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최초의 항일 순국열사 이한응

신상구 | 2020.08.31 03:49 | 조회 3723


                                                             대한제국 최초의  항일 순국열사 이한응


    

   독립운동가의 호칭으로 의사와 열사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의사는 침략의 원흉을 처단하거나, 통치기관을 폭파 응징한 분을 일컫고, 열사는 극단적 저항의 방법으로 자결 순국하신 분을 말한다. 일제의 침략에 대한 대응은 국권회복운동과 독립운동의 단계로 진행되었다. 국권회복운동은 대한제국시대 이래 가속화되는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주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고, 독립운동은 경술국치 이후 나라를 되찾기 위한 복국투쟁 이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의사와 열사가 속출하였다.
   최초의 항일열사가 누구냐고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충정공 민영환이라고 대답한다. 이는 민영환이 자결 시 입었던 피 묻은 옷을 간직한 방에서 이듬해에 푸른 대나무가 돋아났다는 '혈죽(血竹)'일화로 유명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6개월 전 이역만리 영국에서 주영국 대한제국 대리공사 이한응(1874-1905)이 자결 순국하였다. 이한응은 1901년 주영공사관의 참서관으로 부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외국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육영공원에서 영어공부하고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한제국 정부에서 유럽에 상주 공사를 파견한 것은 당당한 독립국가라는 사실을 서구 열강국에 알리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주영공사 민영돈이 본국으로 소환되자, 1904년 초부터 대리공사로서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한응은 대리공사 직책을 맡자마자 영국 외무성을 방문하여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였다. 그는 러일전쟁의 발발을 예견하고, 영국이 한국의 독립과 주권을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당시 그는 영국 정부에 한반도의 중립화 방안을 전달하였다.
   그의 예상대로 러일전쟁이 발발하였고, 전황은 일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이한응은 1905년 초부터 수차 영국 외무성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 우리의 독립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망국으로 치닫는 약소국의 외교관으로서 비애를 절감하며 처절하고 외로운 외교활동을 펼쳤다. 이한응의 외교 활동에 일본과 동맹관계에 있던 영국 정부는 냉담하였고 심지어 무시하기조차 하였다. 급기야 4월 12일 오후 이한응은 하이드 파크에서 두 명의 괴한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영국 외무부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괴한이 누구였는지, 왜 그의 목숨을 노렸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재외 주재 외교관의 소환과 재외공관 폐쇄 계획이 진행되는 등 상황은 악화 일로를 치달았다. 결국 그는 자결을 결심하고, 5월 12일 공사관 자신의 침실에서 목을 매 자결하였다. 당시 '매천야록' 등의 기록에는 그가 음독 자결한 것으로 잘못 기록하고 있다. 그의 자결 순국과 관련된 상황은 현지 신문인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생생히 보도되었다.
   그의 순국과 관련하여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일제가 그의 순국을 '우울증의 발광'으로 왜곡 날조하여 선전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제가 자결 순국의 파장을 차단하고자 한 간교하고 비열한 선전 책동임에 불과하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경우가 경술국치에 분개하여 제일 먼저 자결 순국한 금산군수 홍범식의 사례이다. 일제는 경술국치 당일 홍범식이 자결하자 황급히 그가 남긴 유서를 압수하고, 그의 순국이 일제의 침략에 분개하여 결행한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광증(狂症)이 발(發)하여'자살한 것으로 폄하하였던 것이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자결 순국 투쟁은 '역사가들이 자결 순국자들을 대서특서(大書特書)하여 입전(立傳)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박은식의 평가를 되새겨야 한다.
   내일은 이한응 열사가 순국한 지 꼭 1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여 오늘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그의 순국 투쟁의 사실을 조명하고, 영국공사관 건물의 활용 방안을 논의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 최초의 항일 순국열사 이한응의 순국 투쟁이 올바로 평가되고, 그가 순국한 영국 공사관 건물이 유럽지역 독립운동사를 종합 전시하는 공간으로 조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1. 박걸순, "최초의 항일 순국열사 이한응", 대전일보, 2015.5.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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