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신문기사중에서 (2020년8월11일 화)

선기옥형 | 2020.08.11 10:29 | 조회 1844

목차

1.한반도에 갇힌 외교.안보에서 세계조망하는 전략으로[김흥규의 한반도 평화워치]

2.[정의길 칼럼]'100년뒤 거론하자던 작은 문제 대만'

3.이기환의 역사의 흔적 "다뉴세문경의 0.3mm'나노예술' 원조는 덧띠.빗살무늬토기다" 
  [종도사님 추천기사]
4.간추린 뉴스
5.코로나 19확산현황


1. 한반도에 갇힌 외교·안보에서 세계 조망하는 전략으로

  [김흥규의 한반도평화워치]

[중앙일보] 2020.08.11 

미·중 전략 경쟁과 한국의 길 




그래픽=최종윤

미국 중심의 천하질서가 크게 요동치더니 이제 본격적인 미·중 신냉전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의 닉슨재단 연설과 지난 5일 중국 외교부장 왕이의 신화사 인터뷰를 종합하면, 미·중은 물러서지 않고 상호 대립과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명백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은 이제 체제 경쟁이라는 극한 대치로 전환하고 있다. 언제든 소규모 군사적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미·중은 1979년 수교 이래 최악의 관계에 직면해 있다. 강대국 간 소규모 군사 충돌은 상호 의지와는 관계없이 언제든 대규모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

 

미·중 갈등 전환기에 한국 외교·안보 환경 더욱 급박해져

미국 대선 결과에 관계 없이 미·중 대결은 심화될 수 있어

전략 경쟁과 신냉전으로 한국에 선택 압박과 긴박성 높아져

세계를 전략공간으로 보는 상상력 발휘해 미·중 경쟁 대처해야


중국은 그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 제재와 압력에 대해 대체로 신중한 입장을 취해 왔다. 무역 압력에 대해서는 수세적 대응 방식을 취해 왔고, 정치·외교 분야에서는 미국과의 전면 대결은 원하지 않고 위기관리를 추구한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냈다. 하지만 중국은 이제 미국과의 장기적 전략 경쟁을 당연시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듯하다. 왕이 부장의 최근 인터뷰를 보면 세계적으로 그간 미국이 수행해오던 역할을 중국이 수행할 수 있고, 중국에 손상을 입히는 어떤 대상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국수주의적 열정 지닌 미·중 지도자

 

중국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미국은 지난달 21일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에 폐쇄 조처를 내렸다. 중국은 쓰촨성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 폐쇄로 맞불을 놓았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닉슨도서관 앞 연설에서 “시진핑은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짜 신봉자”라며 “(중국은) 세계 패권 장악에 나선 새로운 전체주의 독재 국가”라고 단언했다. 중국을 중국 공산당과 분리하고, 중국 공산당 정권 교체에 미국이 나서겠다는 의지마저 드러냈다. 그간 상호 정치체제에 대한 공격과 전복을 논하는 것은 미·중 관계의 금기였다. 미국은 이제 미·중 관계에 어떤 마지노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했다.

 

신냉전 시기의 도래라는 미·중 갈등 전환기에 한국의 외교·안보 환경은 더욱 급박해졌다. 최근 국내외 일각에서 중국이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견해가 널리 회자됐다. 이는 트럼프가 중국이 오히려 대응하기 수월한 정치인이란 의미도 존재하지만, ‘경제 민족주의자’로서 경제적 이익만 확보된다면 언제든 미·중 관계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담겨 있다. 현재의 미·중 관계 악화도 대선용이며, 대선 국면이 지나면 미·중 관계가 개선될 수도 있다는 낙관론도 전제된다. 이제 이러한 희망은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중은 모두 국수주의적 열정을 지닌 지도자들이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신냉전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오는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바이든의 우세를 점치고 있지만,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문제는 두 후보 모두 중국과의 대결을 심화시킬 것이란 점이다.

 

트럼프 대외정책의 핵심은 명백히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전략의 큰 틀 안에서 경제는 시장경제와 신뢰를 공유한 국가들끼리만 태평양 번영네트워크(Pacific Prosperity Network, PPN)로 연대하고, 외교·안보는 태평양 억지구상(Pacific Deterrence Initiative, PDI)에 따라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 조치를 가속할 것이다. 그  내역에는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 사드와 같은 대중 미사일방어체계(MD)의 강화와 중거리 핵탄두 미사일 배치와 같은 초유의 공세적 조치가 수반된다. 조만간 실행될 이 조치들은 이 지역에서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를 연상시킬 수 있을 정도로 폭발적 갈등과 대결 상태를 야기할 것이다. 미국 공화당 내에서 폼페이오 같은 신냉전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당내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트럼프 2기의 대중 정책을 가늠하게 한다.

