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상무도장] 천하사의 의지가 충만하다

초립쓴30대 | 2010.02.23 16:01 | 조회 5087

사오미 개벽장터의 문이 활짝 열리는 2002년 임오년!
 
 빛고을 광주는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지난 5월 19일 상무도장이 분가 개창되었고, 다시 6월 16일 북구의 중심인 오치동에 오치도장이 분가 개창되었다. 이로써 기존의 신안도장 그리고 새로 개창된 상무, 오치도장의 세 도장이 전라남도의 중심인 광주를 삼각편대로 든든히 떠받치게 된 것이다.
 분가 개창된 상무도장과 오치도장은 100평이 훨씬 넘는 큰 규모다. 하지만 깨끗하고 잘 꾸며진 도장의 외모 못지 않게 이곳 광주의 천하사 일꾼들의 의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남다르다. “천리는 때가 있고 인사는 기회가 있다”는 상제님 말씀을 받들어 천시(天時)를 놓치지 않고 천하사 구제창생의 대업을 이루려는 강한 열망이 넘치고 있다.
 과연 이곳에는 어떤 인연을 가진 성도들이 어떻게 상제님 진리를 만나 어떠한 마음으로 신앙을 하고 있을까? 취재진은 광무 상무도장을 방문하여 몇몇 일꾼들을 만나 그들의 신앙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일심 정성을 바쳐 광주지역을 크게 성장시킬 것입니다”
 
 태모님께서 태어나신 전남 담양이 제 고향입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우주와 인간, 철학 등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그런 책들을 읽다가 대학교 졸업 후에 어떤 사람의 권유로 『이것이 개벽이다』를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내가 그토록 구했던 진리와 도의 해답을 찾았음에 저절로 눈물이 나왔습니다.
 전남대를 졸업한 후 87년 9월부터 교직에 몸을 담고 중고등학교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상제님 도문에 입도한 것은 교직을 시작한 지 불과 몇 개월 뒤인 88년 1월입니다. 입도 후 3개월 뒤에 광주도장의 이용범 신도와 함께 목포도장 개창의 중심에 서서 일을 했습니다. 당시는 교직의 신분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도장 책임자는 91년쯤부터 시작했는데 교직을 벗고 본격적으로 상제님 일에 전념하게 된 것은 94년 가을부터입니다. 목포. 해남, 부산, 여수도장을 거쳐 이번 광주가 다섯 번째 도장입니다.
 
 광주가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도장 발전이 다른 지역보다 더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나라 국민성이 그러하지만 광주는 특히 인간적인 정리에 이끌리는 경향이 많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광주도장에 봉직하면서 성도들간의 인간적인 화합, 공정한 도장 운영, 태사부님·사부님에 대한 확고한 종통관 확립을 도장 경영의 큰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과거는 어떠했든지 간에 이제 광주는 크게 변모하고 있습니다.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적극적인 교육에 힘입어 신앙관과 종통관을 확고히 정립한 일꾼들이 하나 둘씩 나와 도장을 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신안도장을 모태로 하여 상무도장과 오치도장이 분가 개창을 해 나갔습니다. 상무도장은 광주 신흥도시 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오치도장은 광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북구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신안도장은 광주 전체의 중심에 해당합니다. 이번의 도장 개창은 일반부 수석포감님, 포감님, 그리고 전체 성도님들의 혈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각 지역을 중심으로 2개 지역으로 나누어 개창을 추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신안도장은 이선규 대포 부포정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하여 이제는 자체적으로 대학부와 청소년부가 주축이 되어 도장을 운영해 나갈 정도로 성장이 되었습니다.
 
