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왜 행복한 삶에 대해 말하지 않는가

환단스토리 | 2017.12.02 21:08 | 조회 5359

정치, 왜 행복한 삶에 대해 말하지 않는가


중앙선데이] 입력 2017.11.26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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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삶, 느린 생각]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미국의 대중 지리(地理)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 11월 호에 ‘행복의 추구’라는 특집이 있었다. 특집의 기본 자료는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와 갤럽 여론조사 2017년 판을 참조한 것인데,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은 거기에서 도출된 지표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택된 덴마크·코스타리카, 그리고 싱가포르에 대한 간단한 소개이다. 

  

삶의 기쁨·목적·자긍심 기준으로

한국은 행복도 낮은 나라로 꼽혀

정치가 적폐청산 등에만 매달려

행복 또는 생활의 만족은 외면


또 이 특집에서 흥미로운 것 하나는 ‘세계 행복지도’라는 도판(圖版)인데, 조사 대상이 된 나라들의 행복 지수를 이모티콘으로 표시하여, 이것을 세계 지도 위에 배열한 것이다. 행복의 관점에서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가 행복한 나라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쪽을 보면,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전체적으로 그 행복 순위가 별로 높지 않는 것으로 나와 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는 베트남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그 지수가 높은 것은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중국 그리고 대만도 그에 비교될 만한 행복지수를 가진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의 행복 지수는 그보다 낮다. 이 지도에서 채택하고 있는 이모티콘에 따르면, 앞에서 말한 여러 나라들에는 적어도 미소짓는 얼굴의 기호가 부착되지만, 한국은 몽골과 비슷하게 미소는 없고 입을 일자로 다물고 있는 얼굴이 붙어 있다. 

  

행복한 나라들은 대개 비슷한 요건들을 만족시킨다. 이들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의 삶은 ‘기쁨과 목적과 자긍심’을 조합하여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객관적 조건이 이것을 뒷받침한다. ‘세계 행복 보고서’에 의하면 경제 성장, 건강한 삶, 긴 기대 수명, 질 높은 사회관계, 관용, 신뢰, 자유,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위에 말한 세 행복한 나라는 이 요건을 대개 만족시키지만, 그 나름대로 다른 성향의 행복 의식을 가지고 있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에게 행복은 집필자들의 용어로 ‘체험되는 행복’이다. 많이 웃고, 즐겁게 지내는 나날의 삶이 그 내용이다. 덴마크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목적이 있는 삶’이다. 행복은 코스타리카의 경우에도 기초 생활, 교육, 건강 등 사람의 기본적인 필요가 사회 복지 제도로 보장된 다음에 이야기되는 것인데, 이러한 보장이 가장 튼튼한 곳의 하나가 덴마크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토대 위에서 덴마크 사람들에게 행복한 삶은 의미 있는 삶, 관심을 끄는 것들을 배운다든가 실행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삶이다. 일터에서나 개인 시간에나 향유하는 이러한 삶에서 얻는 행복은 ‘에우다이모니아의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연유한 이 말은 간단히 옮겨, 덕(德)의 실천에서 오는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이야기된 행복은 싱가포르의 ‘성공하는 삶의 행복’이다.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성공의 길에서 점수를 높이 따는 것이 행복을 얻게 한다. 싱가포르인에게 규칙을 따르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행복의 길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승용차, 콘도, 현금, 신용카드, 클럽 회원권, 이러한 것들이 행복의 증표가 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행복한 이 나라들은 모두 사회 복지가 확보되어 있는 나라다. 다만 싱가포르에는 소위 ‘근로 복지제도’가 있다. 직업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 임금이 낮다고 하여도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출하여 주택이나 건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행복한 나라 덴마크·코스타리카·싱가포르