 

바이든 역시 트럼프의 대중 정책을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미·중 신냉전 시대로의 진입은 미국 여론 전반에서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비영리기관 퓨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역대 최고다. 미국민의 66%가 중국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는 50%대였던 1989년 천안문 사태 직후보다 더 악화돼 있다.

  

새로운 외교·안보 태세로 전환 시급

 

바이든은 민주당의 전통적 국제주의 담지자다. 국제 정치에서 미국의 특별한 리더십을 강조하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수호하며, 필요하다면 국제적 개입도 지지한다. 트럼프 못지않게 바이든도 미국의 대중국 군사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정책을 지지한다. 트럼프와의 결정적 차이는 바이든이 동맹을 중시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선호(70%)를 따를 것이란 점이다. 국제 협력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어느 후보자보다 강한 지지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중국에 대항하는 국제 연대를 구축해 미·중 전략 경쟁이 전면적 대결로 치달을 것으로 우려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되든,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든 미·중 전략 경쟁과 신냉전 시기의 도래라는 엄청난 구조적 압력에 제약을 받을 것이다. 선택의 압력과 긴박성도 더욱 가중된다. 이 도전에 응전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기존 한반도 중심의 외교·안보적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 미·중 전략 경쟁과 신냉전에 직면한 ‘미·중을 제외한 전 세계’를 전략 공간으로 하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기존에 한 번도 걷지 못했던 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 새로운 태세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땅은 구한 말 당면했던 국제적 위기와 내부 갈등의 싸움터로 다시 전락할 수 있다.

[출처: 중앙일보] [김흥규의 한반도평화워치] 한반도에 갇힌 외교·안보에서 세계 조망하는 전략으로



2. ‘100년 뒤에 거론하자던 작은 문제’ 대만 [정의길 칼럼]

한겨례 2020-08-10 


미-중 관계가 파국으로 가면 대만 문제 때문이다. 마오쩌둥이 100년 뒤에나 거론하자던 대만 문제가 40년도 안되어 불거지고 있다. 미국은 정말 대만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릴 수 있을까?



1972년 2월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의 미·중 정상회담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작은 문제는 대만이고, 큰 문제는 세계다. 현재 우리는 대만이 없어도 살 수 있으니, 100년 뒤에나 거론하도록 하자.”

1972년 2월21일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한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마오쩌둥 중국 주석은 두 나라 관계 정상화에서 최대 걸림돌이던 대만 문제에 통 크게 양보했다. 대만에 무력행사를 하지 않고 그 안보를 보장하겠다고 주저 없이 확인했다. 미국이 앞서 20년 동안 요구하던 사안이었다.


이번주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만을 방문할 예정이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 인사로는 최고위급이다.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이다 (…) 우리는 중-미 관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피하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미국이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 에이자 장관의 대만 방문에 대한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논평은 대만을 둔 미-중 관계의 본질이다.


표현 그대로, 문자 그대로이다. 그의 말은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대만을 건드리면, 중-미 관계는 위협받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없다’는 것이다. 무역전쟁, 기술패권에 이어 남중국해에서 대치로 상승하는 미-중 대결이 파국으로 간다면, 그건 대만 문제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 고수를 뛰어넘는 사안이다.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이후 중국에 가장 위중한 ‘안보 방역선’이 된 동남 해안의 통제권 문제다. 중국 지정학의 3대 원칙이 있다. 한족 거주 지역인 중원의 통일, 서북 변경지대의 안정과 통제, 동남 해안의 방역이다. 이 세가지 중 한가지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중국은 혼란과 분열, 붕괴로 치닫는다.


특히, 동남 해안 방역은 근대 이후 중국의 운명을 결정해온 문제이다. 명나라 초기 인도양까지 진출했던 정화 함대의 대원정이 폐기되고 해금령이 내려진 이후 중국은 중국해의 제해권을 상실했다. 이는 왜구에 이어 유럽 세력들의 진출을 허용했고, 중국의 반식민지화로 치달았다.


