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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세기 문화코드] 12. 고조선의 음식문화

2017.08.29 | 조회 391 | 공감 0



12. 고조선의 음식문화


고조선 사람들은 오곡을 주식으로 사용하고, 돼지·소·말·양·닭 등 집짐승을 길러 고기를 얻고, 사냥으로 산짐승을 잡아 고기와 가죽을 이용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역에서는 어렵이나 유목으로 생활하였다.


신석기시대부터 밭작물이 재배되었는데 곡물로는 조, 기장, 콩, 팥, 피, 수수 등이었다. 또한 평양시 남경유적에서는 5000년 전 탄화미가 한 구덩이 안에서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종자는 현재 우리가 먹는 쌀과 같은 단립 종이다. 단립 종은 야생 벼가 아닌 재배종으로 벼농사가 이미 정착되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남한에서는 최근 경기도 고양시 일산 가와지 유적에서 발굴된 볍씨가 5000년 전의 재배종으로 밝혀졌다. 국제학계에서는 3000년 전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 탄화미를 한반도 쌀농사의 기원으로 인정해 왔다. 이러한 오곡과 더불어 대마나 황마 같은 섬유식물도 재배되었다. 




[탄화미]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에서 발굴된 탄화된 쌀이다. 평균 길이 3.7㎜, 너비 1.6㎜로, 길이와 너비의 평균 비례가 1.62인 자포니카이다. 연대는 기원전 13∼12세기까지 소급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5000~6000년 전 한반도와 만주는 현재보다도 3~5도 높은 온난 다습한 기후였기 때문에 벼농사가 신석기시대부터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조선시대에 들어 농업 기술의 발전과 생산력이 높아졌다. 그것은 출토되는 농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BCE 3000년 후반기에 해당하는 평양 일대 집자리 유적에서는 수확도구인 반달돌칼이 그 이전에 발견되는 것보다 2~3배 더 많이 발견된다. 


고조서 말기에 해당하는 북한과 만주의 유적에서는 호미, 낫, 괭이, 삽, 도끼 등과 같은 다양한 철제 농기구들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농사에 가축을 이용하였다는 증거로 소뼈와 큰 나무후치, 복원한 크기가 바퀴살이 24개, 직경이 1.6m 되는 짐수레용 바퀴로 여겨지는 조각이 나왔다.


『한서』 「지리지」는 고조선에서 음식을 먹을 때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그릇을 사용했다고 기록하였다. 나무는 쉽게 썩기 때문에 유물이 발견되는 예가 드물다. 나무 외에도 바리, 접시, 굽접시, 시루, 단지, 항아리 등 여러 가지 그릇이 나오는데 이것은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음식을 먹는데 이미 숟가락을 사용했다. 함경도 서포항 유적지 등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숟가락과 동물 뼈로 만든 숟가락이 출토되었는데 손잡이에는 조각까지 새겨져있다. 


고조선 사람들은 음주가무를 즐겼으므로 일찍부터 술을 만들어 마셨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 부여 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 고조선인들의 제천의식. 출처는 <한국생활사박물관> 제2권.


“음식을 먹는 데는 조두를 쓴다. 모임에서는 벼슬 높은 이에게 절하고 잔을 씻어서 술을 권하며 읍하고 사양하면서 오르내린다. 섣달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매일 연이어 큰 모임을 가져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노는데 이것을 ‘영고’라고 한다[食飮用俎豆 會同拜爵洗爵 揖讓升降. 以臘月祭天 大會連日 飮食歌舞 名曰迎鼓].” 


부여는 고조선을 바로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에 고조선 역시 음식문화가 같았을 것이다.


* 관련 기사 

- “일본보다 600년 앞선 탄화미 발견… 내 인생 최고의 유물”

http://news.donga.com/Culture/more29/3/all/20160713/7916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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