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도장] 일꾼들이 도장중심으로 활발히 움직인다

초립쓴30대 | 2009.10.14 11:29 | 조회 4585

서울에서 가장 부유한 3대 구(區)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다. 그 중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송파도장은 규모는 작지만 천하사 일꾼들이 늘 도장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1월 중순 방문한 송파도장은 이제 막 『개벽』 책 판매를 나서려는 일꾼들로 분주했다. 성전에 들어서니 몇몇 일꾼들은 태을주를 정성스레 읽고 있었고, 성전 뒤편에는 작은 책상을 펴놓고 성도들이 『도전』 및 진리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것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송파도장의 오전 스케줄이다. 그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면 송파도장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리라. 이제 곧 함께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개벽』책 세일즈 활동에 뛰어든다.
 
 송파도장의 가장 큰 특징은 부부신앙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중심이 되는 성도들은 최용주-서금순 부부성도(이하 존칭생략), 오병옥-최종필, 고승림-박수현, 김구연-이미동, 남우진-고민정, 조영완-장인영, 노영진-황은정, 문유성-김호경, 김영구-이서영, 이상학-함혜란 등이다.
 
 이렇게 튼튼한 부부신앙을 바탕으로 청소년부와 어린이부가 활성화되고 있다. 지난 태전 동지치성 때 도혜영 청포포감이 이끄는 송파도장 청포는 임오년을 결산하는 평가에서 전국 2등 표창을 받았다. 한편 상제님의 집 교육관 건립 성금모금에도 모든 성도들이 빠지지 않고 정성을 모았다. 김구연, 이미동, 황은정, 남우진 성도는 복록소 위원으로 신패를 수여받은 자랑스런 일꾼들이다.
 
 송파도장에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장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대학생 포교부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올 계미년에 몇몇 대학생 성도들은 반드시 대포를 활성화한다는 결의를 다진다.
 
 한편 송파도장은 가까운 시일 안에 도장을 좀더 큰 곳으로 옮길 계획을 하고 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장차 판몰이 도수가 인사화 될 때를 대비하면 도장이 비좁은 것이다.
 
 얼마 전까지 송파도장에서 봉직하던 장성규 부포정은 부수호사로 2단계 승진하여 창원 중앙도장으로 옮겨갔다. 송파도장이 오늘의 활기찬 모습이 된 데에는 장 부수호사의 남다른 도장경영 안목과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2년 전 장 부포정이 송파도장에 왔을 때 도장에 상주 상근하는 일꾼들이 드물었고, 치성 때를 제외한 평일에는 썰렁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장 부포정은 무엇보다도 도장을 자기 삶의 중심으로 삼아 천하사에 일심하는 일꾼들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성도들을 일일이 만나 정신을 깨우고 도장으로 불러들였다. 그 결과 지금 도장에는 8명이 상주하고, 6명이 상근하게 되었다. 이들은 아침에 모여 조례를 한 후 진리공부와 태을주 수행, 그리고 각자의 도무(道務)를 처리한 뒤 오후에 『개벽』책을 손에 들고 개벽문화를 선포하러 나간다.
 
 송파도장의 또 다른 특징은 잘 짜여진 입문교육 시스템의 완비다. 강의 능력이 있는 일꾼들을 각 관법별로 배치하여 치밀하게 준비하여 물샐틈없이 시간표를 짰다(도표참조). 2003 계미년 한해 송파도장의 큰 발전을 기대하며 이곳 성도들의 진솔한 신앙담을 들어본다.

나를 위해서 태을주를 많이 읽어주려므나
 

최용주(56세) / 수석포감 / 도기 116년 12월 13일 입도

 
 “상제님 진리는 태을주에서 시작
 해서 태을주로 매듭짓는다”
  (태사부님 말씀)
 “입도식은 태을주 전수식이다,
 태을주를 읽은 만큼 일이 된다”
  (사부님 말씀)
 
 
 
 상제님을 신앙하신 아버님
 저는 남원 춘향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세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서울에 올라와 객지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끔 절에 찾아가 배례도 많이 했습니다.
 
 원래 아버님께서는 제2변 도운때부터 약 40년 이상 상제님 신앙을 해오셨습니다. 새벽 3시면 일어나시어 샘에 다녀와 청수를 모시고 주문 읽는 생활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하셨습니다. 또 명절이고 생일이면 어머님께서는, 아버님의 말을 따라 늘 정성스럽게 음식을 장만하여 상제님 전에 제물을 올리곤 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입버릇처럼 항상 “내가 죽기 전에 이 道를 너에게 주어야 할텐테”하고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형님들도 계신데 왜 나에게 道를 전해주시려는 건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나이가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니 싫다고 거부하면서 “사이비 같은 종교를 내가 왜 합니까요?”하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어머님께서는 “용주 너는 40살이 되면 큰일을 한다고 하는데,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겠다” 하셨습니다. 그때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후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잊고 살았습니다.
 
