무엇을 기다리고 있으며 언젠가 때가 되면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그것은 어떤 거대하고 격동적인 에너지의 폭발이며 동시에 완전한 고요와 평화이다...’
 
 나는 이게 대체 무엇일까 많이 생각해보았다. 때때로 바람이 불 때마다 천지가 요동치는 듯하며 온몸으로 강하게 스며드는 이 기운에 나는 흥분과 기대로 영혼 끝까지 다 녹아버릴 것 같았다.
 
 ‘내 영혼을 크게 깨우쳐 인생을 바꿔 줄 위대한 스승님을 만나게 될까?’
 ‘내 모든 것을 불태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
 
 나는 아직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확신하며 언젠가 때가 되면 내게 드러나리라 믿고 마음속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안고 기대와 떨림으로 기다려왔다.
 
 ‘반드시 무언가가 나타나리라...내 인생은 변하리라...그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난 훨훨 날아오르리라...’
 
 
 청소년 시절 구도에의 강한 열망과 현실과의 타협

 나는 세상일에 도무지 관심이 없었고 언제까지나 혼자 꿈에 젖어 살고 싶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색하는 것과 방에 홀로 처박혀 창작에 몰두하는 것이 내겐 최대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더 절실히 원한 게 있었다면 그건 구도(求道)였다. ‘도를 닦는다’는 말이 참 정겹게 느껴졌다.
 
 어릴 적 언젠가 TV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화두를 드는 스님을 보고서는 ‘참 재미있겠다...나도 저것만 매일 했음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고 도닦을 수 있는 그들의 용기와 처지가 부러웠다. 그리고는 나도 모든 걸 버리고 가방 하나 메고 지팡이 짚고 통곡하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어딘가에 숨어 계실 위대한 스승님을 찾아 훌쩍 떠나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며 도를 구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세상일은 한번 신경을 쓰자면 끝도 없이 정신이 고되었고 인간으로 태어나 세상 속에 뛰어들려면 큰일을 해야한다는 높은 이상과 뭐든 완벽하게 해야만 성에 차는 완벽주의를 나는 갖고 있었다. 그것을 만족시키며 세상 모든 사람들과 경쟁하며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끔찍했다. 그래서 나는 구도자가 아니면 속세를 떠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 예술가가 되려 했다.
 
 그러나 내 바램과는 달리 감상에 젖어 꿈꾸듯 사는 것도 언제까지나 허락되진 않았다. 곧 삶을 엄청난 허무와 고통의 현실로 인식하게 된 때가 온 것이었다. 나는 사회적 성공을 목표로 하는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공부를 요구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나의 정신세계와 추구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과 많이 부딪쳐야 했다. 결국은 나도 남들처럼 세속에 관심을 가져 성공해보자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시켜 새로운 이상을 품고 공부하여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대학시절의 공허감, 무력감, 방황 … 드디어 참 진리를 찾아 나서다

 그러나 역시 세속의 대학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새내기가 되어 이것저것 경험해보느라 신날 법도 한데 난 엄청난 공허함과 무력감에 빠져서 하나도 신이 나지 않았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 더더욱 외로웠고 늘 홀로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 인생에 잠복해있던 수많은 마(魔)들이 하나 둘씩 터져 나오면서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집안문제, 진로문제, 인생문제 등으로 인해 나는 하루도 편히 쉴 날이 없었다.
 
 나의 정신적인 방황은 갈수록 심해졌고 나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극도로 꺼리게 되었고 거의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했다. 나는 끊임없이 나란 존재를 의식하며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오직 괴로움의 근원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영혼과 윤회, 영성개발 등 정신세계에 관한 책은 보이는 대로 사서 읽었고 학교에선 전공은 팽개쳐두고 한문과 동양철학 수업만 골라들으며 진리를 찾았다. 그러면서 의문점들이 많이 풀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커져갔다.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대체 왜 괴로움으로 고통받아야 하는가?’
 
 나는 너무도 슬펐다. 모든 사람들이 다 슬프고 불쌍해 보였으며 세상 모든 것들이 허무했다. 사람들이 크던 작던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한다는 게 사실 당연한 듯하여도 나는 그것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이 고통의 시작은 무엇이며 그 끝은 대체 어디인가? 대체 인간은 언제까지 괴로워해야 하는가? 마치 중생을 구제하고픈 부처라도 된 듯 나는 생각했다.
 
