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 바로 세우기 외길, 30년 집념의『 환단고기』 완역본 펴낸 안경전 증산도 종도사 [군사저널]

2013.08.05 | 조회 6627

민족사 바로 세우기 외길,30년 집념의『 환단고기』 완역본 펴낸 안경전安耕田 증산도 종도사

2013-07-31 (수) 군사저널

“광복 70년, 이제 역사 광복을 해야 합니다”


역사 교육보다 급한 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



군사력이 국가를 지키는 물리력이라면 민족의 역사는 그것을 지탱하는 정신력이라 할 것이다. 68돌 광복절을 앞두고 한민족의 뿌리와 역사를 밝히는 길을 걸으며 “나라의 광복을 넘어 역사가 광복돼야 한다”고 외치는 안경전 종도사를 만났다.


특별 대담 본지 발행인 박정하

“요새 교육부에서 역사를 필수 교과목으로 하느냐 마느냐, 말들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우리 중·고·대학의 역사 교과서 내용이 온통 잘못됐다는 데 있습니다. 나라가 광복한 지 70년이 다 됐는데 역사는 아직도 조작되고 망가진 내용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국사 교육이란 게 사실 후세에게 죄 짓는 겁니다. 일단 한 번 잘못 가르쳐 놓으면 한 세대 두 세대를 가도 그걸 바로잡기 어려워요. 당장 우리한테 급한 건 역사를 시험 과목에 넣을 거냐 말 거냐 하는게 아니라 진짜 우리 역사부터 찾고 그걸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지금의 국사 교육은 후세에게 죄짓는 일”


7월24일 오후 대전 중리동의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안경전 종도사는 이 대목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역사’가 이 시대의 화두다. 국내에서는 ‘국사’를 대입 수능 및 교과과정의 필수과목으로 넣을 것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논의가 한창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중요한 과목을…”이라고 국사 교육을 강조하면서 논란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일본과 한·중·러시아, 남사군도를 둘러싼 중국과 주변국 사이에 영토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는데, 영토분쟁도 따져보면 결국 역사전쟁이다. 해당지역의 본래 종주권이 과연 누구에게 있느냐, 나아가 그것을 바탕으로 장차 지역 패권을 누가 차지할 것이냐를 판가름하려는 역사전쟁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다시 8.15 광복절이 돌아온다. 예순여덟 번째 광복절을 맞아 “나라는 광복됐어도 역사는 광복되지 못했다”고 설파하는 안경전 종도사를 만났다. 1970년대 이래 안운산(安雲山, 2012년 작고) 태상종도사를 보필해 증산도를 이끌어 온 안경전 종도사는 그동안 우리 뿌리를 찾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도 진력해 왔다. 지난해에는 무려 30년 공력을 쏟은 『환단고기』 완간본을 펴내고 역사 콘서트 행사로 전국을 돌며 ‘진짜 역사, 진짜 한국사’를 이야기해 왔다. 군사력이 국가와 민족을 지키는 물리력이라면 역사 혹은 역사의식은 국가와 민족을 지탱하는 정신력이라 할 것이다. 나라와 민족과 역사까지도 지켜내야 할 우리 군에게 안경전 종도사의 역사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안경전 종도사가 말하는 ‘진짜 역사, 진짜 한국사’는 과연 어떤 것인가.

증산도가 ‘역사’를 중시하는 이유

일선 군부대를 가보면 기독교, 불교, 가톨릭, 원불교 교당들이 들어와 있고 제각기 군종(軍宗) 장교들도 봉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증산도는 군 쪽에서는 아주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동안 우리 증산도는 대(對) 사회적으로 홍보를 해왔습니다만 우리 사회가 민족문화를 등한시편찬이었습니다. 국내외 현장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증언을 듣고 내용을 확인하고 자료를 구하고 사진을 찍고, 그렇게 해서 『도전』 초판과 완간본을 내는 데 20년이 넘는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또 우리 한민족의 역사경전이라 할 『환단고기桓檀古記』 완역본을 내는 데도 꼬박 30년 걸렸어요. 그리고 방송국(STB상생방송)을 세우고 증산도 서적을 다각도로 펴내어 교리를 현대화하는 데도 숱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증산도대학교와 사이버대학교 등 교육과정을 통해 증산도 문화사업을 주도할 젊은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길러내기도 했고요. 그 하나하나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큰일들에 쫓기다 보니 아무래도 군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많은 인연을 맺지 못했고, 그 때문에 군에서 증산도와 우리 민족 문화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굵직한 일들이 일단락된 지금은 여유가 좀 생겼습니까.