 
 40살이 되어 실현된 꿈
 그런데 40살이 된 1월1일 밤. 꿈에 전두환 대통령이 보좌관을 데리고 우리집에 노란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제게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무슨 일이 있거든 이곳으로 연락하라!”하며 전화번호를 적어주지 않겠습니까? 집사람에게 꿈 얘기를 하자, 복권을 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예사로운 꿈이 아닌 것 같아 복권을 사지 않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6월인가, 친구가 개벽책을 가져와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리어 그 친구한테 돈이나 열심히 벌어서 가족들과 잘살라는 핀잔만 주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 후 다시 와서 똑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후 신문에서 『이것이 개벽이다』 책 광고를 보았습니다. 그 광고를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지더군요. 물론 친구가 읽어보라고 했던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버님 말씀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여 마음이 동했습니다.
 
 그래서 영등포역 앞 서점에서 개벽책 상하권을 구입하여 밤새워 읽었습니다. 신의 세계와 미래 예언 부분들이 마음에 와닿았고, 참으로 감명 깊었습니다. 친구와 많은 얘기 끝에, 친구의 인도로 당시 마포 성우빌딩 3층에 있던 증산도 도장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꿈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적어준 전화번호와 똑같았습니다! 전호번호 2개가 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같았습니다. 참으로 놀랐습니다.
 
 그후 입도공부를 하고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꿈에 척신을 만났는데, 누워있는 내 배에 걸터앉아 내리누르는데 제가 손으로 막았습니다. 그러다가 제 힘이 부치자 태을주를 읽게 되었죠. 그러자 제 주위로 파아란 띠가 형성되면서 제가 일어나 한발한발 전진하여 척신을 문밖으로 밀어내는 꿈을 꾸었습니다. 고된 경험 때문이었는지 그날은 앓아누워 출근을 못했습니다. 결국 철야수행을 하면서 입도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입도를 했을 때 당시 초발심으로는, 정말이지 아무나 붙들고 상제님이 이땅에 오셨다, 증산도를 믿으라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때의 희열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홍보하고 다녔고 결국 아내에게도 도를 전하게 되었지요.
 
 사실 아내와 저는 전에 불교를 신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갑작스레 증산도 신앙을 시작하니 아내의 반대가 심해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집에는 『증산도의 진리』 책이며 태을주 테이프 등이 있었는데, 한번은 아내가 호기심 탓이었는지 태을주 테이프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테이프를 틀어놓고 벽에 기대어 잠시 앉아 있었는데, 돌연 머리가 멍∼해지고 몸이 공중으로 뜨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이생에서는 볼 수 없는(?) 전생체험을 했답니다. 그후 아내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지요. 게다가 아내의 친구가 집에 방문했다가 『증산도의 진리』 책을 보고 주지스님이 이 책을 읽는 것을 보았다는 말에 아내의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그후 도장 인도는 물론 태사부님 사부님순방교육 등에 함께 참석하다가 약 일년 뒤 마침내 아내는 입도를 하였습니다.
 
 
 상제님 진리의 전도사가 되어
 그때부터 포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진리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하더군요. 하지만 이 사람 저 사람, 사람들을 만나서 진리를 전하다보니 경험이 쌓였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사람한테 혼이 나 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제 자신이 점점 성숙되어가는 걸 느꼈습니다.
 
 처음 약 3∼4년 정도는 아무도 입도시키지 못했습니다. 진리나 정성이 부족해서인가 하고 정성수행을 꾸준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후부터는 차차로 포교가 되더군요. 당시 시골에서 부모님을 모셔와 함께 살았는데, 저와 아내는 물론 부모님까지 번갈아가면서 수행을 하느라, 아예 수행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포교를 한 방법은 직장을 이용하여 휴게실 같은 공간에 책자나 홍보지를 갖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팔고 빌려주면서 설문지를 받아냈죠. 설문에 적혀진 관심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도장 인도도 하고 관리도 했습니다.
 
 저는 10명을 포교하여 그중 9명이 현재 정신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간 동주∼서주 핵랑을 거치며 신패를 받았고, 지금의 목표는 북주핵랑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을 하면서 항상 불고가사 하는 분들이 부러웠습니다. 집사람과 저는 현재 수석포감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내와 잘 얘기해서 일심포교핵랑에 들어가려 합니다. 항상 원하던 일이었는데, 이제야말로 개벽책 세일즈맨으로서, 불고가사하는 천하사 일꾼이 되고자 결단을 내렸습니다.
 
