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노벨과학상을 수상하려면

신상구 | 2022.05.22 11:05 | 조회 3611
한국인이 노벨과학상을 수상하려면
노벨생리의힉상 수상 랜디 세크먼 UC버클리 교수 인터뷰





정부가 던져준 주제만 연구했다면

아인슈타인도 혁명적 발견 못해

공무원 간섭 줄이고 연구자 존중을

창업 쉬워야 과학혁신 폭발

구글창업자 기부로 파킨슨병 연구

한국도 억만장자 관심 필요

과학의 힘 꿰뚫은 대통령 취임사

그대로만 실행하면 성과 나올것

201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랜디 셰크먼 UC버클리 교수가 지난 11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한자가 새겨진 넥타이를 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셰크먼 교수는 한자를 읽지는 못하지만, 평소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아 한자가 새겨진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며 웃었다. [사진 제공 = 기초과학연구원]

매년 12월이면 전 세계의 관심은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한다. 학자에게 최고의 영예인 '노벨상'이 이 시기 수여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첫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언제 탄생할지 초미의 관심사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러 학자가 노벨상 수상에 도전했으나 상 제정 이후 100년이 넘는 동안 한국인이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한 적이 없었다. 여러 정부가 과학기술 발전을 강조하며 기초과학에 투자를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정부도 취임사에서 과학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분야에서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연구 역량이 뒤처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럼에도 '과학의 꽃' 노벨상 수상자가 한국에서 탄생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매일경제는 201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랜디 셰크먼 UC버클리 교수를 지난 11일 서울대 기초과학연구동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뒤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과 교류했다. 셰크먼 교수는 '특정한 방향'을 정하지 않고 지원해야 혁신적 발견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질문-1>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위해 어떤 정책이 수립돼야 하나.

▷방향을 정하지 않는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을 예로 들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 미국의 기초과학 지원과 발전 방향을 제시한 보고서가 나왔다. '과학, 끝없는 개척(Science: Endless Frontier)'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는 정부가 기초과학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전략이 담겨 있었다.

연구자는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연구해야 할지에 자유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여기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정부 관료는 항상 자신들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고 관리하려고 한다. 학자를 자유롭게 놔두면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정부에서 원하는 주제를 연구했으면 혁명적 발견을 할 수 없었다. 근본적인 발견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초과학은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에 오면 늘 "미국에는 그렇게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왜 한국에는 없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동기가 자신의 호기심이 될 수 있도록 길게 보고 투자해야 한다.

<질문-2> 투자 성과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가령 싱가포르에서는 정부가 연구를 하나하나 다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투자하면 신속하게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기초과학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 한국은 기초과학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좋은 방향이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할 뿐 아니라, 대학과 연구소에서 훈련받은 연구자들이 기업으로 가며 산업 분야에 기초과학 지식을 응용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질문-3> 정부 정책 외에 사회문화적 분위기도 영향이 있을까.

▷역시 미국을 예로 들면, 대학에서 연구가 활발한 것도 있지만 벤처캐피털 문화가 잘돼 있다. 창업을 쉽게 할 수 있다. 연구자에게 인센티브로 작용하는 부분이다. 미국의 자선문화도 강점이다. 연구에 막대한 금액을 기부하는 문화가 있다. 나도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에게 5억달러를 기부받았다. 파킨슨병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를 해달라는 것이다. 한국은 억만장자들이 기부하고, 정부는 기부를 장려하는 문화를 갖췄나. 학생들과 대화했을 때 젊은 연구자들이 기회가 많은 미국으로 가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바이오 업계 자체가 크지 않은 이유로 보인다.

<질문-4> 지난 10일 윤석열정부가 출범했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 내용이 있나.

▷취임식에서 했던 말을 인상 깊게 들었다. 그대로만 하면 될 것 같다. 정치 경험은 없지만 솔직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다만 정치인들은 늘 좋은 말을 한다.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지를 계속 지켜봐야 한다(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견해가 다른 사람이 생각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도약과 성장은 오로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다"며 "과학과 기술, 혁신은 우리의 존엄한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질문-5> 연구 중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경력을 시작한 초기에 연구비를 지원받기 어려웠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고 싶었다. 그때는 순진해 과거 성취만으로 나의 잠재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년간 고생한 끝에 미국 국립의료원(NIH)에서 충분하지는 않지만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질문-6> 연구하며 가장 짜릿했던 순간도 궁금하다.