“계속 내달리다 이제 한숨 돌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안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증산도가 해나가는 여러 가지 사업과 활동을, 우리 스스로 ‘한(韓)문화 운동’이라고 자부하거든요. 한민족의 문화와 전통, 역사와 철학, 종교와 사상을 발굴, 보존, 발전시켜서 종(縱)으로는 세대를 이어서, 횡(橫)으로는 널리 지구촌에 확산을 시키자는 겁니다. 광고를 일절 하지 않고 역사, 문화, 철학, 과학, 문학, 수학 등 품격 있는 프로그램만 24시간 방영하는 방송(STB상생방송) 프로그램을 보시면 증산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누구든 금방 짐작하실 겁니다. 일단 지금은 『도전』을 8개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한창이고 『환단고기』 또한 영어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부터는 오랫동안 왜곡된 채 방치돼 온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종도사님과 증산도가 역사문제에 남다른 관심이랄까 열정을 갖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증산도는 뿌리를 중시하는 진리입니다. 조상이 없이 내가 태어나 존재할 수 없듯이, 그 어떤 것도 뿌리 없는 생명은 없습니다. 뿌리는 오늘의 내가 살아가는 생명력의 원천이기도 하고 내일을 열어 가는 창조력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내 뿌리와 시원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증산도가 한민족의 뿌리와 역사 문제를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주제에 친숙했습니다. 조부님에서 부모님으로 저희 집안이 대를 이어 증산도 신앙을 했습니다. 그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다 보니 저 또한 자연스럽게 뿌리, 조상, 역사라는 주제들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증산도가 그렇게 오래됐습니까?

“증산도는 1871년 이 땅에 오신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 강증산(姜甑山) 상제님을 도주(道主)로 받드는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140년 넘었어요. 물론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인 상제신앙이란 측면에서 따지면 증산도의 연원은 9천 년 전, 저 상고시대까지 올라갑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신도들이 모여 본격적으로 도문(道門)이 형성되고 진리체계를 세운 것은 강증산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부터입니다.”

조부님께서 보천교 초창기부터 신앙생활을 하셨다는데요.

“증산도가 아니라 보천교(普天敎)라 할 때죠. 조선 인구가 2천만이 채 안 되던 그때 조선총독부 공식기록으로 보천교 신도가 전국 6백만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이 충청도 서산에서도 제법 ‘있는 집’이었는데, 조부님의 신앙이 독실하다 보니 전국에서 신도들이 이래저래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누가 오든 다 먹이고 재우고 차비까지 주어서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런 조부님 밑에서 아버님께서 일찍 신앙에 눈을 뜨시고, 그런 신앙의 힘으로 해방 후에 증산도를 부흥시키셨고요.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님께 일관되게 들은 두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올바른 가치관으로 정의롭게 살다 죽어야 된다, 그게 첫째이고, 둘째는 사람은 반드시 제 뿌리를 알고 뿌리를 받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제가 아버님을 모시고 일하는 동안, 또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아버님은 ‘우리 한민족은 역사와 문화를 죄다 잃어버린 불쌍한 민족이다. 뿌리를 찾아주고 역사를 찾아줘라’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습니다.

어머님의 영향도 컸죠. 날마다 새벽 세시 반이면 일어나셔서 방에다 청수(淸水)를 떠놓고 기도하고 태을주(太乙呪) 주문을 읽으셨습니다. 태을주는 상제님이 내려주신 우리 증산도의 으뜸 주문, 가을 개벽기의 생명의 주문이거든요. 어머님의 그러한 초지일관 신앙, 심지어 온통 편찮으신 몸으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상제님께 가정과 신도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모습, 그 모습이 언제나 절절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조부님과 아버님과 어머님의 독실한 신앙과 성실한 삶, 그런 순수한 신앙의 전통과 정신세계를 내가 제대로 정리하고 구체적으로 모습을 갖춰서 천하에 한번 드러내 봐야겠다, 그러면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증산도 진리사업과, 나아가 내 뿌리와 역사를 찾는 모든 일에 제 젊음과 한 생을 바치게 된 겁니다.”

가장 오랜 한민족의 전통 신앙의 열매, 증산도사람들은 흔히 증산도를 가리켜 ‘민족종교’라고 하는데 그렇게 이해하면 됩니까.



“우리 한민족 문화권에서 증산도가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증산도를 한민족의 민족종교로 규정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한민족은 동북아를 넘어 인류 태고 문화의 주인공으로서 현 인류 문명이 태동하기 시작하던 9천 년 전부터 신교(神敎)를 신앙해 왔습니다.

