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소설가 이외수 타계

신상구 | 2022.04.26 19:58 | 조회 3660

괴짜 소설가 이외수 타계

문단의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써대는 작가…그는 왜 선계를 동경하며 속계에서 뒹구는가

도인, 사기꾼 그리고 작가. <한겨레21>이 14년 전 인터뷰한 사람. 그가 2022년 4월25일 세상을 떠났다. 소설가 이외수, 향년 76.

‘동물의 세계’에 살 수 없는 창백한 청년 소설가는 방세를 갚으려고 첫 소설을 썼고, 초지일관 한 가지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하악하악’ ****** 버텼다(고 한다). 생전 그가 말한 인생, 문학, 생존전략을 다시 읽는다. 2008년 제715호 <한겨레21>에 실렸던 이외수 작가의 인터뷰를 다시 소개한다. -편집자 주 화천=글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한겨레21

소설가 이외수. 윤운식 기자


머리를 감지 않고 수염을 깎지 않는다. 개집에서 잠을 자고 지붕 위에서 술을 마신다. 젓가락을 던져 벽에 꽂고 초능력을 발휘한다. 무박삼일로 취하고 담배를 하루에 7갑이나 피운다. 인터넷에서 젊은이들과 낄낄거리고 ‘반정부 활동’을 벌인다. 이외수의 행적들은 너무 돌려 너덜너덜해진 영화 필름을 보는 것 같다. 이 황당무계한 영화에서 이외수라는 배역은 두 개의 해석밖에 허용하지 않는다. 사기꾼이거나 도인이거나. 그러나 그를 둘러싼 온갖 거품들을 걷어내면 작가의 분투가 보일 것이다. 그는 60이 넘어서도 왕성하게 글을 쓰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이 척박한 문학의 토양에서, 이 비루한 인간의 현실에서 그가 택한 생존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이외수를 직접 만나 그의 인생과 문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의 삶을 요약하면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을까. 있는 힘껏 세상을 버텨내기.

1978년 소설계에는 하나의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장편소설은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된 글을 묶어내는 게 관행이었다. 그해, 이름도 생소한 한 신출내기의 소설이 연재를 거치지 않고 출간되어 파란을 일으킨다. 문단은 이를 ‘전작소설’이라 이름붙였다. 소설의 제목은 <꿈꾸는 식물>이고, 작가의 이름은 이외수다.

방세 갚으려고 소설을 쓰다

평론가 김현은 “<꿈꾸는 식물>은 너무나 심하게 나를 고문한다”고 썼다. 소설은 앵무새도 ‘총화유신’을 외치는 시절, 한 가족의 파국을 다루고 있다. 춘천에서 포주 노릇을 하는 아버지와 큰형, 어머니가 죽은 뒤 자신만의 세계로 도피해버린 둘째형,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와 ******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한 화자. 소설은 김현의 말처럼 품위 있는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곳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 희한한 젊은 작가가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언어를 세공했는지는 도입부를 보면 된다. “작은형이 돌아왔다… 밤중이었다… 민식아 민식아… 잠 속에 흥건하게 녹아 있는 내 의식을 한 컵씩 잠 밖으로 떠내고 있었다… 사방은 온통 안개에 점령당해 있었다… 나는 내 살이 서서히 풀어져 안개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착각에 빠지며 대문의 빗장을 열었다.” 이런 유리알 같은 언어는 ‘동물의 세계’에 살 수 없는 창백한 청년 소설가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의 내면은 신생아의 피부처럼 예민하고 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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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 윤운식 기자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이외수는 그동안 인터넷을 탐색하고, 연예인과 함께 에세이집을 내고, 여성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글 잘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쓰고, 이명박 대통령을 꼬집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고,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다. 인터넷 게시판 같은 에세이집 <하악하악>은 출판계 불황기에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다. 오래전 <꿈꾸는 식물>을 읽었을 때, 나는 그가 끝내 질식해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갈수록 왕성하게 숨을 쉬고 있다. 이 단절의 느낌은 뭘까. 그를 찾아가는 이유는 오직 이 궁금증 때문이었다.

