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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 소도제천의 땅 영고탑寧古塔

2016.11.19 | 조회 1402 | 공감 4

단군조선 소도제천의 땅 영고탑寧古塔




흑룡강성 영안시에 있는 영고탑 옛성 유적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에 나오는 ‘영고탑’이 청나라(1644~1911)의 시조 전설과 관련 있는 지명이므로, 『환단고기』는 청나라 이후에 꾸며진 위서라고 주장한다. 대표적 위서론자인 조인성은 영고탑은 청나라 성립 이전에 사용된 지명이 아니기 때문에 고려말 이암의 『단군세기』나 조선 초기 이맥의 『태백일사』에 나올 수 없음으로 『환단고기』가 위작이라고 했다. 이도학 또한 『만주원류고』의 한 가지 기록을 근거로, ‘영고탑’이라는 지명이 쓰인 것이 『환단고기』가 위서임을 증명하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과연 이들 주장이 맞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영고탑이라는 명칭의 등장하는 기록에 대해서 현재까지 통설로는 『흑룡강지명고석黑龍江地名考釋』에서 “영고탑이라는 명칭은 『청대사지淸大事志』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만력萬曆36년(1608) 가을 9월에 호이객로呼爾喀路 사람들이 우리 영고탑성寧古塔城을 침입하였다. 이곳은 당시에 영고탑로寧古塔路라고 하는 곳이다(寧古塔名稱始見於于淸大事志, 萬曆三十六年秋九月, 呼爾喀路人侵我寧古塔城, 當卽所謂寧古塔路也)”라고 한 데서 찾는다.


여기서 말하는 ‘영고탑성’이나 ‘영고탑로’에 관련해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는『명실록明實錄』을 인용하여 “명나라 초기에 동해와집부東海窩集部를 설치했는데 여기에는 호이합呼爾哈, 혁실혁赫實赫, 영고탑寧古塔 등의 로路가 속한다(國初名東海窩集部, 所屬有呼爾哈, 赫實赫, 寧古塔等路)”라고 하였다. 


따라서 영고탑이라는 명칭은 1608년부터 정식으로 정사正史에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고, 적어도 명나라 초기부터(1368년 명나라 건국) 사용되기 시작하여 『청대사지淸大事志』에서 말한 1608년보다 훨씬 앞서 사용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金石柱·김남신, 「寧古塔에 對한 歷史地理的考察」, 『문화역사지리』제22권 제3호,  2010. p92~103.)


영고탑이라는 명칭이 정사에 기록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었는데, 기록에 나오는 영고탑 위치도 한 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는 현재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시寧安市와 해림시海林市에 속하는 지역을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요령성遼寧省 신빈현新賓縣의 일부 지역을 가리킨다. 


현재의 영고탑은 구성舊城과 신성新城으로 구분 되는데 구성은 흑룡강성 영안시 고성촌古城村에 있다. 청나라 초기에 한족漢族 사대부로서 영고탑으로 유배된 오조건吳兆騫의 아들 오진신吳振臣이 쓴 『영고탑기략寧古塔紀略』에서는 금나라 아골타가 기병한 곳으로 여섯 형제가 여섯 개의 주요한 마을을 이루어서 영고탑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금의 아골타가 기병한 곳으로 비록 탑이란 이름을 쓰고 있으나 실제로는 탑이 없다. 전해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예전에 형제 여섯이 있었는데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였다. 만주어에서 ‘六’을 ‘닝구寧古’라고 하고 ‘個’를 ‘타塔’이라고 한다. 영고탑이란 말은 중국어로 ‘6개’라고 한다[金阿骨打起兵之處, 雖以塔名, 實無塔. 相傳昔有兄弟六個, 各占一方, 滿洲稱六爲寧古, 個爲塔, 其言寧古塔, 猶華言六個也]”라고 하였다.


양빈楊賓의 『유변기략柳邊紀略』에서는 “영고탑이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모른다. 전하는바에 따르면 어떤 노인이 아들 여섯 명이 있어 점차 이 지역을 영고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떤 이는 육조六祖의 발상지라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寧古塔之名, 不知始於何時, 寧古者漢言六, 塔者漢言個, 相傳, 有老者生六子, 遂以之名其地, 有指為六祖發祥之地者非).”라고 하였다.