신교란 한마디로 온 우주를 다스리는 상제님을 받드는 인류 최초의 종교이자 원형 문화입니다. 이 신교를 되살려 계승한 것이 바로 증산도입니다. 그러므로 증산도는 원시반본 섭리에 따라, 한국 문화의 상징인 민족종교를 뛰어넘어 온 인류를 하나님 문화의 근원인 태곳적 상제신앙으로 하나 되게 할 수 있는 진정한 미래의 세계 종교입니다.”

상제신앙이란 용어는 오늘날 우리에게 생소합니다. 과연 어떤 것입니까?

우리 민족은 9천 년 전 한민족사가 시작되던 그 때부터 고려, 조선 초, 조선 말 고종 황제의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하늘의 상제님에게 천제(天祭)를 올렸습니다. 매년 봄가을에 임금이 제사장이 되어 천제를 올리고, 제를 마친 후에는 임금님부터 온 백성이 한데 어울려 대동 축제를 벌였습니다. 천제 문화가 곧 우리 조상들의 상제신앙인겁니다. 조선의 초대 단군왕검과 17세 여을단군께서 친히 천제를 올리던 제단이 남아 있는데, 그게 저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입니다. 지금도 전국체전을 열 때 거기서 성화를 채취하지 않습니까. 상제님께 제를 올리던 천제 문화가 죽 이어진 것이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등입니다. 조선 초기 태조, 태종, 세종 때까지도 하늘에 제사를 올린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다 세조 이후로 한동안 천제를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중국이 자신들이 천자의 나라라고 하며 조선의 천제 행사를 금지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다행스럽게도 조선 왕조가 동서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아서 망국의 위기에 처했을 때, 고종이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에 원구단을 지어 천제 문화를 부활시켰습니다. 고종은 상제님께 제를 올리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황제에 취임하였습니다. 이렇게 상제신앙은 한민족의 9천 년 역사 속에서 나라의 흥망과 운명을 같이 하며 면면히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제신앙이 어떻게 오늘날 증산도로 부활한 것입니까?

한민족의 상제신앙이 오늘의 증산도로 출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지금부터 143년 전의 증산 상제님 탄강 사건입니다. 증산 상제님은 서기 1871년에 전라도 고부 땅의 강씨 집안에 탄강하셨습니다. 증산(甑山)은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의 도호입니다. 상제님 강세 후 증산도가 출현함으로써 상제신앙이라는 한민족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되살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증산도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상제님께 바쳤던 대제전(大祭典)인 천제를 정기적으로 봉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백여 년 세월 동안 증산도가 인류 태곳적 문화인 천제 문화를 부활시키는 역사적 주인공 역할을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산도는 한민족의 원형 문화요 전통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증산도는 거대한 문명의 전환기를 맞이한 오늘의 인류가 기존 문화의 틀을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따라야 하는 미래 인류 통일문화 시대의 궁극의 진리입니다.”

상제신앙에서 ‘상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옥황상제’인가요?

“그렇습니다. 상제님은 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 동서양 모든 사람이 부르는 하나님입니다. 한민족이 그분을 부르던 원래 호칭은 ‘삼신(三神)상제님’인데 후대에 ‘옥황상제’로 바뀐 것입니다. ‘옥황상제’란 ‘천상의 수도인 옥경에서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이란 뜻입니다. ‘천신, 천주, 천제’라는 말도 모두 상제님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저 부여 때 영고(迎鼓), 맞이할 영 자에 북 고 자. 그 이름만 봐도 그게 어떤 행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의 주신(主神)이신 상제님을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건 그 말이 일본에 건너가서는 ‘마쯔리(축제)’가 됐습니다. 그게 우리말 ‘맞으리’, ‘우주의 원 주인이신 상제님을 맞이한다’ 해서 마쯔리거든요.
우리 민족은 그처럼 오랫동안 상제님을 모시고 살아왔습니다. 외래문화에 절어 버린 지금 사람들은 옥황상제다 하면 옛날 고리타분하고 주술적인 호칭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민족의 DNA 깊은 곳에는 인류의 하나님 문화 원형인 상제신앙, 상제문화가 박혀 있습니다.”

“가을개벽에 대비하라!”

그러면 ‘증산도는 종교다’라는 말은 맞습니까?

