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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세기 문화코드] 17. 9년 홍수와 도산塗山

2018.04.10 | 조회 798 | 공감 0


17. 9년 홍수와 도산塗山


도산塗山은 현재 회계산會稽山으로 하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의 치수治水전설이 깃든 곳이다. 우가 홍수를 다스릴 수 방법을 얻기 위해 간절히 기도한 뒤, 현이玄夷의 창수사자蒼水使者로 부터 금간옥첩金簡玉牒을 전수받고 깊이 연구하여 마침내 홍수를 다스릴 수 있었다고 한다. 회계산은 원래 모산茅山으로 불렸는데 우가 천하의 제신을 모아놓고 치수를 상의하고 공공共工을 토벌한 뒤 회계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회계會稽란 회계會計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곧 모아놓고 계획을 의논한다는 뜻이었다. 우가 뒷날 남방을 순시하다가 회계산에 이르러 병이 나서 죽자 그를 그곳에 장사지냈는데 지금도 대우릉大禹陵이 남아있다. 




전설에 따르면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리다가 물의 신인 공공共工과 다투게 되었다. 우임금이 응룡 등을 시켜 자꾸 물길을 파기도 하고 막기도 하니 물의 신인 공공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공공과 일전一戰이 불가피하게 되자 우 임금은 회계산會稽山에서 모든 신神들을 소집하였다. 그런데 다른 신들이 모두 제시간에 모였는데 가장 가까운 지역에 있는 방풍 씨가 제일 늦게 도착했다. 이에 화가 난 우임금은 당장 무사를 시켜 참수형을 명하였다. 그런데 방풍 씨의 키가 3장(9m)이나 되어 높은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망나니가 올라가서 목을 베었다 한다.


그로부터 2천 년 후 춘추春秋시대에 오吳나라의 왕 부차夫差가 월越나라의 왕 구천句踐을 공격하여 월나라 군을 회계산에 몰아넣고 포위를 하였을 때, 오나라 군사가 산속에서 큰 뼈무더기를 발견하였다.  그런데 뼈마디 하나가 수레 하나에 가득 찰 정도로 컸다. 후에 오나라 사신이 노魯나라에 왔다가 공자를 만나 그 뼈의 정체에 대해 물었더니 공자는 우 임금에 의해 처형된 방풍 씨의 뼈일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다 한다. 


이 도산회의에 대한 진실은 『환단고기』「단군세기檀君世紀」와 「번한세가番韓世家」에 잘 나타나 있다. 단군왕검 50년에 홍수가 나자 팽우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 한편 중국에서는 요임금이 곤鯀에게 치수를 명하였으나 실패하여 순舜이 곤을 참하고 아들 우에게 책임을 맡겼다. 우가 집안을 돌보지 않으면서 치수에 힘썼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에 단군왕검께서는 태자 부루를 보내 순임금과 약속하게 하시고, 도산塗山회의를 소집하셨다. 순임금은 사공司空 우禹를 보내 고조선의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를 전수받고 고조선의 제후국들의 도움을 받아 치수에 성공을 하였다.


우 임금이 회계산에서 현이玄夷의 창수사자로부터 『금간옥첩金簡玉牒』을 전수 받았다는 사건은 곧 부루 태자로부터 동방의‘오행치수법’을 전수 받은 역사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방위에 따라 색을 배치할 때 북방을 검을 현玄으로 표현하였는데 고조선이 북쪽에 있었으므로 현이玄夷로도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에서 9년 홍수를 맞았을 때는 전 세계적으로 홍수가 있었다. 이 대홍수에 대한 기억은 세계 여러 민족에게서 홍수신화로 전해지고 있다. 기독교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는 BCE 2348년에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비슷한 시대 점토판에 기록된 수메르의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홍수의 규모나 방주가 등장하는 장면, 주인공들의 이름만 바꿔 기록한 것이다. 약 4300년 전 당시의 세계적인 대홍수는 홍수로 사라졌던 문명의 흔적을 고고학 발굴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지난 8천 년 간의 세계 우량변화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우량의 급격한 증가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기후학자들이 밝혀냈다. 다만 노아의 홍수에서 모든 인간이 절멸하고 노아일가와 노아의 방주에 산 동물만 살아남았다는 구약의 기록은 단지 신화적 묘사에 불과한 것이다. 




그밖에 구약에는 고대 한민족의 설화와 유사한 내용들이 적지 않다. 특히 복희‧여와씨의 전설이 눈길을 끈다. 하늘에 닿는 대홍수를 겪고 난 뒤, 대지 위의 모든 인간들은 모조리 죽었는데 호리병박 속에서 복희‧여와 오누이가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한 부분은 노아의 홍수설화에 비견할 만하다. 우리 고유의 경전인 '신사기神事記'를 보면 홍수 이후 인간이 다 죽고 동‧서에 남녀가 하나씩 떨어져 살다가 오래 지난 후에 서로 만나 종족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독교나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홍수신화는 대부분 대홍수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일방적인 피해를 보고 극소수만 살아남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동방은 우리의 신교 우주철학을 치수사업에 적용해서 능히 홍수를 다스렸던 것이다.



9년 홍수와 노아의 홍수 비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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