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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

번호 1204 / 날짜 2010-01-18 오후 7:37:15 / 조회 295
[부여]동명성왕 고두막과 고추모의 망명이주로
younbokhye

 고구려(대진국).백제(일본).사로국(신라)의 뿌리 부여

고구려 개국시조 고추모는 동명성왕이 아니다. 진짜 동명성왕은 바로 한나라 한무제가 붕괴직전의 위만조선을 공격하면서 요서지역으로 쳐 들어 왔을 때 의병 5천으로 격퇴시키고 부여의 해모수 왕조를 접수하고 고리부여를 개국한 고두막을 의미한다. 이 고두막의 아들 고무서의 둘째 사위가 바로 고무서가 죽자 북부여 7대 단군에 직위했다가 부여인들이 죽이려 하자, 압록강지류로 남하하여 혼강 위 골본성에 고구려를 개국한 고추모다.그러니까 고추모가 고구려를 개국하고 고추모와 소서노 사이에서 낳은 온조가 한강변에 '십제'를 개국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소서노가 바로 고두막의 손녀인 것이다. 그리고 사로국을 개국한 박혁거세의 어머니가 바로 박씨라는 남성(부여 서쪽을 경계하는 군지휘관)과 혼전임신을 하여 부여황실에서 옥저를거쳐 배를 타고 동해안을 타고 진한인들이 사는 경주지역으로 들어온 고두막의 큰 손녀다. 그러니까 고추모는 진한6촌인들의 추대를 받아 사로국의 왕이 된 박혁거세에게 이모부가 되는 셈이다.

북부여 7대 단군에 즉위한 고추모의 고구려가 부여를 계승했다는 자부심으로 또 다른 부예계승국 백제(부여왕 아들 위구태의 나라)와 한반도지역과 지나지역에서 패권전쟁을 벌인 배경이라 하겠다.즉, 해모수세력(고구려)과 고두막세력(백제)과의 패권전쟁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족보상으로 북부여는 본래 고추모 할아버지 해모수가 개국한 나라이니 해모수후손의 나라 동부여에서 망명해 온 고추모가 북부여 단군에 오르는 건 당연하다.

[한단고기]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한단고기-북부여기 하]

휴애거사 범장 지음

 북부여 5세 단군 고두막(혹은 두막루)재위 22년, 제 재위 27년

계유 원년, 이 해는 단군 고우루 13년이다. 제는 사람됨이 호탕하고 용맹하여 군사를 잘 다루었다. 일찌기 북부여가 쇠약해지고 한나라 도둑들이 왕성해짐을 보고 분연히 세상을 구할 뜻을 세워 졸본에서 즉위하고 스스로 동명이라 하였는데 어떤 이들은 고열가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을해 3년 제가 스스로 장수가 되어 격문을 전하니 이르는 곳마다 무적이었다. 열흘이 못되어 5,000 명이 모여 한나라 도둑들과 싸울 때마다 먼 곳에서 그 모습만 보고도 무너져 흩어져 버리므로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구려하를 건너 요동의 서안평에 이르니 바로 옛 고리국의 땅이었다.


  갑오 22년 단군 고우루 34년에 제가 장수를 보내어 배천의 한나라 도둑들을 쳐부수고 유민과 힘을 합하여 향하는 곳마다 한나라 도둑떼를 연파하더니 그 수비장수까지 사로잡았으며 방비를 잘 갖추어 적에 대비했다.


  을미 23년 북부여가 성읍을 들어 항복하였는데, 여러 차례 보전하고자 애원하므로 단제가 이를 듣고 해부루를 낮추어 제후로 삼아 분능으로 옮기게 하고는 북을 치며 나팔을 부는 이들을 앞세우고 수만 군중을 이끌고 도성에 들어와 북부여라 칭하였다. 가을 8월에 서압록하의 상류에서 한구와 여러 차례 싸워서 크게 이겼다.


  임인 30년 5월 5일에 고주몽이 분능에서 태어났다.


  신유 49년 제가 붕어하고 유명에 따라 졸본천에 장사지냈다. 태자 고무서 등극하다.


6세 단군 고무서 재위 2년

 임술 원년 제가 졸본천에서 즉위하고는 백악산에서 장로들과 함께 모여 사례에 따라 널리 하늘에 제사할 것을 약속하니 모두가 크게 기뻐하였다. 제는 나면서부터 신과 같은 덕이 있어 능히 주술로써 바람과 비를 불러 잘 구제하므로 민심을 크게 얻어 소해모수라고 불렀다. 이 때에 한나라의 오랑캐들이 요하의 왼쪽에서 널리 소란을  피웠으니 여러 차례 싸워서 크게 이겼다.