동남 해안 방역에서 사활적인 지위로 격상되어온 대만이 중국의 영역으로 편입된 것은 명말청초에 불과하다. 그 이전까지 대만은 원주민과 해적들이 설치는 무주공도였다. 아시아로 진출한 네덜란드가 이 무주공도에 들어와 ‘포모사’라고 명명했다. 청나라 초기, 왜구 등 동남 해안의 해상세력과 결탁된 정성공이 반란을 일으켜, 대만에 근거지를 잡았다. 청의 진압으로 비로서 대만은 중국 영역으로 편입됐다. 이 과정에서 푸젠성 등으로부터 이주한 이들이 지금의 대만인들이다.


청을 본격적으로 쇠망케한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만을 할양받아, 그 지정학적 가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태평양 전쟁의 전세를 바꾼 미드웨이 해전을 승리로 이끈 체스터 ******츠 제독의 미 해군은 대만을 우선적으로 점령해 일본 본토 공세 작전을 벌이자고 주장했다. 반면, 필리핀에서 패퇴해 도망쳤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필리핀을 먼저 점령하자고 고집을 부려 관철시켰다.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대만에 미군이 주둔하는 부담을 피하게 됐고, 대만에 대한 주권을 확인하는 지속적인 위력시위도 할 수 있었다.


대만은 중국해를 가르는 중앙에 있다. 만약 대만이 독립하거나 미국과의 군사동맹으로 얽힌다면,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모두에서 제해권을 심각하게 상실한다. 미국이 지금 다시 군사기지를 세워서 대중 봉쇄망의 중추로 삼으려는 필리핀이 중국의 배를 누르는 곳이라면, 대만은 목을 조르는 곳이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이기에 앞서 당선자 시절에 차이잉원 대만 주석과 통화하며, 중국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80억달러 상당의 전투기를 대만에 판매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삼가는 등 중국과의 지정학적 대결은 피하려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중국과의 대결을 더 격화시키는 미국은 홍콩보안법 통과 이후 동맹국들을 동원한 해상훈련으로 남중국해 대치로 넘어갔다. 남중국해에서 대치 격화의 다음 수순은 대만 문제가 된다.

미국은 정말 대만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릴 수 있을까? 마오쩌둥이 100년 뒤에나 거론하자던 대만 문제가 40년도 안 되어 불거지고 있다. 그가 세계에 비해 작은 문제라던 대만이 이제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7181.html#csidx886a074471017d8b21eded3395d91db



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다뉴세문경의 0.3㎜ '나노 예술', 원조는 덧띠·빗살무늬토기다"-종도사님 추천기사
경향신문 2020-8-11



국보 141호 정문경. 지금까지는 다뉴세문경으로 알려져 왔다. 기원전 3~2세기 무렵 최절정기에 제작된 청동거울이다. 고대 청동기 제작에서 황금비율로 여겨지는 구리 대 주석 비율(67대 33)에 가장 근접한 66대34를 기록했다. 황금비율에 속하는 유일무이한 거울이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제공


국보 141호 정문경. 지금까지는 다뉴세문경으로 알려져 왔다. 기원전 3~2세기 무렵 최절정기에 제작된 청동거울이다. 고대 청동기 제작에서 황금비율로 여겨지는 구리 대 주석 비율(67대 33)에 가장 근접한 66대34를 기록했다. 황금비율에 속하는 유일무이한 거울이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제공


“그게 사실이오?” 고(故) 한병삼(1935~2001)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생전에 문화재 중간상인으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고해성사’를 들었다. 때는 1960년대 충남 논산 훈련소라 했다. 참호를 파던 병사들이 의문의 물체들을 발견했다. 흙과 녹이 잔뜩 묻은 고색창연한 청동기 세트가 묻혀 있었다.



■논산훈련소 군인들이 수습한 희대의 청동기


동심원과 삼각형 문양이 잔뜩 새겨진 청동거울(정문경 혹은 다뉴세문경 혹은 고운무늬 거울)과 방울 8개 달린 팔주령(2점), 포탄 모양의 간두령(2점), X자가 교차된 조합식(1점) 및 아령 모양의 쌍두령(2점) 등 청동방울이었다. 모두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제정일치 지도자가 사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청동기였다. 군인들은 이 청동기 세트를 중간상인에게 팔아넘겼다.