 도장 개창에 앞서 올 1월부터 불붙기 시작한 새벽수행이 최근에 입도한 신입 성도님들의 신앙정착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각 부의 수석포감들이 차를 운행하여 성도님들의 교통편의를 도모해 주었는데, 참석한 성도님들 모두가 신앙정립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매주 화요일 수호사님의 우주변화원리 강의와 목요일 도전공부, 그리고 금요일에는 신입신도 교육과 강사양성을 위한 팔관법 발표, 매월 한 번씩 사상신앙의 날 등을 통해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새벽수행, 도장의 지속적 교육, 신도전체의 화합, 그리고 유형 무형의 정성이 도장 발전과 개창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광주지역 모든 신도 하나 하나가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의 말씀을 받들어 일심 정성을 바쳐 광주지역을 크게 성장시킬 것입니다.
 
 
 "성녀포교단으로 다시 태어나 천하사에 종군하고 싶습니다”
 
 저는 증산도보다 대순진리회를 먼저 알았습니다. 대순의 한 선사로부터 우주변화원리를 들었는데 이것이 맞다 싶어 친구들을 대순진리회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을 인도하고 불고가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어 동생을 입도시켰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입도한 이후부터 계속 짜증이 나서 연락소에 안나가게 되었고, 그러던 중 선감이 한번 만나자고 하여 전남대에 갔다가 ‘가을 개벽과 태을주 수행’이라고 쓰여진 증산도 강연회 현수막을 보고 강연회에 한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대순진리회 입도 동기인 이지윤 신도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인터넷으로 포교가 되어 증산도를 신앙하고 있다면서 며칠 뒤에 있는 증산도 강연회에 초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어서 강연회에 가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상님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현수막도 보여주고 대순진리회 입도 동기도 보내주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격상 현수막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옆에 아는 사람이 지나가도 먼저 알아보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강연회가 끝난 후 증산도의 진리를 함께 공부해 보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대순진리회가 종통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증산도 입도는 생각도 안해봤고, 그냥 좋은 게 있으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말자는 식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대순에서는 공부다운 공부를 해보지 못하고 그냥 입도했는데, 증산도는 우선 공부를 해보고 결정하라고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꾸준히 나가서 공부를 하다 보니 대순은 너무 어설펐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 대순진리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대순에서는 자기의 의지가 설자리가 사실상 없었습니다. 항상 위에서 말하면 해야 하고, 그런 면에서 자기는 자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증산도는 자기 스스로가 뜻을 세우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증산도의 진리를 공부하면서 ‘대순에서는 내가 참으로 허약했구나. 그러나 증산도에서는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강해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추석 사흘 전에 입도를 했는데 추석을 쇠러 시골에 내려가 3일 동안 집중해서 『도전』 전편을 다 읽었습니다. 왠지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 내렸습니다.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입도 후 아침에 일어나 식사하기 전에 청수를 모시고 수도를 했는데 일주일이 채 안되서 백회가 열리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증산도에 입도한 후 과거 대순에 인도했던 친구 두명을 다시 증산도에 입도시켰습니다. 그런데 대순에 인도했던 동생은 현재 대순에는 나가지 않고 있지만, 가족 중 제가 증산도 신앙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가장 심하게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성녀포교단에 지원을 했으며 8월에 입단할 예정입니다. 제가 포교단에 지원한 동기는 너무 늦게 입도해서 진리가 부족한 탓에 패널 포교때 어려움이 많았고 대상자가 생기더라도 제대로 수렴하기가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포교도 마음껏 하고 다른 신도들의 포교 대상자 수렴까지 도울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성녀포교단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성녀포교단 교육을 받고 다시 광주에 와서 천하사에 종군하고 싶습니다.
 
 
 "도공을 하면 무한한 힘이 솟구치는 걸 느낍니다”
 
 광주 토박이인 저는 카톨릭 계통의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교 때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시댁이 불교를 신앙하는 집안이라서 상제님 진리를 만나기 전까지 20년 가까이 불교를 신앙했습니다.
 