증산도가 종교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그렇게 딱 잘라서 종교라는 표현으로 테두리 짓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증산도는 종교를 넘어 한민족의 생활문화이자 전통이고 영성문화입니다. 가령 우리 신도들이 정기적으로 혹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데 그것을 치성(致誠)이라 합니다. 그 치성이 종교행사냐? 그게 아니라 그냥 일상이거든요. 한마디로 증산도는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큰 진리입니다. 이슬람 신도에게 이슬람교가 뭐냐, 물으면 단순한 신앙이나 종교를 넘어 그들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이끄는 진리요 일상 문화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듯이 한민족에게 있어서 증산도는 바로 종교 이상의 총체적인 생활 문화입니다. 증산교(敎)가 아니라 증산도(道)라 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구원과 천국을, 불교 신앙은 성불(成佛)을 기대합니다. 증산도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앞서도 말했지만 증산도는 1871년 이 땅에 오신 강증산 상제님을 도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 인류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을개벽에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가을개벽은 무엇입니까.

“그동안 인류가 안고 고뇌했던 풀리지 않는 진리의 수수께끼, 인간은 왜 태어나고, 무엇을 위해 살며, 삶의 진정한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성자들은 궁극의 시원스런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에 대해 우주의 주인이신 상제님이 동방의 이 땅에 강세하셔서 내려주신 해답이 ‘선·후천 개벽’관입니다. ‘개벽’은 본래 ‘하늘땅을 열어젖혀서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뜻입니다. 선·후천 개벽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주 1년의 순환주기(129,600년)’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누구도 알기 쉽도록 말씀해주신 분이 바로 증산도의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이십니다. 태상종도사님은 우주 1년의 한 소식을 한 장의 종이에 담아 내려주셨습니다.


지구 1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철은 인류가 초목 농사를 짓는 순환주기입니다. 봄·여름은 생장 분열하고 가을·겨울은 수렴, 통일하는 때입니다. 인간은 봄철에 곡식의 씨앗을 뿌리고 여름철에 무성하게 가꾸어 가을철에 알찬 열매를 거둡니다. 우주 역시 지구 1년과 같이 순환을 합니다. 우주 1년에도 인간 농사를 짓는 4계절이 있는 겁니다. 우주 1년에서 사람과 문명을 내어 기르는 생장 과정인 봄·여름을 선천(先天, 먼저하늘)이라 하고, 이를 거두어 수렴, 통일하는 과정인 가을·겨울을 후천(後天, 나중하늘)이라 합니다. 지구 1년이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로 순환하듯이, 우주 1년도 봄개벽, 여름개벽, 가을개벽, 겨울개벽으로 열려서 순환합니다. 이와 같이 지구 1년 사계절과 우주 1년 사계절은 변화 법칙이 동일합니다.

지금은 우주의 가을 문턱에 다다른 후천 가을개벽의 때입니다. 지나간 우주의 봄에 세상에 나온 인류와 뭇 생명이 봄·여름을 지나면서 온 지구촌에 퍼져나가고 문명을 이루고 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선천세상). 그리고 이제 우주의 가을철이 다가온 겁니다(후천세상). 가을철은 어떤 계절인가요? 봄·여름에 성장한 동서 문화의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는 결실과 성숙의 계절입니다. 지구 1년에서 농부가 가을철에 알차게 여문 곡식을 거두듯이, 우주 1년에서 가을개벽의 때를 거치면 열매를 거두고, 미처 성숙하지 못한 쭉정이들, 열매 맺지 못한 것들은 다 버려집니다.

그런 우주의 순환질서에 따라 이제까지 인류가 매달려 온 선천 상극 세상의 묵은 세상, 묵은 인간론, 낡고 묵은 지구의 세계 문명이 총체적으로 다 정리되고, 상제님이 다스리는 우주의 통치 원리인 상생과 해원, 뿌리를 찾는 원시반본의 법으로 새 세상이 열립니다. 그것이 후천 가을우주 개벽입니다. 이 엄청난 가을개벽이 언제, 어떻게 와서 세상을 바꾸는가 하는 자세한 이야기를 여기서 다 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증산도가 바로 그 가을개벽에서 내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인류를 구원하는 궁극의 진리라는 점입니다.


모든 종교 문화권에서 인류가 동경해 온 꿈 같은 세상을 증산도에서는 ‘후천선경(後天仙境)’ 낙원이라 하는데, ‘증산도는 개벽을 넘고 그 세상을 준비하는 공부요, 수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증산도는 개벽 때 자신만 아니라 민족과 인류를 구하고 새 시대를 열어나갈 인재도 꾸준히 길러내고 있습니다.”

증산도 1백 년사의 최대 결실, 『도전』 편찬


종도사님께서 증산도경전인『도전』편찬을 주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도전』은 어떤책입니까.

“『도전』은 아버지 하느님이신 강증산 상제님과 어머니 하느님(※증산도에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함께 모신다―편집자註)이신 태모 고 수부님의 탄강과 생애, 그리고 그 두 분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모든 성적(聖蹟)과 말씀 등, 증산도 진리의 핵심 내용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상제님의 가을철 문화의 대도(大道)를 담은, 후천 5만년 선경 조화낙원의 진리의 원전(原典)이어서 ‘경전’이라 하지 않고 ‘『도전』’이라 합니다.

