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젠 패러다임 깨야 스님·목사님도 내 강의 듣죠”

환단스토리 | 2016.09.19 19:34 | 조회 6579



“이제 종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은 초종교적 영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강화도에 심도학사 세운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이달 초 강화도에 있는 심도학사를 찾았다. 바다와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모던한 디자인의 현대식 건물이 있었다. ‘심도학사(尋道學舍)’. 글자 그대로 ‘길을 찾아가는 공부집’이다. 국내 종교학계의 거두인 길희성(73) 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가 5년 전에 전재산을 털어서 지은 공간이다. 길 교수는 매주 토·일요일에 1박2일 프로그램으로 동·서양 종교의 고전을 넘나들며 영성과 종교와 철학을 강의한다.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은 아예 금요일 밤부터 이곳에 와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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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 교수는 “종교는 제도와 벽에 갇힌다. 그러나 영성은 거기로부터 자유롭다. 심도학사는 특히 불교와 기독교의 소통과 화합에 역점을 둔다”고 말했다. [강화도=김경록 기자]



[출처: 중앙일보] “종교 이젠 패러다임 깨야 스님·목사님도 내 강의 듣죠”


강의는 토요일 아침부터 시작됐다. 학생들은 10여 명쯤 됐다. 기업체 대표도 있고, 아이 셋을 둔 가정 주부와 삶의 의미를 찾는 증권 전문가, 영어 강사와 약사, 가톨릭의 신부 등도 있었다. 개신교와 불교, 가톨릭과 유교 등 이들의 종교적 배경은 다양했다. 종교는 없지만 ‘진리와 영성’에 목마른 이들도 꽤 있었다.


심도학사는 매주 주제가 바뀐다. 이날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영원한 고전- 성 오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이었다. 길 교수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예배는 ‘마음의 예배’다”라는 루소의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는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지’ ‘가장 좋은 종교는 명료한 종교다’ 등 압축된 영성을 한 마디로 드러내는 명구(名句)들이 강의 내내 흘러나왔다. 그 출처는 ‘길 교수의 가슴’이었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미국 예일대 신학부에서 석사를 했다. 여전히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자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불교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세인트올라프 대학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2년부터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하다가 84년 서강대 종교학과로 옮겼다. 이유는 하나였다. 길 교수는 “철학보다는 종교가 나의 궁극적 관심인 ‘신과 진리’에 대해 더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세계문화권에서는 종교가 철학이고, 철학이 곧 종교였다. 둘을 가르지 않았다. 철학과 종교를 나누기 시작한 건 전적으로 서구의 산물이다”고 덧붙였다. 길 교수는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20년간 강의를 한 뒤 은퇴했다.


심도학사의 강의는 뜨거웠다. 길 교수는 “성 오거스틴의 출현으로 이전에 있던 교부들의 시대는 갔다. 그들의 저서는 오히려 빛이 바랬다. 성 오거스틴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통틀어 ‘최고의 신학자’로 불린다. 그는 내성적 성찰의 대가였다. 당시 주교였던 그는 자신의 창피한 내면까지 솔직하게 고백하며 자신의 허물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소개했다. 이어 길 교수는 “요즘 신학생 중에는 『신국론』 같은 오거스틴의 저서를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 기독교의 고전에는 오늘날 우리가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종교적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이 녹아 있다. 그걸 도외시하기에 기독교의 눈과 가슴이 자꾸만 좁아진다. 자꾸만 배타적으로 변한다”며 아쉬워했다.


강의는 점심때까지 이어졌다. 식사는 길 교수의 부인이 직접 준비했다. 정갈한 맛의 건강식이었다. 참가자들은 “심도학사에 오면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점심까지 다섯 끼를 이곳에서 먹는다. 강의 못지않게 이곳의 밥맛이 늘 기다려진다”고 칭찬했다. 오후에 길 교수는 참가자들과 뒷산을 산책했다. 침묵 속에서 걷는 ‘묵언(默言) 명상’이다. 산책 후 오후 6시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밤 10시30분까지 강의가 계속된다.


짬을 낸 길 교수와 마주 앉아 인터뷰를 했다. 그에게 ‘인간과 종교, 그리고 진리’에 대해 물었다.


질의 :종교가 우선인가, 진리가 우선인가.


응답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계실 때 종교가 있었던 게 아니다. 종교는 진리를 찾아가는 통로일 뿐이다.”



질의 :그럼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나.


응답 :“기독교 이전의 예수, 불교 이전의 부처다. 그분들이 서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벌거벗은 인간’으로 만났지 않았을까. ‘당신은 뭐가 고민이오? 나는 뭐가 고민이오.’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종교가 왜 존재하나. 결국은 참 사람, 참 인간이다. 참 자아의 발견이다. 종교는 이것을 위한 수단이다.”


길 교수는 종교의 핵심이 ‘영성’이라고 강조했다. “서구에서는 탈종교의 시대가 열린 지 오래됐다. 우리나라도 탈종교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각 종교의 성직자 수도 점점 줄어든다. 사람들은 특정 종교에 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향락적인 삶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 속박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도 영성적 목마름이 있다. 나는 그게 더 커지리라 본다. 그래서 미래 사회로 갈수록 종교가 아니라 ‘영성’이 더 중요하다.”



질의 :그런 영성 운동의 방향은.


응답 :“탈종교가 아니라 초종교적이어야 한다. 심도학사에는 신부님도 오시고, 스님과 목사님도 오신다. 종교를 찾아서 오는 게 아니라 진리를 찾아서 온다. 내 종교가 알고 싶은 만큼 타종교도 알고 싶어서 온다. 하느님은 무한하지만 종교는 유한하다. 그러니 기존의 종교적 패러다임을 깨야만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우리는 ‘종교’에 목이 마른 게 아니라 ‘진리’에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


한편 길 교수는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2016 서울인문포럼’(사무국 02- 587- 2708, seoulhforum@naver.com)에서 ‘인문학과 가치중립성’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그는 “대학의 인문학은 죽어가는데, ‘백화점 인문학’ ‘기업체 인문학’ ‘요점정리 학원식 인문학’은 붐이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문적 인문학, 자연스러운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란 말을 쓰지 않고 그냥 ‘좋은 책 읽기’라고 해도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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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학사(尋道學舍)



[출처: 중앙일보] “종교 이젠 패러다임 깨야 스님·목사님도 내 강의 듣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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