국보 146호 청동방울 일괄. 논산훈련소 군인들이 1960년대 국보 141호 정문경과 같은 곳에서 수습했지만 중간상인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산가족이 됐다는 후일담이 있다. 정문경은 숭실대에, 청동방울 일괄유물은 호암미술관(리움 미술관)에 각각 팔렸다고 한다. |리움 미술관 소장



중간상인은 이중 정문경을 숭실대박물관에 팔았다. 나머지 청동방울 일괄은 수집가 김모씨를 거쳐 호암(리움)미술관으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청동기 세트는 막연하게 강원도 출토품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후 숭실대박물관 소장 ‘정문경’(1971년·국보 141호)과 호암미술관 소장 ‘청동방울 일괄유물’(1973년·국보 146호)은 차례로 국보가 됐다.




국보 141호 정문경의 도안. 내구와 중구, 외구 등 3개의 구확안에 중심이 같은 동심원들과 1만3000여개의 선(線)이 그려져 있다. 선의 간격은 0.3~0.34㎜, 원의 간격은 0.33~0.55㎜에 불과하다. 청동기 시대판 나노기술이라 할 수 있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제공





하지만 2곳 박물관의 유물이 같은 출토지 출신의 남매라는 사실을 몰랐으니 이산가족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 청동기 세트를 사고팔았던 중간상인이 고 한병삼 관장에게 “국보 141호와 146호는 논산훈련소 군인들이 수습한 세트유물”이라고 증언하고 나선 것이다. 한병삼 전 관장에게서 중간상인의 고백을 전해들은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대형 청동거울과 청동방울 세트의 조합이 자연스럽다”면서 “게다가 청동방울에서 보이는 검은 녹의 색깔이 청동거울인 정문경과 극히 유사하다”고 밝혔다.


국보 141호의 세부 문양.  거울의 지름은 212~218㎜, 잔존 무게는 1590g 정도이다. 그런데 이 정문경에는 반복된 동심원과, 그 동심원 안에 새겨진 무늬, 그리고 직선을 이리저리 규칙적으로 새긴 삼각문양 등이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숭실대 기독교박물관 제공


■청동기시대 판 ‘나노 기술’


국보 141호 ‘정문경(精文鏡)’은 대중적으로는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으로 알려진 청동거울이다. ‘고리(紐)가 많은(多) 가는 무늬(細文) 거울(鏡)’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거친 무늬 거울’을 지칭하는 ‘조문경(粗文鏡)’이 있으니, ‘거친’에 대응하는 ‘고운 무늬 거울’은 거칠 조(粗)자의 반대인 정할 정(精)자 ‘정문경’이 옳은 표현이다. 게다가 ‘다뉴세문경’ 용어는 일본의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1890~1983)가 붙였으니 왜색풍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국보 141호의 정식 명칭은 ‘정문경’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정문경’이라는 명칭도 더 쉽게 ‘고운무늬 청동거울’로 바꿀 필요가 있다.


초정밀 정문경에서 보이는 제작상 결함. 그러나 이런 흠결은 오히려 2300년전 보다 정밀한 청동거울을 제작하고자 했던 장인의 치열한 분투에 비하면 구우일모(九牛一毛)라 할 수 있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 제공


이 국보 141호 ‘정문경’은 처음부터 ‘국보경(국보거울)’로 일컬어질만큼 국보 중 국보로 통했다. 그럴만 하다. 이 정문경은 기원전 3~2세기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거울의 지름은 212~218㎜, 잔존 무게는 1590g 정도이다. 그런데 이 정문경에는 반복된 동심원과, 그 동심원 안에 새겨진 무늬, 그리고 직선을 이리저리 규칙적으로 새긴 삼각문양 등이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확대경을 들이대고 세어본 선만 1만3000개가 넘는다. 선의 간격은 0.3~0.34㎜, 원의 간격은 0.33~0.55㎜에 불과하다. 가히 0.3㎜의 ‘청동기시대판 나노기술’이라 할 수도 있다. 현대기술로도 새기기 힘든 이 정문경을 제작한 2300년 전의 장인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야말로 ‘집중력과 인내의 화신’이었을 것이다.


국보 141호정문경에서 보이는 각종 흠결들. 2300년전 장인이 이 거울을 주조할 때 생긴 결함들로 보인다. 이런 흠결은 거푸집의 주물사에 수분이 너무 많았거나 점토분이 적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박학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제공


■참빗살로 그려본 동심원


그렇다면 이 극초정밀의 문양을 어떻게 새겨넣었을까. 박학수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관은 지난해(2019년) 11월 열린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아주 흥미로운 도구를 들고 나왔다.