  ‘이유도 모른 채 고통받는 세상 사람들을 괴로움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다면,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감히 가장 먼저 나서서 그 일을 하겠다!’
 
 
 성당과 교회에서는 참하느님을 만날 수 없었다
 나는 내 안에 늘 존재해왔던 나의 하나님 아버지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교회에 가보기도 하고 기독교 동아리에서 성경공부도 수 차례 시도해보았다. 수녀가 되려고 성당에도 나가보았다. 그러나 별다른 마음의 위안을 얻지도 못했고 너무도 따분하고 재미없는 성경공부로 예수를 모르는 나의 영적인 무지(?)를 깨우쳐주려던 그 크리스찬들은 나의 질문에 하나라도 시원스레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꾸 답을 구하려는 나를 오히려 이성과 논리에만 찌들어 영적으로는 무지한 사람 보듯 했고 우매한 신앙만을 부추겼다.
 
 도무지 결론이 나질 않았다. 대체 하나님 아버지가 뭘 어쨌단 말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그들이 말하는 하느님은 내가 알고 있는 나의 하느님이 아니었다.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믿는 그런 이유도 없이 제 기분 내키는 대로 만물을 창조했다 죽였다 하는 존재가 참하느님이라면, 그리고 내가 그를 믿지 않아 나를 지옥에 보내겠다면, 나는 그런 하느님은 필요 없으니 차라리 내가 먼저 지옥에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성경공부를 미련 없이 그만두었다. 그만큼 나는 내가 믿는 하느님에 대해 본능적인 확신이 있었다.
 
 
 힌트를 던져준 대순진리회,
 그러나 그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고
 그러는 와중에 학교 앞 길거리에서 대순진리회 사람을 만났는데 ‘우주의 가을이 온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람의 말에 귀가 솔깃하여 밤 12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그 사람을 붙잡고 더 자세히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다. 내가 그토록 기다리는 그 무언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을 따라 그들의 공부방이란 곳에 가서 처음 들은 이야기는 하느님이 이 한국 땅에 왔다 가셨다는 거였다. 이런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을 왜 나는 여태껏 몰랐단 말인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하느님이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은 충격이었고 개벽이 온다는 것은 희망이었다. 바로 이거였다! 내가 그토록 떨린 가슴을 안고 느껴왔던 격동과 고요의 에너지! 뭔가 모르게 온몸이 두려움으로 전율하면서도 희망으로 기대감을 갖게 했던 그 의문의 기운이 바로 개벽 기운이었다는 것을 난 깨달았다.
 
 그렇게 알게 된 상제님과 개벽이야기를 한달간 들으면서 나는 온갖 질문을 해대며 그곳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나 내가 이치와 마음으로 수긍할 만한 답을 못 얻는 때가 많았다. 나 자신을 억지로 적응시키려고 노력해보아도 그곳은 뭔가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고 결국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자 난 스스로를 믿고 또 한번 미련 없이 내가 갈 곳을 찾아 그 곳을 떠났다.

 뭔가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며 드디어 증산도를 접하게 되다
 그곳을 떠나니 홀가분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어딘가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 있을 텐데 그 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껏 비밀이 조금씩 벗겨져 왔듯이 곧 찾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여러 수련 단체들을 찾아다니며 메일도 보내보고 도통했다는 사람이 쓴 책도 읽어보며 수행할 곳을 찾았다. 그러나 실제로 수행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던 중에 뜻하지 않게 요가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수행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뭔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요가를 배우는 중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가 프리첼 ‘충격대예언’ 광고를 보았다. ‘충격대예언’이란 이름을 보자마자 여기에 뭔가 엄청난 게 있겠구나 하여 가입했고 예언 수행 동양철학 외계문명 등 시대를 앞서가는 주제들은 나를 대번에 사로잡았다.
 
