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출신 추강 백낙관란

신상구 | 2020.08.16 18:56 | 조회 4187

                                                                                  보령 출신 추강 백낙관란
▲ <목멱산 봉수대 터> ⓒ한국학중앙연구원

    "불이야!" 고함 소리가 경복궁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1882년 5월4일 밤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불은 경복궁에서 난 것이 아니고 맞은 편 남산에서 타올랐다. 그것도 남산 봉수대.

   남산 봉수대는 전국에 걸쳐 연결된 봉수대가 위급한 사항을 중앙에 전달하는 마지막 종점이니 궁궐 안은 물론 서울 장안이 무슨 변고가 났는지 웅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잖아도 이 무렵 전국 곳곳에서 소요가 발생하고 있는 터라 모두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궁궐 수비대 군인들이 남산으로 달려갔다.

   이 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불을 지른 젊은이가 도망치지 않고 '내가 불을 질렀소!' 하고 군인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자기 신원을 밝혔다.

   '나는 충청도 보령군 주산면 동오리에 사는 백낙관(白樂寬)이오. 어서 나를 체포하여 궁궐로 데려 가시오'

   이렇게 담대하게 목청을 높인 백낙관은 1846년(헌종12년)에 병조참판을 지낸 백홍수를 아버지로 하여 그의 고향 보령 주산에서 태어났다. 호는 추강(秋江).

   그는 성장하면서 조선이 점차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정치 상황에 의분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 되고 있는 데도 왕실의 무능과 권력 싸움에 날이 새고, 날이 저무는 세도정치에 염증을 느꼈다. 아울러 대원군과 민비(명성황후) 사이의 싸움이 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는 상황.

   백낙관은 더 참지 못하고 1880년(고종17년)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으나 상소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체포 되고 만다.

   얼마 후 백낙관은 풀려났으나 우국충정에 불타는 마음은 꺼질 줄 몰랐다.

   그래서 상소를 고종 임금에게 직접 전달되는 방법으로 남산에 불을 지른 것이다. 민씨 세도정치의 폐습과 일본의 야욕을 척결하는 상소문을 가슴에 지닌 채 마침내 그는 고종 앞에 나타나 불을 지른 연유를 말하고 바른 정치를 간청했으나 무능한 임금은 어쩌질 못했고 백낙관은 감옥에 갇히고 만다.

▲ 경복궁 근정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 경복궁 근정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백낙관이 상소를 올리려고 남산에 불을 질렀으나 아무 조치도 없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은 구식 군대인 무위영과 장어영에 전해 졌고 이는 가뜩이나 신식 군대인 별기군에 비해 급료도 제대로 못 받는 등 차별대우에 불만이 높았던 터라 반란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1882년 6월9일 구식 군인들은 일본 순사 등 일본인 13명을 살해하고 일본 관련 건물을 불태우거나 파괴했으며 군인들의 급료를 담당하는 선혜청 관아를 급습, 이 과정에서 중신 이최응이 죽임을 당하는 등 사태가 심각하게 번져 갔다. 이것이 역사에서는 '임오군란'으로 명명하고 있다. 명성황후는 궁녀의 옷으로 변장을 하고 궁궐을 빠져 나가 충북 장호원으로 급히 피난을 가야했고 하나부사 일본공사 등 공사관원들은 인천으로 도망갔다가 영국의 배를 얻어 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군인들은 옥에 갇힌 백낙관을 구출하고 '백충신’ '백충신’을 연호했다. 그렇게 구식 군인들에게 백낙관은 영웅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백낙관은 군인들에 의한 석방을 거부하고 '나를 투옥시킨 사람들의 정당한 판결에 의하지 않고는 나가지 않겠다'며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임오군란의 배후 인물로 의심받는 대원군이 명성황후가 도망간 틈을 타 재집권을 하게 되자 백낙관을 정식으로 석방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청나라 군대가 진주하고 대원군이 그들에게 잡혀 가자 다시 권좌에 오른 명성황후에 의해 제주도로 유배를 간 백낙관은 1883년 8월29일 38세를 일기로 처형되었다. 애닮은 충신의 생애였다. (그의 상소문은 지금도 육군 사관학교박물관에 보관중이며 그의 고향 주산면 금암리에 그를 기리는 비가 있다.)

                                                                                            <참고문헌>

    1. 변평섭, "정치 상황에 의분… 임오군란과 보령 출신 백낙관 연결고리", 충청투데이, 2020.8.14일자. 9면.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160개(11/78페이지)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회원게시판 이용수칙] 관리자 46743 2023.10.05
공지 상생의 새문화를 여는 STB 상생방송을 소개합니다. 환단스토리 207871 2018.07.12
1008 [역사공부방] 천부경의 중심을 이루는 칠점육각(七點六角) 사진 첨부파일 삼시랑 3615 2023.02.15
1007 [역사공부방] 92세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상숙 씨 이야기 사진 대선 3451 2023.02.14
1006 [역사공부방] 자작나무의 특징과 한국 무속 대선 3671 2023.02.06
1005 [역사공부방] 연담 이운규 선생의 후천개벽사상과 남학의거운동 대선 4171 2023.02.06
1004 [역사공부방] 오징어 게임은 천부경의 원리 사진 첨부파일 삼시랑 4933 2023.02.05
1003 [역사공부방] 2023년 정월대보름 맞이 대동 장승제 봉행을 경축하며 대선 4377 2023.02.04
1002 [역사공부방] 로제타 셔우드 홀과 박에스터 사진 대선 3377 2023.01.30
1001 모바일 [역사공부방] 천부경의 핵심은 참나(眞我)의 회복 삼시랑 3775 2023.01.30
1000 [역사공부방] 초고령 저출산화 현상 심각, 즉각 해법 긴요 대선 3051 2023.01.28
999 [역사공부방] 인구절벽 시대 대선 3779 2023.01.26
998 [역사공부방] 대전․ 충남․ 세종 소설계의 큰 희망 대선 3594 2023.01.15
997 [역사공부방] 9순 맞은 박경석 예비역 육군 준장 에세이집 <정의와 불의> [1] 대선 4034 2023.01.14
996 [역사공부방] '천부경(天符經)'에 기반한 민족쑥뜸인 고마뜸 비법 공개 대선 3746 2023.01.09
995 답글 [역사공부방] 세계천부경협회 제2대 무상 이병희 회장 국제천부경학회 창립 주도 대선 3575 2023.02.14
994 [역사공부방] 위키백과의 천부경 해설 대선 6297 202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