대나무 자와 참빗살로 개조한 컴퍼스였다. 우선 대나무자 같은 도구로 직선, 격자문 등을 새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 다음은 참빗살이었다. 참빗살은 원 사이의 간격이 0.33~0.55㎜에 불과한 동심원을 그리는데 활용됐다. 즉 참빗살 21가닥의 끝을 얇게 깎은 만든 일종의 다치구(多齒具) 컴퍼스로 동심원을 그려본 것이다. 박학수 학예관은 “대나무 껍질로 만든 다치구 컴퍼스로도 정문경의 동심원 문양을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 설명했다.


2300년전 국보 141호 정문경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거푸집의 재료인 모래가 정문경의 거울면(경면)과 무늬면(뒷면)에 걸쳐 혼입된 사실이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에 의해 확인됐다. |박학수 학예연구관 제공


■황금비율로 탄생한 정문경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점이 생긴다. 0.3㎜의 극초정밀 예술품을 어떻게 주조했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정문경을 두고 첨단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불가사의라고 혀를 내둘렀던 이유였다.


최근들어 여러가지 주조법으로 실제 복원하기도 했다. 예컨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7호인 이완규 주성장(鑄成匠)은 2007년 활석에 직접 문양을 새긴 뒤 주조하는 방법으로 정문경을 재현해보았다. 이른바 활석(석범) 주조법이다.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전시총괄과장 등은 활석거푸집을 사용한 밀랍주조법으로 정문경을 복원해보았다. 즉 활석에 문양을 새긴 뒤 밀납을 부어 굳힌 다음 그 위에 고운 황토와 가는 모래 등을 섞은 배합토를 씌운 후 열을 가해 밀랍을 녹여냈다. 그렇게 만든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거울을 만들어보았다.


동심원들은 다치구로 한번에 그렸다. 하지만 동심원을 표현하기 어려운 한가운데는 그냥 장인의 손으로 그렸다. 일종의 컴퍼스인 다치구로 한번에 그릴 때 생긴 점을 주물사로 메운 뒤 그렸을 것이다. |박학수 학예연구관 제공


또 2007년부터 1년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의 분석결과 ‘국보경의 실체’에 한발 다가가는 성과를 얻어냈다. 즉 숭실대 소장 국보 141호 정문경은 구리 61.68%, 주석 32.25%, 납 5.46%를 함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구리와 주석 비율만 따지면 65.7대 34.3이었다. 고대 청동기의 합금비율을 기록한 중국의 <주례> ‘고공기’에 기록된 ‘금유육제(金有六齊)’ 내용을 해석하면 ‘구리 67대 주석 33이 합금의 황금비’라 한다.


그렇다면 국보경은 고대 청동거울의 황금비(67대33)와 견주면 단 1% 정도의 오차가 보일 뿐이다.


2008년 당시 성분분석을 담당한 유혜선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은 “국보 141호 정문경은 고대 청동거울 제작을 위한 황금비율을 그대로 반영했다”면서 “청동기 기술이 최고정점에 달할 때 제작된 유일무이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참빗살과 대나무를 활용해서 국보141호 정문경의 선과 원을 재현해 본 박학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참빗살을 깎은 다치구 컴퍼스로 원을, 대나무 자로 선을  그려보았다. 오른쪽 위 사진은 이완규 주성장이 쇠자로 무늬를 새기고 있는 모습이다.|박학수 학예연구관 제공


■유일무이한 은백색의 거울


청동거울의 경우 주석의 함유량이 높아질수록 색깔이 적색에서 백색으로 변한다. 즉 주석의 함유량이 10~20%는 담황색, 20~30%는 회백색, 30~40%는 은백색을 띠게 된다. 은백색을 띠면 당연히 거울의 빛 반사성능은 좋아진다. 그래서 <주례> ‘고공기’가 이상적인 청동합금 비율을 ‘주석 33%’라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점이 생긴다. 다른 청동거울도 주석 함유량을 30% 이상으로 높이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중국이나 국내의 다른 청동거울은 주석의 함유량이 현저하게 낮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이 참빗살을 활용한 다치구 컴퍼스로 석고 위에 동심원을 그려보고 있다.|박학수 학예연구관 제공


주석 함유량이 높아지면 색깔은 은백색으로 변하지만 22%가 넘어가면 치명적인 단점이 생긴다. 인장강도(잡아당기는 힘에 견디는 저항력)가 급격히 떨어진다. 그 경우 거울은 쉽게 깨질수밖에 없다.