 
 천도식은 신명을 도문으로 인도하는 일
 참, 이 글을 쓰는 기회에 여러 성도님들께 천도식과 입도식의 중요성을 알려 드릴 일이 있습니다.
 
 먼저 천도식에 관한 얘기입니다.
 저의 작은아버님께서는 일제때에 징용으로 끌려가 불운하게 폭격 맞아서 돌아가셨습니다. 한쪽 어깨가 으스러진채 돌아가신 작은아버님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아내가 입도한 후 함께 서둘러 천도식을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천도식 후 꿈을 꾸었습니다. 집에 큰 잔치가 벌어졌는데… 씨름판이 벌어진 잔치였습니다! 그때 작은아버지께서 대문을 열어제치며 새끼송아지와 황소를 몰고 들어오시는 꿈이었습니다.
 
 작은아버님의 천도식 후 아버님께서도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또 어머님께서도 작은아버님에 대한 체험을 하셨습니다. 낮에 수행을 하고 있는데 작은아버지(시동생)께서 오셔서 “용주가 나를 이렇게 좋은 곳으로 보내줘서 이렇게 좋다”고 무수한 대화를 하셨답니다….
 
 저는 비로소 ‘천도식이 이런 거로구나’하고 절감을 했습니다.
 천도식이란 곧 상제님 도문으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사부님의 말씀이 되새겨졌습니다.
 
 또 막내딸의 태몽을 꾼 일이 있습니다. 작은아버님께서 포대기에 애기를 싸가지고 오셔서 아내의 치마폭에 가져다 주시며, ‘이 아이를 잘 키워라’ 하셨습니다. 그 애는 결국 작은아버님께서 주신 셈이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애가 아직은 어린 청포인데 그렇게 신앙을 군말없이 잘합니다.
 
 
 입도식은 생명을 살리는 태을주의 전수식
 다음은 입도식에 관한 얘기입니다.
 아버님께서는 1990년대에 88세의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제 꿈에 3명의 저승사자가 집으로 왔는데, 그중 한 사자가 집안으로 들어와서 메모지를 달라고 하며 무엇을 적기에 제가 커피를 대접하며 봐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된다는 겁니다.
 
 운명하시던 날은, 연락을 받고 제가 집으로 허겁지겁 들어가보니, 사경을 헤매시길래 태을주를 한 10분 읽어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의식이 돌아오면서 다리도 움직이셨습니다. 그래서 형님께서 오시어 운명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시간을 벌어드린 셈이 되었죠.
 
 그후 49재 직후에 천도식을 해드렸는데, 그 뒷얘기를 하겠습니다.
 
 하루는 꿈에 아버님을 만나뵈었습니다. 어느 큰 회사건물 같은 곳이었는데, 글쎄 아버님께서 수위역할을 하고 계셨습니다. 표정이 안 좋으셨습니다. 저는 의아한 마음이 들어 직접 여쭈어 봤죠.
 
 “아니, 아버님은 상제님 신앙을 40년 이상 하셨는데, 왜 정식직원이 못 되셨습니까?”
 
 성도님들, 아버님께서 뭐라 대답하셨겠습니까?
 
 “나는 늙고, 입도식을 하지 않아서 정식직원이 안 되었단다.”
 
 입도식을 안해서 정식직원이 안되었다! 정말 놀랍지요. 아버님은 정말이지 일심으로 상제님을 수십년간 신앙해 오셨는데, 제가 입도한 후로 아버님을 제3변 도운에 다시 입도시켜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위해서 너하고 너희 집사람하고 같이 태을주를 많이 읽어주면 나도 저곳으로 들어간다.” 하시는 겁니다!
 
 네 작은아버님은 젊어서 일한다, 나는 늙어서, 그리고 입도식을 안해서 하는 말씀이 제 가슴에 사무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문을 많이 읽어드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님은 수십년간 신앙하시면서도 여러 주문을 읽으셨는데 정작 태을주는 읽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태을주를 알려드리고 태을주 수행의 중요성을 말씀드린 적이 있었거든요.
 