위에서 말한 바, 행복한 세 나라의 행복 개념들은 한국의 상태를 생각하는 데에 의미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하건대 이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글에 따르면 행복은, 물론 여러 사회학자 공용의 개념을 빌려 말한 것이지만 ‘나날의 삶의 행복’ ‘목적 있는 삶의 행복’ ‘성공하는 삶의 행복’ 이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이것과는 다른 행복의 동기도 있을 것이고, 이 세 가지 중 둘 또는 세 가지를 하나로 조합한 행복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조합을 생각해 보면 아마 제일 좋은 행복의 삶은 나날을 행복하게 살면서, 그것이 어떤 중요한 목적-자신의 것이기도 하고 사회 전체의 또는 더 높은 이상이기도 한-의 실현에 기여하는 것이 되고, 또 가능하다면 세속적인 성공도 얻게 되는 삶일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도 가장 위에 놓여야 할 것은 의미 있는 목적의 실현이 있는 삶이 아닐까 한다. 이것은 행복의 구성에서-그것이 진정한 것이라면-필수적인 것이기도 하고, 사회적 또는 초월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적하였지만 위에 말한 행복한 나라들은 사회 안전망이 분명하게 서 있는 나라들이다. 그러한 사회적 안전망은 정치를 통하여 확보되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삶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사회적 과제가 많은 미성숙 사회에서 그렇다.) 그러나 사람의 삶에서 사회가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크게 되면, 그것은 종종 독재와 억압의 표현이다. 또는 개인들의 상호 관계에서도 우위 확보의 수단이 된다. 그리하여 참다운 인간적 행복의 실현 또는 자기실현의 기회가 사라지게 된다. 

  

위에 말한 바 행복론을 여기에 소개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것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행복 의식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싱가포르인들의 그것에 가장 가까울 것이나 대체적으로는 바른 의미에서의 행복 의식이 부재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사회 안전망이 불비하고, 또 그 배경으로서의 관용의 인간관계나 사회적 신뢰 같은 사회 자본이 취약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큰 원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정치 그리고 사회 관계에서의 신뢰도가 낮은 것은 여러 사회 조사의 국제 비교에서 쉽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런데 특기할 것은 사람들의 행복한 삶이 정치의 실질적인 목표가 되는 일이 별로 없고 그 기초로서의 사회적 신뢰의 구축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정책도 없다는 것이다. 정치에는 엄숙한 정치의 목적이 있다고 생각된다. 정치는 행복 또는 생활의 만족과는 관계가 없어야 한다. 행복은 정치의 중심에 놓일 수 없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이 느끼게 하는 것도 생활로부터의 괴리이다. 정치와 사회 공공 조직의 투명성은 모든 정치 체제의 기본이다. 부패 척결은 그것을 위한 기본 작업이다. 그러나 적폐청산은 부정의 작업이고 그것이 어떤 긍정을 위한 예비작업인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특히 국민의 행복 의식-출세와 성공을 넘어서, 더 깊은 의미에서의 행복에 대한 의식-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우리 정치에서 행복한 삶은, 그것이 깊은 의미에서의 행복한 삶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적 동력으로서의 에너지를 갖지 못한다. 부정의 열정이 정치를 움직인다.(물론 도덕적 당위성의 강조가 있고, 유토피아의 비전이 따르는 경우는 없지 않지만.) 

  

환경과 인간의 조화도 행복의 핵심 조건

위에서 말한 것과 관련하여, 한 가지만 더 보태기로 한다. 그것은 좋은 행복에는 환경이 핵심적 조건이라는 사실이다. 위에 말한 특집에는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가 어디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글이 있다.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콜로라도주 볼더시가 이야기되어 있다. 오늘의 도시들이 그러하듯이 1960~70년대에 이 도시도 고층 건물들의 도시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한 여성이 주동이 된 시민운동으로 건물의 높이를 5층 이하로 하고 로키 산맥의 조망을 차단하는 건물의 높이를 제한하는 법안을 시의회에서 통과시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곳 건물들의 고층화가 방지되었다. 

  

환경이 사람의 삶의 느낌에 중요하다고 할 때, 이것은 더 적극적으로는 인간의 신체 조건이 환경과의 연쇄 속에 일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기계화된 교통수단이 아니라 신체를 움직여 이동해 다니는 것도 그러한 일체성을 다짐하는 일이다. 그것을 새삼스럽게 논의하기보다, 위 특집의 대표 필자의 삶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그의 행복론은 여러 연구에 의존하는 것이면서도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 깊이 관계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난 대표 필자 댄 뷔트너는 대학을 나오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세계를 탐험하기 위하여 남북 아메리카, 러시아, 아프리카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하였다. 그리고 그의 탐험, 그리고 그가 돌아본 여러 지역 가운데에서 행복한 곳이 어딘가 또 그곳에서 사는 방법이 어떤 것인가 하는 주제로 책을 여러 권 출간하였다. 그중 하나는 2015년에 출간된  『푸른 지대의 해결법-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들처럼 먹고 사는 법』이란 책인데, 그 책은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일이 있다. 그리고 그는 ‘푸른지대계획(불루존스프로젝트)’이라는 회사를 세워 여러 도시의 환경적 조건을 평가하고 계획하는 일에 참가하였다. 그는 적절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근본이라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또 환경의식에 기초한 공공작업에 참여함으로써 확인하고 실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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