 나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그래서 정기채팅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드디어 참여하게 된 어느 날 증산도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대순에서 들은 이야기 중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들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의통이 무엇인지, 예언가들이 말하는 한국에서 출현할 위대한 지도자가 누구인가 알고 있는지 등... 그리고는 이들은 대순과는 달리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걸 알았다.
 
 
 회의적인 마음 그러나 때맞춰 올라온 적절한 글
 그분들은 나에게 도장 방문을 권유했지만 난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느 곳이든 자기 입장에서 합리화해서 말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어떤 특정 단체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라는 데 실망을 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마스타이신 정한철 성도님의 구도기가 게시판에 올라온 것을 보게 되었다. 성도님이 과거에 어떻게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고 진리를 찾아 방황을 하다가 증산도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 마음이 진솔하게 적혀 있었다. ‘만약 이게 거짓이라면 난 **도 좋다’는 성도님의 글을 읽고 나는 ‘이 사람이 하는 거라면 나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꼭 내가 회의적인 마음을 품고있던 걸 알았다는 듯이 적절한 타임에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내가 머무를 곳을 드디어 찾아내다
 그 뒤로 사부님 강연회에 참가 신청을 했고 다이제스트 개벽을 선물받아 읽으면서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뭔가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는 듯하여 증산도에 가면 그 베일을 한꺼번에 확 벗겨버릴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복마가 발동하여 강연회 날에 참석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날은 내내 강연회에 가지 못한 것이 맘에 걸렸었다. 그러나 그 뒤 대상자 수렴 워크샵에 가자는 권유를 받고 이것마저 놓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들어 무조건 가겠다고 말해놓았다. 그리고 당일 날 나태해진 몸을 억지로 끌고 나가 선형숙 성도님을 만나게 되었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내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상제님 태모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강연회에 참가신청을 할 때부터 이미 입도를 하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고 워크샵에 가면서는 나는 이제 입도하러 간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정한철, 선형숙 두 성도님을 만나 뵙고 이분들과 함께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워크샵에서 우주관 강의를 들으면서 이성과 감성의 갈증이 동시에 해소되는 듯한 기분에 너무도 가슴이 벅찼다. 『도전』을 본 순간에는 ‘저 안에 엄청난 비밀이 다 들어있겠구나 꼭 빌려다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당장 21일 정성공부를 하기로 하여 드디어 나의 증산도 입문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바로 저분이 내가 기도해 온 대지의 어머니 태모님
 그 날 도장에 처음 가서 어진을 보고 상제님은 알겠는데 그 옆의 여자 분이 누굴까 궁금했다. 상제님의 반려자이시라고 하자 ‘아∼상제님도 반려자가 있구나..’하며 참 재밌기도 했고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라 대지의 어머니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확인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제대로 된 곳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계시면 어머니가 계신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여 강직하고 절대적인 느낌의 아버지보다는 좀더 부드럽고 포용적인 어머니의 존재를 떠올리며 나의 영혼의 어머니께 눈물로 기도를 했던 게 생각이 나면서 또 하나의 의문이 풀렸다.
 
 
 그 모든 비밀들을 한방에 날려 버리고 드디어 입도하다
 그리고 정성공부를 하면서 살아오면서 가져왔던 의문들이 하나씩 계속 풀리기 시작하였다. 외교관이신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부터 해외에 많이 돌아다니며 수없이 의문을 품었던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 내가 스스로 신(神)의 글이라 단정지은 위대한 한글, 또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훌륭한 예술작품인 태극기… 대한민국이란 나라와 민족에 대해 생각에 잠길 때면 어떤 묘한 기분에 한없이 빠져드는 걸 느끼면서 여기에 뭔가 비밀이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비밀들을 증산도에서 한방에 날려버린 것이었다.
 
 입도식 날은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올린 후 신촌도장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은 날이라 생각하며 모든 원과 한을 끌러주신 상제님 태모님께 감사드리며 입도식을 가졌다.
 
 
 입도 전후 꾸었던 개벽 꿈들과 체험들
 그 후 꿈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처음으로 뵈었고, 입도를 전후하여 몇 차례 생생한 개벽기의 상황을 꿈에서 보게되었다.
 