 그러므로 난법 신앙, 대순진리회든 뭐든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또 천번만번 예수 석가 공자를 잘 믿는다 해도, 증산도에 입도식을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여기서 여러 성도님들께 입도식과 태을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태사부님께서는 “상제님 진리는 태을주에서 시작해서 태을주로 매듭짓는다” 하셨습니다. 또 사부님께서는 “입도식은 태을주 전수식이다”“태을주를 읽은 만큼 일이 된다”하고 강조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그 체험에 충격을 받고 그해에 서둘러 어머님을 입도시켜 드렸습니다.
 항상 저희들을 이끌어주시는 태사부님 사부님의 크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일심, 청포 신화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도혜영(32세) / 청포 천록포감 / 도기 126년 1월 8일 입도

 인연 많은 증산도
 
 제가 증산도를 알게 된 것은 친구로 인해서입니다.
 당시 저는 기독교를 열심히 신앙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의문점은 남아 있었습니다. 또 저는 수행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전에 수지침을 했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아픈 사람들을 많이 치료하기도 했지요. 때마침 수지침보다 더 강력한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던 와중에 친구의 인도로 도장에 오게 되었지요.
 증산도 도장에서 기독교의 의문점(윤회와 사후세계)이 풀렸습니다. 게다가 수지침을 배울 때 음양오행을 배웠는데, 증산도에서도 음양오행을 공부하니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에 진리는 잘 몰랐어도 열심히 도장에 나와 수행도 하고, 다른 많은 성도님들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제 나름의 생각으로는 한번 신앙하면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언제나 자리잡고 있었거든요.
 
 
 인생의 고통을 풀고 뒤집기 개혁의 길로
 저는 증산도를 만나기 전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지요.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하였고, 삶의 의미를 못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마음속에 갇혀 있는 제 자신을 찾느라고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증산도를 만났으니, 제 자신의 묵은 관념과 습관을 뒤바꾸고 싶었습니다. 뒤집기 개혁을 한걸음 두걸음 내딛었습니다. 그 과정이 비록 더디었지만, 내면적으로 성숙의 길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때로는 무기력하기도 했고, 또 끝이 안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태사부님 사부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사상교육으로 무장하면서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나아가 인생이 뒤바뀌게 되었지요. 인간의 목적이 우주에서 바라는 참인간이 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태사부님 사부님은 개벽기때 죽을 수밖에 없는 저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대의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청포포감이 되어
 그렇게 몇년이 흘렀고, 청포포감이 되었습니다. 청포구역을 처음 맡았을 때는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곧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청포의 문화와 교육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맨땅에 헤딩하는 듯한 막막한 느낌. 청포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마음만 앞섰지, 이런 모습으로는 절대로 청포를 성장시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결국은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청포포감 세미나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도장의 청포포감님과 함께 상황공유를 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저의 의식도 넓어지고, 청포교육과 조직을 키우는 구체적인 방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다짐을 했습니다. 언제나 열심히 하고, 더욱 분발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후 원영은 신도가 입도를 하여, 같이 청포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청포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밤새워 얘기하기도 하면서, 청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꾼을 기르기는 사명을 자각하며
 앞으로 도정의 성패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데에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도장 중심의 신앙을 하자, 이제는 도장을 벗어나면 천지에서 소멸돼 버린다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도장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하다 보면 시련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천지가 무너져도 근본신앙을 지킨다는 걸 확신해야 합니다. 모든 천하사의 밑거름이 되고 조직적 힘의 원천이 되는 근본신앙, 그게 안되면 큰 일꾼으로서 힘을 쓸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 사람의 쓸 만한 일꾼을 길러내는 데에는 각 단계에 맞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청포들의 가슴에 진리의 불꽃을 피워, 일꾼 한사람 한사람 각자가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을 스스로 각성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청포에게 확신있는 교육을 하여, 모두가 사상신앙인이 되도록 만들겠습니다.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하겠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육임을 짜라” 하신 상제님 말씀처럼, 신도라면 누구도 육임을 짜야 합니다.
 후천의 주역, 청포 일꾼들!
 올 계미년에는 우리 청포가 전부 육임을 짜는 해로 만들겠습니다. 우리 일은 반드시 되는 일입니다. 언제나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새 역사를 이뤄낼 가을개벽, 그 천지대업에 종군하는 사명
 

서창주(21세) /인터넷 담당 / 도기 130년 5월 17일 입도

 참진리를 만난 생애 최고의 해
 
 어렸을 때, 4살 때 양쪽 청력을 잃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내면적인 소리에 대한, 그리고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야로써 늘 항상 “나는 누구인가? 왜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자아의식을 간직한 채, 중등시절 사춘기를 그렇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그해 2학년일 때 내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증산도를 만난 것입니다. 증산도를 만나기 전, 저는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당시 신문에 실릴 정도로 세간의 관심이 있었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서관에 들려서 예언에 관한 모든 책을 읽었습니다. ‘충격대예언’이란 책도 읽었는데, 그 책 맨 뒷부분에서 ‘증산도’와 ‘개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넘겨짚고, “아∼그런가 보다.”하고 생각하다가 왠지 마음에 걸려서 자주 가던 도서관에 있는 책장을 샅샅이 뒤진 끝에 책장 맨 아래층에 있는 『이것이 개벽이다』를 발견하였습니다. 개벽책을 도서관 직원에게 대출받아 빌려서 순식간에 읽으며 독파해 나갔는데 가슴이 쿵쾅거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개벽책을 읽었을 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긴 채, 책 내용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제가 비로소 이렇게 큰 진리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습니다.
 
