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수호는 독립운동

신상구 | 2021.03.02 12:42 | 조회 2803

                                              한글 수호는 독립운동


   꼿꼿한 하나의 묵란(墨蘭)이 동토에서 독립하고 있다.
   저항 시인 이육사의 외동딸 이옥비(80) 여사는 아버지가 붓으로 친 난초 그림 앞에 1시간 넘게 서있었다. “이 그림을 본 순간 가슴이 먹먹해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물로 확인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했다. 이육사는 난초 옆 여백에 ‘依依可佩’(의의가패)라고 적었다. 풀이 무성하게 푸르러 경탄할 만큼 훌륭한 지경이라는 뜻이다. 해방 1년 전 베이징 감옥서 순국하기 전 그린 것으로, 조국의 광복을 확신하는 지사적 면모를 드러낸다. 코로나 사태로 미루고 미루다 전시 폐막을 앞두고 안동에서 서둘러 상경한 이 여사는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내 나이 세 살 때 청량리역에서 본 머리에 용수 쓰고 포승줄에 묶이고도 당당했던 모습”이라며 “아버지의 힘찬 묵란을 보자마자 옛 기억이 솟아올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00주년 한글특별전 ‘ㄱ의 순간’이 28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관과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지난해 11월 12일부터 열린 ‘ㄱ의 순간’은 한글의 철학을 전면에 내세워 한국 미술 대표 작가들의 신작·희귀작을 선보인 최초·최대의 전시다. 현대미술과 귀한 유물을 통해 한글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호평받았고, 특히 ‘문자 보급 운동’이 시작된 조선일보 지면 원본 등의 사료가 보여준 일제강점기 한글 수호 의지가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는 평이 속출했다. 이육사의 묵란 옆에는 그의 유일한 한글 육필 원고 ‘편복’(蝙蝠)이 걸려있다.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동굴 속 박쥐에 빗대 쓴 시로, 당시 일제의 검열에 걸려 해방 후에야 알려졌다. 전시장을 둘러본 이옥비 여사는 “당시 한글을 지키는 것은 곧 독립운동이었다”며 “놓치지 않고 전시를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코로나 사태로 미술계가 얼어붙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 분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준 높은 전시라는 소문이 번지면서 방탄소년단 리더 RM 및 각 지역 미술관장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찾는 코스가 됐다. 최근 2주만 해도 일평균 관람객 600명에 육박하는 고무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마지막 날에는 독립 공간에 놓인 미디어아트 작품(‘문’)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줄까지 서는 진풍경도 빚어졌다. 전날 부부 동반으로 전시장을 찾은 소설가 윤후명(75)씨는 “매일 한글을 쓰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한글 공부’가 필요하다”며 “이런 새로운 전시를 통해 한글에 대한 더 깊고 넓은 이해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에만 1018명이 관람했다. 교육 목적의 가족 단위 인파가 많았다. 딸과 함께 전시를 찾은 배우 유진(40)씨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자기 전까지 얘기하는 서현이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밤”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날 쌍둥이 자녀를 데리고 온 최현철(41)씨는 “관람평을 살펴보니 작품의 범위가 폭넓고 충실하다는 평가가 많아 아이들에게 좋을 것 같았다”며 “한글날에만 열리는 일회성 전시가 아닌 한글을 제대로 다루는 전시가 흔치 않은데 마지막 날이라고 하니 꼭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전시장 벽면에 관람객의 붓글씨 방명록도 1000장 넘게 나붙었다. 눌러쓴 글씨마다 진심이 담겨있다. “소중히/ 지키겠습니다/ 한글을.”
    전시는 끝났지만 여운은 계속된다. TV조선에서 ‘ㄱ의 순간’이 남긴 의미를 되새기는 특별 다큐멘터리 제작에 돌입해 3월 중순 방영 예정이다.
                                                                                        <참고문헌>
    1. 정상혁, "마지막 'ㄱ의 순간' 찾은 이육사의 딸 '한글 수호는 독립운동' ", 조선일보, 2021.3.1일자. A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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