  계해 2년 제가 영고탑을 순시하다가 흰 노루를 얻었다. 겨울 10월 단제가 붕어하고 고주몽이 유언에 따라 대통을 이었다. 이보다 앞서 단제는 아들이 없었는데, 고주몽을 보고 사람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딸로서 아내를 삼게 하였었는데 이에 이르러 즉위하니 이 해 나이가 23세였다. 이 때에 부여인이 그를 죽이려 하였는데 오이, 마리, 협보 등 세사람과는 덕으로써 사귄 친구였던지라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서 함께 길을 떠나 분릉수에 이르렀다. 그러나 건너려고 하여도 다리가 없으므로 뒤쫓아 오는 군사들에게 몰릴까 두려워하여 물에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인데 오늘 도주함에 있어 추격병은 다가오고 있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하니, 이때 물고기와 자라 따위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므로 주몽이 건너가자 물고기와 자라는 다시 흩어졌다.  

탁리국과 동부여에서 죽음을 피하여 망명한 고두막과 고추모의 이주로

고두막도 탁리국 왕과 시녀사이에서 태어났고,고추모도 해모수 둘째 아들 고진의 손자 불리지(옥저 제후)와 유와사이에서 태어나 버림받은 자식들이였으나, 피는 못 속이는 바 능력이 뛰어나 시련을 이기고 고두막은 한나라의 침략을 격퇴하고 고리부여를 개국하고, 고추모는 다물정신으로 단군3조선의 영역을 회복하여 한민족사의 위대한 인물로 기록되었다.

해모수.고두막의 부여는 단군조선(대부여)를 그대로 계승한 나라
부여와 관련하여 [한단고기]가 진술하는 족보관계

웅심산(길림)에서 군대를 일으켜 부여(구물단군천황때 변경한 단군조선의 국호)를 계승한 해모수=고고리(고구려)를 개국한 고추모의 직계 할아버지

고두막=해모수의 부여를 접수하고 고리(골)부여를 개국한 동명성왕=고무서의 아버지

고추모=고무서의 둘째 사위

소서노=고무서의 둘째 딸(고두막의 둘쨰 손녀)=고구려.십제 개국 국모

박혁거세=고무서의 첫째 딸(고두막의 첫째 손녀)=사로국 시조

해부루=헤모수 직계손자=부여 제후국 가섭원 부여(동부여) 왕

비류=해부루 손자 우태와 소서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발해만에 '어하라' 개국

온조=소서노와 고추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마한땅(한반도)에 '십제'개국

금와왕=가섭원부여의 왕=해부루의 양아들=대소의 아버지

구태=백제시조=고무서의 유언에 따라 부여7대 단군에 오른 고추모를 부여에서 몰아내고 왕권을 차지한 고두막세력의 후예로 부여왕이며, 황해도지역(대방국 영역)에 백제를 개국하여 후한과 연합하여 고구려와 부여정통성을 놓고 패권전쟁을 벌인 인물

*백제의 시조하면 보통 국사교과서에도 마한의 허락을 받아 한강변에 '십제'를 개국한 온조로 기록하고 가르치고 있는데, 매우 잘못된 역사왜곡이다. 지나사서들은 모두 백제시조를 구태로 기록하고 있으며, 백제본국의 도읍지를 고마(곰=웅진=공주)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온조는 십제를 개국했고, 비류나라 '어하라'를 통합한 '십제'를 통합한 구태나라가 백제인 것이다.[윤복현]

 






  2010 탐사보고

          동명(東明) 루트를 찾아서




 

▣방송 : 2010. 1. 16 (토) 20:0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엄지인 아나운서
▣연출 : 김정균 PD
▣글 : 조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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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을 동명왕이라 알고 있다.
그런데 주몽 이전에 또 다른 동명왕이 존재했다?
동명왕, 그는 누구인가?


동방을 밝힌 성스러운 임금, 동명왕








- 주몽은 동명왕인가?
고구려를 세운 주몽. 삼국사기는 그를 동명성왕이라 칭하고 있다. 지금껏 우리는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주몽과 동명왕을 동일인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고구려 당대의 광개토대왕비문을 보면 고구려 시조 주몽을 추모성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주몽은 과연 동명왕일까?
- 동명왕, 부여의 건국시조다.
위략과 후한서를 비롯한 중국 고대 역사서에는 모두 동명왕을 부여의 건국시조로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과 부여의 건국시조 동명왕은 별개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주몽이 부여의 건국시조 동명왕으로 불리게 됐을까?

 





부여! 감춰져있던 700년의 역사를 밝힌다.








-광활한 만주를 무대로 700년간 존속한 나라 부여.
잘 알려지지 않은 부여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자세히 나와 있다.

(고구려)유리왕은 부여의 강대함을 두려워하여...
11월에 대소가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침범하다가
                         삼국사기 유리명왕 14년

고구려가 마한, 예맥과 연합하여 현토성을 공격하자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에게 2만 병사를 주어 현토성을 구원..
                        삼국사기 태조왕 69년
부여는 전성기 때 인구 8만호에 사방 2천리의 강역을 가진 나라로, 같은 시기 인구 3만호에 불과한 고구려보다 훨씬 큰 나라였다. 특히 한반도는 청동기 유물인 세형동검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부여는 철제무기와 마구, 찰갑 등이 출토돼 수준 높은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상당한 군사강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초 답사! 동명의 남하루트를 찾는 대장정.