돌아가신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뜻을 받들어 제가 『도전』 편찬을 맡아서 20여 년 만에 초판본 결실(1992년)을 맺었습니다. 거기 수록된 단 한줄도 누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강증산 상제님이 세상에 계실 때 직접 모셨던 성도들의 후손과 제자들을 일일이 만나서 증언을 듣고, 상제님이 공사보신 한반도와 지구촌에 있는 사료를 전부 뒤지고, 국내외 현장답사까지 거친 뒤에야 한 줄 한 줄 내용을 올렸습니다. 초판본이 나온 뒤에도 계속 그 작업을 이어서 그때부터 다시 11년이 지난 2003년에 지금의 완간본을 발간했죠.”

안경전 종도사의 『도전』 편찬 작업은 증산도 안팎에서 ‘강증산의 어천(세상을 떠나 하늘로 돌아감) 이후 증산도 1백여 년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 사건’으로 불린다. 안경전 종도사에게는 그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기념비적 사건’이 있었다. 바로 지난해 『환단고기』 완역본을 낸 것이다. 이 또한 무려 “30년 공력을 들인 필생의 사업”이다.

본래 『환단고기』는 신라, 고려, 조선조의 다섯 석학이 시대를 달리하며 집필한 역사서 다섯 권을 한 데 엮은 책이다. 일제 때 운초 계연수 선생이 한반도 전역과 만주를 오가며 민간에 비전(秘傳)돼 온 사서들을 찾아내 1911년에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출간한 것이다. 시대 상황에 억눌려서 숨고 이리저리 쫓기던 우여곡절 끝에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80년대.그 후 재야 사학자들은 줄곧 “이 『환단고기』야말로 환국-배달-(고)조선에서 (북)부여-고구려까지 한민족 고대사를 밝혀주는 독보적인 자료”라고 주장해 왔다. 반면 우리 역사학계의 주류이자 대학 및 각종 역사단체의 ‘자리’에 앉아 있는 강단학자나 교육당국에서는 이를 정통 역사서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는 입장이다. 자기들이 말하고 가르쳐온 내용과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까닭에 속된 말로 『환단고기』는 ‘교과서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30년 공력의 結晶, 『환단고기』 완역본


『환단고기』는 특히 전체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고 내용도 고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른 것이어서 번역이 쉽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환단고기』는 한국 고대사의 진실을 기록한 우리의 정통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국민에게는 그 이름과 내용이 낯설기만 하다.

안경전 종도사는 그런 『환단고기』 전문을 한글로 번역하고 여기에 주석과 주해, 관련 사진 등을 넣어 최초로 정확하고 알기 쉬운 역주본을 편찬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이 완역본 한 권으로 남녀노소 누구든 책의 내용과 우리 역사를 쉽게 이해하게 하려 했다”고 한다.

수많은 역사서 가운데 어떻게『환단고기』와 인연을 맺게 되셨습니까.

“제가 『환단고기』를 1982년에 처음 읽었는데 그 날 한민족의 뿌리와 인류 시원역사를 밝혀 놓은 그 내용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알고 있던 한국사는 중국과 일본 사학자들이 왜곡한 내용 그대로, ‘2천 여 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환단고기』를 보니 우리 역사가 그것보다 7천 년이나 더 있다는 엄청난 내용이 체계적인 연대기로 선명하게 쓰여 있더라 말이죠.『환단고기』는 천 년의 세월을 거쳐 다섯 명의 지성인이 쓴 다섯 권의 사서를 운초 계연수 선생이 1911년에 모아서 엮은 책입니다. 계연수는 호남의 3대 문호로 알려진 해학 이기 선생의 제자인데 그 때 이기 선생이 이 책을 감수했습니다. 처음 30권을 출판했는데 그 중 한 권을 계연수 선생의 제자인 이유립이 해방 후 월남할 때(1948년) 가지고 내려와서 대전에 정착하였고, 그 와중에 ‘커발한’이라는 잡지를 창간했습니다. 우리 집안에도 이 커발한이란 잡지가 있어서 어린 시절에 자연스레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환단고기』 원전을 손에 넣게 된 것이지요. 그 엄청난 사실을, 또 그때 받은 감동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번역을 시작하게 됐죠. 한 글자 한 글자, 번역도 번역이지만 그 내용을 입증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문헌 연구는 물론이고 현지답사, 고증 작업까지 다 거쳐서 완역본이라고 이름 붙여 내기까지 꼬박 30년이 걸렸습니다. 80년대에 증산도 내부에서 역사관 교육도 중점으로 시행하고 있었는데 『환단고기』 번역본이 그 때 여러 권 있었어요. 그런데 그 번역 내용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해서, 누구나 쉽고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완역본을 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헌 연구는 물론 위서론 논쟁의 허구성을 바로 잡는 데까지 모든 정력을 쏟았습니다. 이런 내용을 완역본에서 밝혔는데 그것이 책 앞머리에 있는 해제부분입니다. 완역본 전체 분량이 약 1,400쪽인데, 해제만 600쪽에 달합니다.”