“방세 갚으려고 첫 소설을 썼어요.” 그가 좋아하는 천체망원경을 등지고 앉아 옛날 이야기부터 들었다. 소설을 처음 쓴 이유가 방세 때문이었다는 것은 그의 인생 전체를 암시하는 듯하다. 예술혼이 아니라 방세. 1971년 그냥 써본 <견습 어린이들>은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덜커덕 당선됐다. 그때부터 “죄책감이 들어서” 산골 산골로 들어가 처절한 문장 공부를 했다. 닳고 닳은 그의 일화 중에 ‘얼음밥’이라는 게 있다. 겨울에 밥을 솥에 담아 바깥에 내놓는다. 꽁꽁 얼면 송곳이나 망치로 깨뜨려서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3년 고행 끝에 완성한 ‘묘사적 문체’로 중편소설 <훈장>을 썼다. <세대>는 최초로 중편소설 분야에 신인문학상을 만들었는데, 3년 동안 당선작이 없어서 상금이 쌓여 있었다. 1975년 <훈장>은 60만원이라는 거금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무엇이 그의 인생을 돈 안 되는 글로 돈벌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10여 일 굶으면 밥을 끓여서 국물부터 먹어야죠. 밥 생겼다고 넙죽넙죽 먹으면 위장이 망가지고 토해버려요.” 두 살 때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가출했다.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은 할머니밖에 없었다. 그의 작중 인물들은 대부분 모성애나 부성애가 결여돼 있다. 철이 들면서 생존을 위해 별의별 일을 다 했다. 미꾸라지 양식까지 생각했다. 친구와 양옥집을 칠하는 공사를 할 때는 꽤 돈을 벌었으나 친구가 건달과 싸움이 붙는 바람에 망해버렸다. 그리고 스물여덟에 소설로 방세를 뽑은 것이다.

그가 찾은 구원, 선계

그 뒤 원주에서 낮에는 학원 국어강사로 일하고 하루 2시간씩 자면서 <꿈꾸는 식물>을 썼다. 학생들은 소설을 쓴다고 하자 자발적으로 자습을 하겠다면서 그를 배려해주었다. 한번도 직접 본 적 없는 평론가 김현은 책을 들고 다니며 지인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다. 소설은 대성공을 거뒀으나 인세를 받지 못했다. “도장을 맡겨놨더니 출판사 편집장이 지 혼자 다 해먹고 나중에 나 때문에 집도 사고 잘살았다고 고백하더군. 그땐 이미 이 친구가 뇌졸중에 걸려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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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 윤운식 기자


소설 속 인물들은 무기력하다. 그냥 능력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금치산자에 가깝다. 그는 진실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시대의 진실은 무력감과 절망의 극한 상황에 처해 있거나 방황이 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이외수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갈 뻔했다.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면 그는 군복을 입고 통나무를 들었을 것이다. “그때 삼청교육대에 갔다면 죽었을 겁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것이 그 시대의 진실이었다.

그런데 출구가 없는 그의 소설은 <칼>(1982)에서부터 구원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가 말하는 <칼>은 ‘그 세계’를 너무 느닷없이 만나서 미완의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다. 그 세계란 선계이고 무릉도원이다. 수행을 통해 본성에 닿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주인공은 자살해버린다. 선계는 소설의 장치가 아니라 그가 믿고 있는 신념이다. <칼> 이후 그의 이력엔 산문집이 많아진다. 9년 만에 내놓은 <벽오금학도>부터 <장외인간>에 이르기까지 주인공들은 비루한 현실을 떠나 이상향으로 들어간다. 도피 혹은 구원의 동어반복. 독자들은 이런 환상의 세계에 불만을 쏟아냈지만 그는 <벽오금학도>가 <칼>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 단언한다. 문제는 시대가 아직도 불치라는 것이다. 민주화가 되건 말건 인간들의 세상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상과 구원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방식이 성공적이든, 아니든 간에.

이외수는 시작부터 줄곧 문단의 아웃사이더였다. 참여문학에서도 순수문학에서도 그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시대 상황에 저항하는 문학,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가 취급도 못 받는 시대였죠. 하지만 문학이 시대적 사명감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됩니다.” 주류 문단은 그를 위해 ‘대중작가’라는 냄새나는 자리를 내주었다. “대중소설? 당연하죠. 축구를 하려면 마이너보다 메이저가 낫고, 관중을 몰고 다니는 선수가 돼야지. 문학이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돼선 안 돼요.”