기원전 3~2세기 국보 141호 청동거울을 만든 장인은 쉽게 깨지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황금비율로 알려진 구리·주석 비율(67대 33)에 맞추려고 분투했다. 0.3~0.55㎜ 간격으로 그은 1만3000여개의 선과 동심원을 천신만고 끝에 다 그려놓고도 아차! 하는 순간에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보 141호 정문경은 청동기 제작기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최상의 황금비율로 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색상과 반사율 면에서 최상의 조건을 갖춘 극초정밀의 예술품로 탄생할 수 있었고….


국보 141호 정문경의 고리에서 보이는 마모흔적. 청동거울을 실제로 사람이 끈을 고리에 걸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된다. |박학수 학예연구관 제공


■더러 흠결은 보이지만…


물론 완벽하다고 믿었던 정문경에는 몇가지 흠결이 발견됐다. 먼저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의 분석결과 정문경은 ‘주물사 주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해석됐다. 주물사 주조법은 입자가 미세하고 점토분이 많은 모래를 굳혀 그 위에 문양을 새긴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제작하는 기법을 일컫는다.


그런데 보존과학팀 분석결과 거푸집의 재료인 모래가 정문경의 거울면(경면)과 무늬면(뒷면)에 걸쳐 혼입된 사실이 확인됐다. 박학수 학예연구관은 “모래혼입의 흠결이 역설적으로 정문경이 주물사 주조법으로 제작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됐다”고 밝혔다. 다른 결함도 보였다.


주물사에 쇳물을 부어 거울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거푸집이 분리되어 다른 곳으로 박혀있었다. 또 주형의 모서리가 붕괴되어 원래의 모습이 사라졌고, 표면에 쥐꼬리 모양의 결함이 일어나기도 했다. 박학수 학예연구관은 “이런 흠결은 거푸집의 주물사에 수분이 너무 많았거나 점토분이 적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서 “금속공학 교과서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사례”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흠결은 오히려 2300년전 보다 정밀한 청동거울을 제작하고자 했던 장인의 치열한 분투에 비하면 그저 구우일모(九牛一毛)라 할 수 있겠다.


최근 정문경(다뉴세문경)의 문양이 기원전 6000년 무렵 시작된 덧띠무늬 토기(가운데)와 기원전 4500~3000년 유행한 빗살무늬 토기에서 그 원류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찬곤 교수의 논문에서

최근 정문경(다뉴세문경)의 문양이 기원전 6000년 무렵 시작된 덧띠무늬 토기(가운데)와 기원전 4500~3000년 유행한 빗살무늬 토기에서 그 원류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찬곤 교수의 논문에서


■손맛으로 갈무리한 ‘센스쟁이’ 장인


정문경에는 또한 당대 청동기 장인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문양이 보인다. 동심원의 한가운데를 장인의 손으로 그린 흔적이다. 박학수 학예연구관의 복원 실험에서 보듯 다치구 컴퍼스로 그린다해도 한가운데 부분은 동심원으로 표시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가운데엔 컴퍼스를 그릴 때 생기는 자국(원점)이 존재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자국을 주물사로 메우고 그 위에 화룡점정 하듯 마지막 동심원을 손으로 그려넣었을 것이다. 극초정밀의 예술을 보여주면서 일말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2300년 전 장인의 센스가 아니겠는가.


또하나의 이야깃거리가 있다. 과연 국보 141호 정문경은 실제 사용했을까. 이전까지는 미사용품, 즉 부장용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육안으로는 사용흔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이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끈을 매달아 사용한 마찰흔적이 두 고리(紐)에서 확인됐다. 매끈한 마찰흔적은 양 고리의 바깥쪽 윗부분에서 보였다. 이는 한 사람이 정문경을 하나의 끈으로 두 개의 고리에 관통해서 매달아 사용했음을 암시해준다. 그랬으니 두 고리의 바깥쪽 윗부분에 끈이 마찰된 흔적이 보이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은 국보 141호 정문경의 다양한 문양을 복원해보았다.|이양수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의  논문에서