 5년 전 초등학교 교직 생활을 그만두고 광주에서 회사를 다닐 때 회사 사무실에서 나이도 엇비슷한 이정숙 포감을 통해 상제님 진리를 전해 들었습니다. 당시 이석남 포감(현재 여수둔덕도장 포정)이 같이 오셔서 진리를 얘기해 주셨습니다. 그 끝에 『이것이 개벽이다』 상, 하를 받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장에 대한 호기심을 느껴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가보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도장을 방문하여 상제님 어진과 태모님 진영을 보았을 때는 문득 우상숭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매일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열흘 정도 지나서 진리에 대한 신념이 생겨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주원리는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았는데 음양오행은 평소에 상당히 관심이 있던 분야였습니다. 또 인연, 윤회, 신관 교리 등이 공감되었고, 창조(創造)가 아니고 조화(造化)라는 것 등등이 하나하나씩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불교에서도 관음주를 외고 배례를 많이 하는데, 그래서인지 증산도의 배례와 주문수행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증산도와 불교신앙이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절을 다녔기에 다음에 오실 부처님이 미륵 부처님이며 증산 상제님이 바로 미륵불로 오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상제님 진리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여러 종교를 나름대로 접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침례교회를 가보기도 하고, 여호아의 증인에도 가보았습니다. 물론 당시는 신앙을 했다기보다는 이론적으로 알아보았던 것이지요.
 
 자녀는 아들이 둘이 있는데 모두 입도를 하였습니다. 큰아들은 목포에 있는 대학교에서 증산도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군대를 갔고, 작은아들은 현재 고3이라 도장에는 열심히 참여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절에 다니는데 새벽에 일어나 금강경을 설할 정도로 신심이 굳은 사람입니다. 증산도를 알면 열심히 신앙할 사람인데 아직 정확한 진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요즈음 포교의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지난 1월부터 신안도장에서 새벽수행을 나갔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행을 하면 온 몸이 뜨거워지며 손으로 탁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본래 건강한 편인데 도공을 하면 어디서 나오는지 무한대의 힘이 손에서 솟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그 때는 옆에 있는 무슨 물건이든지 깨버릴 정도로 느껴지는 힘이 솟구칩니다. 진리를 배울수록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으로 이어지는 종통관이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상제님 진리를 실천하며 도장 발전과 포교에 온 힘으로 정진하고자 합니다.
 
 
 "부모님, 동생, 누나, 자형을 입도시켰습니다. 이제는 세상사람들에게 개벽의 도를 전하렵니다.”
 