 
 이상을 현실화시킨 기쁨 - 육임 완수!
 며칠 지나서, 학교를 마친 방과 후 도장에 스스로 방문해서 입도를 하였습니다. 입도를 하고 난 뒤에 도장에 자주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고등학생이란 것과 학원에 다닌다는 이유로 시간관리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주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제님, 태모님과 멀어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수능준비를 해야 하는 고 3이 되었을 때, 도장에 발걸음 뚝 끊는게 아니라, 오히려 자주 가면서, 수능준비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오미 개명도수의 첫해인 신사년에 참여하지 않는 일꾼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스스로 제 자신이 그렇게 해야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면 꼭 반드시 상제님 일을 하리라 다짐하면서, 1년동안 인터넷 포교 준비를 하였습니다. 인터넷 포교를 하면서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면서 ‘어떻게 해야 되지? 이렇게 하면 안돼!’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했습니다.
 
 인터넷 포교만 하는게 아니라 가족, 친척 또 반 친구전체들을 포교해봤습니다. 초발심의 열정은 있었지만 저의 정성부족인지, 진리전달능력 부족인지, 도장인도는 했지만 한명도 입도시키지 못했습니다. 살려낼 사람을 살래내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또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 때문에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습니다.
 
 대학에 합격해서 진학을 하게 된 즉시, 포교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포교활동만 하는게 아니라, 100일 정성수행과 더불어서 꾸준히 활동한 결과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의 천명인 육임을 완수하였습니다.
 
 육임을 완수했을 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항상 마음 속에 ‘나의 완전육임이 상제님의 모든 것을 이룬다!’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면서 그 이상이 현실로 이화되었을 때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천하사 일꾼으로 바로서다
 개인적인 일꾼이 아닌, 천하사 일꾼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에 대해 현재 창원중앙도장 부수호사로 발령나신 당시 장성규 부포정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3월에 활짝 핀 1억송이의 꽃과 6월의 붉은악마의 함성이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든 월드컵을 보고, 상제님의 천지공사(명장면을 보면서 너무 감동받았어요ㅜ.ㅜ)가 현실로 드러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마음은 머지 않아 다가올 가을개벽에 천하창생을 건지는 상제님, 태모님 일만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찼습니다.
 
 9월에 도장상주를 시작할 때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증산도에 전념하고 싶다, 과거 구도자들이 꿈꾸던 그 일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지금은 천하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증산도에 입도하기 전부터도 반대를 많이 했는데, 부모님을 꼭 살려서 후천선경으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바다같이 넓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정성과 심고를 매일 드리겠습니다.
 
 
 개벽, 그 위대한 열림과 함께 시작된 행진
 이제, 사오미 개명도수의 마지막 해인 계미년에 이미 접어들었습니다.
 
 새롭게 마음을 잡으면서 올해 새해 첫날 새벽 상근, 상주자 성도님들과 함께 강원도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붉은태양이 솟아오르는 일출의 장엄한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개벽이라는 위대한 열림(The Great Opening)도 현실처럼 다가오는구나, 인간은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나온 위대한 존재로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이 손으로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열고, 이 발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 열심히 뛰면서, 개벽철에 **넘어갈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정진할 것입니다.
 
 전인류 60억이 다 멸망당하는 개벽철에 이 땅에 탄강하시어, 천지공사를 집행함으로써 구원의 활방을 전해주신 증산 상제님!
 고난의 세살림을 경영하시어 “이 세상에 옳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살려야지요!”하시고 상제님께 하소연한 자애로운 생명의 어머니이신 태모 고수부님!
 
 평생동안 상제님, 태모님을 향한 평생불변심의 심법으로 백절불굴의 의지로 천하사를 개척해오신 태사부님!
 
 태사부님을 모시고 추수·결실의 3변도운을 초기부터 개척하시어 증산도의 진리체계를 정립시키고, 태양과 같은 열정으로 우리 일꾼을 기르신 사부님!
 