 높은 빌딩이 거대한 굉음과 함께 우르르 무너져 내렸고 건너편 고층 아파트에 살고있던 나는 정면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너무도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내가 있던 아파트가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대피를 하느라 난리가 났다. 너무도 두렵고 무서웠고 절박한 상황에서 다행히 우리 가족은 모두 무사히 탈출을 할 수가 있었다.
 
 또 한번의 꿈은 병겁의 상황이었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앞에 가던 사람이 몸이 비틀어지면서 픽하고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옆에 길 가던 사람도 마찬가지로 몸이 비틀어지면서 쓰러졌고 뒤에 오던 사람도 저 앞에서 오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순식간에 픽픽 하고 쓰러졌다. 나는 놀라서 발걸음을 재촉하려는데 내 몸에도 어떤 강력한 기운이 들어와 비틀어지기 시작하면서 통제를 할 수가 없었다.
 
 급한 김에 나는 태을주를 정신없이 외웠다. 그러자 몸이 서서히 풀리면서 자연스러워졌고 나는 이것이 병겁임을 알고 빨리 도장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도장까지 가는 길에 사람들이 놀라서 웅성거리고 시내가 혼란스러워서 잘못하면 도장까지 가는 버스를 타지 못할 지경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도장에 도착했고 가보니 놀란 사람들이 증산도인들의 인도로 도장에 대피해 있었고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을 가르치느라고 도장은 무척 분주했다.
 
 입도 후 포교에 모든 생각을 쏟게 되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는데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꿈에서 한 두건을 쓴 노인이 나타나서 포교방법을 손가락으로 힘을 주어가면서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분 말씀은 무엇보다도 상제님 이야기를 확신있게 전하라는 거였다.
 
 또 수행 도중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인지 태을주 합송 소리에 맞춰 국악 합주소리가 눈을 떠도 감아도 계속해서 들려왔고 거대한 인원의 합창단이 태을주를 합창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상제님이시여, 제가 함께 합니다!”
 이렇게 증산도 신앙인이 된 지 어느덧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나는 결국 내 100%를 쏟아 부을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의 목적지로 향할 마지막 배를 탔고 이제 이 배를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쉬지 않고 노를 저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몇 번이나 결의를 다지며 의욕이 발동했다가 무기력해지기를 반복했다 하며 힘들어했다. 이제 참진리를 만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예전의 절박했던 심정을 까맣게 잊고 바쁘게 돌아가는 조직 속에 묻혀서 나 자신을 잃어버린 걸 알고서는 나 자신과 천하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진정 열매를 맺고 싶어하는가? 후천에 가서 오만년동안 행복한 삶을 얻고 신선이 된들 뭘 하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자 그것마저도 허무하게 느껴져서 밤새 울기도 했다.
 
 나는 스스로의 시간을 충분히 내어 홀로 진리공부와 수행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내 소침했던 의기와 부족했던 의식은 사부님의 이 한마디 말씀으로 완전히 부서지고 새로 깨어났다.
 
 “상제님이시여, 제가 함께 합니다!”
 내 인생 25년 동안 이토록 멋진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고된 일이기에 아무나 나서려 하지 않는 천하사! 이 일을 우리에게 맡겨두시고 상제님은 우리들만 믿고 계시는데 약해질 때마다 떨어져나갈 때마다 가장 애가 타는 것은 바로 우리 상제님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더 이상 상제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가 상제님을 도와드리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후로 나는 기도를 바꾸었다.
 
 “상제님 태모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비록 티끌만큼 작은 것 뿐일지라도 남김없이 바쳐서 상제님 일을 제가 하겠습니다.
 
 이 영혼이 나서 소멸할 때까지 선천 오만년 후천 오만년 동안의 제 직업은 바로 상제님 진리를 증언하는 것이며 물속인들 불속인들 던져질지라도 당당하게 오직 진리만을 생각하고 진리만을 말하고 진리만을 행하며 진리 그 자체가 되겠습니다.
 
 신도 이윤정, 두 날개를 꺾어버리면 두 다리로 헤엄쳐서라도 가고, 두 다리를 부러뜨리면 부리로 노를 저어서라도 철을 따라 가고야마는 철새가 되어 언제까지나 당신의 길을 따르겠습니다.
 상제님이시여, 태모님이시여, 제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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