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강제노역 역사

신상구 | 2020.09.01 18:40 | 조회 4754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강제노역 역사

     

      울창한 나무가 양 옆으로 쭉 뻗어 있어 숲의 터널을 연상케 하는 5ㆍ16도로의 아름다운 모습. 손호철 교수 제공

   “세상에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도로가 있다니!”

   대학에 입학한 1970년 여름방학, 처음으로 제주도를 여행했다. 제주를 출발해 5ㆍ16도로를 따라 서귀포로 달리다 보면 나타나는 ‘숲의 터널’, 즉 양 옆의 나무들이 위로 이어져 터널을 달리는 느낌을 주는 숲의 터널을 지나며 나는 감탄했다. 이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숲의 터널이 한국에서 달려본 도로 중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는 나의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   헌데 왜 멀리 제주도에 있는 도로 이름이 ‘5ㆍ16 도로’이고, 이 곳이 왜 중요한 한국현대사의 현장인가. 이 도로의 이름이 5ㆍ16도로인 이유는 이 도로가 박정희정권에 의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한라산 7부 능선을 넘어 제주의 북부와 남부를 잇는 도로는 조선시대 말을 타고 다니던, 길이 44㎞의 오솔길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일본은 제주곳곳에 지하벙커 등을 만들었는데, 당시 진지가 있던 오름과 한라산자락을 잇는 도로를 건설했다. 헌데 48년 비극적인 4ㆍ3이후 정부가 주민들의 한라산 입산을 금지하면서, 이 도로는 버려지고 말았다.

   5ㆍ16쿠데타 직후인 1962년, 군사정부는 건설장비와 국토건설단 인력을 지원해, 너비 6m, 포장너비 4m, 길이 41.6㎞의 제주도 횡단포장도로 공사에 들어갔고 7년만인 1969년 완성했다. 이 횡단도로는 3시간 반 걸리던 제주와 서귀포간의 이동시간을 한 시간 반으로 단축시켜 제주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이 도로가 박정희정권의 공만은 아니다. 1958년 이승만정부 시절 일제강점기 때 사용하다 버려진 도로를 복구하는 1차 공사는 끝났고 2차 공사가 절반 완성된 상태에서 5ㆍ16쿠데타가 난 것이다.

                                                                 1. 박정희의 강제수용소, 국토건설단

   그리고 박정희정부의 공에 관한 한, 그 뒤에는 잊어서는 안 되는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박정희정권이 이 도로를 국토건설단을 동원해 건설했다는 사실이다. 국토건설단하면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이는 우리가 과거 반공시간에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소련의 굴라크(Gulag), 북한의 아오지 탄광과 다를 바가 없다. 국토건설단은 ‘한국판 강제노동수용소’였다. 한 마디로, 5ㆍ16도로는 한국에도 강제노동수용소가 있었다는 역사적 증거이고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다.

1962년 9월 15일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경북선 철도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국토건설단 단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토건설단을 만든 것은 박정희정권이 아니다. 4ㆍ19혁명 후 집권한 장면정권은 심각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직자들과 고학력 미취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기술훈련교육기관을 설립했다, 그것이 바로 국토건설단이다. 그러나 1년 뒤 5ㆍ16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박정희정권은 이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기술훈련교육기관을 한국판 굴라크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1961년 12월 박정권은 국토의 유기적 개발과 깡패, 불량배, 넝마주이, 병역 미필자 등에 대한 훈육을 위해 이들을 잡아다가 강제수용, 강제노역에 동원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   이 법에 따라 많은 젊은이들은 군사정권에 끌려와 먼 제주도 땅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고 난공사에 적지 않은 인원이 목숨을 잃었다(이들은 제주 뿐만이 아니라 경남 남강댐, 울산공업도시 도로공사, 전북 섬진강댐공사, 강원도 철도공사 등에 강제 투입됐다.) 국토건설단만이 아니라 일주도로가 통과되는 마을 주민들 역시 무보수로 공사에 투입되어 도로건설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1100미터 고지대를 통과해서 1100도로라고 부르기도 하고 제 2 횡단도로라고도 부르는 제주-서귀포간 도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박헌영의 유품을 꺼내 보이고 있는 원경스님.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정희정부는 1968년 어승생저수지 북쪽에 천막을 치고 국토건설단 600명을 격리수용해 벌목 등 도로건설에 투입해 6년만인 1973년 완공했다. 이제는 조계종의 원로회의 의원에 선출됐고 조계종의 가장 높은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았지만, 조선공산당의 당수 박헌영의 아들이었다는 이유로 파란만장한 젊은 날을 보낸 원경스님도 제주도에서 거리의 소외된 사람들을 돕다가 지역조직 폭력배들과 결탁한 경찰의 농간으로 국토건설단에 강제편입되어 1100도로 건설에 동원되기도 했다.