 전남 장성에서 출생한 저는 광주에서 호남대를 2년 수료한 후에 광주대에 편입하여 대학을 다녔습니다.
 저는 세상에 대해 가끔 생각했습니다. 환경문제, 인구문제 등 가끔 혼자서 고민을 하며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3년 정도 교회를 다녔지만 별로 마음에 와 닿는 것도 없고 해서 절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 후 1년 정도 절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 퇴근길에 대순진리회 신도를 알게 되어 퇴근 후 시간을 내어 보름정도 다녔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보려고 질문을 하며 책을 달라고 해도 책을 주지 않았습니다. 진리도 너무 빈약했습니다. 저는 증산에 관련 자료를 스스로 확보해야 함을 느끼고 인터넷에서 증산관련 자료 검색을 하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증산도 홈페이지를 알았습니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 가지고 홈페이지의 자료를 차근차근 읽어보았습니다. 뭔가 있다고 판단이 들었습니다. 공부를 좀 더 해보고픈 마음에 도장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도장을 방문했습니다. 도전 원전을 비롯한 관련 서적을 방문시 모두 사서 읽고 보름 정도 교육을 받은 후, 증산도가 여러 단체 중 희망과 비젼을 제시하는 가장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건전한 단체임을 확신하고 입도를 하였습니다.
 입도 후 태전의 증대 교육을 받으러 가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상당히 기대를 했습니다. 진리도 엄청나고 해서 증대교육 규모도 크고 그럴 줄 알았는데 너무 초라하고 작았습니다. 실망감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연 이렇게 작은 곳에서 소수의 인원이 모여 가지고 60억 인류의 생사를 주관한단 말인가? ‘과연 그럴까 ’하는 의혹이 일어났습니다. 지방에 내려와서 계속해서 도전과 진리책, 개벽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해 보았지만 진리는 분명히 맞았습니다. 간혹 의구심이 생기면 책을 통하여 확신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도장에 나가면서 성도님들의 신앙상태를 보고 놀랬습니다. 진리도 엄청나고 해야할 일은 많은데 일부 성도님들의 신앙은 너무 안일하고 나태해 보였습니다. 저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포교를 시작했습니다. 막상 현장에 부딪치면, 진리가 이토록 좋은데 왜 전해듣는 사람들은 쉽게 응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일단은 가족을 포교해야 하겠다고 판단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여동생은 제가 입도하고 나서 바로 입도를 하였습니다. 오빠가 뭔가 많은 책을 쌓아 놓고 읽게 되자, 자신도 관심을 갖고 같이 읽고는 진리가 깨지면서 스스로 입도의 필요성을 느껴 입도시켜 달라고 해서 동생이 일주일 정도 교육받고 입도하였습니다. 동생(박수경 신도)은 현재 수원매교도장에서 신앙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증산도라는 이름은 말하지 않고, 제가 어디를 다니는데 거기를 가니까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하고, 선영제사도 잘 지내라고 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장기 계획을 세워 집안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챙기고 부모님에게 조금씩 증산도 진리를 쉽고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1년이 못되어 부모님이 입도를 하셨습니다.
 
 부산에 사는 작은누나에게도 진리를 얘기했는데 신관과 태을주 수행에 관심이 있어 관련책을 전해주니 읽어보고 입도를 하였습니다. 큰누나는 다른 종교를 10년 이상 신앙을 해서 쉽게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큰누나가 말하기를, 어느 종교나 자기 것이 옳다고 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 정도 가끔 다투면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자형에게 시간을 가지고 조금씩 진리를 얘기했습니다. 그러던 중 소설 『그날이 오면』을 읽은 자형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적극적으로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진리책 개벽책 등 증산도 관련서적을 3개월 동안 섭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증산도 진리를 확신하고 입도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큰누나와 함께 도장에 나오며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형만 빼고 가족은 모두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형에게도 진리를 지속적으로 전해 입도를 시키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가족이 증산도 신앙을 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과감하게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증산도 개벽의 도를 전해야겠습니다. 증산도 성장을 위해 세상사람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다짐합니다.
 
 
 "끝까지 참여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전남 화순 춘양이 고향인 저는 고등학교를 광주에서 다녔습니다. 광주여고 1학년 시절 학교 친구로부터 증산도를 전해 들었는데, 증산도는 그때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진리였습니다. 친구와 같이 도장에 가서 교육을 받으며 우주관과 신관을 마음속에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증산 상제님이 이 우주를 주재하시는 하느님이다’라는 부분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으로 오셨는데 어떻게 이분이 하느님이란 말인가?’ 저는 못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21일간의 입도 교육을 받으며 차츰 상제관의 감을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청포가 6구역이 있을 정도로 활성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있는 등 다들 힘들게 신앙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청포끼리 소식지를 만들었던 것은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고3이 되면서 다른 친구들이 치성에 나오지 않았지만 저는 치성에는 반드시 참례해야 한다는 마음에 꼬박꼬박 참례했습니다. 고3으로서는 저 뿐이었습니다. 비록 대학에 떨어졌지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을 1년 정도 다니다 93년도에 태전지명찾기 봉사활동을 하러 태전본부에 갔습니다. 이 당시 활동 중간중간에 여러 가지 교육이 있었고 성지순례도 있었으며 책도 많이 읽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때 지금은 성녀포교단에 입단해 있는 몇몇 동갑내기 성도들과 만나 정분을 나누고, 함께 변치 말고 상제님 신앙을 열심히 해보자고 의기투합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태전지명찾기에 봉사하러 갔을 그당시에 상제님 진리가 보다 확실히 정립되고 뿌리내린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광주에 내려와 도장에서 경리를 보며 봉사하다가 124년에 같은 도장에서 함께 신앙하던 유경훈 성도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저보다는 신앙을 늦게 시작한 분이지만 상제님 신앙에 아주 적극적이고 열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고등학교 시절 태전에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 태사부님과 사부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금 이렇게 같이 신앙을 하고 있지만 과연 개벽기를 당하여 그 때에도 이 사람들이 같이 신앙을 하고 있는지, 과연 얼마나 남아 있는지 둘러보아라.”그 당시 말씀을 들었을 때는 왜 저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모두들 저보다 열심히 신앙을 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청포로서 함께 신앙했던 동지로 남아있는 성도들이 그리 많지 않아 무척 안타깝습니다.
 