 이 네분의 은혜를 만분지 일이라도 갚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증산도의 모든 성도님들과 개벽의 그날까지 함께 하면서 아직 끝나지 않는 이야기, 가을개벽신화를 완성시켜 나갈 것을 다짐하며, 영원토록 변치않는 일꾼이 될 것을 맹세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불행의 파도를 넘어
 

장인영(37세) / 부포감 / 도기 131년 8월 28일 입도

 
 입도한 지 벌써 15개월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미흡하지만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게 해주신 송파도장 가족 여러분에게 감사 드립니다. 막상 지나온 날들을 글로 쓰려니 가슴이 미어져 눈물이 먼저 쏟아지는군요.
 
 저는 『이것이 개벽이다』를 구입해서 읽고 증산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던 모든 의문점을 증산도에서 우주원리를 배우고 나서 속시원하게 풀었습니다. 내가 왜 사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집안에 불어닥친 큰 불행
 저는 그간 가슴에 큰 멍울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별 어려움 없이 그럭저럭 잘사는 친정아버지께서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IMF가 터지면서 빚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어나 모든 게 다 넘어가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중풍으로 세번이나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시고 양쪽 눈까지 반반씩 실명되고 보니 아무 일도 하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여태껏 해오신 어머니로서는 몸 불편하고 아픈 것보다 활동을 못하게 되신 것을 더욱더 비참하고 답답해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절대적인 불교신자입니다. 평소 어머님의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기도드리며 정성수행에 들어가시는 날부터는 김치와 된장국만 드시면서 고된 수행을 계속 하십니다. 그 모든 게 자식들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음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저의 아버지께서는 호인(好人)이십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항상 봉사하시며 가정일보다는 남의 일에 앞장서시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이런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힘드셨지만 이렇게 베풀며 열심히 사셨는데 돌아온 결과는 빚과 병뿐이었습니다.
 
 저는 멀리 산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돈 몇푼으로 큰 효도라도 한냥 그냥저냥 넘겨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큰 불효자였습니다.
 
 그런데 저 또한 목디스크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항상 머리는 몽둥이로 맞은 것 마냥 아프고 항상 맑지가 않고 멍하고,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닌 것처럼 몸이 천근만근이라 집에서 누워있는 때가 많았습니다.
 
 
 태을주 수행으로 목신을 보다
 그런데 태을주 수행으로 이 모든 게 거짓말 같이 말끔히 나아졌습니다. 저는 교리 공부하면서 상제님의 진리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세속의 단전호흡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태을주 주문 하나 가지고 어떻게 내 병을 고칠까 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편견이자 개인적인 착각이었습니다. 정말이지 태을주 수행만으로 이 모든 게 거짓말 같이 말끔히 나았습니다.
 
 수행을 하는데 온몸에 열이 나면서 따끔따끔 바늘로 콕콕 찌르는가 싶더니 백회 부분이 후끈후끈하게 달아올랐습니다. 3일 후부터는 간질간질하면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더니 머리가 시원해지며 몸도 가벼워지는 거예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또 태을주 주문을 많이 읽으면 신명체험도 하게 된다더니 저 또한 여러 가지 체험을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주문수행을 하는데 어느 누가 저와 같이 주문소리를 내기도 하고 어떤 건장한 남자 분이 내 뒤에서 오더니 앞에서 멈추는 거예요. 저는 깜짝 놀라 눈을 떠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처음 체험한 일이라 몹시 무서웠습니다. 나무가 사람으로 보이는 때도 있었습니다. 나무에도 목신이 있다고 하시는 사부님 말씀처럼, 도로변 가로수 나무인데 시골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 길이 많이 막혀 차가 즐비하게 서 있는데 글쎄 막혀 있는 차들을 빤히 쳐다보는 거에요.
 
 ‘아니 이 늦은 시간에 고속도로에 웬 사람이 저기 서 있지’ 하면서 눈을 비비며 보았는데 역시 사람이예요. ‘이상하다’ 싶어 얼굴을 꼬집고 다시 보니 그게 가로수 나무였어요. 몇달 동안을 입에서 태을주를 놓지 않고 외워서 그런지 목신이 보였나봐요.
 
 
 가정을 뒤흔든 척신의 위력
 제가 이렇게 건강해지고 체험도 하게되니 증산도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어느 누구라도 이 큰 공부를 반드시 해야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친구들, 동생한테도 이 소식을 전했는데 다들 엄청 놀라더군요. 반응인즉, 사이비종교, 부녀자를 유혹해 집안 거덜내는 사기꾼 집단 등등의 대폭언뿐이었습니다.
 