『환단고기』의 책 이름은 어떤 뜻입니까.

안타깝게도 역사 전공자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도 『환단고기』란 책 이름이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고 있어요. 말 그대로 <환단의 오랜 이야기>란 뜻입니다. 즉 ‘환단시대 이래 우리의 본래 역사이야기’란 뜻이지요. 그러면 ‘환단(桓檀)’이 뭐냐? 먼저 환(桓)은 ‘환하다’ 할 때의 밝은 대광명을 말합니다. 우주와 온 세상을 비추는 하늘의 신성한 빛, 바로 천(天)광명을 뜻합니다. 그러면 단(檀)이 뭔지 금방 아실 겁니다. 단은 ‘땅의 광명’ 곧 지(地)광명입니다. 하늘의 광명한 기운을 받아 만물을 낳고 기르는 지구, 어머니 품과 같은 땅의 광명입니다. 결국 ‘환단’은 ‘천지광명’입니다. ‘『환단고기』’는 ‘천지광명을 체험하며 살던 한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는 뜻이 됩니다.”

왜 우리 한민족의 역사서에‘환단’이란 이름을 붙였을까요.

“환단은 한민족의 정신세계, 정신문화를 상징하는 가장 본질적인 단어입니다. 『환단고기』의 첫 책인 『삼성기』 상 첫 구절이 ‘오환건국 최고(吾桓建國 最古―우리 환족의 나라 세움이 가장 오래 되었다)’입니다. 여기서 환족이 누굽니까? 바로 오늘의 한민족의 조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환족(桓族) 자체가 하늘의 광명을 받은 민족, 백성이란 뜻이고 나아가 환족이 세운 첫 나라인 ‘환국’이란 하늘의 광명을 열어 국가 이념으로 삼은 나라란 뜻입니다. 그 뒤를 이은 ‘배달’도 ‘밝은 땅’이란 뜻이고이어 ‘조선(朝鮮)’도 ‘아침 해가 가장 먼저 밝아오는 땅’을 말합니다. ‘부여(夫餘)’란 국호도 ‘아침 해가 부옇게 밝아온다’는 의미이고 지금 우리 국호인 ‘대한민국’의 ‘대한’도 저 천지의 광명 ‘환단’이란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광명을 뜻하는 이 국호들은 우리 한민족이 대대로 광명 사상을 실천하며 살아 온 동방의 해 뜨는 나라, 우주 광명사상의 주인공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환단(桓檀)’과 ‘대한(大韓)’

‘환단’과 ‘대한(大韓)’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 대다수가 제 나라 이름인 ‘대한’의 뜻을 모릅니다. 그러면 ‘대한’은 뭐냐? 그것을 알려면 먼저 ‘한(韓)’의 뜻부터 알아야 합니다. ‘한’은 한마디로 ‘사람에 깃든 하늘땅의 광명’입니다. 하늘의 광명은 환(桓), 땅의 광명은 단(檀), 천지의 자녀인 사람에 깃든 광명은 한(韓)입니다. 환―단―한, 광명을 뜻하는 이 세 용어를 알아야 비로소 한민족의 역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 30년 연구자’로서 종도사님께서는 그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책 이름 그대로 한민족과, 한민족을 넘어 동서 인류의 창세 역사 원전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환단고기』는 중국과 일본 등 수천 년 동안 외세에 의해 왜곡되고 지워진 한민족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상고시대 환국―배달―고조선에서 북부여―대진(발해)―고구려/신라/백제/가야를 거쳐 고려―조선―대한민국까지, 장장 9천 년 동안 아홉 구비로 이어진 한민족의 국통(國統) 맥을 확연히 보여주는 유일한 기록인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또 역사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정치와 종교, 자연관, 인간관, 신관, 고유의 문화 사상, 언어, 생활 등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 고전이요 인류 문화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집트, 그리스 로마, 유대교와 이슬람교, 중동 문명의 근원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환단고기』는 지구촌 4대 문명의 근원인 요하문명을 창조한 최초의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한민족이 인류 문화의 창세 민족임을 확신합니다. 또 누구든 『환단고기』를 깊이 공부하면 역사 분야를 넘어 우주와 인생을 보는 큰 눈이 열리게 될 것이라 확언합니다.”