■고리를 사용한 흔적의 의미


그렇다면 2300년전 누가 이 청동거울을 달고(혹은 들고) 다녔을까. 지금까지는 정문경의 기본문양 모티브인 십자(혹은 ×)일광문이 우주(십자문)와 태양(일광문)을 상징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먼저 정문경 내부의 4구획된 십자(혹은 ×자)문은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한 기원전 6000~5000년 서아시아 채문토기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 지역의 십자문 모티브는 기본적으로 우주의 본질을 표현한다”면서 “수메르의 도시국가 에리두 토기 문양은 여러 개의 동심원 속에 십자문이 들어가 있는 형태”라고 소개했다. 그러니 원형 청동거울 자체도 태양을 상징하고, 거울 표면의 십자문과 ×자문, 동심원 등은 강렬한 햇빛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2300년 전 하늘과 인간, 땅의 소통을 독점하는 제정일치 시대의 지도자라면 어떨까. 은백색의 정문경을 가슴팍에 달고 햇빛을 환하게 반사하면서, 양손에는 팔주령과 간두령, 쌍두령 같은 청동방울을 마구 흔들며 하늘신·조상신과의 접신을 시도했던…. 백성들은 반사되는 강렬한 햇빛과 요동치는 방울 소리에 경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도자의 신통력과 벽사력을 한없이 찬양하면서….


김찬곤 교수는 덧띠무늬 토기와 빗살무늬 토기에서 보이는 삼각형 무늬와 빗금무늬를 수분을 가득 머금은 구름과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로 파악했다. |김찬곤 교수 제공


■“정문경 문양은 비와 구름을 그린 것” 주장


그런데 근자에 정문경의 문양을 단순히 태양과 햇빛으로 해석하지 않고 비와 구름으로 읽은 논문이 발표됐다. 김찬곤 광주대 초빙교수가 지난 6월 학술지인 <인문사회 21>에 발표한 논문(‘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기본무늬와 세계관 연구)이다. 김교수는 논문에서 “8000년 전의 유물인 덧띠무늬 토기에서 시작된 국보 141호 문양은 신석기시대 대표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기원전 4500년 시작)에서 전형적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우선 ‘청동거울 문양은 삼각형 내부를 평행선으로 빽빡하게 채워넣은 삼각집선문을 기본 무늬단위로 한다’는 <한국고고학사전>의 용어풀이에 문제를 제기한다. 신석기 시대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의 문양을 두고 ‘생선뼈무늬’ ‘번개무늬’ ‘빗금무늬’와 같은 기하학 무늬로 규정짓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그렇게 기하학 무늬라고 단정해버리니 연구가 진척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우선 러시아 문양학자인 아리엘 골란(1921~)과 프랑스 종교학자 장 프르질루스키(1885~1944) 등이 “신석기 문양 가운데 수직직선과 지그재그선, 물결선 등을 ‘비(雨)와 비를 관장하는 하늘여신과 농경 등’으로 해석한 것”에 주목했다. 또 “신석기 그릇 아가리 쪽 반타원 무늬는 구름이며, 이 구름무늬는 삼각형으로 바뀐다”는 러시아 역사학자 보리스 리바코프(1908~2001)와 리투아니아 출신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1921~1994) 등의 견해도 받아들였다.


김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덧띠 혹은 빗살무늬 토기와 정문경 제작자는 추상적인 기하학 무늬를 새긴게 아니라 구상무늬, 즉 구름과 비를 그린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하늘에 구멍이 뚫려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쏟아졌다’는 서양의 <성경> 창세기 7장과 “하늘이 아홉겹(天有九重)이고, 하늘을 받치고 있는 4개의 기둥이 무너졌다”는 동양의 <회남자> 내용도 인용했다.


김찬곤 교수는 국보 141호에 새겨진 선 문양은 삼각형 구름과 빗줄기로, 외구의 동심원 8개는 <회남자>등이 설명하는 8곳의 들판 혹은 8곳의 방위를 의미하고, 한가운데 원은 하늘문으로 해석했다. |김찬곤 교수 제공



■“정문경의 시작은 신석기 덧띠 및 빗살무늬 토기부터”


김교수는 덧띠무늬 토기에서 보이는 삼각형은 뭉게구름, 빗금은 비를 각각 의미한다고 보았다. 또 더 정교하게 문양을 새긴 빗살무늬 토기에서는 하늘 속 물과 하늘 속, 파란 하늘과 삼각형 구름, 구름 속 수분과 빗줄기, 땅 등을 표현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흐름은 정문경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게 김교수의 주장이다.


즉 정문경에서 보이는 삼각형은 구름으로, 빗금은 비로 파악했다. 외곽에 그려진 동심원 8개는 어떻게 해석할까. 김 교수는 ‘하늘 아래 아홉개의 들판이 있다(天有九野)’는 <회남자>의 언급에 주목한다. 이중 한가운데는 9번째인 구주(九州)에 해당한다. 한가운데 들판을 뜻하는 구주는 ‘중토(中土)’라 했다.