 집안이 망하니까 그것도 모자라서 이상한데로 빠졌다고, 나를 빨리 빼내야 된다며 남편과 주위 사람들한테로 연락이 왔나봅니다. 남편이 이 세상에서 제일 깨끗하고 점잖은 선비라며 믿고 존경하던 제부마저 이렇게 나오자, 제 신앙생활과 가정생활은 고난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경제권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부터는 잘 마시던 술도 안 마시고 가정만 알던 남편이 날마다 술과 안 피우던 담배마저 피우며 제게 폭언을 했습니다: 너는 증산도에 미쳤으니 증산도로 가라, 주위사람들한테 창피해 못살겠다, 너는 인간도 아니고 엄마 될 자격도 없으니 맨몸으로 나가라며 집밖으로 쫓아내더라구요.
 
 남편은 이렇게 하면 제가 지쳐서 그만 다닐 줄 알았나봐요. 저는 이게 다 나의 척이려니 하고 전혀 개의치 않고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럴수록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평소에 신경 안쓰던 집안살림도 열심히 하면서 상제님 태모님께 심고와 수행을 간절히 했습니다.
 
 그러던 얼마 후, 술이 잔뜩 취해 들어오더니 갑자기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었어요. 이혼도 안하고 집 나가지 않으려면 차라리 **버리라며 목을 조르며 두들겨 패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눈이 뒤집어져서 구타를 하는데 너무너무 무서웠습니다.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직 해야할 일들이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빨리 저를 데려가시면 어떻게 합니까’하고 심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화장실 쪽으로 갔습니다. 저는 그 틈을 타서 맨발로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이런 몸으로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분노와 오기가 생겼습니다. 증산도에 대해 확실히 알아보지도 않고, 남의 말만 듣고 부정적인 생각만 갖는 남편이 죽도록 미웠습니다. 모든 걸 정리하고 끝내고만 싶었습니다….
 
 
 극즉반의 원리인가, 스스로 교육을 선택한 남편
 저에겐 그때 17개월 된 아이와 초등학교 1학년인 두 아들이 있었는데, 어린 두 아들이 마음에 걸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참고 이겨내자, 내가 내 남편도 포교하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를 포교하겠는가’ 싶어 마음을 굳게 다지고 동네를 배회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태모님 말씀에 큰 공부를 하자면 먼저 복마가 먼저 찾아온다는 말씀처럼, 척신복마가 발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조상님의 죄업을 용서를 빌고, 척이 된 신명님들의 자손에게 저를 인도해 주셔서 그분들의 자손과 함께 후천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두 아들이 “엄마 얼굴이 왜 이래요”하고 놀라는 게 아니겠어요? 거울을 보니 얼굴이 말이 아니에요. 이마는 계란하나 올려놓은 것 마냥 부풀어 올라 있고 얼굴형체가 없는 거예요. 남편도 제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라 뒷걸음치는 거예요. 아무 생각이 안 나는 듯 되려 저한테 물어요 ‘왜 이러냐고.’
 
 어젯밤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니까 전혀 믿질 않는 거예요. 그런 적 없었다고. 빈속에 술을 계속 안주도 안 먹고 연거푸 소주 4병까지 마셨대요. 그러면서 미안한지 자기가 증산도에 가서 교육을 한번 받아보겠다는 거예요. 단, 교육을 받고 아니다 싶으면 ‘양쪽 집안 어른들께 다 알리고 깨끗이 이혼하자’는 거예요. 이렇게 나오자 저도 ‘좋다, 그러자’고 했죠. 이렇게 해서 남편이 교육을 받게 되고 책도 읽으며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정말 미안하다, 잘못했다”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세상의 진리는 여기 증산도에 다 있더라, 사람들도 다 점잖고 세상사람들과 뭔가 다르더라, 너무 조심스러웠다고 고백하는 거예요.
 
 그때 저는 남편 앞에서 내색은 안했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이제 앞으로 신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또 한편으로는 제 간절한 마음과 노력이 전혀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감동이 일었습니다. 부족한 저희 부부를 받아주신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께 감사의 심고를 수없이 드렸습니다.
 
 
 공(功)은 닦은 데로 돌아가고…
 지금 남편은 구역의 부포감직을 맡아 도장일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신앙은 자기처럼 진지하게 성심껏 해야 된다며, 저를 야단칩니다. 또 제가 더욱 신앙을 잘할 수 있도록 둘째아들을 놀이방에 맡기게 하고 가정살림도 잘 도와줍니다. 게다가 요즘은 제 건강까지 챙겨주니, 그야말로 멋있고 아주 푸근한 남편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구역부포감에 서점담당, 그리고 일심포교핵랑에 지원하여 하루하루 신바람 나는 참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대운이 조선으로 몰아들어오니 만의 하나라도 때를 놓치지 말라
 

김진홍(28세) / 부포감· 집정 / 도기 130년 5월 23일 입도

 
 
 대학교 3학년 때 증산도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자기 아는 선배가 서적전시회를 하는데 도와주러 간다고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시간도 있고 같이 가보고 싶기도 하여 따라갔습니다. 가서 풍선도 실컷 불고 서적들도 많이 있어서 눈여겨보았더니, 『환단고기』와 역사에 관한 소책자, 수행 책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공부하는 동아리쯤으로 생각했습니다.
 