안경전 종도사는 『환단고기』 완역본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이 책을 들고 대중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전국을 순회하며 『환단고기』 북 콘서트 행사를 가진 것이다. 지난해 10월 부산을 시작으로, 서울, 대구, 대전, 광주, 전주를 거쳐 인천, 제주, 수원까지 이어진 이 행사는 매번 2천∼3천여 명의 청중을 불러 모으며 민족의 시원역사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반향을 일으켰다.큰 반향 일으킨 『환단고기』 북 콘서트


『환단고기』북 콘서트를 통해 현장에서 느끼신 점들은 무엇입니까.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역사 쪽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나 한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정말 많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으니까요. 『환단고기』가 대중에게는 매우 낯선 책인데 어떻게 그런 호응이 나오는 걸까, 그 이유를 제 나름대로 세 가지 정도 정리해 봤습니다.

▲첫째, 국민들 가슴에 잠재돼 있던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환단고기』 완역본 발간과 북 콘서트를 계기로 드러나고 결집하게 됐다. ▲둘째, 북콘서트가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전국적인, 또 연속적인 행사로 진행되면서 열기가 이어졌다. ▲셋째, 『환단고기』 완역본의 세밀한 내용과 방대한 볼륨이 내가 공 들인 만큼 독자들에게 어필했을 것이다. 여기에 또 환단고기 완역본이 과연 어떻게 나왔을까 하는 역사에 관심있는 대중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이 북 콘서트 열기와 상승작용을 일으킨 측면도 있을 겁니다.”

말씀을 들어보면 북콘서트가 단순히『환단고기』를 소개하는 성격을 넘어 우리 역사를 바로세우자는,좀 더 무거운 의미를 담은 행사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환단고기』는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초·중·고 국사 교육은 ‘한국사는 위만조선 이후 고작 2천여 년에 불과하다’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중국 패권주의 역사관과 일제의 식민주의 역사관으로 왜곡된 내용, 한마디로 환국―배달―(고)조선의 7천 년이 송두리째 사라진 역사입니다. 그래서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통해 ‘『환단고기』를 통해 그 잃어버린 민족사를 찾고 진정한 한민족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입니다.”

증산도 이야기에서 시작해 『환단고기』로 화제가 바뀌는 동안 안경전 종도사는 “우리 역사가 왜곡됐으며 그런 왜곡된 역사를 후세에 교육하는 것은 큰 죄악”이란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러면서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과연 우리 역사는 얼마나 왜곡됐으며, 또 어떻게 해야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일까? 인터뷰 주제는 자연스럽게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문제 쪽으로 이어졌다.

9천 년사에서 7천 년을 잃어버린 한민족지금까지 종도사님 말씀의 행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중국과 일본의 우리 역사 왜곡에 대해 굉장히 분노하고 계신 듯합니다. 우리 역사가 과연 어떻게, 얼마나 왜곡됐다는 것인지 사례를 들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허허허. 그것을 일일이 예로 들자면 책을 수십 권 쓴다 해도 모자랄 겁니다. 또 실제로 우리 증산도에서 그런 왜곡 사례들을 연구하고 찾아내서 자료화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모든 것을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우리 후세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현행 중고교 교과서 내용에 비추어 중대하고 심각하게 잘못된 내용만 간추려 보면 이런 것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교과서에서는 고조선 이전, 대륙을 무대로 세계를 호령하던 한민족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7대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시대, 18대 환웅이 다스리던 배달국 시대, 그리고 47대 단군왕검께서 다스리던 고조선 시대 7천 년 역사가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국사책 첫 머리에 실린 고조선 역사마저도 그야말로 스쳐 지나듯 기술돼 있습니다. 2천여 년 세월 동안 마흔일곱 분의 단군왕검께서 다스리신 고조선 역사가 그저 서너 쪽뿐입니다. 환웅이 사람으로 변한 곰과 혼인해서 낳았다는 단군신화와 단군이 제정일치의 지배자라는 이야기, 고조선이 요령 지방과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창했으며 중국의 연나라와 대립했다는 이야기가 단군조선 역사의 거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를 이어 위만조선이 등장하여 중국으로부터 철기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고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였으나 한나라 무제의 침략을 받아 망하고 그 자리에 한의 군현이 설치되었다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이 내용대로라면 한민족의 역사는 9천 년 또는 우리가 흔히 입버릇처럼 말하는 ‘반만년’은커녕 2천여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본은 또 어떻습니까. 일본은 ‘4세기 후반에 신공황후가 한반도 남쪽에 진출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두고 6세기까지 2백 년 동안 신라와 백제를 식민지로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임나일본부설(說)입니다. 신공황후의 한반도 정복 이야기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나오지만 그 내용이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일본이 한반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였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20세기 초에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여 지배한 것도 옛 식민지를 회복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일제 때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1925년 설치)는 이런 식의 역사왜곡을 주동한 기관입니다. 그런 왜곡과 날조를 통해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은 우리 민족의 뇌리에 ‘조선인은 스스로 개척해 온 역사가 전무하고, 그저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로 그 역사가 시작됐으며, 그 기간도 불과 2천 년에 지나지 않는 어리석은 민족이다’라는 의식을 심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자신들의 식민 지배를 수월하게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지금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건국의 역사를 물으면 너나 할 것 없이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동굴에서 100일 수행을 해서…’라고, 이른바 ‘단군신화’를 말합니다. 지금 세계 7위의 무역대국이 되고 지구촌 곳곳에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8천만 한민족의 역사가 과연 그처럼 단순한 신화에서 시작됐을까요?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 역사가 어떻게 그처럼 날조되고 왜곡됐는지 얘기하려면 며칠 밤을 세워도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환단고기』에 실린 『삼성기』 하에는 『삼국유사』와 같은 고기를 인용하면서 ‘웅과 호’를 ‘한 마리 곰과 한 마리 호랑이’가 아닌 하나의 족속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단군의 건국을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로 그리고 있습니다.