또 <회남자>에는 ‘하늘의 9방위 중 한가운데가 균천(鈞天)’이라는 대목이 있다. ‘균천’은 ‘하늘의 한가운데’를 의미한다. 김교수는 바로 이러한 고대 동양의 세계관에 착안해서 정문경의 한가운데, 즉 고리(뉴)가 있는 원을 ‘들판의 하늘문(天門)’으로 해석했다. 김교수의 해석대로라면 정문경 한가운데 동그라미가 균천이고, 외구의 동심원 8개는 8개의 들판 혹은 8개의 방위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새긴 삼각형 구름과 빗줄기는 이 하늘문에서 구름과 비가 쏟아지는 것으로 풀 수 있다.


필자가 김찬곤 교수의 논문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2300년 전 최고의 예술품이라는 정문경 관련 연구가 김교수의 지적대로 ‘기하학무늬’라는 덫에 빠져 정체된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정문경 연구의 지평을 신석기시대까지 넓힌 논문이 나왔으니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계의 평가는 학계의 몫이려니….


8000년전 덧띠무늬와 6000년전 빗살무늬로 시작된 고유의 디자인은 기원전 3~2세기 정문경에서부터 극초정밀 예술로 태어났으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금제품을 거쳐 12세기 고려시대의 나전칠기 제품까지 이어졌다. 정문경과 고려 나전칠기, 통일신라시대 감은사지 풍경의 금알갱이는 가히 0,3㎜의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백제 왕흥사지 출토 금제품도 3㎜를 넘지 않았다. |신라·백제의 금제품 사진은  이한상 대전대 교수 제공

8000년전 덧띠무늬와 6000년전 빗살무늬로 시작된 고유의 디자인은 기원전 3~2세기 정문경에서부터 극초정밀 예술로 태어났으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금제품을 거쳐 12세기 고려시대의 나전칠기 제품까지 이어졌다. 정문경과 고려 나전칠기, 통일신라시대 감은사지 풍경의 금알갱이는 가히 0,3㎜의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백제 왕흥사지 출토 금제품도 3㎜를 넘지 않았다. |신라·백제의 금제품 사진은 이한상 대전대 교수 제공


■0.3㎜ 예술의 역사


1975년 당시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도쿄(東京)에서 열릴 한일국교정상화 10주년 기념 특별전 제목을 ‘한국미술 5000년전’이라 붙였다. 1973~75년 사이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기원전 3000년전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됐기 때문이다. 토기를 3~7단으로 상·중·하로 화폭(토기표면)을 나눠 갖가지 무늬를 새긴 선사인들의 예술품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본다. 기원전 6000년전 시작된 선사인들의 생각이 담긴 디자인(덧띠무늬 토기)은 기원전 4500~3000년 사이 더욱 정교하게 발전했고(빗살무늬토기), 기원전 300~200년에 되어 ‘청동기시대판 나노 기술’이라 할 수 있는 극초정밀 예술품(정문경)’으로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닐까. 아니다. 0.3㎜~3㎜ 예술품을 자유자재로 만든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 장인과. 정문경 제작 후 1400년이 지난 뒤의 고려의 장인들도 0.3~3㎜의 조각으로 꽃과 넝쿨, 가지무늬 2만5000개나 붙인 나전칠기를 제작했다. 0.3㎜의 예술을 창조한, 하여간 대단한 분들이 아닌가.


<참고자료>


김찬곤,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기본무늬와 세계관 연구’, <인문사회 21> 제21권 3호, 아시아문화학술원, 2020


박학수,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 거푸집의 조각 도구와 방법’,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추계학술대회, 2019


박학수·유혜선·이양수,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의 제작기술’(박학수), ‘다뉴세문경 성분조성에 관한 연구’(유혜선), ‘다뉴세문경 도안과 제작기술의 변천’(이양수),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연구>, 숭실대기독교박물관, 2008


이건무, ‘다뉴정문경에 대하여’,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 연구>, 숭실대기독교박물관, 2008


윤용현·조남철, ‘청동잔무늬거울의 복원제작기술과 과학적 분석’, <보존과학회지> 통권 40호,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2012


이완규, <한국의 문화유산 청동기 비밀풀다>, 하우넥스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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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해외이주 신고자 1590명  외교부에따르면 작년1590명이 정부에 해외이주 신고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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