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우리는 무엇인가?

환단스토리 | 2020.11.19 14:04 | 조회 3321

[세상읽기] 우리는 무엇인가?


매일경제 2020-11-19 


기사 이미지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이 1897년 완성한 작품의 제목이다. 어쩌면 가장 오래되고 인간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질문들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첫 질문과 마지막 질문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쉽다". 종교가 있다면 신에 대한 믿음이 답을 줄 것이고, 과학을 믿는다면 현대물리학과 진화론을 통해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은 애매하다. 이 모든 질문을 던지는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니 말이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을 끝없이 던지는 존재"로 해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정말 궁금해진다. 왜 인간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그렇게도 집착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동시에 "우리는 무엇들인가"라는 질문이어야 하고, "우리"와 "나"는 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구 모든 생명체들과 같이 인간은 당연히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 내가 없다면 삶과 우주에 대한 질문 그 자체 역시 무의미할 테니 말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고, 타인의 불행을 통해 혜택과 행복을 얻는 '어글리 사피엔스'. 인류의 추한 모습이 존재하는 이유다. 하지만 인간은 동시에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다. 내가 아닌 타인의 도움 없이 이 험한 세상에서의 생존은 거의 불가능하니 말이다. 유스티니아누스 동로마 황제가 편찬한 '로마법대전'에서조차 "다수가 영향받을 법은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지적한 이유다.


개인의 자유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동시에 평등과 공평 역시 필요로 하는 인간. 함께 있으면 구속된 듯하고 불편하지만, 혼자가 되는 순간 외로운 우리. 둘 중 하나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내가' 원하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이유다.


타협이 불가능한 '나'와 '우리'라는 양면의 정체성 덕분에 끝없는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정신적 갈등을 겪어야 했던 인류.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이 우리에게 짊어준 정체성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인류는 신기하게도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갈등을 만들기 시작한다.


바로 "메타버스(Metaverse)"라 불리는 다중 현실이다. 30만년 전 지구에 등장한 이후 좋든 싫든 모두가 단 하나만인 현실에서 존재하던 인류는 이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그리고 확장현실(XR)을 통한 다양하고 무한에 가까운 다중 현실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가난한 대학생이 온라인 세상 1번에서는 재벌이고, 2번째 현실에서는 방탄소년단(BTS) 멤버를 능가하는 외모를 가진 K팝 아이돌이다. 한 곳의 현실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이지만, 또 다른 현실에서는 반인류적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이기적인 '나'와 이타적인 '우리' 사이 수백, 수천 가지 변형이 가능한 미래 인류의 정체성은 더 이상 이진법적인 '나'와 '우리'의 차이가 아닌 무한에 가까운 다중 현실에서의 정체성들로 구성된 새로운 '메타정체성(Meta-Identity)'을 통해 결정될 수도 있다. 여기서 만약 다중 정체성들 사이에 공통된 테마가 있다면-마치 바흐의 선율같이-미래 인류의 정체성 역시 대부분 예측 가능하겠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리는 없다. 현실마다 서로 일치하지 않는-마치 쇤베르크의 12음 기법 같은-중심과 평형이 없는 다중인격과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사회적 역할과 영향이 미래 세계에서는 새로운 도전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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