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방의 시인 한성기의 삶과 문학세계

신상구 | 2021.01.26 02:01 | 조회 3691


                        둑방의 시인 한성기의 삶과 문학세계

    ‘푸른 불 시그널이 꽃처럼 어리는 / 여기 조그마한 역이 있다// 빈 대합실에는 의지할 의자 하나 없고/ 이따금 급행 열차가/ 어지럽게 기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역처럼/ 내가 있다//’- 역(驛) 전문

    고 한성기(1923-1984) 시인은 가난과 외로움, 병마 등으로 점철되는 삶 속에서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그곳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솔직하고 간결하게 작품으로 표현하면서 “너무나
정직하고 소박한” 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한성기 시인이 대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가 대전사범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면서다.
    함경남도 정평에서 태어난 그는 함흥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충남 당진의 초등학교 교사로 내려온다.
    평생 그를 따라다닌 유랑의 삶은 어쩌면 이때부터 시작됐는 지도 모른다. 
    이후 38선이 그어지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자연히 고향을 찾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대전사범학교에서
서예와 문학 등을 가르치며 정착된 삶을 살 던 그가 붓을 놓고 펜을 잡게 된 것은 갑자기 찾아온 아내의 죽음이 컸다.
   
산후 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몸이 쇠약하진 아내가 결혼 3년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내의 죽음은 이후 한성기의 시적 모티브이자 끝나지 않는 아픔이 된다.
    아이러니하기도 이는 1952년 ‘문예 ’에 초대작이자 대표작인 역(驛)이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는 “아내가 3살짜리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나자 시에 매달렸고 추천을 받기 위해 문예지에 번번이 낙선하면서도 열심히 투고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의식은 떠나지 않았다. 그는 시 ‘꽃병’에서 이렇게 써내려 갔다.
   ‘우연한 순간/ 꽃병은 돌아앉은 너의 모습/가까이 가서 그 가녀린
어깨를 툭툭치고 보면 /벌써 너는 굳어버린 하나의 /병이 된다// 꽃병 속에 불어넣은 것/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들 죽어간 사람으로 / 굳어버린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아닐까//’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썼다는 시 속에서 그의 아픔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그는 술을 즐겼다. 제자들은 “선생님 입에서는 늘 술 냄새가 풍겼다”고 회상한다.
    제자인 동화작가 서석규씨는 “ 졸업이 가까울 무렵부터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며 작은 술상이 등장했고 동태찌개 안주가 식으면 데워가면서 자정을 훨씬 넘기기도 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술은 그의 몸을 더욱 병들게 했다.  결국 1961년 대전사범학교 교사까지 그만둔 그는 충북 영동의 용문산으로
요양을 떠난다. 이후 영동, 추풍령, 조치원, 유성, 예산, 안흥(태안), 진잠 등으로 요양과 유랑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된 집을 가지지는 못했다고 알려졌다.
   그가 시 ‘나를 보채 쌌고’에서 ‘집은 내 집이 아니지만/햇살과 바람은 언제나 내 몫이다’라고 읊은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잦은 요양은 그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중 단연 눈길을 끄는 소재는 산이다.
    ‘어스름에 밖으로 나가본다/어스름에 묻히는/산(山)들// 육중한 모습이/말없이 하나하나/없어지며 나도 없어져 버린다// 어스름에 너와 나는 없고/어스름에 너와 나는 있다// 새벽에 밖에 나가본다/새벽에 드러나는 산(山)들// 육중한 모습이/ 말없이 하나 하나/ 드러나며 나도 드러나 보인다// 새벽에 너와 나는 없고/새벽에 너와 나는 있다//- 산(山) 전문
   마찬가지로 바다와 뚝 길에 대한 시편들도 안흥과 유성, 진잠에서 생활했던 그의 삶과 연결될 수 있다.
   초기 허무 의식을 내비친 그지만 중기부터는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내보인다.  나아가 후기에는 자연 친화와 자기 도야를 통해 자신의
운명 앞에 다가온 숙명에 대해 초월하는 면모를 나타냈다. 그 중 ‘바람이 맛있어요’는 많은 이들이 훔치고 싶은 시어로 꼽는다.
    곽우희 한성기 문학상 운영위원장은 “바람이 맛있다는 표현 속에 선생님의 초탈한 삶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고, 시조 시인 김영수도 “자연을 그리며 바람의 맛까지 가르쳐 준 스승을 잊을 수 없다”고 술회한 바 있다.  가난 속에서도 그는 시쓰기와 후배 지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현대문학 추천 위원을 겸하면서 박용래, 임강빈, 최원규 등과 더불어 당시 대전 문학을 지방 문단이 아닌 전국적인 위상을 갖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특히 호서문학을 결성해 적극 활동하기도 했다. 
    그가 대전에서 활동하며 배출해 낸 문하생만도 40여명. 여기에 사범학교 제자 등은 그의 시집이 출간되면 판매에 나서는 가 하면 시화전을 개최하는 등 스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가난했지만 지속적으로 제자를 양성하고 작품에 매진한 것은 그가 지닌 자존심이기도 했다.
    곽우희씨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선생님은 자존심을 놓지 않았다. 이는 대전에서 처음으로 현대 문학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 등 존경받는 문인의 삶을 이어가려는 선생님의 노력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1984년 뇌일혈로 쓰러져 8일만에 세상을 떠난 그이지만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숱하다.
    1987년 12월 12일에는 이들의 힘으로 대전시민회관(연정국악원) 앞뜰에 대표작 ’역’이 적힌 한성기 시비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1. 백운희, "문학의 고향-한성기 시인의 삶과 글", 대전일보, 2010.8.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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