▷돌연변이를 통해 세포 안에 있는 소포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전자현미경으로 포착한 순간이다. 노벨상을 받게 해준 발견이다. 20년간 연구를 보상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향후 노벨상위원회에서 수상자들에 대한 에세이를 발간하며 가장 앞에 이 발견과 관련된 사진을 실었다.

<질문-7> 현재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고 있나.

▷여전히 인간의 세포와 소포체를 연구하고 있다. 소포체가 단백질이나 RNA를 전달하는데, 다른 세포에 어떤 방법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메커니즘을 연구 중이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바이오·제약 산업이 나아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질문-8> 지켜봐야 할 생물학 연구는 무엇일까.

▷단백질 구조에 대한 연구가 혁명적으로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과거에는 단백질 구조만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현재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구조만으로 기능을 예측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위스콘신대 연구팀과 구글 딥마인드가 이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향후 복잡한 실험 없이 단백질의 기능을 예측하고,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하는 단백질 구조 설계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질문-9> 유명 저널 네이처·사이언스가 세계 과학계 망쳐

영향력 지수 잣대로 판단 한계

mRNA백신 논문 게재 거절도

심사자 이름밝혀 신뢰 높여야

랜디 셰크먼 UC버클리 교수는 201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이후 도발적인 주장을 펼쳤다.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 유수 과학저널이 학계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1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네이처·사이언스가 학계에 독이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질문-10> 지금도 네이처·사이언스 등 학술지가 학계를 망치고 있다는 의견에는 변함이 없나.

▷그때보다 더 생각이 강해졌다. 세계적인 학술지들이 수익에 기반해 논문 게재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논문을 종이로 출간하는 것도 아니고, 온라인으로 게재하는데도 논문 수를 제한해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

<질문-11> 영향력지수(IF·학술지의 인용 횟수 등을 수치로 평가한 지수)가 학술지의 판단 기준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나.

▷실제 논문이 얼마나 혁신적인 연구를 담고 있느냐와 관계없이 평가자들에게 수치로 환상을 제공한다. 다른 연구자들에게 흥미를 얼마나 끄는지는 인기 척도일 뿐이다. 학술지들이 실제 논문의 질을 평가하지 못하게 됐다. 가령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상황은 mRNA 백신이 개발되며 전환점을 맞았다. 2005년 처음 mRNA 백신을 화학적으로 안전하게 주입하는 방법을 찾은 학자가 있었다. 그는 네이처와 사이언스에도 논문을 투고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유명하지 않은 학술지에서만 그의 논문을 게재했다. 문제점이 여기에 있다. 전문적인 에디터가 논문 게재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들은 과학자이지만 모든 분야를 알고 있지는 않다.

<질문-12> 그렇다면 학자들이 사이언스나 네이처 등에 투고하지 않아야 한다고 보나.

▷그게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이다. 위선적이라는 말도 들었다. 예전에 이러한 학술지에 논문을 내지 않았느냐, 노벨상을 받으니 편하게 말하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이다. 사실이다. 그때는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질문-13> 어떤 변화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쉬운 문제가 아니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논문을 심사하는 에디터 이름을 명시하는 것이다.

<셰크먼 교수 약력>

△1948년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출생 △1971년 UCLA 학사 △1975년 스탠퍼드대 박사 △1992년 미국과학아카데미 회원 △1994년 UC버클리 교수 △1999년 미국세포생물학회장 △2002년 앨버트 래스커 기초의학연구상 △2013년 영국왕립학회 외국인 회원 △201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2016년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연구단 자문위원

<참고문헌>

1. 정희영, "한국인 노벨과학상? 뭘 연구해도 눈치안볼 자유 있어야", 매일경제, 2022.5.16일자.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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