청조가 일어난 발원지는 현재의 흑룡강성의 영고탑이 아닌 요령성 신빈현 소자하蘇子河 상류 일대이다. 청나라 시조인 경조景祖와 그의 다섯 형제가 각각 여섯 개 성(六祖城)을 쌓고 살게 되면서 영고탑버일러(寧古塔貝勒)라는 명칭이 생겼다. 청태조 누르하치는 영고탑패륵寧古塔貝勒을 바탕으로 주변의 건주建州 여러 여진부락들을 통일시키면서 세력을 키워 1616년에는 후금後金을 세웠다.

흑룡강성 영안시와 요령성 신빈현 지역 모두 만주족의 역사와 관련된 주요한 마을과 성을 모두 숫자 여섯과 관련 짓고 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보면 영안시 지역이 신빈현 지역보다 영고탑이라는 명칭이 먼저 타나났다.



영고탑 옛성 터와 남은 성벽


살펴본 바와 같이 『환단고기』에 나오는 영고탑은 청나라 이전에는 사용될 수 없다고 단정한 조인성의 주장은 영고탑이란 말이 『만주원류고』나 『영고탑기략』에서 명나라 초기부터 쓰였다는 기록이 나오기 때문에 잘못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영고탑이란 말은 이미 명나라 이전부터 영고탑성寧古塔城, 영고탑로寧古塔路, 동해와집부영고탑로東海窩集部寧古塔路라는 명칭이 있었다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영고탑에 대하여 제주대 명예교수 안창범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나오는 기록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만주어로 ‘여섯’은 영고라 하고 ‘자리’는 특特이라 한다. 영고탑은 본래 영고특寧姑特에서 영고태寧古台로, 영고태寧古台에서 영고寧古塔으로 와전된 것이며, 구설舊說로서 지명이 아니다.”라는 기록에 근거하여 ‘영고탑’은 지명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영안의 옛 탑’이라는 뜻이며, 단군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건물 모양의 탑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영고탑에 대해 여러 주장이 있지만 모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배달 신시시대 때부터 음력 10월을 한 해의 첫머리로 삼아 상달이라 하였다. 그리고 매년 10월이 되면 항상 국가적 대제전[國中大會]를 열어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지냈다. 


삼신상제님을 맞이하는 제천의식을 영고迎鼓라고 하는데, 『단군세기』에 보면 제16세 위나尉那단군이 구환족의 모든 왕을 영고탑寧古塔에 모이게 하여 삼신상제님께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고, 44세 구물단군 재위 2년(BCE 424), 3월 16일에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를 올렸다고 하였다. 


또 서진西晋(265~316)의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부여夫餘조에는 “은나라 정월(殷正月, 음력 12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나라의 성대한 모임에는 날마다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는데, 이를 영고迎鼓라 한다[殷正月로 祭天하고 國中大會에 連日飮食歌舞하니 名曰迎鼓라]."라고 하였다. 부여는 고조선을 이은 나라이므로 영고제는 곧 고조선의 제천행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영고탑이란 말은 바로 삼신상제님께 영고제를 지내던 소도 제천단 성지를 일컫던 지명(영고제를 지내던 터)인데, 후대에 청나라가 그 땅을 차지하면서 그들 언어와 발음이 같음으로 인해 와전된 것으로 봐야한다. 따라서 영고탑은 영고제迎鼓祭의 ‘영고迎鼓’가 원래 의미가 잊혀져 ‘영고寧古’로, ‘장소’라는 우리말의 ‘터(장소)’를 특特, 태台, 탑塔 등으로 음사하면서 영고탑寧古塔’으로 정착됐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단군세기』에 ‘20세 고홀단군 36년에 영고탑을 개축했다’는 것은 소도 제천단을 다시 고쳐 쌓았다는 말이다.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이 영고寧古가 “6”을 뜻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 그것은 한자어 ‘영고寧古’가 만주어‘닝군(Ninggun)’으로서 숫자 여섯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고탑이 만주말로  '6개'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하여 그 이전에 다른 의미로도 존재하였다는 가능성까지 배제하는 것은 학자로서 좋은 태도가 아니다. 영고탑 유래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음에도 위서론자들이 ‘영고탑’을 오직 청나라 때 만들어진 지명으로만 해석하려는 태도는 우리 역사를 축소 왜곡했던 일제 식민사관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영고탑이란 지역이 북부여北夫餘 이후 황폐화 되고 고구려, 대진국(발해)의 자체 역사기록이 사라지면서 유래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어졌다. 다만 그 이름만 간신히 전해지다가 청나라 시조 전설과 맞물려 ‘영고迎鼓터’가 ‘영고탑寧古塔’으로 잘못 기록되면서 정확히 알기 어려웠던 것이다. 따라서 위서론자들이 제기한 영고탑 명칭의 청나라 발생에 따른 위서론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억지 주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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