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인간과 신명이 해원하는 때

지금은 인간과 신명이 해원하는 때


원한이란 무엇인가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보면, 조준구라는 자가 재산을 다 뺏으려고 하자 어린 서희가 눈에 시퍼런 칼날을 품고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테야!”라고 절규합니다. 하도 못살게 구니까 원한이 사무쳐서 천진난만하던 어린아이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 나온 것입니다.


이렇듯 원寃은 남에게 일방적으로 당해서 가슴이 아픈 것을 말합니다. 원은 개별적인 정서로서 개인의 삶과 환경에 따라 내용이 다양합니다.


반면에 한恨은 보편적인 정서입니다. 사람은 자생自生하는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 근본 과제 때문에 가슴에 나름대로 한이 맺힙니다. 예컨대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영혼에 상처가 생겼다면, 그것이 한이 됩니다. 인간이 성숙해 나가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가 축적되어 맺힌 것이 한입니다.


이러한 원과 한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아, 나는 좋은 집에 태어나 배부르게 잘 먹으며 즐겁게 살고, 또 사업도 잘 돌아가니, 그런 건 내가 알 바 아니다. 원한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지, 원한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나!”이렇게 이야기하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상극 질서 속에서 파생된 인간과 신명의 원한이 ‘인류 역사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원한은 선천 말대를 사는 인류의 내면 깊은 곳, 의식의 저 깊은 곳에서 천지의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천지 안에 가득 차 있는 원과 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새 세상을 열 수가 없습니다. 새 세상이 올 수도 없습니다. 지축이 서서 자연 개벽이 백 번 천 번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현실 세계는 더 참혹한 원한의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 뿐입니다.



척이 없어야 잘 산다
인간이 품은 원한의 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증폭됩니다. 여기서 증오심이 생기고, 보복의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을 한 글자로 척隻이라 합니다. 남에게 원한을 맺게 하여 그 사람과 원수지간이 되는 것을 ‘척 짓는다’고 합니다.


선천의 역사는 악척의 역사였습니다. 피의 역사요, 보복의 역사요, 저주의 역사였습니다. 그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조선조 7대 임금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내쫓고 왕이 돼서는, 사약을 내려 단종을 죽이고 시신은 강원도 영월 강변에 버리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 왕후가 세조가 졸고 있을 때 꿈결에 나타나, “에이 나쁜 놈, 더러운 놈!” 하면서 침을 뱉어 버립니다. 그 뒤로 세조는 그 침 맞은 자리에 피부병이 생겨서 평생을 앓다가 죽습니다.



그리고 당시 세조를 도와 모사를 한 한명회도 뒤끝이 안 좋았습니다. 한명회는 제 딸을 왕후 만드는 일에 평생을 애쓰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들 가운데 조선 제8대 왕인 예종의 원비가 된 장순 왕후는 자식 하나 낳고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그 다음 왕인 성종의 왕비가 된 공혜 왕후도 자식 하나 없이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한명회의 동생도 29세에 요절해 버렸습니다. 모두 척이 발동해서 신명이 잡아간 것입니다.


이 외에도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니 사람은 세상을 좋게 살아야 합니다. 덕을 베풀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남 잘 되는 것 못 보고 남에게 해코지를 하면, 반드시 척을 받아 생을 좋게 마감할 수 없습니다. 해코지당한 사람들이 죽은 뒤 척신이 되어 가해자는 물론이고 그 자손 대까지 쫓아다니며 철저하게 보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산 상제님께서는 ‘척이 없어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상말에 ‘무척 잘 산다’ 이르나니 ‘척이 없어야 잘 산다’는 말이니라. (2:103:1)


“무척 잘 산다”에서 ‘무척’은 요즘에는 ‘다른 것과 견줄 수 없이’, ‘대단히’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상제님은 이 말을 ‘남과 척이 없다. 남에게 미움 사는 게 없다’는 의미라고 풀어 주셨습니다.




‘뱃속 살인’이 남기는 하늘을 꿰뚫는 원한


원과 한의 실상을 밝혀 주신 상제님께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자의 원한에 대해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로 낙태아의 원한입니다.


뱃속 살인은 천인공노할 죄악이니라. 그 원한이 워낙 크므로 천지가 흔들리느니라. (2:68:1~2)


태아는 부모의 합궁으로, 음적 기운인 어머니의 난자와 양적 기운인 아버지의 정자가 만나서 만들어집니다. 이 태아가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입혼入魂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늘사람[神, 魂]이 그 집안 조상신들의 입회하에 어머니 자궁 속 태아에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입혼식이 거행된 후, 태아는 모태 속에서 조상신의 음호를 받으며 출생하는 순간까지 성장합니다.


그런데 임신 중절을 하면 태아의 영靈과 육肉이 갈가리 찢기고 유린되어 그 신명은 철천지한徹天之恨을 품고 천지간을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밤톨만 한 신체, 잘려 버린 손과 발, 처참하게 찢겨진 상처!


영으로 보면, 낙태당한 그 어린 신명들도 우리와 똑같이 생각도 하고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 신명들은 수십 수백 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원망이 가득 찬 눈으로 우리를 노려봅니다.


그런데 그 신명들은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자살을 합니다. 자기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명의 자살 사건입니다.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박치기를 하거나, 전쟁터에 가서 쏟아지는 포탄에 몸을 던져 자기를 해체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상제님이 “예로부터 처녀나 과부의 사생아와 그 밖의 모든 불의아의 압사신壓死神과 질사신窒死神이 철천의 원을 맺어 탄환과 폭약으로 화하여 세상을 진멸케 하느니라” (2:68:3~5)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천지는 신명들의 원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교화敎化를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그 경지를 벗어난 것입니다. 물론 해결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여름철 말까지는 대세가 이렇게 원한의 역사로 둥글어 갑니다. 결국 상제님이 오셔서 모든 인간 문제가 크게 한 번 정리되어야 새 세상을 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