​                                                                     2. 국토건설단, 전두환의 삼청교육대로

    5ㆍ16도로와 국토건설단이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80년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뒤 이를 모델로 만든 것이 바로 삼청교육대이기 때문이다. 삼청교육대의 비극의 뿌리가 바로 박정희의 국토건설단과 5ㆍ16도로에 숨어있는 것이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최초의 포장횡단도로인 5ㆍ16도로의 준공을 기념해 1967년 설치한 ‘5ㆍ16도로’ 표시돌. 박정희의 친필 글씨로 만든 것이다. 손호철 교수 제공

   지금도 제주도에 가면, 5ㆍ16도로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제주시 제주대학교를 지나 산천단 근처에 가면 길옆 숲속에 비석 하나가 숨겨져 있다. 앞에는 박정희의 친필을 돌에 파서 암각한 ‘5ㆍ16도로’라는 글씨가 한문으로, 뒤에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 1967년 3월 건립’이라고 한문으로 쓰여 있다. ‘불쌍한 강제노역 동원 청년들을 위하여’가 아니라 ‘박정희대통령 각하’라! 공사 시작 당시 도로의 이름은 '한라산 횡단도로‘이었는데, 갑자기 군사정권이 도로이름을 '5ㆍ16도로'로 바꾸어 비를 세운 것이다.

​   비석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박정희대통령 각하’라고 돌을 파내 글씨를 새긴 부분에 빨간 색 페인트가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2016년 말, 박근혜 탄핵 촛불항쟁 당시 누군가 이 기념비에 붉은 페인트로 ‘독재자’와 ‘유신망령’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은 것이다. 이를 발견한 주민이 당국에 신고했고 지역 동사무소가 복구공사를 해 놓았지만, 붉은 훼손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

​   촛불항쟁 직후 서귀포신문이 여론조사를 한 결과 제주도민의 87%가 명칭변경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5ㆍ16 도로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아있다. 법에 따르면 도로명은 해당주소명을 사용하는 건물주, 사업자등의 1/5의 지지가 있어야 번경을 신청할 수 있고, 해당 인원의 절반의 찬성을 얻어야 변경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서귀포시는 700여호에 의견수렴을 실시했는데 100호 정도만 답을 했고 이 중 80%가 5ㆍ16 도로 명칭을 유지하자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   제주도를 여행한다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인 5ㆍ16도로의 숲의 터널을 달려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리고 5ㆍ16도로비를 찾아 볼 것도 권유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5ㆍ16도로를 달릴 기회가 있다면, 특히 아름다운 숲의 터널을 지나갈 때면, 이 아름다운 도로를 만들기 위해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노역을 당하며 죽어간 청년들의 명복을 빌어 주는 한편.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빼앗긴 희생자들을 위해 분노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어떠한 경제개발도 이 같은 반인권적인 방법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다짐해야 한다.

                                                              3. '자유대한'에 있었던 강제노동의 역사

                                                   삼청교육대 입소자들의 목봉체조 훈련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두환과 신군부가 우리 역사에 남긴 악행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 중 하나가 삼청교육대이다. 삼청교육대라는 이름은 이를 관장한 사회정화위원회가 삼청동에 있어 생긴 것으로, 신군부가 권력을 잡자 5ㆍ16 쿠데타의 국토건설단을 모델로 사회악을 일소한다며 폭력배 등 2만 명을 잡아다가 군부대에서 4주간 순화교육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   하지만 각 경찰서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아니 이를 초과달성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도 마구잡이로 잡아 보내 계획의 두 배인 4만 명이 끌려갔다. 정작 조폭 등은 뒷돈주고 빠지고 힘없는 사람들이 주로 잡혀갔다. 여자들도 동네에서 100원짜리 고스톱을 치다가 적발되면 붙잡혀 갔다. “이제 민주주의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예비역장군, 노동조합 간부들이 잡아갔다. 하다못해 고등학교별로 2, 3명의 할당량을 배정해 담임선생들이 제자중 대상자를 골라 “새마을교육을 받고 오라”고 보내, 잡혀온 사람 중 4분의 1이 미성년자였다!

​   이들은 군부대로 보내져 목봉체조 등 살인적인 훈련과 구타에 시달려야 했고 상당수는 1~5년까지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사회주의국가에서나 있는 것으로 배워온 강제노동수용소가 1980년대까지 ‘자유대한’에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마음대로 뛰어놀 어린 나이에 이곳에 끌려온 고등학생들은 살인적 훈련과 구타에 시달리며 새마을운동과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같은 위헌적이고 반인류적인 조치로 500명이 죽었고, 2300명이 부상이나 상해를 입었다. 2004년 이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에 관한 법이 뒤늦게 제정됐고 2018년 대법원도 삼청교육대는 위헌이고 무효라고 판결했다.

​                                                                                        <참고문헌> 

   1. 손호철, "제주 '숲의 터널' 뒤엔 박정희 강제노역의 역사 서려 있다", 한국일보, 2020.9.1일자.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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