세세한 내용을 떠나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의 역사의식 혁명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왔다는 것, 그리고 왜곡된 중국의 중화주의 사관과 일본의 식민사관을 바로잡지 않고 후세들에게 그대로 가르쳐 왔다는 문제를 사무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궁극적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도 가능할 것입니다.”

식민사학의 길고 긴 그림자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벌써70년이되어가는데,그정도 시간이라면 왜곡된 역사 내용을 어느 정도는 바로 잡을 수 있었을 텐데요.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해방 이후 국내 역사학계를 주도한 이들이 누굽니까. 일제 때 식민사관 전통(?)을 이어받은 이들이 해방 이후에도 줄곧 사학계를 주도하였고, 다시 그 후학들이 우리 강단사학과 제도권에서 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 그런그들이 오랫동안 자신의 기득권을 보장해준 기존 교육내용이나 학설을 스스로 고치거나 뒤집을 수 있겠습니까.그들은 『환단고기』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조차 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예 읽어보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동안 『환단고기』의 내용이 사실(史實)임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와 자료가 많이 제시됐지만, 제도권 내 학자들은 그것을 화제 삼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 먼저 나서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아닌 누군가가 나서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우리 대한민국의 잘못된 역사 내용과 역사 교육은 70년 아니라 700년 지나도 달라지는 게 없을 것입니다.”

증산도에서는 앞으로도 우리역사 바로세우기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동안 『환단고기』 완역본을 내는 데 많은 시간과 힘이 들어갔습니다. 일단 그것만으로도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의 중요한 계기랄까 든든한 발판이 마련됐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우리 증산도를 중심으로 이미 뜻있는 분들이 모여 우리의 바른 역사를 찾으려는,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환단고기』 북 콘서트를 통해 우리 진짜 역사에 대한 국민들의 잠재된 열망도 적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크든 작든 우리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실을 가져오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역사 문제와 관련해,특히 우리 군에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면.

지금 나라 안에서는 역사과목을 둘러싼 논쟁이, 나라 밖에서는 영토권을 둘러싼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동북아의 역사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무려 4,700년 전에도 우리 동방의 치우천황과 중국의 헌원 사이에 지역 패권을 둘러싼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후 수천 년 동안 한·중·일 중에 과연 누가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은 진짜 천자국이냐 하는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역사전쟁이 진행돼 왔고, 지금도 그 연속선상에서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여기에 우리 한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우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신교 문화에서 시작된, 나라와 민족과 역사를 수호하는 낭가문화(郞家文化)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낭가는 상무(尙武) 정신으로 무장한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 세력으로서 고조선의 국자랑, 북부여의 천왕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신라의 화랑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우리 군(軍)은 대한민국의 최전선에서 국가와 민족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한민족 낭가의 후예들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강군(强軍)은 단순히 좋은 무기를 갖추고 힘이 세어서 전투를 잘 하는 군인을 의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9천 년 우리 낭가 문화의 전통이 그러했듯이 우리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내 나라 내 민족, 내 문화와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치열한 역사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진정한 대한의 군이 되어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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