 요즘 교육을 받으며 상제님 대업이 마무리 과정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조상님의 음덕에 힘 입어 도문에 들어온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비록 크게 봉사한 것은 없지만 앞으로도 도장 정책에 적극 협조하면서 동참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제님 진리를 150% 확신하고 있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초, 중학교를 나온 후 여수로 가서 공고를 다녔습니다. 97년 졸업한 후 일찌감치 해군 단기 하사관으로 군대를 갔습니다.
 진해에서 근무할 때 부대 안에서 군무원으로 일하시는 김용식 성도님과 성격이 맞아 친하게 지냈습니다. 하루는 김성도님이 제게 경세판 『도전』과 『다이제스트 개벽』을 주면서 읽어보기를 권했습니다. 이후 성도님을 따라 도장에 대 여섯 번쯤 갔지만 당시 제 눈에는 증산도 진리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책도 그저 슬쩍슬쩍 보았을 뿐입니다.
 
 얼마 후 진해에서 목포로 발령이 났습니다. 제대를 결심하고 있던 제게는 그곳이 군생활의 마지막 무대였습니다. 제대하기 두 달 전 부대에서 한 대위 분에게 얼떨결에 증산도를 아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분은 부대 내에서 이미지가 좋았던 분으로 저는 평소에 그 분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알고 보니 증산도 신앙인이었습니다. 그 날밤 그 분(정용인 성도님)이 저를 데려다 우주관을 설명하셨습니다. 정성도(聖徒)님은 아주 심각하게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에 4년 6개월의 군생활을 마감하고 제대를 하였습니다. 제대 후 한달 동안 제주도로 무전여행을 떠났는데 정성도님은 여행을 다녀오면 목포로 꼭 한번 들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행갔다 온 후 목포에 들러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에 정성도님은 증산도 신앙을 간곡하게 권유하셨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는 그때부터 벌교도장에서 『이것이 개벽이다』, 『증산도의 진리』, 『상제님, 증산 상제님』 등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읽을수록 ‘이 진리가 과연 진짜냐 가짜냐’가 궁금해졌습니다.
 
 제대 후 고향인 고흥에 돌아왔는데 보성 벌교도장이 가장 가까운 도장이었습니다. 한달 동안 책을 읽어보면서 도장에 출입하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심을 하고 입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 이 많은 종교가 있는데 ‘각 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이 과연 다른 분인가? ’이렇게 말입니다. 어느 순간인가 증산도의 진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던졌습니다. 지금은 상제님 진리를 150% 확신하고 있습니다.
 올 3월에 서강 정보대에 입한 후에 신규 동아리 등록을 했습니다. 동아리방은 아직 안 나왔는데 2학기에는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리공부는 이선규 부포정님의 적극적인 지도를 받으며 체계를 잡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자격이 갖추어지면 성녀포교단에 지원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광주의 대포를 성장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제 고향은 태모님 탄강지인 전남 담양군의 바로 옆 곡성군입니다.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나오고 동강대에 입학하면서 광주로 왔습니다. 마침 형과 누나들이 광주에 있었습니다. 증산도 진리는 동강대 2학년 때 같은 학교 학우인 홍기서 성도에게서 전해 받았습니다.
 
