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사회학자인 정수복 박사, 한국 사회학 지도 그렸다.

신상구 | 2022.01.13 13:15 | 조회 4341


                                      재야 사회학자인 정수복 박사, 한국 사회학 지도 그렸다. 

                                            ‘한국 사회학의 知性史’ 쓴 정수복 박사

조선일보

서울 자택 서재에서 만난 정수복 박사는 “70여 년 한국 사회학의 지형도와 이정표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맨 왼쪽에 그의 수첩들이 쌓여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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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자락 사회학자 정수복(67) 박사의 서재에는 수북이 꽂힌 책들 말고도 눈에 띄는 게 있다. 여러 책 내용과 단상을 수시로 적었다는 400권의 취재 수첩, 그리고 사르트르, 카미유 클로델, 화가 이쾌대에서 배우 장 폴 벨몽도에 이르는 숱한 인물들의 사진이다. ‘평소 연구 성향이 보이는 것 같다’고 했더니 반색을 했다.

“스승이신 알랭 투렌(97·프랑스 사회학의 거장) 교수께서 그러셨죠. 사회적 조건이 인간을 규정한다는 프랑스의 구조주의 사회학은 인간의 자발성과 주체성을 간과한다고요.” 그는 “역사를 움직이는 역동성을 알기 위해서는 그걸 만드는 ‘인물’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자 원고지 7000장 분량, 각주 7200개에 이르는 4권짜리 대작 연구서를 냈다.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知性史)’(푸른역사)다. ‘네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른다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것이다’라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추장의 말처럼, 우리나라 사회학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학의 역사, 인식의 지형도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처럼 한국 사회학사를 면밀히 정리한 책은 처음이다.

그런데 구성이 독특하다. 세계와 한국 사회학의 흐름을 개괄한 1권이 본기(本紀)라면 2~4권은 열전(列傳)이다. 한국 사회학의 주류로서 가치중립성과 실증주의를 중시한 ‘아카데미 사회학’(이상백·배용광·이만갑·이해영·김경동), 현실 문제 해결에 나서고자 한 비판사회학(이효재·한완상·김진균), 한국 고유의 역사적 맥락을 강조한 역사사회학(최재석·신용하·박영신)으로 나눠 대표적 학자 11명의 평전을 1인당 원고지 400~500장으로 자세히 썼다. 생존 인물이 7명이다. “학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살아 계실 때 활발한 토론이 이뤄져야 합니다.”

도서관에서 이들의 논문을 샅샅이 찾아 읽고 쓴 평전은, 대가들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이 아니다. 서울대 사회학과 창설을 이끈 이상백은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제도적 아버지’라 할 만하지만, 이론이란 면에선 ‘정신적 아버지’로 꼽기엔 어렵다는 것이다.

‘김경동의 사회학은 역사 의식과 비판적 의식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 ‘신용하의 민족주의 사관은 국사 교과서의 분위기를 풍긴다’고도 했다. ‘한완상의 민중사회학은 구체적 연구 방법론을 결여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창설에서 중요 역할을 했던 김진균의 학문적 업적은 다른 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비판도 적었다.

일화도 많다. 일제가 위안부를 모집할 때 집안에서 결혼을 강권하자 이효재는 몰래 가출을 단행했다. 일본 책을 번역해 강의하던 이상백은 항의하는 학생에게 “이 사람아, 내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이 학자를 능가할 수 없어서 그러네”라 말했다고 한다. 외부 연구비를 일절 받지 않던 최재석은 사후에 재산을 정리해 장학금을 남겼다.

정 박사는 현재의 한국 사회학계에 대해 “전통과 자원은 풍부하지만, 목표 설정이 뚜렷하지 않고 각자 흩어져 자기 연구에 몰두하기 때문에 정체성이나 집합적 열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학자들이 어느 한편에 기울어져 독립성과 주체성을 잃으면 안돼요. 현실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고 전체적인 판도를 그려낼 줄 알아야 합니다.”

학계 내부에 대한 책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었던 것은, 정 박사가 학계 인맥에서 자유로운 강단 밖 인물이기 때문이다. 1세대 심리학자 장병림(1918~2014) 서울대 교수의 사위인 그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년 전 ‘제도권 밖에 내 길이 있다’고 판단한 뒤 저술과 강연, 시민운동을 통해 대중과 호흡해 왔다. 2015년엔 저서 ‘응답하는 사회학’을 통해 한국 사회학의 길 찾기를 모색했다. 그는 “한학(漢學)이 신학문으로 바뀌는 근대 학계에 대한 연구가 다음 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참고문헌>
  1. 유석재, "신용하·한완상 등 11명 신랄한 평가… 한국 사회학 지도 그렸다", 조선일보, 2022.1.12일자.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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