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7일, 루트비히 판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신상구 | 2020.12.14 18:11 | 조회 5588


                                                   2020년 12월 17일,  루트비히 판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19세기 유명 초상화가 요제프 칼 슈틸러가 1820년 완성한 베토벤의 유화 초상. 모델로 장시간 앉아있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베토벤을 진득히 앉혀놓고 그렸다고 한다. 강렬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이 그 성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베토벤이 가장 아낀 초상화는 그보다 15년 전 요제프 빌리브로트 멜러가 로마 황제를 흉내 낸 자세로 그린 것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영웅들을 보며 자신도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베토벤의 ‘패기’를 엿볼 수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부릅뜬 눈, 꽉 다문 입매가 사내의 뚝심을 단박에 드러낸다. 지난 7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 근처 한 밀밭에 베토벤(1770~1827)의 거대한 초상이 떴다. 탁 트인 벌판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꼽히는 베토벤을 그린 이는 이탈리아 작가 다리오 감바린. 그는 오는 17일 베토벤의 250번째 생일을 기념하려고 ‘Beethoven Absolutely! 1770’이란 글자도 함께 새겼다.

​                                                                  1. 코로나가 불러온 ’250세 베토벤'의 인기

   올 한 해 ‘코로나 한파’가 문화계를 삼켰지만, 베토벤을 소환하려는 노력은 그치지 않았다. KBS교향악단은 24일 정명훈 지휘로 교향곡 6번 ‘전원’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요요마·아네조피 무터·다니엘 바렌보임은 ‘베토벤 삼중 협주곡’ 실황 음반을 내놨고,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는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의 오리지널 버전과 2020년 버전을 두 장의 CD에 담아 팬들을 기쁘게 했다. 교보문고·예스24에 따르면 베토벤 음반은 전년보다 80%(DVD 포함) 더 많이 팔렸다. ‘더 베스트 오브 베토벤’ 영상은 유튜브에서 440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베토벤이 이십 대이던 1790년대엔 ‘월광’이 ‘빌보드 핫 100’ 1위였을 것”이란 댓글이 달렸다.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유명 디지털 음원 서비스에서 사람들이 올 한 해 베토벤을 찾아 들은 횟수는 900만이 넘는다.

 

                            

    250년 전 유럽 음악계를 제패한 베토벤이 21세기 인류의 마음을 여전히 사로잡고 있는 건 악성(樂聖)의 정수, 그 자체에 있다. 교향곡 9번 ‘합창’의 마지막 악장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트럼펫의 불협화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의 심장을 때리는 도입부는 당시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고수(高手)’들이 추천한 베토벤 명반


    겁 없이 도전하는 그의 음악 세계는 모순된 가정 환경에서 기인한다. 어린 시절 베토벤은 즉흥 연주의 대가였다. 아들을 제2의 모차르트로 만들고 싶었던 아버지는 무명 음악가들을 데려다 아들을 가르쳤다. 선생들은 종종 모여 즉흥 연주를 했다. 어린 베토벤은 그 ‘잼’에 섞여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건반을 쳐댔다. ‘아버지 바흐’보다 ‘아들 바흐’를 좋아했다. 대담한 화성, 급작스런 분위기 전환 등 아들 바흐의 현대적 음악을 베토벤은 흡수했다. 모차르트는 별로 안 좋아했다. 경쾌하고 세련된 모차르트 음악을 “잘게 다져놓은 것 같다”고 비아냥댔다.

​                                                                    3. 타고난 천재? 평생 담금질한 노력가!

    ‘신동’으로 돈을 쓸어담겠다는 아버지 야심을 충족시키진 못했지만, 베토벤은 열 살 때부터 무대에 올랐고, 열한 살 땐 변주곡과 소나타를 작곡했다. 음악회 반주자로 일할 만큼 피아노도 잘 쳤다. 곡을 완성하면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쳤다. 1801년 출판된 피아노 협주곡 2번은 1790년 본에서 작곡해 11년간 다섯 차례나 고쳤다. 작곡가로 성공한 뒤에도 헨델과 바흐의 모든 작품을 구해 베껴 쓰고 편곡하고 연구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장사꾼 집안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가방끈이 짧은 데 열등감을 느껴 독서에 매진했다. 열아홉엔 대학에서 철학과 고전문학을 탐독했다. 특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고대 영웅들을 보며 자신도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                                                                   4. 삶과 음악을 일치시킨 ‘극복’의 아이콘

     난청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건 서른한 살 때다. “하마터면 내 손으로 내 삶을 끝낼 뻔했다”는 고백에서 처절한 절망이 느껴진다. 그를 붙잡은 건 오직 예술이었다. 피아니스트 길은 포기하고 작곡에만 몰입했다.


     내게 ‘베토벤’은?

     1824년 5월 7일 금요일, 교향곡 9번이 빈에서 초연됐다. 2악장 스케르초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작곡가는 성악가가 그를 돌려세울 때까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필 악보는 2001년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1827년 3월, 죽음 직전의 베토벤은 “유감이군. 늦었어, 너무 늦었어”를 중얼거렸다. 부검을 하니 간은 절반으로 줄었고 췌장은 딱딱했다. 베토벤 장례식에서 슈베르트는 횃불을 들었다.

​    철학자 니체는 “셰익스피어와 베토벤은 공존한다”란 문장을 남겼다. 지휘자 예후디 메뉴인은 “베토벤 작품은 셰익스피어처럼 생각을 더 단순하게, 더 분명하게, 더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하다”고 했다. 사망 100주년 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은 베토벤이 자기네 것이라 우겼고, 유엔은 교향곡 9번의 ‘환희의 송가’를 유엔가(歌)로 정했다.

​     그의 음악이 시공을 뛰어넘어 울림을 주는 건, 간절히 원했던 사랑도, 결혼도 하지 못한 채 평생을 고통스러워했지만, 칸트의 철학처럼 덕성을 갖춘 인간이 되고 싶어 끝없이 내면을 갈고닦은 한 예술가의 삶이 우리들 심장에 스며들어서가 아닐까. 첼리스트 양성원은 “고통의 바닥에서 희망을 길어올리는 베토벤은 극복의 아이콘. 아무리 괴로워도 그 음악의 하이라이트에 이르면 기쁨과 행복의 메시지가 물결친다”고 했다. 코로나 시대, 베토벤은 우리 곁에 있다.

                                                                                   <참고문헌>

    1. 김경은, "250세 불멸의 거장 코로나 고통에서 희망을 길어올리다 : 2020년 12월 17일 루드비히 판 베토벵 탄생 250주년", 조선일보, 2020.12.14일자.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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