 예전부터 홍기서 성도가 무언인가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개벽이 온다는 것을 막연히나마 알고 있었습니다. 홍성도로부터 상제님 진리를 전해 들으며 그 내용이 예전부터 내가 생각하던 것과 비슷했으며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다이제스트 개벽』을 읽고 저의 생각을 정리한 후 곧바로 정성공부를 시작하고 입도와 더불어 천하사 신앙에 착수했습니다.
 
 입도 후 태전의 증대교육을 참석하여 태사부님과 사부님 말씀을 받들 때마다 마치 양파껍질 벗겨지듯 진리에 대한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특히 도기 130년 어느 달 사부님 도훈 말씀가운데 천지일월 4체에 대한 말씀을 받들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월의 존재에 대해 새삼 느끼면서 증산도는 역시 대단한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으며 믿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지금도 신앙하면서 맨 처음 입도할 때의 초발심을 그대로 간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때가 되면 성녀포교단에 입단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현재 동강대를 졸업하고 광주대에 편입해 있는데 올해는 광주의 대포를 성장시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기필코 육임 포교 목표를 완수하겠습니다”
 
 전남 해남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저는 그곳에서 공고를 졸업한 후 조치원에 있는 삼성전기에 취업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은 가야겠다는 판단 아래 8개월 만에 퇴사하고 수능을 본 후에 전주의 모 대학에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열심히 상제님 진리를 전하고 있던 이정헌 성도를 만났습니다. 저는 옆에서 듣고 있었는데 정작 이야기를 듣던 사람과 얘기가 잘 안 되자 자연히 저와 대화가 되었습니다. 면접이 끝난 후 함께 차를 타고 전주 다가도장에 가서 식사도 하고 성전 소개도 받았습니다. 진리 얘기를 들으니 부정하고 싶은 내용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람도 좋고 진리의 내용도 좋았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영혼세계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었고, 신명세계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고1 당시 『목민심서』라는 소설을 읽은 후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동양의 고전인 『논어』, 『대학』, 『중용』 등에 눈을 떠갔습니다. 그날 이정헌 성도로부터 얘기를 들으니 ‘아! 여기에 뭔가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고 저는 입도 약속 날짜를 정한 후 헤어졌습니다.
 
 그후 광주 각화도장에 와서 한 달을 상주하며 지내다 드디어 입도식을 올렸습니다. 당시 이선규 부포정님이 열심히 이끌어 주었습니다. 함께 개척포교도 해보고 매일 새벽수행도 하다보니 신앙의 가닥이 잡혔습니다. 특히 교육을 집중해서 1주일을 받았는데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만나야 할 진리를 만났건만 집안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배고 있었습니다. 96년부터 당뇨가 와서 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가 혼자서 아버지 병 수발을 하고 집안의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당시 해남 종합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는 다리가 썩어 들어가자 조금씩 조금씩 짤라내었는데 나중에는 겉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2달 동안 집중적으로 아버지를 간호했는데 그 때 대소변을 못 가리시며 병고에 시달리는 아버지의 고통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몹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도 죄송합니다.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를 생각할 때 많은 죄책감이 솟아오릅니다. 결국 입대 얼마 후 아버지는 세상을 뜨셨습니다.
 
 작년 11월 13일에 제대를 하고 동강대에 복학하여 천하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막 만났습니다. 닥치는 대로 포교하고 교육에도 참석하면서,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수행을 하고 포교에 임했을 때와 수행을 하지 않고 포교에 임했을 때의 차이를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 포교가 한결 잘되는 것을 절감합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진리를 전해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올해에는 기필코 6임 포교를 완수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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