 대동제 기간이 끝나고 서적전시회 도와준 사람들의 뒷풀이가 있다고 친구가 권유했습니다. 그때 같이 갔던 친구들 4-5명하고 증산도 선배들하고 닭갈비 집에 갔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수행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하더군요. 예전부터 수행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한번 해보기로 다같이 결정하였습니다.
 
 
 첫 수행에서 느낀 기감(氣感)
 저는 어릴 적 큰형이 수행과 우리나라 상고사에 관심이 많아 관련서적이 집에 더러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때 단전호흡을 배워보기도 하였고 고등학교때 『환단고기』와 『현묘지도』라는 책을 읽고서 우리나라에는 장구한 역사와 함께 무언지 모를 현묘한 도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무술영화에 푹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엔 꼭 제 구미에 맞는 소림사 영화가 나왔거든요. 그때마다 가슴이 벌렁벌렁 했습니다. 저도 그같이 되어 보리라고…. 지금 생각해봐도 재미있는 일이지요?
 동아리방에서 처음 수행을 해보고 기감(氣感)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상제님과 태모님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증산도 교리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아마 설명을 해주었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입도식 얘기가 나와서 저는 상당히 놀랐습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입도비 마련을 위해 선배랑 막일까지 하면서 결국 셋이 입도식을 하였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차츰 진리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의구심을 풀기 위해 증대교육에 참여하게 되었고, 교육참여 이후 의심은 하나둘씩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제게 절실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세운을 봐서는 그리 먼 남의 나라이야기만은 아님을 당시 써클장이 주지시켜 주었고 또 내 자신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개벽이다』하권에서 술(戌)자리는 천지생명의 모든 생명이 완전하게 성취되는 자리라는 것이 항상 뇌리를 스쳤고, 언젠가는 참일꾼이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기대와 환경 때문에 취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여러 가지 권유를 받았습니다. 써클장으로 활동하면서 증산도를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냐고, 도장 수호사님과 대포담당 부포정님과 기타 성도님들께서 제안을 하셨지만 제가 아직 의식이 열리지 않았던지 선뜻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2002년도 1월에 서울로 상경하여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하게 되자 거의 도장에 못 나가게 되었습니다.
 
 
 세계 대운이 조선으로 몰아들어오니
 월드컵 기간이었습니다. “세계 대운이 조선으로 몰아들어오니 만의 하나라도 때를 놓치지 말라” 라는 상제님 말씀대로 세계의 대운이 우리나라로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당시 회사가 여의도에 있었는데 퇴근할 때 들리는 붉은악마들의 외침이 저에게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대∼한민국 !!! 대∼한민국!!! “
 와∼ 이젠 정말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직장생활하면서 계속 천하창생을 살리는 천하사를 두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직장에서 하는 일이 너무 작게 보이고 보잘것없이 느껴지게 된 것입니다.
 때마침 대포담당 부포정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지금 있는 곳에 도장이 있으니 꼭 가서 참여를 하라는 당부 전화였습니다. 그래서 송파도장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포정님께선 두 번째 만남에서 상근할 것을 권유하셨고 저는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그렇게 하리라고 선뜻 결심을 하였습니다.
 7월4일부터 상근을 했으니까 벌써 6개월이 지났군요. 결심하고 나니 모든 것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족들이 안다면 쫓아올 생각을 하니 겁나기도 했지만, 제가 하려는 일이 불의를 뿌리뽑고 정의를 규명하는 참하느님의 진리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에 가족의 반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족포교 할 시간조차 그리 많이 남지 않았기에 더욱 정신을 차리고 포교와 도정에 임할 생각입니다. 가족들은 아직도 제가 증산도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알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천리는 때가 있고 인사는 기회가 있다! (태사부님)
 하면 된다! 하면 된다! 하면 꼭 된다! (사부님)
 
 태사부님 사부님께서 내려주신 구호 속에는 우리 일꾼들에게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태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우리 일꾼들이 다같이 후천 오만년 잘되기를 바라고 계시며, 열심히 뛰어서 천지에 공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천지의 공 쌓는 일은 곧 사람 살리는 일이며, 그 일은 절대화합과 멸사봉공, 정성과 노력으로 이뤄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일꾼은 그렇게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상신앙으로 똘똘 뭉쳐져서….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일꾼이 되도록 다짐하며, 지금까지 증산도에 몸 담을수 있게 해준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一 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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