이제 그에게 왜 그렇게 ‘잡글’을 많이 쓰는지 물어봐야 할 차례다. 그는 이런 솔직한 답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환경에선 그렇게 발버둥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드니까. 등반가라고 히말라야 꼭대기에만 오를 순 없듯, 먹고살려면 할 수 없으니까. <꿈꾸는 식물> 작가 후기엔 이런 말이 있다. “되도록이면 나는 재미있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야 시정잡배 이외수의 독자들이 돈 아까운 줄을 모를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서비스일까 속임수일까. 둘 다 아니다. 내 최소한의 독자들에 대한 애정일 뿐이다.” 그가 정말 ‘서비스’와 ‘속임수’의 영토를 피해갔다면, 그는 소설 이외의 방식으로 글을 써서 살아남으면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셈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인터넷을 항해하고 TV 오락프로에 출연하는 걸까? “저 자신을 선계와 속계를 연결하는 중간자로 설정해놓았습니다. 내가 신선의 경지에 드는 것을 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속가에 완전히 떨어지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서 이외수는 화천에서도 군대 관심사병을 상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2008 우리들의 디오게네스

“살아남는 비결 따위는 없어. 하악하악. 초지일관 한 가지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이면서 ****** 버티는 거야. 하악하악.”(<하악하악>) 작가들은 이름을 얻고 나면 강단에 서거나 무슨무슨 단체의 장을 맡는다. 이때부터 권위는 늘고 창작은 줄어든다. 이외수에겐 애초부터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현실을 치열하게 버텨나가는 수밖에 없다. 권위 없는 글을 써서 돈을 벌지만 국가에 구걸하진 않는다.

그러므로 그에게 문학의 위기를 떠드는 자들은 가증스럽다. “자신들이 죽었다고 떠벌리는 문학의 시체에 붙어 진물이나 핥아먹고 살아가는 꼬락서니들하고는!”(<하악하악>) 치열함은 그의 천형이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의 글에는 그가 술을 끊던 순간이 묘사된다. 자의식과 상관없이 손이 떨리기 시작하자 단숨에 술을 끊어버린다. 술 생각이 치밀어오를 때마다 콘크리트벽에 머리를 찧으며 고통을 견뎌냈다. 알코올중독 환자를 많이 접해본 정혜신씨는 이게 얼마나 큰 인내력을 요구하는지 알고 있다. 그는 치열하게 마시고 치열하게 끊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으니까.

강원 화천군 산골에 있는 감성마을은 공사 중이라 포클레인이 산짐승처럼 돌아다녔다. 화천군은 이외수를 위해 집필실을 지어주고 산책로를 만들고 있다. 생존 작가를 위한 최초의 문학촌이다. 그는 몇 해 전 시끄러워서 춘천을 버렸다. 춘천 집 앞에 대학 정문이 있었다. 새벽 두 시에 글발이 제일 왕성한데, 공교롭게도 대학생들도 그때 술발이 제일 왕성했다. 춘천을 떠났다고 선계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이 동네의 가장 유명한 ‘관광자원’으로 활약 중이니까.

집 앞에서 고양이처럼 졸고 있던 부인 전영자씨의 “너무 정치만 물어보지 말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정치도’ 물어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니까 세상 만물을 사랑한다는 기본 정신은 같지 않겠습니까. 기본 정신만은 철두철미하게 지켜야죠.” 그는 사회의 진보를 믿지 않는다. 소수의 바람과 상관없이 다수는 현실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애쓸 뿐이다. 속계에 남아 있는 자들은 세상의 야만을 인내해야 한다.

2008년 우리는 나무통 속에서 자던 디오게네스 같은 작가를 아직도 보고 있다. 그의 소설은 더 이상 우리를 고문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집에서 자던 젊은 날부터 산골의 아담한 집필실에 앉아 있는 지금까지, 그는 줄곧 지성과 권위를 비웃으며 대중에 ‘영합’하며 글을 써대고 있다. 만약 알렉산더 같은 권력자가 와서 좀 진지해지라고 충고를 한다면, 그는 허연 이를 드러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악하악’ 혹은 ‘즐쳐드셈’.

<참고문헌>

1. 윤운식, "세상을 힘껏 버텨낸 소설가 이외수", 한겨레21, 2022.4.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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