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극 질서와 원한의 역사


선천 세상의 창조 질서, 상극
그러면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선천 세상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원리에 따라 둥글어 왔을까요?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2:17:1)


선천은 상극의 이법으로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상극 질서 속에서 태어나 살아갑니다.


여기서 상극이란 문자적으로 서로 상相, 이길 극克으로서 ‘서로 극한다, 제어한다, 대립한다’는 뜻입니다. 봄에 새싹이 나오려면 땅을 뚫고 올라와야 하고, 아기가 태어나려면 어머니의 산도産道를 찢고 나와야 하는 것, 이것이 상극입니다. 봄여름 철에는 상극 질서에 의해 생生과 장長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극은 ‘자연의 창조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증산 상제님께서는 상극을 ‘문명의 발전 원리’로도 말씀하셨습니다. 즉 ‘도전에 대한 응전이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역사학자 토인비(A.Toynbee)의 말처럼, 인류는 끊임없이 극을 받지만 그것을 극복하면서 찬란한 문명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상극 질서는 그 근원을 살펴보면 천지 부모의 몸이 기울어진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우주의 봄여름에는 대우주 천체가 기울어져서 돌아갑니다. 생명의 어머니인 지구도 23.5도 기울어져 있습니다. 천지 부모가 생명을 낳는 방위인 동북 방향으로 몸을 눕혀서 만물을 쏟아 냅니다. 그 때문에 생명을 많이 낳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 상극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선천은 상극의 운이라!’, 참으로 단순하고 간결한 이 한 마디 말씀 속에 지나간 선천 5만 년 고난의 역사가 다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죄악 문제, 인간관, 신관, 우주관 등 풀리지 않았던 진리의 비밀이 다 담겨 있습니다.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천지의 상극 질서는 선천 세상의 생장과 발전의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인간과 만물은 끊임없이 대립하며 갈등을 겪어 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지 부모의 몸이 양陽의 방향인 동북방으로 기울어진 선천에는 하늘과 땅의 관계가 3양 2음이 되어 양의 기운이 음의 기운을 눌렀습니다.[억음존양抑陰尊陽] 천지 기운이 그러하므로 천지에서 몸을 받아 태어난 인간과 만물 또한 억음존양 시대를 살아야 했습니다. 어머니 땅보다 아버지 하늘을 더 숭배하고,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핍박하였습니다.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2:17:1~2)


이 말씀과 같이 음양이 부조화에 빠진 상극의 천지 질서가 인간 역사에 갈등과 투쟁, 반목과 전쟁 등 온갖 사회악의 문제를 유발시켜 왔습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돌아보십시오. 선천 역사는 실로 크고 작은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개인 간의 대립과 투쟁, 국가 간의 온갖 참혹한 테러와 비극적인 전쟁이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또한 가족끼리 싸우지 않는 집안이 거의 없습니다. 상제님은 “전쟁은 가족 전쟁이 가장 크다”(3:164:6)고 하시며 가족 간의 반목과 불화를 경계하셨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내면에서 자기 자신과도 끊임없이 싸웁니다.


요컨대 인간 세상의 분란과 전쟁의 비극은 반드시 인간 자신의 도덕성이 결여되어서, 신을 믿지 않아서, 또는 가치관이 달라서 생기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표면적 이유일 뿐, 근본적으로는 선천 봄여름 대자연의 창조 질서 자체가 상극이기 때문입니다. 천지 부모가 ‘상극의 몸짓’으로 만물을 낳고 기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상극 질서가 낳은 최종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원한입니다.


선천에는 음양이 고르지 못하여 원한의 역사가 되었으나 … (11:179:12)


억음존양의 선천 세상을 살다 간 인간은 누구도 가슴 속에 ‘원과 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안운산 태상 종도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류 역사가 창시된 이후로 지금까지 사람 두겁을 쓰고 생겨나

원한을 맺지 않고 살다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리하여 선천 말대인 오늘날에 이르러 누적된 원과 한의 무서운 파괴력 때문에 천지가 무너질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 (2:17:5)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아미스타드Amistad』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백인들이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먹는 내용입니다. 16세기부터 약 3백여 년 동안 6천만 명에 달하는 흑인이 노예로 팔리고 참혹하게 죽어갔습니다.



『노예의 삶 Slavery and Atrican Life』에 실린 삽화. 아프리카인 3대 가족이 쇠사슬과 형틀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



그 영화를 보면, 백인 노예상들은 흑인들을 배에 싣고 망망대해를 가다가 흑인들이 병들거나 노동력을 상실하면 잔인하게 죽여 버립니다. 하늘을 찢는 듯한 흑인들의 절규! 죽음의 순간에 외친 그들의 처절한 비명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천지 안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 원과 한을 깊이 느껴 보십시오! 그것을 못 느낀다면 지구촌에서 온갖 참혹한 재앙으로 터지고 있는 원과 한의 본성과 그 파괴력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천지가 무너져 내릴 정도로 무섭고도 심각한 원한의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선천 인류의 성자로 불리는 공자, 석가, 예수의 가르침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선천 성자들의 가르침도 훌륭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가르침은 종교 문화권 간에 충돌을 일으켜 오히려 원한을 가중시켜 온 면이 적지 않습니다. 지구촌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종교 전쟁이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 원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인 상극의 운을 끝내야만 합니다. 그래서 천지 살림을 주관하시는 상제님이 친히 오셔서 ‘내가 우주의 상극 운을 끝맺으려 한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실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천지의 상극 질서를 새 질서로 바꿔 주시기 위해,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 천상옥좌에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