- 부여 동명왕의 실체를 밝혀라.
동명왕에 대한 유일한 단서인 건국신화에는 동명의 출발지로 추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한다.

그가 탁리국에서 남하해 엄호수를 지나 부여를 세웠다
                         논형 길험편
그렇다면 탁리국과 엄호수는 어디인가?
역사스페셜 제작팀은 동명이 출발했다는 탁리국과 그의 남하 루트를 찾아 대탐사에 나섰다.
중국 흑룡강성 부유현에서 송화강을 건너 길림까지 약 3천KM. 방송사상 최초로 부여를 세우기 위해 동명이 걸었던 길을 밝힌다.

 





고대 국가들의 원류, 부여의 재발견








- 고구려 주몽의 건국신화는 부여 동명의 건국신화를 차용하여 부여계승 의식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도 성왕 때 국호를 남부여로 칭했으며 가야, 나아가 발해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을 부여에서 나왔으며, 동명왕의 후예라고 생각했다.
부여는 우리 고대 국가 형성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청소감

'부여'의 기원은 한국조선을 개국하신 단군한검천황의 막내아들 이름 부여에서 유래한다! 궁녀사이에서 낳은 탁리국왕의 아들로 태어난 동명성왕 고두막은 47대 고열가 단군의 친척이며, 고추모의 할아버지되는 해모수 역시 고열가 단군천황의 친척이다. 그리고 고씨 선조들의 나라는 내몽골지역의 고리국이다.

지나문헌에 북이'탁리국'이 동명성왕이 태어난 나라인데,고고학적으로 흑룡강성지역으로 규명해 주니 감사합니다.흑룡강성지역의 첫번째 역사적 인물이 동명이고, 송윤평원의 부유현이 탁리국의 중심지이고 부여가 부유와 발음이 같다는 점 또한 흥미롭게 잘 보았습니다. [한단고기]에 보면 '부여'라는 나라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 1대 왕이 바로 단군한검천황의 막내아들 부여입니다.부여라는 나라의 이름은 이 부여에서 기원한다고 봐야 정확합니다. 부여는 무예가 뛰어나고 학문이 뛰어난 인물이였습니다. 그래서 부여의 풍습자체가 기풍이 있고 질서가 있고,군사적으로 철제무기를 집집마다 소유하고 있을 만큼 부강한 나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말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상태를 부유하다라고 하는데, 부여가 얼마나 부유한 나라였으면 그런 말이 아직까지 이어지겠습니까?

고로 원래 부여는 동명성왕인 고두막이 망명하기 전 단군한검천황의 막내아들이 1대 왕으로 임직한 흑룡강성지역의 부여이고, 그 곳을 지나문헌에서는 탁리국으로 기록한 것 같습니다.

구물단군천황때 국호를 조선에서 부여로 변경하는데, 47대 고열가 대단군이 단군천황자리를 그만두고 나라문을 닫자,이후 단군조선은 5가 공화정으로 6개월 간 유지됩니다.그러자, 단군조선의 제후국 고리국(내몽골지역) 출신의 해모수(고모수)가 웅심산에서 군대을 일으켜 나라를 개국하니 이 또한 부여입니다. 즉, 부여(단군조선)을 그대로 계승한 나라입니다.그러나, 5가 합의가 아니라, 고모수(해모수)의 일방적인 군사쿠테타로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동방으로 진출한 한나라의 침략과 위만세력의 번조선 장악,그리고 단군조선연방나라들의 분리독립열기로 통제력은 이미 상실한 상황이였습니다. 그리고 한나라가 자꾸 부여땅을 침략하게 됩니다. 이 때 탁리국에서 망명한 동명성왕 고두막이 골본에서 뜻(단군조선의 회복)을 세우고 의병을 일으켜 가는 곳 마다 한나라군을 물리치니 당시로서는 민족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당시 부여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해모수 왕조는 무기력해져서 고두막에게 부여권력을 이양하고, 가섭원(연해주)지역으로 이주하여 부여의 제후국으로 물러 나니 동부여라고 불리우는 나라입니다.

오늘 역사스폐셜팀이 보여 준 부여의 토기들의 원형이 원 부여지역인 탁리국이 위치한 흑룡강성 부유현 지역에서 유래하며, 가야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목민의 동복 등이 부여지역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은 부여족의 일족인 선비족이 초원을 따라 지나지역으로 이주하여 여러 선비국가들을 개국하는데 그 중에 하나인 전연이 4세기에 고구려를 공격하자 대비하고 있던 고구려군에 쫓겨 동해안 루트를 따라 경주지역으로 들어온 선비족의 유적유물들이 바로 경주지역의 황남대총.대릉원이며, 흉노계 김알지세력과 연합하여 사로국을 무너뜨리고 신라를 개국한 것이다. 그리고 신라권력에서 소외된 세력이 가야지역으로 들어가서 지배층이 되어 흔적으로 남기니 김해지역의 기마유물들인 것이다.[윤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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